May 19, 2019

“허무한 삶을 지나서” (Passing by the meaningless life)

Preacher:
Series:
Passage: 전도서 (Ecclesiastes) 11:9,10
Service Type:
  • 지난 3달가량 웹사이트기능의 문제로 인하여 ‘음성녹음’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이점 대단히 죄송하고, 이번주일 (5월19일)을 포함해 그동안 누락된 음성녹음을 모두 올렸습니다. 늘 말씀과 함께 승리 하시길 소망 합니다!

 

“허무한 삶을 지나서”

(Passing by the meaningless life)

5-19-19

본문말씀: 전도서 (Ecclesiastes) 11:9,10

9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Be happy, young man, while you are young, and let your heart give you joy in the days of your youth. Follow the ways of your heart and whatever your eyes see, but know that for all these things God will bring you to judgment.)

10 그런즉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으로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 (So then, banish anxiety from your heart and cast off the troubles of your body, for youth and vigor are meaningless.)

 

[설교 요약]

            오늘 본문말씀이 포함된 <전도서 1:2>에서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고 하며 전도서는 시작 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2절의 <전도자/ the Preacher>에 대해서, 메튜헨리는 ‘방황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온 전도자’라고 표현 했습니다. 이 전도자는 ‘돌아온 탕자’처럼 이 세상에서 방황하다가 하나님께로 돌아온 전도자인 것 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는 말 합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대로 좇아 행하라” (v.9a) 고. 이것은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그래 너가 원한다면 어리석고 방탕을 좇아 살아가는 악한 인생을 살아봐라!’ 고 도전하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아야)” (v 9b) 하기 때문입니다.

왜 인간은 허무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요?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누구에게 임하였는지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롬. 1:21) 라고 선언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않는 자들 입니다. 만약 내가 하나님을 거부하고 영화롭게 하지 않을때, 필연적인 나의 상태는 허망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때, 우리의 마음 가운데 오직 하나님이 아니고는 채울수 없는 심령을 만드신 것 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그분을 거부함으로 그 자리에 피조물로 대신하여 채우고자 할때, 우리의 심령은 거짓되고 망령되게 변질되는 것 입니다. 심히 허무하고 공허한 심령이 될수 밖에 없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의 명령을 지킴으로서 성령충만함으로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처나는 허무를 넘어서 생명과 만족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설교 전문]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과 함께 ‘무엇이 우리 인간을 의미와 소망으로 인도하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모든 인간은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누구도 불행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안타깝게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는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이유는 추구하는 삶의 목표가 잘못되었기 때문 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허무하고 헛된 삶이 아니라, 하나님만 주실수 있는 진정한 소망과 만족으로 넘쳐나는 삶 살수 있기를 기대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이 포함된 전도서는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 1:1) 고 시작 합니다. 바로 다윗왕의 아들, 솔로몬이 쓴 말씀이라는 것 입니다. 지혜의 왕으로 불리는 솔로몬왕 인것 입니다. 그는 말씀을 시작하면서 준비했다는 듯이 ‘헛되다’는 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 1:2) 라고. 이 말씀을 전하는 전도자, 즉 솔로몬 자신이 고백하는 그 인생의 대한 평가가 헛되다는 것 입니다. 그것도 한문장에서 무려 5번씩 ‘헛되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2절의 <전도자/ the Preacher>에 대해서, 메튜헨리는 ‘방황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온 [코헬렛/ 전도자]’라고 표현 했습니다. 이 전도자는 ‘돌아온 탕자’처럼 이 세상에서 방황하다가 하나님께로 돌아온 전도자인 것 입니다.

이 세상에서 출세와 명예와 온갖 쾌락을 추구한 끝은 행복과 만족이 아니라, ‘헛되고 헛되고 또 헛되다’는 것 입니다. 아무런 참된 의미와 기쁨의 열매를 거두지 못한다는 것 입니다. 껍질만 남고 속은 텅빈 말라버린 열매를 거둔다는 것 입니다. 허무와 쓸쓸함만이 남은 열매인 것 입니다. 만약 ‘헛되고 헛되다’는 이 말이 세상에서 방황하고 돌아온 자의 거짓없는 고백이라면, 우리는 쉽게 그말을 흘려 듣지 않는것이 현명한 자세할 것 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는 말 합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대로 좇아 행하라” (v.9a) 고. 그는 얼핏 보기에 청년들을 향하여 <너희들이 마음에 원하는 데로, 너희의 눈에 좋은데로 좇아 마음껏 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그래 너가 원한다면 어리석고 방탕을 좇아 살아가는 악한 인생을 살아봐라! 불나방이 불주위를 맴돌다 결국 불에 뛰어들어 죽듯, 방탕과 죄악을 길을 좇는 어리석음으로 끝가지 가봐라!’ 고 도전하는 것 입니다. 왜요? 그는 그 결과를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v 9b)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살펴시고 반드시 그 행한데로 심판하시기 때문 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근심으로 인하여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하고, 악으로 인하여 몸이 망가지지 않토록 조심하라는 것 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지난 시간에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이것은 ‘전 인격적인 변화’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것은 나의 인격적 변화 입니다. 스스로 높아지고 교만한 마음, 남에 대한 화내고 미워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 이런 인격적인 변화 입니다. 젊은이들은 조그만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참지 못하고, 그 말에 근심하고 격동 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그 근심에서 떠나라는 것 입니다. 또한 그를 충동하고 자극함으로 그 몸을 망가트리는 모든 정욕의 유혹에서 물러서라는 것 입니다. 다시 말하면, ‘너의 몸을 불의의 도구로 사용하지 말라’ (롬. 6:13) 는 것 입니다.

왜요? 그 결과가 좋지 않기 때문 입니다. 단순히 결과가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있기 때문 입니다. 전도자는 이어지는 마지막 장, <전. 12장> 말씀을 마무리 하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전. 12:13,14) 전도서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본분이라는 뜻 입니까? 물론 본분은 ‘의무’ (duty)라고 설명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본분’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의무를 넘어서서, 인간의 진정한 ‘특권과 지혜’라고 말해야 할것 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때 우리 인간은 비로소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악을 떠나고 선에 속하는 복되고 지혜로운 인생을 살게 되기 때문 입니다. 그것을 지킬때 모든 인간이 그토록 추구하지만, 수없이 많은 자들이 실패하는 참된 행복과 평화의 삶을 누리게 되기 때문 입니다.

왜 인간은 허무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요? 사도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진노가 누구에게 임하였는지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롬. 1:21) 라고 선언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알만한 심령을 허락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않는 자들 입니다. 이런자들의 삶은 자연스럽게 그리고 반드시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어리석음으로 마음이 어두워졌다는 것 입니다. ‘허망하다’는 뜻은 무엇 입니까? 그것은 ‘거짓되고 망령되다’ 혹은 ‘어이가 없고 허무하다’는 뜻 입니다.

만약 내가 하나님을 거부하고 영화롭게 하지 않을때, 필연적인 나의 상태는 허망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거짓되고 망령되며 허망한 심령이 되는 것 입니다. 그 이유를 아십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때 우리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알만한 심령을 허락 하셨기 때문 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아니고는 채울수 없는 심령을 허락하신 것 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그분을 거부함으로 그 자리에 피조물로 대신하여 채우고자 할때, 우리의 심령은 거짓괴고 망령되게 변질되는 것 입니다. 심히 허무하고 공허한 심령이 될수 밖에 없는 것 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했기 때문이요, 그를 영화롭게 하지 않았기 때문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 명령을 지키지 않은 자의 삶의 모습인 것 입니다.

예수님은 어느날 한낮의 중동의 뜨거운 태양볕 아래 우물물을 깃는 사마리아의 한 여인을 찾아가셔서 이렇게 이렇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3,14)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허무한 세상이 줄수 없고 세상이 빼앗을수 없는 생명을 물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아니면, 단순히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분을 영화롭게 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십니까?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과 내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놓고,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할때, 엄청난 삶의 문제가 발생함을 우리는 분명히 이해해야만 합니다. 이런 자의 생각은 텅빈 허무함과 어리석음으로 채워지는 것 입니다. 성경은 행복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 믿는자들에게 기쁨과 감사와 평화와 쉼 (=안식)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행복의 사전적 뜻이 ‘복된 좋은 운수/ favored by luck or fortune’라는 정의에서 알수 있드시, 행복은 우리 인생의 목적이 아닙니다. 행복은 우리 인간의 목적인 하나님을 경외함을 통해 누리게 되는 약속하신 기쁨과 감사와 평화와 안식의 열매를 맺게 됨으로 인해 내가 느끼는 흡족하고 만족스러운 느낌인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우리를 향해 스스로 행복해지라고 속삭 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전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기 이전에, 먼저 나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라고 마치 우리를 위하는 양 속삭 입니다. 그러나, 이런 거짓 가르침에 속지 마십시요.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의 존재 전체를 다스리지 않는한,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그 어떤 피조물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한 우리 인간은 결코 진정한 기쁨과 감사와 평화 가운데 누리는 만족을 누릴수 없다고 선언하는 것 입니다. 내 육체에 속한 자아는, 그리고 세상의 공중권세 잡은 자 사단 마귀는 거짓 행복으로 믿지 않는 자들 뿐 아니라 우리 크리스챤들조차 우는 사자처럼 삼키고자 유혹 합니다. 약속하신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런 헛된 가르침에 속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의 명령을 지킴으로서 풍성한 삶을 사시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복 합니다. 세상이 줄수 없고 세상이 막을수 없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처나는 인생,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인생을 성령님을 통해 살아감으로 허무를 넘어서 생명과 만족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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