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12, 2019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By renewing of your mind)

Preacher:
Passage: 로마서 (Romans) 12:2
Service Type: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By renewing of your mind)

5-12-19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Do not conform any longer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Then you will be able to test and approve what Gods will is – His good, pleasing and perfect will)

 

[설교 요약]

오늘 말씀은 크리스챤의 ‘성화’ (sanctification)에 관한 메세지 입니다. 사도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림으로 성도의 성화를 가질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는 ‘무엇이 거룩한 산제사인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무엇이 거룩한 산제사 입니까?

그것이 오늘 본문 내용 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삶으로 증명해 보이는 것’ 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이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삶으로 살아나갈수 있는 관건이 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뜻인가요?” (What means to renew our minds?) 그것은,

첫째,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것’ 입니다 (It means to do not conform any longer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사도바울이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말했을때, ‘본받다’ (conform)는 동사의 헬라어 원어의 의미는 ‘외적인 표현을 취하는 개인의 행동’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동사와 동일한 의미의 단어가 <빌. 2:6~8>에 사용 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 나셨으매 ~” 여기서 사람의 ‘모양’ (fashion) 이라는 단어가 오늘 말씀의 ‘본받다’ (conform) 와 동일한 의미 입니다. 주께서 사람의 모양을 입으셨드시, 우리도 세상의 풍조와 교훈의 모양을 입지 말라는 것 입니다. 세상에 속한 외적인 모습을 취하지 말라고요.

둘째, ‘전 인격적으로 변화 되는 것’ 입니다 (It means to be transformed by our total personality): 과연 나가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이 세대의 정신을 거부할수 있는 영적 능력이 나에게 있는지를 결정하는 관건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의 전 인격적인 변화를 통해 시작되는 것 입니다. 무엇이 전인격적인 변화일까요? 그것은 나의 심령과 사고방식 전체의 변화를 뜻 합니다. 이런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에 오르셨서 그의 얼굴이 빛과 같이 변화되셨드시 우리 믿는자도 영광스런 신분의 걸맞는 존재로 변형 (transfigure) 되는 것 입니다. 나의 의지와 결심 이전에 하나님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빛된 영광으로 인해 우리의 전존재가 변화되어 지는 것 입니다.

셋째, ‘성령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것’ 입니다 (It means to trust and obey the Holy Spirit): 그렇다면, 어떻게 이 전 인격적인 변화는 우리 성도들의 삶속에서 가능한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신뢰하고 순종함을 통해 가능할 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6) 고 선언 합니다. 성령을 좇지 않을때 육체의 소욕이라는 추하고 죄악된 열매를 맺게 되지만, 성령을 좇게 될때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 (갈. 5:22,23) 라는 선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 입니다. 바로 전인격적인 변화를 통한 열매인 것 입니다. 여러분은 성령님을 더욱 신뢰하고 순종함으로 전인격적인 변화를 경험 했습니까?

성도 여러분, 주님을 만나는 날까지 성령님의 충만하신 은혜 가운데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주의 약속하신 모든 하늘에 속한 복과 열매를 거두는 삶 사시길 소원 합니다.

 

[설교 전문]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지난 몇주에 걸쳐서 로마서말씀을 통해 복음에 나타난 중요한 진리의 가르침을 살펴 보았습니다. <롬. 1:16,17>을 통해서 ‘무엇이 복음인지?’ 하는것과 ‘왜 크리스챤에게 복음은 진실로 기쁜소식이 되지 못하는것인지?’하는 도전적인 질문을 나눠 봤습니다. 그리고 <롬. 7:22~24>을 통해 ‘무엇이 죄며, 우리 인간은 그 죄에서 자유할수 없을것인가?’하는 주제로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크리스챤과 죄와의 관계는 단순히 ‘관계가 있다 혹은 없다’식의 단순한 관계가 아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거듭난 자의 신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죄와 사망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영광스런 존재가 되었지만, 우리 육신의 몸은 여전히 죄가 거하는 몸이기에 ‘나는 결코 죄를 짓지 않는다’라고 말한다면 거짓말하는 것 (요일. 1:8~10)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거듭난 자는 거부할수 있는 존재인 것 입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가 나의 존재상태가 어떠하며, 특히 ‘죄에 대한 영향력은 선택의 문제’임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인격적으로 결단함으로 내 육체 가운데 죄와 싸워나감으로 그 죄에서 자유를 누릴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마땅한 바이며 성숙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성경은 한결같이 선언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오늘 말씀은 ‘만약 내가 인격적인 결단을 통해 죄와 싸워 성숙된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기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라는 영적성숙을 향한 매우 중요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 입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크리스챤의 성화는 가능하다고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격려하며 도전하는 것 입니다.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 모두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삶으로 날마다 증명해 나가는 성숙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나갈수 있기를 기대 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살펴본데로, 사도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부터 11장 마칠때까지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과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감격과 감사가운데, 그러면서도 매우 치밀한 영적 논리를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12장을 시작하면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12:1) 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누리게 된 이 놀라운 신분과 영광스러운 삶을 깨닫았다면, 이제 너희 몸을 산제사로 드리라’는 것 입니다. 이것은 <로마서 11장>까지가 ‘우리 크리스챤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얼마나 축복된 존재인가?’에 대해 언급한 것이라면, 이제 <로마서 12장>을 시작하면서 사도바울은 처음으로 구체적인 <믿음의 적용>을 언급하고 있는 것 입니다. (물론 <롬.6:11~13>에서 다소 적용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부분적임) 여기서 <믿음의 적용>이라는 뜻은 <크리스챤의 성화>를 뜻 합니다.

‘이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소유한 거듭난 자가 되었다면, 어떻게 그런 거듭난 자의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것인가?그 신분에 걸맞는 믿음의 성장을 가져올것 인가?’하는 것 입니다. 이것이 크리스챤의 ‘성화’ (sanctification)에 관한 질문인 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그것은 한마디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림으로 성도의 성화를 가질수 있다’고 말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바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상하게도 ‘그렇다면 무엇이 거룩한 산제사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혀주고 있다는 사실 입니다.

무엇이 거룩한 산제사 입니까? 그것이 오늘 본문 내용 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삶으로 증명해 보이는 것’ 입니다. 만약 오늘 본문내용에서 ‘어떻게 거룩한 산제사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릴수 있을것인가?’라고 여러분이 질문 하신다면, 저는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그렇게 할수 있다고 답할수 있을 것 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이 오늘 본문말씀의 모든 내용에 있어서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되기 때문 입니다. 다시말해,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이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삶으로 살아나갈수 있는 관건이 되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우리 크리스챤의 성화에 있어서 본질은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되는 것 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우리가 함께 살펴볼것은 이것 입니다. 무엇이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뜻인가요?” (What means to renew our minds?)하는 것 입니다. 그것은,

첫째,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것’ 입니다 (It means to do not conform any longer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사도바울이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말했을때, ‘본받다’ (conform)는 동사의 헬라어 원어의 의미는 ‘외적인 표현을 취하는 개인의 행동’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이런 ‘본받다’는 동사의 뜻과 본질상 동일하게 사용된 단어가 <빌. 2:6~8>에 사용 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 나셨으매 ~” 여기서 사람의 ‘모양’ (fashion) 이라는 단어가 로마서 오늘 말씀의 ‘본받다’ (conform) 는 단어와 동일한 의미 입니다. 주께서 사람의 모양을 입으셨드시, 우리도 세상의 풍조와 교훈의 모양을 입지 말라는 것 입니다. 세상에 속한 외적인 모습을 취하지 말라고요.

그렇다면 이 세대에 속한 모습은 어떤것이 있을까요? 이 세대의 모습을 알고 싶습니까? 그것은 바울이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 부터 좇아 누구에게 나타났는지?’를 <1장> 끝부분에서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진)” (v.21) 자요,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꾼)” (v.23) 자인 것 입니다. 이들이 바로 “ ~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 (v.18) 인것 입니다. 그들의 삶의 모양이 어떠 합니까? “ ~ 곧 저희여인들도 순리대로 쓸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 (v.26,27) (동성연애), “ ~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심)” (v.28)  입니다. 그 ‘마음이 상실’ (a reprobate mind) (부패/타락) 할때 일어나는 것이 “불의, 추악, 탐욕, 악의 가득함,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함, 수군수군거림 ~” (v.29~32) 의 모든 모양 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세상의 모습을 본받아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구원받은 성도의 신분에 합당한 삶이 아닌 것 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음으로써 이런 세상의 모양을 취하는 어리석은 행위에서 떠나야 하는 것 입니다.

둘째, ‘전 인격적으로 변화 되는 것’ 입니다 (It means to be transformed by our total personality): 내가 성숙된 크리스챤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뜻데로 살아갈수 있는 영적 능력이 과연 나에게 있느냐가 이 세대의 정신을 거부할수 있는 영적 능력이 과연 나에게 있느냐가 그 중요한 증거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런 영적 능력은 나의 전 인격적인 변화를 통해 시작되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전인격적인 변화일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나의 심령과 사고방식 전체의 변화’를 뜻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변화를 받아’ (be transformed) 라고 표현된 헬라어 동사와 동일한 의미의 동사가 있습니다. 1) <마. 17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오르셨을때,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마. 17:2)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때 ‘변형되사’ (be transfigured) 라는 단어가 <로마서 12:2>의 ‘변화를 받다’는 단어와 동일한 뜻을 지닌 것 입니다. 또 2) <고후. 3:18>에서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 바울은 우리 성도들의 변화될 영광스러운 상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형상으로 화하여’ (~ being transformed) 라는 단어가 또한 같은 의미 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는 가운데 그분과 교제 했을때, 모세의 얼굴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반사 했드시, 우리 크리스챤들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볼때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 된다는 것 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영광을 비취게 된다는 것 입니다. 우리 크리스챤의 성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내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죄를 한가지 ~ 열거하여 없애나가는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내 인격전체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 입니다. 내가 노력하고 계획함을 너머서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의 영광의 능력으로 인해 내가 변화되어지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전인격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까?

셋째, ‘성령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것’ 입니다 (It means to trust and obey the Holy Spirit): 이제 그렇다면, 저는 최종적인 질문을 여러분에게 하기 원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전 인격적인 변화를 경험 했습니까?’라고. 그렇다면, 이 질문에서 ‘내가 전인격적으로 변화 되었는가?’라는 질문은 내가 어떤 상태가 되었음을 뜻하는 것할까요? 이 질문에 대해 어떤분들은 마치 ‘내가 아무 실수도 잘못도 전혀하지 않는 완벽한 인간이 되는 것이 전인격적으로 변화된 사람’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 인격적으로 변화된 사람’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이런 변화된 사람은 우리 주님의 산산수훈 가운데 대표적인 말씀의 하나로 알려진 <8복>에 나오는 심령을 소유한 자를 뜻 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케 하는 자 ~’ (마. 5:1~10) 입니다. 이들은 아무런 실수도 범하지 않는 완벽한 자가 아니라, 때로 실수하고 잘못을 범할찌라도 그의 삶은 이미 ‘전 인격적인 변화를 경험’한 자인 것 입니다.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내 심령과 사고방식 전체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 입니다. 이런 상태를 간단히 표현하면,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한 마음상태’라고 말할수 있고,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사랑함으로서 나의 인격 전체가 본질적으로 변화된 상태’라고 저는 정의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전 인격적인 변화는 우리 성도들의 삶속에서 가능한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가능할 것 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어떻게 삶에서 적용되는 것 일까요?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믿음은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신뢰하고 순종함을 통해 삶 가운데 적용할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사도바울은 비록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고 성도의 놀라운 신분을 소유했지만, 거짓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 신앙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편지 했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6) 고. 성령을 좇지 않을때, 마치 스스로 의로운듯 하고 성경적인 듯한 ‘율법준수’ 라는 거짓된 복음의 가르침을 좇게 될것이며, 그들은 육체의 소욕이라는 추하고 죄악된 열매를 맺게 되기 때문 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교회 안과 교회 밖이 다른 이중적인 인격, 위선적인 인격의 소유자가 되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좇게 될때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는 것 입니다.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 (갈. 5:22,23)의 아름답고 선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거룩한 성령님을 점점 더 알아감으로 그분을 더욱 신뢰하고 그분께 순종함으로 전인격적인 변화를 경험 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순종해 나가는 것은 내 평생을 통하여 한두번 경험하고 끝내는 이벤트가 아닙니다. 이것은 성도 여러분의 평생을 통해 성령을 좇아 행하고, 성령과 동행하는 삶 전체가 되어야 할것 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날까지 이어지는 ‘성령의 충만하심’을 받는 삶 입니다. 이 성령충만이 사도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말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행하여 살아가는 최종적인 열쇠가 될것 입니다.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 모두 성령님의 충만하신 은혜 가운데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주의 약속하신 모든 하늘에 속한 복과 열매를 거두는 삶 사시길 소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