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13, 2023

“내 아버지는 농부다” (My Father Is The Gardener)

Preacher:
Series:
Passage: 요한복음 (John) 15:1~4
Service Type:

“내 아버지는 농부라”

(My Father Is The Gardener)

8-13-23

본문말씀: 요한복음 (John) 15:1~4

1 내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설교 요약]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 곧 구원받아 영생을 누리고 천국백성이 된다는 것은 우리 인생의 최대의 복된 사건일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크리스챤 형제 자매의 신앙의 문제점은 구원받은 이후에 <영적 성장>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요, 오늘 주님의 표현대로 하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삶’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은 자신과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우리 성도의 관계를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핵심적으로 묘사하십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v.1) 그리고 <5절>에서 “너희는 가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관계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 의미는 “농부되신 하나님은 참 포도나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의 가지가 된 우리가 더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진실로 원하시고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8절).

이제 저는 어떻게 우리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인지?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첫째, ‘예수님 안에 거함으로서’ 입니다: 주님은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v.4)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참 포도나무인 자신에게 붙어 있지 않는다면 열매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함으로서’ 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자신 안에 거한다’는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v.9)라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중의 사랑안에 거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셋째,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서’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v.10) 바로 주님은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 (v.12)를 실천함으로서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열매는 무엇일까요? 이 열매는 수없이 많은 열매를 맺어지지만 그 중심에는 ‘인격의 열매’와 ‘전도의 열매’가 있습니다. 그리고 농부되신 하나님은 ‘참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께 우리가 붙어 있을 때’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깨끗게 하시는 것입니다 (v.2).

그렇다면, 무엇이 ‘가지를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일까요? 농부가 ‘가지치기’ (pruning)함으로서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듯이, 하나님은 떄로는 칭찬으로, 때로는 징계로서 그 사랑 가운데 그의 자녀들을 온전히 자라게 양육하시는 것입니다 (히. 12:6-8). 바라기는 농부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날마다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 곧 구원받아 영생을 누리고 천국백성이 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우리 인생의 최대의 복된 사건일 것입니다. 그리고 저 또한 그 구원의 순간이 우리 각자에 있어서 절대절명의 복된 순간임을 전적으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제가 청년시절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오면서 스스로 느끼고 경험한 많은 신앙의 문제점은, 그리고 마찬가지로 제 주위에서 보아 온 수많은 크리스챤 형제 자매의 신앙의 문제점은 구원받은 이후에 <영적 성장>을 이루지 못한다는데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주님의 표현대로 하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삶’인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믿고 구원받은 것이 말할 수 없이 복된 사건이라면, 중요한 것은 이 구원의 삶을 주님 만나는 날까지 날마다 성취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성도에게 도전한 것처럼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 2:12)고 촉구했듯이, 오늘 말씀 가운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농부되신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깨닫고 순종함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성품을 따라 많은 열매를 맺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요한복음 15장>은 주께서 십자가에 목 박히시기 전날 제자들과 함께 성만찬을 행하시고, 보혜사 되신 성령을 약속하시고 나서 주시는 마지막 가르침이자 도전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사실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는 몇가지 면에서 다른 특징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예수님 자신이 누구신지를 비유를 통해 매우 자세하게 묘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는 누구 누구다” (I am xx)라는 식으로 자신의 정체성 (identity)를 비유로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나는 생명의 떡이다” (6:35,48), “나는 생명의 빛이다” (8:12,9:5), “나는 양의 문이다” (10:7,9), “선한 목자다” (10:11,14), “부활이요 생명이다” (11:25), “길과 진리요 생명이다” (14:6), 그리고 오늘 마지막으로 “나는 참 포도나무요” (I am the true vine) (15:1)라고 주님은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말씀에서 자신을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주님 자신의 정체성을 비유로 말씀하심에 있어서 더욱 중요한 것은 주님이 자신의 이와 같은 정체성 뿐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는 누구시며, 그리고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크리스챤>은 또한 누구인지를 밝혀주시고, 더 나아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그리고 우리 성도와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간결하면서도 놀랍게 영적으로 설명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말씀인 것입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v.1) 그리고 <5절>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자신이 <참 포도나무>시고,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요, 주님을 따르는 그분의 제자된 우리는 참 포도나무 되신 주님의 <가지>라고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관계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주님은 이런 관계를 통해 “선하신 하나님은 참 포도나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의 가지가 된 우리가 더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진실로 원하시고 기뻐하신다”는 것이 농부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핵심적으로 주께서 그분의 가지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크리스챤의 진정한 삶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8절>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v.8)고 말입니다.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는 여러분과 제가 만약 ‘과실’ 곧 ‘열매’를 많이 맺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께서 “너는 나의 진정한 제자다”라고 그분의 인정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우리 모든 성도의 신앙의 목표라는 것입니다. 말로 만이 아닌 것입니다.

이제 저는 ‘과연 무엇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인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첫째, ‘예수님 안에 거함으로서’ 입니다: 주님은 무엇보다도 먼저 오늘 본문말씀에서 역설적으로 우리 성도가 어떻게 열매를 맺을 수 없는지를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를 통해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고 떨어져 있을 때’라는 것입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v.2)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참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에게서 떨어진 가지는 열매를 결코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열매는 고사하고 말라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께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v.4)고 말씀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일까요? 이런 질문에 대한 주님의 대답이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한 다음 단계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둘째,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함으로서’ 입니다: 어떻게 본다면, 지금 주님은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당부의 명령을 하시면서, 그 명하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자상하게 한단계 한단계 설명해 주시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바로 그 점을 잘 알 수 있는 것이 <9절>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v.9) 주님은 먼저 <4절>에서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시고 나서,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할 수 있을 것인지를 <9절>에서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함으로써’ 가능함을 일러주시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그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게 ‘어떻게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을까요?’일 것입니다. 물론 주님은 여기에 대해서도 대답해 주십니다. 이것이 다음 단계가 됩니다. 바로

셋째,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서’입니다: 이제 주님은 그분의 영적 논리를 풀어 설명해 주시면서, ‘주님의 사랑안에 거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v.10) 그렇습니다. 주님은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게 될 것이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주님의 계명입니까? 우리가 다른 것은 설혹 잊어버리더라도 이것 하나만은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주님이 자신의 제자된 우리 성도들에게 주시는 명령 곧 계명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12절>이 아니겠습니까?!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v.12) 이 말씀을 처음하신 것이 <요한복음 13장>인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 13:34)고 말입니다. 그럼으로 주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될 때, 우리는 주님의 사랑에 거하는 것이요, 그리고 이런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함이 바로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임을 역설적으로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될 때, 약속하신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한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나누기 원합니다. 그것은 주께서 약속하신 이런 열매 맺는 삶은 ‘고통과 부득이한 의무감’을 통해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주의 기쁨을 소유함을 통해서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v.11)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함으로서 이루어지는 그 열매가 주는 큰 특징은 기쁨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도 바울이 그의 주님을 위한 고난의 삶 가운데서도 더욱 피어나는 열매의 삶인 것입니다. 바로 사도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고백했고, 또한 그들에게 도전했던 ‘기쁨의 열매’인 것입니다. 주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주시는 그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게 하실, 약속의 영 성령님으로부터 넘쳐 흐르게 될 성령충만의 기쁨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 열매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격의 열매’와 ‘전도의 열매’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 밖에도 건강의 열매, 재능의 열매, 재물의 열매, 자손의 열매 등 수없이 많은 열매가 있겠지만,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셔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는 농부되신 하나님의 뜻은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인격과 전도’의 열매를 맺기 원하심을 저는 믿습니다.

이제 저는 성도 여러분과 오늘 말씀에서 <농부되신 하나님 아버지>는 어떤 분이신지를 함께 묵상하고 말씀을 마무리해 나가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는 농부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 (바램)은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요,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며, ‘주의 사랑 안에 거한다는 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그분의 계명을 지킴으로서’ 가능함을 주님의 말씀을 따라가 봄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먼저 우리 각자는 “나는 어떤 가지인가?”를 영적 긴호흡을 쉬고서 곰곰히 돌아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저의 뜻은 주께서 오늘 말씀을 시작하시면서, <농부되신 하나님은 어떤 가지를 통해 많은 열매를 맺도록 일하시는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열매 맺는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참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에게서 떨어진 가지라면 우리는 처음부터 생명이 없고, 열매도 없고, 그럼으로 하나님은 이렇게 말라 죽은 가지를 제거하여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날 엄중하게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무릇 내게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v.2)고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붙어 있는 가지는 살아있는 가지요, 열매 맺는 가지입니다. 많은 열매를 맺느냐, 적은 열매를 맺느냐는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문제는 그 가지가 참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께 붙어 있느냐 아니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주님께 붙어 있다면 반드시 열매 맺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붙어 있을 때, 이런 가지는 열매 맺을 수 있는 생명의 상태에 있음으로 농부되신 하나님은 그 가지가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주님은 “더 열매를 맺게 하려하여 가지를 깨끗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깨끗하게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때로는 ‘전지작업’ (pruning)을 통해 쓸모없는 곁 가지를 잘라내 주고, 때로는 ‘거름’과 같은 영양분과 필요한 물을 공급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히브리서 기자가 마치 자녀를 사랑하는 현명한 부모가 그 자식을 다루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자녀가 잘할 때는 칭찬과 상을 아끼자 않지만, 어긋나고 잘못된 길로 갈 때는 징계의 매 들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그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12:6,8) 이것이 농부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참 포도나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가지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의 가지에서 성숙된 인격과 영혼 구원의 풍성한 열매가 맺히게 하고자 날마다 성령님을 통해 여러분을 깨끗하게 일하시는 농부되신 하나님 아버지의 손길을 깨닫으십니까? 때로는 칭찬과 넘치는 선물로, 떄로는 혹독한 징계로서 여러분을 다루시는 아버지의 손길을 깨닫으십니까? 이것은 여러분의 인생을 담장 너머 뻗어나는 가지가 되어 풍성한 열매 맺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인 것입니다. 이런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품 안에서 그분의 능력의 손을 통하여 그 뜻에 순종하여 말씀 안에 거함으로서 아름다운 인격과 풍성한 생명의 열매를 날마다 맺어 나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