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21, 2021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For God so loved the world)

Preacher:
Passage: 요한복음 (John) 3:14~16
Service Type: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For God so loved the world)

2-21-21

본문말씀: 요한복음 (John) 3:14~16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Just as Moses lifted up the snake in the desert, so the Son of Man must be lifted up,)

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may have eternal life.)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설교 요약]

성경말씀 가운데 우리 모든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가장 사랑받고 암송되는 대표적인 말씀의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의 <요한복음 3:16> 말씀이 아닐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먼저 오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선 <요한복음 3장>전체의 흐름에서 본문을 파악해야 합니다. <요. 3장>은 어떻게 시작합니까?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오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는 구원을 받기 원했고, 주님은 “~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v.5)고 말씀하셨으며, 그는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수 있나이까” (v.9)라고 주께 반문합니다.

오늘 본문 <14~15절>에서 주께서 <민수기 21장>의 ‘놋뱀 사건’을 언급하는 것은 머지않아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높이 든것 같이, 자신도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고자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될 것’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놋뱀사건’에는 <3가지 영적 진실>이 포함된 있습니다: 1) 광야에서 독뱀에 물리듯이, 인류는 죄의 독으로 말미암아 멸망할 수밖에 없음, 2) 인류가 살아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 3) 이 구원은 ‘놋뱀’이라는 우리 눈에 어리석어 보이는 방법으로 ‘십자가 위’에서 완벽하게 이뤄짐

이제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요.3:16>에서 예수님의 중심 메시지일까요?” (What are the main points of ‘John 3:16’ by Jesus?)

첫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선명하게 밝혀줍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만을 구하셨습니다. 오늘 <16절>말씀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시작합니다. 이어지는 <17절>도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코자 하심이 아니요, 구원코자 하심이다’라고 주님은 아버지의 뜻을 밝히셨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고 계신지를 드러내 주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주께서 설명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크게 두가지로 묘사됩니다.

  • ‘사랑의 깊이’ (the quality of love)입니다. 그것을 “~ 이처럼 사랑하사” (so loved)라고 표현합니다. ‘이처럼’은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주시기까지’라는 것입니다.
  • ‘사랑의 넓이’ (the quantity of love)입니다. 그것은 “~ 저를 믿는 자마다 ~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생’ (eternal everlasting life) 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시간의 제한이 없음을 뜻합니다. 그 사랑은 영원토록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셋째, “오직 자신을 믿음으로만 영생을 얻게 됨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기까지 하시는 사랑이요, 우리를 구원코자 하시는 사랑이지면, 이것이 모든 자가 구원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선언하셨습니다.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멸망함을 밝히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을 통하여 구원받을 수 있음을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이 거듭남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오직 믿음으로 가능한 것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좋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통하여 주님의 생명 안에서 약속하신 사랑의 열매들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맺어나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성경말씀 가운데 우리 모든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가장 사랑받고 암송되는 대표적인 말씀의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의 <요한복음 3:16> 말씀이 아닐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언젠가 한 목사님께서 이렇게 얘기하던 것이 기억납니다. “만약 우리가 성경을 볼 수 없는 극한 상황이 찾아온다 할찌라도, ‘요한복음 3장 16절’ 만 붙들고 있으면 구원받을 수 있고, 복음 전할 수 있습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요. 3:16>은 성경 전체를 요약한 복음 중의 복음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핵심말씀은 ‘하나님은 사랑이시요’, ‘사랑인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을 그의 독생자를 통해 구원하실 뿐 아니라,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 시키시길 소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이런 하나님의 귀하신 사랑을 더욱 깨닫음으로 성도 여러분을 날마다 그분의 사랑의 포로로 변화시키시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지난 시간 한 율법학자가 “모든 계명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 (막. 12:28)라고 주께 질문을 했을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막. 12:30)고 주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온 힘을 다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고, 날마다 그의 계명을 지켜 나가며, 간절히 하나님 아버지를 추구해 나감을 통해 이뤄져갈 수 있음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제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제목의 오늘 말씀 가운데 여러분과 함께 묵상하고 깨닫기 원하는 것은 ‘하나님은 누구신가?’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이해하고자 하는 이 주제가 얼마나 큰 주제인지를 저는 잘 압니다. 그 깊이와 넓이를 다 알 수 없는 성경의 대표적인 주제가 ‘하나님은 누구신가?’라는 주제가 될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이 질문에 대해 충분히 답할 수 없고, 깨닫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의 지음받은 피조물이요, 그 분은 전능과 지혜로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광대한 주제, ‘하나님은 누구신가?’에 대해 생각해 보기 원하는 것은 이것이 지난 시간 하나님께서 그를 믿는 자녀들에게 “너는 ~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5)고 명하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이해하면 할수록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명령 (=요구)하시는지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가지 감사한 사실은, 하나님의 그 끝을 알수 없는 지혜와 다 표현할 수 없는 권능으로 존재하심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매우 분명하게 하나님을 정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어 주심으로 그것을 밝혀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요일.4:8)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성도들에게 ‘서로 사랑’하기를 격려하면서 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7~8)라고. 우리를 지으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이 사랑이심으로, 그의 자녀인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성경 저자를 사용하셔서 성령의 감동을 통해 자신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온통 그분이 누구신지를 드러내 보여주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핵심 말씀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만이 오늘 본문, <요.3:16>을 설명하는 진정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왜 <요.3:16>이 수많은 성도들에게 이토록 큰 감동과 은혜를 준다고 생각합니까? 물론,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살펴본 데로 이 말씀에는 하나님의 특성을 대표하는 그분의 크신 사랑이 우리를 살리셨다는 메세지가 그 중심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 속에 있는 복음의 정신은 찬란하게 선포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복음은 무엇이라고 선언합니까? 먼저, ‘이 세상은 그 죄로 말미암아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은 이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그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 주셔서, 그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주신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복음중의 복음이 되는 메시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요.3:16> 말씀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 몇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이 세상은 멸망이라는 최후의 심판을 받을 심각한 상태에 놓였다’는 것입니다. [둘째],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이미 알았다 하더라도 그 누구도 자기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이 멸망의 심판에서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셋째], ‘하나님은 구원의 유일한 방법으로써 그의 독생한 아들을 보내셔서 그를 믿는 모든 자를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인종과 피부색, 나이와 성별, 빈부와 귀천에 관계없이 오직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이 매우 감동적이고 복음의 본질을 선포하는 말씀이지만, 이 말씀만을 따로 떼어내서 생각해서는 주님의 메세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오늘 본문말씀이 포함된 <요.3장> 전체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요.3장>은 어떻게 시작할까요? 그것은 밤중에 유대인의 지도자인 ‘니고데모’가 조용히 예수님을 찾아옴으로 시작됩니다. 주님은 니고데모가 왜 찾아왔는지를 아셨습니다. 그는 구원을 얻기 원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언급하셨듯이 ‘유대인의 선생’이었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니, 이것은 니고데모 뿐 아니라, 그 당시 율법의 행위를 통해 구원받고자 했던 모든 신실한 유대인들의 문제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3:5)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요점은 <인간의 구원>은 행위의 결과로 결코 주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을 통해 거듭남’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니고데모는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수 있나이까” (v.9)라고 주께 반문합니다. 그는 구원의 영적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거듭남’ 즉 ‘구원’이 어떻게 어디에서 시작되며, 그리고 우리 각자가 어떻게 그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본격적으로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v.14~15)라고. 이것은 주님 자신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죽음을 겪게 될 것을 미리 알려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바로 <민수기 21:5~9>의 사건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민수기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를 범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셔서 그들이 물려 죽게 되었을 때, 이들이 모세에게 와서 그들을 구해줄 것을 간청합니다. 모세가 이것을 하나님께 간구했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 높이 매달아 뱀에 물린 자 마다 그 놋뱀을 쳐다보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나을 것이라고. 성경은 그 말씀데로 쳐다본 자들은 나음을 입었고, 보지 않은 자들은 모두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주님은 <놋뱀사건>을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놋뱀사건은 밤중에 주님을 조용히 찾아온 그가 진정으로 알기 원했던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를 본질적으로 설명해 주는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거기에는 몇가지의 이유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첫째) 불뱀에 물린 자가 자신의 어떤 행위로도 살아날 수 없듯이, 우리 인간은 그 어떤 행위로도 죄로 말미암는 심판에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멸망을 향해 달려갈 뿐인 것입니다. 둘째) 이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하나님의 자녀들은 깨닫고 인정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말로 만이 아니라,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그 구원의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 이 구원은 우리 눈에 어리석게 보이는 방법으로 하나님은 이루신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바로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를 우리 인간의 눈에 가장 어리석어 보이고 저주스러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완벽하게 이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를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하시는 방법인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구원을 ‘십자가의 비밀이요, 십자가의 능력’이라고 부르는 이유인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은 니고데모가 “사람이 이미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게 다시 거듭날 수 있다는 말입니까?”라고 한 질문에 대한 답인 것입니다. 민수기의 ‘놋뱀사건’이 그 대답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 그의 독생자 예수님 자신을 믿음을 통해서만 거듭날 수 있음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독생자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는)” (v.16) 것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저는 주께서 선언하신 <요. 3:16>의 의미를 살펴봄으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과연 무엇이 <요.3:16>에서 예수님의 중심 메시지일까요?” (What are the main points of ‘John 3:16’ by Jesus?) 하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선명하게 밝혀줍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수없이 많은 능력을 나타내시면서 그것을 통해 한번도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자 하지 않으셨음을 보게 됩니다. 그분의 삶의 목적은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고 그분의 뜻을 행하고자 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그분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렇게 선명하게 밝혀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말입니다. 아버지께서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이어지는 말씀에서 주님은 계속해서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 지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v.17)고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하나님 아버지는 세상을 구원코자 하시기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그분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은 무엇일까요? 이 세상은 바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반역했던 아담의 후손들인 것입니다. 그 죄로 말미암아 반드시 멸망될 수밖에 없는 아담의 후손들, 여러분과 저를 포함한 모든 인류가 세상인 것입니다. 이런 세상을 하나님은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받을 조건도 이유도 발견할 수 없는 죄 범한 이 세상에 속한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은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무엇보다도 우리 주께서 <요. 3:16>에서 주시는 으뜸되는 메세지일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그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어떻게 놀랍도록 드러냅니까? 그것은 <크게 두가지>로 설명하십니다. 먼저 <첫번째> 주님은 하나님이 어느 정도로 세상을 사랑하셨는지를 설명하면서 “~ 이처럼 사랑하사” (so loved)라고 묘사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는 깊이, 혹은 농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어로는 “the quality of love” (사랑의 질)가 될 것입니다. 어느 정도일까요? 그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 내어 놓기까지 ‘이처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사랑의 깊이를 헤아릴 수 있습니까? 여러분을 살리고자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신 사랑을 조금씩이나마 깨닫아 가고 있습니까?

그리고 주님은 <두번째>로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는지를 설명하십니다. 이것은 “~ 저를 믿는 자마다 ~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생’ (eternal/ everlasting life) 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넓고, 끝이 없으신가를 잘 보여줍니다. 이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하나님 사랑의 길이 혹은 양 (=길이)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the quantity of love” (사랑의 양)이 될 것입니다. 어느 만큼 입니까? 영원토록 입니다. 우리에게 한번 허락하신 영생의 사랑은 ‘시간제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한번 받은 구원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원을 이해합니까? 우리 인간은 솔직히 ‘영원’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 조차도 없습니다. 이것이 시간과 공간의 한계 가운데, 육신과 죄와 죽음 가운데 갇혀 있는 우리의 한계인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녀가 되었다 할찌라도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아들을 믿음으로 의롭게 될 뿐 아니라, 믿음을 통해 점점 더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영원한 생명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 것인지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써 깨닫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두워진 눈이 밝아지고, 닫혔던 귀가 열려지고, 딱딱해졌던 마음이 성령의 은혜로 부드러워짐으로 말입니다.

셋째, “오직 자신을 믿음으로만 영생을 얻게 됨을 선언합니다: 오늘날 복음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설명하는 여러 신학자들 중에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과 신념에 근거하여 잘못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소위 말하는 “만민구원론” (Universalism)이라고 불리어지는 것인데, ‘이 세상 끝날이 왔을 때 인류는 한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구원을 얻게 된다’는 사상입니다. 이런 사상의 근거로 이들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럼으로 사랑인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멸망하게 심판하실 수 있겠는가?!” 라는 식의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이런 가르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마지막 심판날 구원받는다는 주장은 매우 비성경적이고, 잘못된 성경해석인 것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말씀이 <요. 3:16>인 것입니다. “~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이런 주님의 말씀은 ‘저를 믿지 않는 자는 영생을 얻지 못한다’ 곧 ‘멸망의 심판을 받는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주님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코자 하심이 아니요, 구원코자 하심이라’고 <17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18절>에서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분명하게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생의 구원은 그 아들을 믿지 않고 거부하는 자에게도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영생의 선물은 모든 자에게 거져 주어지는 것이지만, 오직 한가지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아들을 믿는 것입니다. 그를 믿지 않는 자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요한이 정확하게 증거한 것입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일. 5:12) 주님은 한밤에 구원의 길을 알고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오직 하나님의 독생자되신 자신을 믿음으로서만 영생을 소유할 수 있음을 밝혀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하나님은 그를 믿는 자녀들에게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명령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사랑을 명령하셨지만, 역설적으로 단순히 명령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은 결코 사랑이 될 수 없음을 하나님이 아셨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과 원수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하신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그를 믿는 모든 자를 살리신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의 아들을 믿었습니까? 믿었다면 그의 아들이 주는 생명 안에서 성령님의 약속하신 풍성한 은혜를 누리십니까? 이것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선물임을 믿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크신 사랑의 선물을 날마다 더욱 풍성히 누리는 그의 자녀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