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29, 2019

“너희 구원을 이루라” (Work out your own salvation)

Preacher:
Passage: 빌립보서 (Phillipians) 2:12~13
Service Type:

“너희 구원을 이루라”

(Work out your own salvation)

12-29-19

본문말씀: 빌립보서 (Phillipians) 2:12~13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Therefore, my dear friends, as you have always obeyed – not only in my presence, but now much more in my absence –continue to work out your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for it is God who works in you to will and to act according to His good purpose.)

 

[설교 요약]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v.12)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뜻일까요?” (What means ‘to work out your salvation’?) 그것은

첫째, ‘이미 구원 받았음을 강조하는 것 (It means that they are already saved) 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2:8~9)고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여기 <12절>에서 말하는 구원은 ‘이미 구원받은 성도를 향한 사도 바울의 도전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둘째, ‘구원은 완료가 아니라 진행이라는 것’ (It means that salvation works continue, not finished) 입니다: 구원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 받아 의롭게 되는’ <칭의> (justification) 만이 아니라, ‘의롭게 된 자로서 인격적 결단을 통해 영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성화> (sanctification), 그리고 ‘마침내 죄와 모든 더러움에서 해방되어 부활한 몸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영화> (glorification)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계속해서 “ ~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v.12b) 나아 가라고 사도는 도전하는 것입니다.

셋째, ‘그 구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는 것’ (It means that God controls the whole process of salvation) 입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시작하실 뿐 아니라 계속 진행해 가셔서 마침내 완성시키신다는 사실이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v.13) 하나님이 시작하셨고 하나님이 지속시키시고 하나님이 완성하시는 것입니다.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심으로 끝까지 함께하시는 것 입니다.

2019년 마지막 예배를 드리며, 성도 여러분 속에 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날마다 영광된 구원을 이루어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설교 전문]

            사도 바울은 앞 절 (v.5~11)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v.5)고 도전하고 나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만 하는 이유를 핵심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는 삼위일체의 성자 하나님이시지만, 성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도리어 종의 형체를 입고 사람과 같이 되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으니 십자가에 죽기까지 철저히 순종하셨다는 것입니다 (v.6~8). 이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순종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뜻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분의 뜻을 따라 낮아짐과 철저한 순종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v.12)고 주를 믿는 우리 성도들에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날마다 구원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까?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사도 바울의 도전과 격려의 영적 의미를 이해하십니까? 바라기는 예수의 생명으로 구원받을 뿐 아니라, 여러분 속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허락하신 구원을 완성시켜 나가는 복된 성도 여러분의 삶 되시길 소망합니다.

앞에서 이미 설명 드렸드시, 사도는 <빌. 2장>을 시작하면서 우리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v.5)라고.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 하셨드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구원받은 우리 모든 거듭난 성도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이 진정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요,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를 예수의 생명으로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게 하고자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든 크리스챤의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이런 주장을 하고나서 오늘 본문, <12절>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또 한번의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얼핏 들어서는 갑작스런 주제의 변화처럼 느껴집니다. 다른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데로, 사도 바울은 매우 논리적으로 자신이 주장하는 주제를 끝까지 엇나가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더 깊이 진술하여 발전시켜 나가는 사람입니다. 그는 오늘 본문 <12절>을 시작하면서, 갑자기 다른 주제를 끄집어 내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 반대로 앞 절의 주제를 더욱 구체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기억해볼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빌.1:27~30>입니다. 여기서 사도는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 (v.27) 고 빌립보 성도들을 격려합니다. 왜냐하면, 사도가 세상이 줄수도 빼앗을 수도 없는 기쁨의 삶을 살수 있었던 비결이 ‘복음의 진보’ 때문인 것입니다 (1:12). 그리고 그 ‘복음의 진보’의 핵심은 ‘복음을 위하여 함께 협력하며 ~ 다만 그리스도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는 것’ (1:27,29) 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함께 동역하며,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음으로 사도는 실제로 복음의 진보를 가져왔고, 이를 통하여 그는 참된 기쁨을 맛볼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빌립보 성도들에게 자신이 경험 했드시, 함께 협력하며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음으로 <복음의 진보>를 누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라고 성도들에게 도전합니다. 그리고 둘째 <빌.2:1~4> 입니다. 사도는 2장을 시작하면서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간에 어떠한 위로와 교제를 경험 했다면, 이제 다툼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 고 충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는 한마디로 요약하여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2:5)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살펴본 데로 ‘종과 같이 낮아지셔서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고,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신 마음’인 것입니다. 이 마음이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않고 사도가 품기를 원하는 겸손함으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인 것입니다.

이것이 왜 사도 바울이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도전하고 나서, 갑자기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또 다른 주제를 주장하는 듯하게 보이는 이유입니다. 사실 사도는 <빌.1장> 후반절에서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그리고 <빌.2장>전반절에서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는 도전과 격려를 잊지 않고 계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학자들의 지적처럼 사도 바울의 논리전개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중 하나는 ‘그러므로’ (therefore)일 것입니다. ‘그러므로’는 이해할 때 <12절>의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것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고, 논리적으로 발전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빌.2:12>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 (2:12a) 라고. 여기서 “그러므로”는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이렇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낮추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음으로],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 (v.12a)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없을 때에도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본문 중에서 신학적 (혹은 교리적)으로 가장 논쟁을 야기시키는 본문말씀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 너희 구원을 이루라” (~ continue to work out your salvation) (v.12b)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뜻일까요?” (What means ‘to work out your salvation’?) 그것은,

첫째, ‘이미 구원 받았음을 강조하는 것 (It means that they are already saved): 제가 이해하는 한 옳바른 성경의 진리를 믿는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완전하게 이해하기가 불가능한 것이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구원론’에 관한 교리입니다. 구원의 교리 안에 깊이 감추어진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지금까지도 수없이 많은 신학자들과 성도들이 영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구원에 관련한 교리가 ‘하나님의 전적인 예정하심’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설명한 칼빈의 ‘예정론’ 과 ‘그 구원은 우리 인간의 자유의지’로 결정된다고 설명한 알미니우스의 ‘자유의지론’이 있습니다. 물론 정통 기독교의 교리를 믿는 성도들은 대부분 교단에 관계없이 ‘극단적이지 않은 ‘하나님의 예정하심’을 믿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의 최종적인 구원되어지는 상태에 관해서 여전히 ‘하나님의 예정’과 ‘우리 인간의 자유의지’와의 그 팽팽한 긴장관계는 우리 신앙의 핵심임을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이런 예정하심과 자유의지의 밀접한 관계성이 또한 하나님의 뜻하심 가운데 있을 것으로 저는 영적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분명히 이해하고 붙들어야 하는 구원의 진리는 무엇일까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2:8~9)고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어떤 우리의 행위나 노력, 자유의지 이전에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본문에서 사도가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도전하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너희들은 이미 구원받은 자’란 것입니다. ‘너희가 믿고 행함으로 구원 받아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값없이 선물로 받았으니, 그 구원의 여정을 시작했으니 이제 계속 전진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12절>을 가지고 ‘봐라 사도 바울이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하지 않느냐! 따라서 구원은 우리 스스로 이뤄 나가는 것이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다시한번 분명히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궁극적인 구원은 우리 스스로 이룰 수 없다’는 것이요, 여기 <12절>에서 말하는 구원은 ‘이미 구원받은 성도를 향한 사도 바울의 도전임’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구원은 완료가 아니라 진행이라는 것’ (It means that salvation works continue, not finished):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이미, 그러나 아직’ (already, but not yet)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심으로 사단의 권세를 꺽으시고 그를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하심으로 이미 그의 나라는 이미 도래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성도가 바라는 궁극적인 하나님나라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직 그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already’와 ‘not yet’ 사이에 있는 긴장이요, 하나님나라의 상태라고 신학자들은 설명합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오늘 본문말씀을 강해설교 하면서 구원의 3가지 요소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칭의’ (justification), ‘성화’ (sanctification), ‘영화’ (glorification)이 구원의 전 과정 안에서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생각하듯이, ‘예수 믿고 죄사함 받아 의롭게 되는 것’ 즉 ‘칭의’ 만이 구원의 상태가 아니라, 칭의로 시작된 구원의 과정이 성화와 영화로 궁극적으로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할 때, 우리는 오늘 사도가 ‘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했는지?’ 는 좀더 분명히 이해 할수 있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 받아 허락된 구원이 계속 완성되어져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성화와 영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화’는 무엇일까요? ‘성화’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인격적 결단을 통해 자발적으로 온 힘을 다해 행해 나가고 성장해 나가는 것] 입니다. 또한 ‘영화’는 무슨 뜻입니까? ‘영화’는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죄와 더러움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부활한 몸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상태] 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구원받은 자녀의 삶은 단지 천국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계속해서 성화되어 나가고자 온 힘을 다하는 삶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 성도가 죄와 더러움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영화를 소망하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더 이상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롬.7:24) 고 절규하는 존재가 아니라, ‘두렵고 떨림으로 시작한 구원을 완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두렵고 떨림으로’라는 말은 구원을 잃을까 봐 두려워 떠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v.12b) 고 말입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과 그분을 향한 거룩한 경외심으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이 완료가 아니라, 계속적으로 진행되어져야 한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그 구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는 것’ (It means that God controls the whole process of salvation):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시작하실 뿐 아니라 계속 진행해 가셔서 마침내 완성시키신다는 사실이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v.13) 이것을 이해할 때, 앞에서 말씀 드렸드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것이 ‘혹시 잘못 행동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주신 구원을 취소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두려워 떠는 마음’이 아님을 우리는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도리어 확신과 기쁨 가운데 담대하게 행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요한이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 하였느니라” (요일.4:18)라고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주신 사랑 안에서의 확신과 담대함으로 행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이 성도의 확신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 내가 사랑 안에서 두려움 없이 행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라고 사도는 선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더 선하게 살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는 것은 우리 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셨고 하나님이 지속시키시고 하나님이 완성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행 하심으로서 구원을 이루고 싶다는 갈망과 열망을 느끼는 주체는 나 자신이 아니라, 내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왜인가요? 그 이유는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갈망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넉넉히 행할 힘도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우리 ‘성도의 구원이 보장된 것’ (=성도의 견인)이라는 중요한 기독교 교리를 이해하는 기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사도의 도전안에 숨어 있는 이 구원의 놀라운 진리를 깨닫아가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성탄절을 지난주 보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독생 하신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뜻을 여러분은 이해하십니까? 우리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그분은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이해할수록 우리는 더욱 온전히 깨닫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하나님의 택한 자녀를 향한 예정하신 뜻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모아진다고 저는 지난시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향해, 아니 성도 여러분과 저를 향해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격려하고 도전함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더 이상 점도 없고 흠도 없는 그리스도의 형상에 이르도록, 그의 영광에 참여하고자 하는 열망과 소원이 있습니까? 여러분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의 날까지 반드시 이루실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여러분 안에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마침내 온전한 구원을 이루어 감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성품을 이루어가는 복된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