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22, 2019

“엎드려 경배하세” (성탄절, II) (Let us bow and worship Him)

Preacher:
Passage: 마태복음 (Matthew) 2:10~11
Service Type:

“엎드려 경배 하세”(성탄절, II)

(Let us bow down and worship Him)

12-22-19

본문말씀: 마태복음 (Matthew) 2:10~11

10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When they saw the star, they were overjoyed.)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On coming to the house, they saw the child with His mother Mary, and they bowed down and worshiped Him. Then they opened their treasures and presented Him with gifts of gold and of incense and of myrrh.)

 

[설교 요약]

       이번주는‘성탄절’두번째 메시지로써 ‘왜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셨는가?’에 대해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별을 보고 찾아와 아기에게 황금과 유황과 몰약으로 예물을 드린 동방박사와 같이, 우리 모두 주님께 무릎 꿇어 경배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셨나요?’(Why did Jesus Christ come this world?)

첫째, ‘그를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하시고자’오셨습니다 (Because Jesus came this world to save every persons who believes Him)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나셨고 (마.1:1), 성령의 능력으로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심으로 (사.7:14;눅.1:35) 완전한 인간과 완전한 하나님 되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자신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살리신 것입니다 (요.3:16). 또한,

둘째, ‘성도들을 그분의 영광에 이르게 하고자’오셨습니다 (Because Jesus came this world to lead us until His glory) 사도 바울은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4,5)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계획하신 그 때는 ‘창세전’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통해 우리를 그의 아들과 함께 영광된 존재가 되게 하시고자 함입니다 (벧전.5:1, 고전.2:7,고후.4:17).

셋째, ‘자연만물을 회복시키고자’오셨습니다 (Because Jesus came this world to restore everything): <로마서>에서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롬.8:19) 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범죄로 인해 자연질서가 파괴되고 죽음과 고통이 자연만물을 지배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나타나서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셨던 아름다운 영광의 자유로 회복되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롬.8:21).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구원 하실뿐 아니라 자신의 영광스런 분량에 이르도록, 그리하여 자연만물을 온전히 회복 시키시고자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번 성탄시즌만이 아니라 평생을 통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남으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어린 양 예수님을 경배하고 더 깊이 사랑해 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성탄절 메시지>를 지난주에 이어서 이번주에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예수님은 누구신지?’에 대해 함께 살펴 보았습니다. 그분의 ‘완전하신 인성’과 ‘완전하신 신성’을, 그리고 성경에서 ‘약속한 메시야’되심을 함께 나눴습니다. 이번주에는 그렇다면 ‘그분은 왜 이 땅에 오셨는가?’하는 점을 묵상함으로서 이 땅에 오신 메시야를 기리고자 합니다. 별을 보고 찾아와 아기에게 황금과 유황과 몰약으로 예물을 드린 동방박사와 같이, 아니 그 이상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주시고자 하늘의 영광을 모두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우리 주님께 무릎 꿇어 경배하며, 그분과 더욱 깊은 사랑으로 나아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기독교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해서 ‘로이드 죤스’목사가 그의 ‘교리강좌/ 예수그리스도 편’에서 정의한 내용을 살펴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는 기독교에서 중요한 인물 정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곧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요, 그분 없는 기독교는 그 순간 사라져 버린다는 뜻 입니다. 안개와 연기처럼 말입니다.

사실 우리 성도들이 믿는 예수님은 당연히 우리 기독교 교리에 있어서 알수 있드시 절대적인 존재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더 나아가서 우리 인간 역사에 있어서도 그 어떤 인간존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임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수 있을까요? 그 대표적인 것이 세상에서 ‘역사’라고 말할 때, 그 의미에서 찾을수 있습니다. 특별히 서양역사에서 그것을 찾을수 있습니다. ‘역사’는 영어로 ‘History’인데, 이것은 ‘His’(그의) + ‘Story’(스토리)의 합성어인 것입니다. ‘그의 스토리’(History) 즉 ‘그리스도의 스토리’가 ‘역사’라는 것입니다.

바로‘예수 그리스도의 스토리’를 ‘역사’의 중요한 기준으로 인식하는 것이 단지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서양 역사학자들의 보편적인 관점임을 알수 있는 것 입니다. 나사렛 예수께서 인류 역사에 남긴 영향력이 그만큼 지대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인류역사를 크게 <기원전>, 그리고 <기원후>로 나누는 기준점이 바로 예수님이 태어난 시간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을 성도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란 의미의 ‘BC’(Before Christ/ 기원전) 그리고 ‘예수님이 오신 후’란 의미의‘AD’(Anno Domini= in the year of the Lord/ 기원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인류의 역사는 그의 오시기 전 역사와 오시고 난 후의 역사로 나눠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왜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셨나요?’(Why did Jesus Christ come this world?) 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그를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하시고자’오셨습니다 (Because Jesus came this world to save every persons who believes Him) 사실 대부분의 크리스챤들이 믿고 관심가지는 것이 바로 이것일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을 구원 시키시고자 이 땅에 오셨다는 성경의 진리입니다. 사도요한은 그 사실을 놀랍고 아름답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고. 우리가 잘 아는데로 <창.3장>에서 첫 인간 부부, 아담과 하와의 타락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따먹음으로 범죄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모든 인간에게 죄와 죽음이 이르게 된 시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이런 죄로 말미암아 반드시 죽을수 밖에 없는 첫 인간부부의 후손 가운데서 뱀 곧 사단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다시 말해 사단을 영원히 멸함으로 인류를 구원할 구원자가 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창.3:15).

지난주에 살펴본 바로는 인간의 혈통 가운데는 아브라함의 후손, 그리고 그 뒤의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주께서 나셨고 (마.1:1; 롬.1:3), 또한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음을 보았습니다. 이런 성경의 증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담의 원죄를 물려 받지 않고, 죄없는 완전한 인간으로 태어나셨음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 만이 아담을 대신하여 구원할 자격을 가지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은 아담의 원죄로 물려받아 죽은 우리 모두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남김없이 지불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 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5:10)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모든 자를 살리시고자 그의 보배로운 피를 흘리셔서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주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의 전부일까요?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 더 있습니까?

둘째, ‘성도들을 그분의 영광에 이르게 하고자’오셨습니다 (Because Jesus came this world to lead us until His glory)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우리 거듭난 성도들이 어떤 존재인가? 를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선 신약의 사도 바울과 주님의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을 통해 깨닫은 말씀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에게 보낸 편지를 시작하면서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5)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자녀들이 될수 있도록 예정 (=계획)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언제 그런 예정을 하셨다는 것입니까? 사도 바울은 바로 그 앞절에서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엡.1:4)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도 전에’아니 ‘아담과 하와가 창조되기도 전에’더 나아가서 ‘하늘과 땅에 존재하는 것이 창조되기도 전에’ 하나님 아버지는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실 것을 예정하셨다고 것입니다. 참으로 놀랍고 비밀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아닐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런 하나님의 계획하심을‘하나님의 비밀’(엡.1:9)이며, 이 비밀이 곧 ‘그리스도’(골.1:26~27)라고 선언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주께서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실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그분의 영광으로 이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요한복음에서“ ~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10:10b)고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간결하고도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여기서 ‘더 풍성히’라는 표현 가운데 감추인 놀라운 영광이 있음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베드로사도는 자신을 소개하면서 “~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벧전.5:1)고 선언합니다. ‘영광에 참예할 자’라고요!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성도들이 장차 누리게 될 영광에 대해 선언합니다. “ ~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전.2:7)“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은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크고 엄청난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입니다”(고후.4:17) 라고. 우리가 누리게 될 엄청나고 영원한 영광은 어떻게 가능한 것입니까?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성도가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게 될 영광을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믿음의 목표가 ‘구원받는 것’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더욱 풍성함’ 곧 ‘그분과 함께 누릴 영광’을 바라보며 그분의 마음을 품고 그분의 장성한 성품에 이르도록 온 힘을 다해 믿음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세우신 놀라운 계획 안에는 우리 인간 뿐 아니라, 자연만물까지도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셋째, ‘자연만물을 회복시키고자’오셨습니다 (Because Jesus came this world to restore everything):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의 신분과 권세가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를 선포하고 나서 (롬.8:1~18),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롬.8:19)라고 지적합니다. 사도 바울은 갑자기 뭔가 알듯 말듯한 진술을 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자연 만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왜 기다릴까요? 왜냐하면, 자연만물의 청지기 (=대리자)로 삼으셨던 첫 인간 부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아름답고 완전하게 창조된 자연만물이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자연이 함께 죽음과 온갖 고통의 환경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자연만물이 하나님의 아들, 즉 타락하기 전의 아담과 같이 하나님의 선하고 지혜가 충만한 청지기로서 모든 피조물들을 잘 다스리고 지켜 나갈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비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 인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의 모든 피조물, 우주만물을 완전히 회복하시고자 함을 우리는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실로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의 은혜로운 계획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진술합니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롬.8:21) 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통해 원래 그들이 누렸던 피조물의 영광스러운 자유를 누리기를 갈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십자가의 피의 권세를 통해 그를 믿는 자들 뿐 아니라, 온 자연만물까지도 원래 창조시의 아름답고 완전한 모습으로 회복시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신 핵심적인 내용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과 모든 피조세계의 완전한 구원과 회복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에서 아기로 오신 성탄절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예수님의 성탄절을 맞아서 무슨 선물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주께서 진정 기뻐하시고 그 어떤 것보다 귀한 선물로 받으실 그분을 더 깊이 생각해 가고 있습니까? 그를 통해 그분은 과연 누구시며, 그분은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알아가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분을 알아가는 만큼 그분과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우리 주님은 하나님과 근본 본체시나 동등됨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도리어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시고 인간의 낮은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태초부터 감춰졌던 구원의 비밀을 십자가 위에서 이루셨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 선하신 주님을 엎드려 경배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바로 이 시간뿐 아니라 평생을 통하여 그분의 십자가를 날마다 바라보며, 우리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름으로 말입니다. 그럼으로 더욱 더 깊이 주님의 십자가의 비밀을 깨닫고, 그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감으로 주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어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기대합니다. 그리하여 성탄절 하루 뿐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의 어린양 되신 그리스도 앞에 엎드려 경배함으로 나아가는 복된 여러분의 삶이 되시길 소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