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5, 2020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But as wise)

Preacher:
Series:
Passage: 에베소서 (Ephesians) 5:15~18
Service Type: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But as wise)

1-5-20

본문말씀: 에베소서 (Ephesians) 5:15~18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Be very careful, then, how you live—not as unwise but as wise,)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 하니라 (making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because the days are evil.)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Therefore do not be foolish, but understand what the Lords will is.)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Do not get drunk on wine, which leads to debauchery. Instead, be filled with the Spirit.)

 

[설교 요약]

2020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성도 여러분의 개인과 가정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한 올 한 해 되길 소망합니다.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과 함께 ‘누가 과연 지혜로운 자인가?’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에 대해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지혜일까요?” (What means to live as wise from God?) 그것은,

첫째, ‘세월을 아끼는 것’ 입니다 (It means to make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세월을 아끼라” (v.16a)는 말씀은 <KJV>에서 “Redeeming the time~” (시간을 값을 치루고 사라/ 되찾으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 때가 악 하니라” (v.16b) 고 사도는 뒤에서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한 세대 가운데서 값을 치루고 시간을 사는 것이 지혜라는 것입니다.

둘째, ‘주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 입니다 (It means to understand what the Lord’s will is): 성경에서 지적하는 어리석은 자의 미련하고 불행한 결과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 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 1:7) 불행하게도 어리석은 자는 지혜의 근본인 ‘여호와를 경외함’을 거부하고 멸시합니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v.17) 는 것입니다.

셋째,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 입니다 (It means to b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또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 하시느니라” (고전. 2:10) 성령님은 우리 성도를 거듭나게 하실뿐 아니라, 평생의 삶을 통해 충만한 은혜 가운데 지혜로운 영적 자녀로 자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은 반드시 누려야 할 지혜의 통로인 것입니다.

 

[설교 전문]

            2020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성도 여러분의 개인과 가정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한 올 한 해 되길 소망합니다.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과 함께 ‘누가 과연 지혜로운 자인가?’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에 대해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지혜롭다’는 말은 우리 신앙인 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무척 사랑 받는 말 입니다. 누구나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싶어하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평가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혜롭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더욱이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자’라고 인정해 주시는 사람은 더더욱 얼마나 될 것인지 저는 궁금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오늘 ‘2020년 신년예배’를 하나님께 올려 드리며 날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아 나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기대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 뜻에 순종함으로 올 한해를, 아니 남은 인생 전체를 지혜로운 자의 삶으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묵상해 나가면서 ‘과연 하나님은 우리의 어떠한 모습을 기뻐 하실까?’를 살펴본다면, 그것은 ‘지혜로운 자의 모습’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지혜에 관한 수없이 많은 말씀 중에 이런 말씀들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시. 19:7)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 (잠. 28:26) “우리의 일생이 얼마나 짧은 지 헤아릴 수 있게 하셔서 우리가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 90:12)

그렇다면,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된 우리 성도들이 지혜로운 삶을 살기 원하심을 우리가 이해했다면 이제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무엇이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지혜일까요?” (What means to live as wise from God?) 라는 것입니다. 저는 성도 여러분과 오늘 본문에서 드러난 지혜의 의미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세월을 아끼는 것’ 입니다 (It means to make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우리 아포슬 교회는 청년사역을 비젼으로 하는 교회로서, 저는 그동안 여러 번 ‘세월을 아끼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성도 여러분에게 강조한바 있습니다. ‘세월’ 즉 ‘시간’을 아끼고 잘 사용한다는 것은 물론 살아가야 할 날이 많이 남은 젊은 청년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나이에 관계없이 우리 모든 성도들이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는 중요한 실천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세월을 아끼라’는 뜻은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은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v.15) 행할 것을 <15절>에서 에베소 성도들에게 먼저 권고하고 나서, 곧 바로 “세월을 아끼라” (v.16a)고 도전합니다. 이것을 <KJV>에서 보면 “Redeeming the time~” 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한글로 번역한 <흠정역>에는 “시간을 되찾으라 (=값을 치루고 사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월’은 헬라어 원어로는 <카이로스/ Kairos> 로서 ‘일반적 시간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기회나 사건’을 가르키는 ‘시간/ 때’ 라는 뜻 입니다. 또한 ‘아끼다’라는 동사는 헬라어로는 <엑사고라조>인데 ‘다시 사다/ 속량하여 내다’는 뜻 입니다. 그럼으로 ‘세월을 아끼라’는 의미는 값을 치르고 기회를 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름아니라 “~ 때가 악 하니라” (v.16b) 고 사도는 뒤에서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값을 치르고 기회를 잡으라/사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한눈 팔지 말고 시간을 아껴 열심히 살아라’는 뜻 그 이상임을 알수 있습니다. 이 말은 조금전에 언급한데로 이어지는 “때가 악하다”는 사도의 영적인 상황평가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바로 ‘영적 도전’입니다. 세상의 많은 불신자들은 앞으로 점점 더 좋은 세상이 올 것으로 기대 합니다. 과학과 문명이 발전하는 만큼, 사람들이 더 교육을 많이 받고 지식을 더 가진 만큼 점점 더 도덕적이 될 것이라고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 세상은 더욱 살기 좋은 세상이 되고, 인간이 힘을 합쳐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고 낙관합니다. 그러나 사도는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점점 악 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값을 치르고 기회를 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회를 잡으라’는 의미에 대해서 <이재철 목사>는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을 설교하면서 이렇게 영적 해석을 합니다; “이 말은 놀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든가, 정해진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일을 끝내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말 ‘아끼라’고 번역된 헬라어 ‘엑사고라조’는 ‘건져 올리다’는 의미다. 모든 사람에게 하루는 24시간이다. 어떤 사람은 그 1초 1초를 무의미하게 흩날려 버리고, 어떤 사람은 진리로 건져 올린다. 영원한 진리로 건져 올린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시간은 이미 영원에 접속된 까닭이다” 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 ‘세월을 아끼라’는 참 뜻은 ‘값을 치르고 덧없이 흘러가는 허무한 인생 가운데서 영원한 진리의 말씀으로 시간을 건져 올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진리로 건져 올린 시간은 결코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악한 세대 가운데서 ‘영원한 진리의 말씀으로 없어지지 않을 시간을 건져 올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악한 세대 가운데서 없어지지 않을 시간을 건져 올리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지혜라고 사도 바울은 도전하는 것입니다.

둘째, ‘주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 입니다 (It means to understand what the Lord’s will is): 주석가 매튜 헨리는 본문 <15절>의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라는 말씀을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로 부터 가르침을 받은 자 같이 하라는 말이라고 하겠다. 세심하게 주의하여 행하는 것은 참된 지혜의 소산이다” 라고. 사도는 지혜로운 자의 한가지 특징을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한다)” (v.15a)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적흥적으로, 기분 내키는 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려 깊게 생각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이 지혜자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 (v.17)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잠시 살펴 봤지만, 특별히 <지혜의 말씀>이라고 불리우는 <잠언서>말씀에는 누가 지혜로운 자이고, 누가 어리석은 자인지를 대조적으로 잘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잠. 10:8>“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명령을 받거니와 입이 미련한 자는 패망 하느니라”고, 또 <잠. 14:3>“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스스로 보전 하느니라” 고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를 대조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잠언의 말씀에서 보게 되는 어리석은 자의 미련하고 교만으로 인하여 패망하게 되는 불행한 결과는 과연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요? 잠언서의 저자는 이렇게 분명히 그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 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 1:7) 라고. 그렇습니다. 불행하게도 어리석은 자는 우리 인간의 진정한 지식과 지혜의 근본은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것을 멸시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지혜로운 자입니까? 그는 악한 세대 가운데서 영원한 시간을 건져 올리는 사람입니다. 그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요, 그분을 경외함으로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분별하고자 힘쓰는 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복된 자는 경거 망동하거나 교만하게 행동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 (시. 1:2)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때, 그의 말씀을 즐거워하게 되고, 그 말씀을 즐거워함으로 묵상하면 할수록 우리는 주님의 뜻을 더욱 더 분명히 분별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자의 삶이요, 복 있는 자의 삶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 입니다 (It means to b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제가 앞에서 설명 드렸드시, ‘자세히 주의하여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성경말씀 가운데서 살펴보는 자세’는 지혜로운 삶의 핵심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님은 아마도 성도 여러분이 영적 성숙을 위해 노력하고 고민해 보았다면, 경험적으로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더 남았습니까? 그것은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이라고 사도는 밝히며 도전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령충만 받는 것’은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내가 받고 싶으면 받고, 받기 싫으면 안 받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분명히 명령형으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v.18)고. 왜 성령충만은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인 것일까요? 왜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명령인 것일까요? 그것은 진리와 지혜의 성령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더욱 깨닫아 나가고 분별해 나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 하시느니라 ~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2:10,12)고 사도 바울은 우리 각 성도들 안에서 행하시는 성령님의 놀라운 사역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오직 성령님 만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은혜로 주신 진리의 말씀과 또 그의 깊고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예수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찌라도 성령님의 도우심 없이는 결코 하나님의 그 깊은 말씀의 의미와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왜 우리 성도들은 거듭나는 순간 뿐만 아니라, 평생을 통하여 절대적인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하는지 하는 이유입니다. 바로 성령충만을 받음으로 그의 다스림 가운데 살아가야 하는 중요한 이유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성령충만 받는 것’에 있어서 한가지 ‘술 취하는 것’과 대조적인 의미로 도전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v. 18) 그렇다면, 사도는 여기서 왜 ‘술 취하는 것’과 ‘성령의 충만’을 대조적으로 설명하는 것일까요? 거기에는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유사점>으로서 성령과 술 모두 우리 인간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입니다. 성령뿐 아니라 술로 대표되는 세상의 악한 영향력 또한 매우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술을 포함해서 세상의 강력한 영향력은 섹스, 돈, 마약, 게임, 인터넷, 탐욕등 수없이 많은 악한 영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과 술의 <차이점>은 성령님은 인격적으로 우리와 사귀기를 원하시고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지만, 술로 대표되는 세상의 속한 것 그리고 그것을 조정하는 악한 영들은 우리를 억압하고 비인격적으로 얽매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열매는 악하고 심히 거짓된 것입니다. 그럼으로 사도는 ‘술 취하지 말고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의 충만하신 도우심 없이는 우리 성도들은 결코 세월을 아낄수 없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하신 도움 없이는 결코 악한 세상과 맞서 승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2020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새해를 시작하면서 올 한 해 어떤 열매가 맺히길 소망했습니까? 그 기도의 제목은 각자 다를 수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빠짐없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지혜로운 삶’ 사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1) 고 성경은 우리 성도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올 한 해, 세상이 자기의 지혜로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지혜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증거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바라기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성령님의 충만하신 도우심 가운데 진리의 말씀으로 변치 않는 시간을 건져 올리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자녀 되시길 기대합니다. 그리하여 올 해 뿐 아니라 평생동안 성령의 충만 하심으로 이 악한 세상과 싸워 이기고, 하나님의 지혜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