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18, 2018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Honor God with your body)

Preacher:
Passage: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6:11,19,20
Service Type: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Honor God with your body)

2-18-18

본문말씀: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6:11,19,20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And that is what some of you were. But you were washed, you were sanctified, you were justified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by the Spirit of our God.)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Do you not know that your body is a temple of the Holy Spirit, who is in you, whom you have received from God? You are not your own;)

20 값으로 산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you were bought at a price. Therefore honor God with your body.)

<서 론>

저는 오늘 <고전. 6장> 말씀을 통해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성도 여러분과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요지는 ‘하나님 자녀의 성숙과 특권’ 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의 진정한 특권과 유익은 무엇인지? 그런 자녀로 나아가기 위한 길은 무엇인지? 를 함께 말씀을 통해 살펴보고, 각자의 삶 가운데 열매 맺을수 있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기대 합니다.

<본 론>

저는 오늘날 불신자를 향한 복음전도의 가장 큰 어려움은 ‘사람들이 성경을 잘 믿으려 하지 않는다’ 든지, ‘포스트 모더니즘’ 의 복잡다난한 세상문화와 사조의 변화와 같은 조건적인 문제들이 아니라, 바로 ‘예수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고 하는 우리 크리스챤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저는 이해 합니다. ‘우리 크리스챤이 문제다’ 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내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거듭나게 되었다는 우리 크리스챤들이 불신자의 눈에서 볼때 전혀 자신들과 다르지 않아 보이고 않고 뭔가 배우고 싶은 삶이 아니다는 것 입니다. 다시말해, 우리의 삶의 모습에서 세상과 별반 차이를 못 느끼고 예수의 흔적을 찾아 볼수 없기에 말로하는 전도에 ‘너나 믿어라…’ 는 냉소와 거부를 당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오늘 본문이 포함된 <고린도전서 6장> 에서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세상 가운데서 건져 내셔서 어떻게 그의 자녀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하셨는지?’ 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녀의 합당하고 진정한 특권은 ‘몸으로 하나님꼐 영광을 돌리는 삶’ 이라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크리스챤이 복음의 능력과 진리 가운데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전도폭발훈련’ 을 강도높게 받는 것도 아니요, ‘성경말씀을 더 많이 암송’ 하는 것도 아니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점점 더 이해해 감으로서, 하나님의 기뻐 하시는 거룩한 산제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각자의 몸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올려 드리며 아버지의 진리 가운데서 눈을 뜨는 것이 가장 강력한 복음전도와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을 실천할수 있음을 믿습니다. 이제 저는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특권과 축복은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과 축복일까요?” (What are the privileges & blessings of the children of God?):

첫째,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하심과 구원 받는 것’ (They are to be justified & saved by faith of Jesus) 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 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고린도성도들이 과거 어떤 부끄러운 삶 가운데 있었는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 ~ 음란한 자, 우상 숭배자, 간음하는 자와 간음하는 자와 동성연애자, 도둑과 탐욕을 일삼는 자와 착취하는 자들 ~” (고전. 6:9,10) 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시작하면서 <11절> 에서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 (11a) 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자들’ 이 바로 그들이라는 것 입니다. 음란하고, 우상숭배하고, 도둑질하고 탐욕과 착취를 일삼던 자들인 것 입니다. 그런 자들을 하나님께서 자녀로 삼으셨다는 것 입니다. 어떻게요? 그것은 “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음)” (11b)을 통해서 입니다. 세상의 죄악 가운데 그것이 죄인줄도 모르고 소망없이 살아가던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된다는 것 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성령께서 우리를 씻어주심으로 ‘죄없다’ 하시고, ‘의롭다고 불러 주시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것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이라면, 이 믿음이 여러분과 저를 구원한 것 입니까? 결코 그렇치 않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았지만,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구원한 것은 아닙니다. 이 믿음은 하나의 도구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사용하시지만, 우리의 믿음이 우리를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이며, 그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아버지의 은혜 때문 입니다. 이것이 한결같은 성경의 주장 입니다. 성경은 어느 곳에도 우리가 믿음이 좋아서 구원 받았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바울이 그의 영적 자녀 ‘디도’ 에게 편지하면서도 이러한 사실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거듭남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딤. 3:5) 라고 말 입니다. 우리의 어떤 선한 행위, 그것이 ‘나의 큰 믿음’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하심을 인하여 구원이 임하게 되었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믿음이 필요없다는 뜻도 아니요, 중요하지 않다는 뜻도 아닙니다. 우리 인간측에서 할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은 ‘오직 믿음’ 입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가 언제나 고백하고 깨닫아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보혈과 하나님의 은혜’ 인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여러분을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보혈을, 그를 보내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더욱 이해하고 사랑하십니까?

둘째,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을 깨닫고 누리는 것’ (They are to recognize & enjoy our sonship in God) 입니다: 저는 창세기에서 <야곱의 인생> 을 통해서 이해하게 되는 가장 큰 유익은 ‘하나님의 택한 자녀는 점점 더 하나님 아버지 자신의 뜻과 영광을 그분이 주신 선물보다 사랑하게 되는 것’ 이라는 사실 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데로 야곱은 우리 믿는자의 믿음의 조상의 한명으로서 <창세기 25장> (v.21) 에서 시작하여 <창세기 37장>, 그리고 <창. 42장> 에서 <창. 49장> 까지 가장 많은 성경의 지면을 할애하며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은 인생의 말년에 바로앞에 서서 이렇게 자신의 인생을 평가하였습니다; “ ~ (제가) 나그네처럼 살아온 세월이 130년이 되었습니다. 내 조상들의 나그네 생활에 비하면 내 나이가 얼마 되지 않지만 정말 고달픈 세월을 보냈습니다” (창. 47:9) 라고. 야곱은 정말이지, 자신의 아버지 이삭이나, 할아버지 아브라함에 비해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고생과 험한 세월을 살았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야곱에게서 결론적으로 놓치기를 원치않는 것은 그가 얼마나 고생했는가도, 얼만큼 많은 재산과 자식을 가졌느냐도 아니고, 그의 삶이 어디로 점점 더 옮겨져 왔는가 하는 것 입니다. 그것은 그가 ‘형의 발꿈치를 움켜 잡고’ 태어난 ‘움켜 잡는 자’ ‘빼앗는 자’ 의 인생에서 ‘하나님의 진정한 축복을 깨닫고 누리게 되는 자’ 로 ‘야곱에서 이스라엘’ 로 바뀌는 자로 변화 되었다는 사실 입니다. 이것이 왜 성경이 야곱의 인생에 대해 그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그의 삶을 소상하게 밝혀 주는지 하는 이유라고 저는 믿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이 모두 야곱과 같은 인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움켜잡고 빼앗는 인생 말입니다. 이 인생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진정한 복을 누리게 되는 인생이 되어가는 것 입니다.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충만하신 은혜로 말 입니다.

제가 앞에서 사도바울이 영적 아들, 디도에게 밝혔드시 ‘우리의 구원이 어떤 우리 자신의 의로운 행위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좇아 거듭남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 때문’ 이라고 그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계속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성령을 주신 이유를 설명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성령을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하게 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은혜로 의롭게 되어서,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딤. 3:6,7) 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의 성령님을 통해 의롭게 되었을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품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 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로마서 8장> 을 통해 살펴보고 계속적으로 확인한 사실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성령이 아니고는 누구도 그리스도인이 될수 없을뿐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이 없이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 라고 부를수 없고,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는 확증을 누릴수 없다’ (롬. 8:9,15,16) 는 것을 살펴 보았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움겨잡는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시고, 세상 가운데 헤메는 여러분과 저의 인생을 변하여 ‘아바 아버지’ 라고 그분을 향해 고백하게 하시고 세상을 이길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통해서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성령의 충만하신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된 축복과 권세를 점점 더 깨닫아가고 누려나가고 있습니까?

셋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히 즐거워 하는 것” (They are to glorify God and to enjoy Him forever) 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에서 ‘인간의 제일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라고 묻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 (To glorify God and enjoy Him forever) 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왜 크리스챤의 특권과 축복인 것일까요? 혹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이 성도 여러분에게는 부담이 되지는 않습니까? A W 토저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 이란 그의 책에서 성 어거스틴의 이런 유명한 글을 인용 합니다: “오, 주님! 당신은 당신을 위해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당신 안에서 안식을 얻을 때까지는 평안을 모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영적 해석을 남깁니다; “이 하나님의 사람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어떤 목적을 위해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에 그 목적을 이룰 때까지는 평안을 누릴수 없다. 안식과 평안을 누리도록 창조 되었고 또 그러기를 갈망하지만, 우리 밖에 있는 것들에서는 안식과 평안을 얻지 못한다. 이 세상의 쾌락들은 안식과 평안을 주지 못한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든 것을 긁어 모은다 해도, 그것들은 오직 하나님만이 차지 하실수 있는 영역 안으로 들어 갈수 없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는 마음을 안정시켜 주지 못하고 사람들을 들뜨게 만들어 오히려 하나님의 임재의 체험을 방해한다. 내가 이 책을 쓰는 목적은 신자들의 마음을 그분께로 이끌어 그분 안에서 삶의 목적과 평안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 Delighting in God) 라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혜와 능력으로 여러분의 영의 눈을 더욱 밝혀 주셔서 하나님을 온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사랑함으로 그분 안에서 누리는 참된 안식을 누리시길 소원 합니다. 세상 모든 것을 긁어 모은다해도 결코 누릴수 없는 만족과 평화가 오직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안에서 샘솟듯 넘쳐나는 축복의 삶을 누리시길 소원 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히 즐거워 하는 것이 우리 모든 인간의 영원한 삶의 목적이요, 그의 택한 자녀의 특권이요, 특권임을 깨닫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 합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11장>까지 우리 하나님의 자녀의 의롭게 됨과 성령충만한 삶을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고 나서 <12장> 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로마교회 성도들을 향해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고. 여기서 ‘그러므로’ 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그의 사랑을 이제 조금이라도 깨닫았다면, 우리를 그의 자녀로 부르심을 이해 했다면, 구원받은 자의 삶의 목적이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안식임을 이해 했다면’ ‘그러므로’ 라는 뜻일 것 입니다. ‘그러므로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는 것 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삶, 곧 우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삶 가운데 우리 자녀의 축복과 비밀이 들어 있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우리를 도전하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까? 이것이 여러분의 삶의 목적 입니까? 이것이 여러분의 즐거움 입니까?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말씀을 마감 하면서 한가지 질문하기를 원합니다. 만약 여러분도 사도바울과 신실한 성도들처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삶’ 을 살기 원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산제사로 드리는 삶’ 일까요? 사도바울은 감사하게도 그 다음절, <2절>에서 무엇이 산제사로 드리는 삶인지를 이렇게 설명 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 입니다” (롬. 12:2) 라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우리의 산제사는 어떤 훌륭한 설교자가 하는 설교나 완벽한 찬양 그리고 감동적인 기도보다도 우리 각자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 입니다. 세상의 풍조에 휩쓸리지 않는 것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결심함으로 변화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 가는 것’ 입니다.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산제사’를 드리는 것 입니다. 이런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과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기도 합니다. 그로말미암아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며, 그를 즐거워 함으로서 그 안에서의 진정한 안식의 삶을 누리시길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