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28, 2020

“네 장막터를 넓혀라” (Enlarge the place of your tent)

Preacher:
Series:
Passage: 이사야 (Isaiah) 54:2
Service Type:

“네 장막터를 넓혀라”

(Enlarge the place of your tent)

6-28-20

본문말씀: 이사야 (Isaiah) 54:2

2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 지어라” (Enlarge the place of your tent, stretch your tent curtains wide, do not hold back; lengthen your cords, strengthen your stakes)

 

[설교 요약]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 지어라” (v.2) 고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을 죄의 권세와 세상의 압제에서 구원하여 주실 뿐 아니라, 구원에 합당한 놀라운 축복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총 66장의 이사야서에서 전반부 ‘심판의 메시지’를 지나서, 후반부의 ‘회복의 메시지’에 해당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장차 보내실 구원자로 인하여 누리게 되는 축복을 예언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또한 [2중적인 예언의 성취]를 가져왔음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첫째,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예언의 성취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민족을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이라는 오랜 징계의 터널을 통과하여 다시 본토로 귀환시키시고 크게 성장시키셨습니다.
  • 둘째,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예언의 성취입니다: 오늘 말씀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의 몸이 된 <교회 공동체>에 적용됨을 보게 됩니다. 주석가, 매튜헨리는 오늘 본문을 이렇게 주석합니다; “~ 우리는 이 분문을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교회에 적용해야 한다 ~ 장막이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경우 어디에서 건 곧바로 세워질 수 있다. ~ 교회는 모든 열방을 제자화하기 위하여 이 장막의 끈을 연장시키고, 말뚝들을 강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라고 세계만방 가운데 널리 펴진 교회의 부흥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포슬교회는 ‘학생사역’을 비젼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말씀은 우리 교회에게 소망을 주고 비젼을 새롭게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 비젼이 어디에서 출발할 것인가를 알려줍니다.

그것은 <복음>입니다. 바로 앞장 <이사야 53장>에서 ‘고난의 종’으로 오실 메시야가 예언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해방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장막터를 넓히고 말뚝을 견고하게 박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장막터를 넓혀 나감으로 많은 청년들을 죄와 사망에서 자유케 하는 축복된 일에 쓰임받는 주님의 교회 되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하나님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에게 선포하십니다.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 지어라” (v.2) 고.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을 죄의 권세와 세상의 압제에서 구원하여 주실 뿐 아니라, 구원에 합당한 놀라운 축복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첫 인간부부를 창조하시고 주셨던 축복의 말씀을 연상케 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창. 1:28) 라고. 하나님은 그들의 죄와 불순종으로 깊은 징계의 고통을 통과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제 ‘장막터를 넓히고, 처소의 휘장을 널리 펴고, 말뚝을 견고히 박으라’고 선언하십니다. 바로 축복된 미래를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개인 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축복하시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그 약속을 따라 복음의 장막터를 넓히고 견고히 말씀의 말뚝을 깊이 박는 우리 믿음의 공동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대언한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아 기원 전 745 ~ 695년까지 50년간 활동한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예언자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이 포함된 <이사야 54장>은 총 66장에 해당하는 이사야서 전체 말씀에서 <회복의 메시지> (40~66장) 에 해당 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구원자를 보내셔서 구원하심으로 누리게 되는 축복들’ (54~55장)을 선언한 말씀인 것입니다.

이사야서는 크게 2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는 <사. 1~35장>까지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심판의 메세지는 먼저 ‘남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1~12장)이 선포되고, 이어서 ‘바벨론과 앗시리아와 여러 주변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13~23장)의 메세지가, 그리고 ‘온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24~35장)의 메세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후반부는 <사. 36~66장>까지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이 후반부는 먼저 ‘히스기야왕 시대의 사건들’ (36~ 39장) 을 이사야가 언급하고 나서,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 (40~48장)을 선포하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 (49~57장) 즉 ‘고난 받는 종’ (49~53장)으로 묘사된 구원자,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축복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 (65~66장)을 (큰 그림에서)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오늘 본문말씀은 이사야서의 후반부 ‘회복의 메시지’에 해당하는데, 바로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장차 보내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충만한 영감으로 ‘고난의 종, 메시야’와 그로 인한 축복들을 설명하는 가운데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대부분의 성경에서 볼 수 있드시,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2중적으로 예언하시는 것입니다. 먼저 그 당시 상황에서, 그리고 먼 훗날 이루어질 예언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약속하신 축복된 미래는 1차적으로 오랜 징계의 터널을 통과해 나온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에 포로상태에 있던 그의 백성 이스라엘민족을 구원해 주시겠다고 굳게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오늘 말씀이 단순한 유대인들에게만 적용되는 약속이라면, 이 본문은 유대민족이 포로생활을 하다가 본토로 귀환하여 큰 민족으로 성장하는 예언으로 그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구약시대의 유대인들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약속하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고 영광스럽게 성장할 <하나님의 교회>에 적용되어야 함을 이해하게 됩니다.

주석가, 매튜헨리는 <이사야 54장>을 이렇게 주석했습니다. 예루살렘은 그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내 혹은 쓸쓸하고 고독한 미망인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성은 다시 사람들로 충만해지고 성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황폐해진 성은 다시 보수될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들의 남편이 되어 그들이 하나님의 징계로 받았던 포로 생활의 수치가 잊혀지고 그로 인하여 감소되었던 그들의 인구도 다시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분문을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교회에 적용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본문은 사람들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하나님의 왕국, 곧 세상 속에 세워진 하나님의 도성에 적용해야 한다 ~ ~ 여기에서 교회의 현 상태가 장막과 같은 상태로 전제되고 있다. 즉 교회는 옛 약속을 기업으로 물려 받은 자들처럼 장막에 거주한다. 장막이란 순식간에 철거되어 이동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경우 어디에서 건 곧바로 세워질 수 있다. 교회의 상태가 장막의 상태와 같다는 것은 분명 성장하는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 교회는 모든 열방을 제자화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이 장막의 끈을 연장시키는 것이었다. 그들은 또한 확장된 장막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말뚝들을 강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라고 매튜 헨리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부흥케 하시고, 그 터를 넓게 하신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잘 서술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오늘 본문말씀을 제가 우리 교회의 청년 여러분과 같은 시기에 자주 들었던 말씀입니다. 특별히 제가 신앙적으로 훈련받고 청년사역의 비젼을 꿈꾸게 했던 교회 대학부에서 감동적으로 들었던 말씀이었습니다. 수십년이 지났지만, ‘장막의 터를 넓히고 휘장의 줄을 길게 하고 말뚝을 견고히 하라’는 비젼의 말씀을 묵상하며 소망에 부풀었던 때가 어저께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당시 이 말씀이 뜻하는 깊은 의미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제가 이해하고 소망했던 것은 나와 함께 했던 청년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의 은혜와 능력을 주셔서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가는 곳은 어떤 곳이 되었건 하나님이 다스리는 장막이 되고, 우리는 믿음으로 승리하게 되기를 소망했던 것입니다.

앞서도 잠시 말씀 드렸듯이 오늘 <이사야서 54장> 말씀은 전반부의 ‘심판의 메시지’에 이은 후반부의 ‘회복의 메시지’에 속해 있습니다. 이 ‘회복의 메시지’에서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을 처음으로 선포하는 <사. 40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사.  40:1~2) 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로하시기 원하셨습니다. ‘이제 고통의 때가 끝나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 곧 ‘고난의 종’ (49~53장)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으심 때문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고 슬픔과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사람들이 그를 외면하고 우리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 그가 우리의 죄 때문에 찔림을 당하고 상처를 입었으니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다” (사. 53:3,5/ 현대인의 성경) 고 이사야는 오실 메시야를 눈에 보듯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오늘 본문에서 “네 장막터를 넓히며 ~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하라” 고 복되신 명령을 내리시는 대상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우리 대신 고통 당하시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성도들, 곧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된 명령이신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아포슬교회’의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가를 성도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교회의 비젼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우리 교회는 ‘학생사역’을 비젼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학생사역인가요?’ 저는 그간 오랫동안 학생사역 교회에서 훈련받고 또 학생교회를 개척하여 10여년가량 섬기고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학생/청년 사역’이란 쉽게 정의할 수도, 가볍게 평가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과연 ‘학생사역은 무엇이라고 간단히 정의할 수 있을까요?’ 현재 저는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오늘 말씀을 곰곰히 묵상하면서 우리 교회의 비젼을 돌아볼 때,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것은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가 비젼을 새롭게 하여 장막터를 넓히고 막뚝을 견고히 박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나는 복음 위에서 출발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와 죽음의 결박에서 해방되고 성령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영광된 우리의 신분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믿는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서 거듭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날마다 우리 각자가 자라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우리 교회가 ‘학생사역을 충성되게 감당할 수 있는 관건’이 되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근대적 선교의 개념에서 볼 때, 첫 세계선교의 문을 연 ‘인도 선교사’ <윌리암 켈리>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Expect great thing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소망하고 간구하는 학생사역에 있어서, 과연 무엇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대한 일일까요? 과연 무엇이 하나님을 위한 위대한 일일까요? 이것이 좀더 분명해지고, 더 우리의 믿음 가운데 고백 되어질 때 우리는 어제보다 오늘, 더 위대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내가 무슨 전공을 하고, 무슨 일을 하든 관계없이 우리 청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을 성령님께 순종함으로 날마다 깨닫아 나감으로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서 교회 공동체 위에 허락하신 복음의 비젼을 통해 청년들의 가슴에 장막터를 넓히고 말뚝을 견고히 박아 나가는 것이 ‘학생사역’이요, ‘위대한 일’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 아포슬교회의 비젼에 대한 큰 그림의 청사진이 아니라, 하나의 동기부여와 근거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비젼의 근거는 비젼의 내용보다 언제나 중요합니다. 주께서 말씀 (마. 7:24~27)하셨듯이, 기초가 잘못되었을 때 그 위에 아무리 아름답고 웅대한 건축물을 짓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크고 웅대하면 할수록 무너짐이 큰 모래위에 지은 집이 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요즘 큐티하는 <고린도 전서>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이 닦아 둔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고전. 3:9~11) 라고. 마지막 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불타지 않고 남게 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지어진 순수한 복음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어떤 나의 신념과 지식과 자랑에 근거한 일은 모두 불타 없어질 것입니다.

저는 지난 10여년의 학생사역을 되돌아볼 때 많은 아쉬움과 주님 앞에 회개의 마음을 금할 길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동안 주의 성령을 의지하기 보다는 저의 과거 학생사역의 경험을 더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진정으로 우리 청년들을 온 힘을 다해 섬기지 못했음을 깨닫습니다. 늘 남과 비교하며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자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께서 베드로에게 당부하신 “내 양을 먹이라” (요. 21:15~17)는 명하심에 너무도 거리가 먼 저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청년들을 섬기는 자로서 더 깊은 말씀 묵상과 무릎으로 기도하는 경건의 삶이 많이 부족했음을 통감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이렇듯 부족한 저에게 아직까지 주님의 양들을 맡기시고 또 한번의 기회를 주시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드릴 뿐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인생의 목표와 비젼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의 소망하는 그 모든 계획들이 주님의 뜻 안에서 모두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 시간 진정으로 간절히 소망하는 것은 청년 여러분이 이 소중한 때를 허비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언제나 나와 함께 할 것같은 이 청춘의 시기도 손가락 사이로 물이 새어 나가듯이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미리 이해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의 삶이 나이 많고 늙어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시간이 다다랐을 때 인생을 후회하며, 주님 앞에 드릴 것이 없어 부끄러움으로 탄식하는 사람 한사람도 없기를 기도합니다. 그와 반대로 바울과 같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딤후. 4:7~8) 라고 이렇게 담대한 고백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여러분들의 남은 날 동안 복음의 능력으로 장막터를 더욱 넓히고 휘장의 줄을 길게 펴며 말뚝을 견고히 하는 복된 삶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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