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30, 2019

“담대히 성소 안으로” (Boldly go into the Most Holy Place)

Preacher:
Series:
Passage: 히브리서 (Hebrews) 10:19,20
Service Type:

“담대히 성소 안으로”

(Boldly go into the Most Holy Place)

6-30-19

본문말씀: 히브리서 (Hebrew) 10:19,20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Therefore, brothers, since we have confidence to enter the Most Holy Place by the blood of Jesus,)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by a new and living way opened for us through the curtain, that is, His body,)

 

[설교 요약]

히브리서기자는 오늘 말씀에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v.19)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성도들이 성소 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일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길을 열어 놓으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지성소 안으로 이제는 들어갈수 있다”는 뜻 입니다. 그리고, 신구약 성경은 한결같이 그것을 “예배 드린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무엇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인지에 대해서, ‘신령과 진리로’(요. 4:24) 드리는 예배요, 사도바울은 ‘자신의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롬. 12:1) 드리는 예배라고 우리에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은, 왜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기뻐하시는가요?하는 것 입니다.

첫째, “예배는 하나님과의 사귐이기 때문” 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가지게 되었다’ (19) 는 것은 하나님과 누리게 될 깊은 사랑의 관계를 뜻하는 것 입니다. 사랑의 사도, 사도요한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일.4:16) 라고 우리를 하나님과의 사랑의 사귐으로 인도 합니다.

둘째, “예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심이기 때문” (Because worship is the center of fear of God) 입니다: <창. 4장>에 보면, “ ~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 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창.4:4,5)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제물 보다도 그 제물을 드린 사람에 더욱 관심 가지신다는 것 입니다. 그분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그를 경외하는 마음 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함과 떨림으로 그분 앞에 날마다 나아가는 것 입니다.

셋째, “예배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것이기 때문” (Because worship is to glorify God) 입니다: 웨스터민스터 소요리문답에서 이렇게 시작 합니다. “인간의 첫째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는것이다” (To glorify God, and to enjoy Him forever) 입니다. 진정한 성도의 예배는 언제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요, 그분을 즐거워하는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삶 가운데,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 그의 허락하신 모든 충만한 은혜를 누리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설교 전문]

성도 여러분 그동안 얼마나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랫동안 신앙생활 했느냐가 아니라, 기간에 관계없이 얼마나 옳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내가 옳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점검하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되는 것 입니다. 바로 ‘신실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관계’ 말 입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성도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각자를 되돌아 보는 가운데 ‘하나님과의 순전한 믿음의 관계’에 대한 각성과 결심이 더 깊어지는 시간될수 있기를 기대 합니다.

히브리서기자는 오늘 말씀에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v.19)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의 질문은 ‘무엇이 성도들이 성소 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일까요?’ 하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그동안 여러 주에 걸쳐 ‘큐티말씀’으로 <히브리서>를 잘 묵상했을것으로 생각 됩니다. 히브리서기자는 히브리서 전체에서 가장 잘 알려진 <히. 11장>, ‘믿음장’을 시작하기에 앞서 <히. 10장>에서 ‘믿음의 진정한 용사’로 살아가기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영적으로 밝히 설명하고 있음을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 <히. 10:15~18>에서 기자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속에 율법을 새겨 주시고, 그들의 심령속에 기록할 것을 약속하신 선지자 예레미야의 글 (렘. 31:31)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 백성들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시지 않을것을 의미하는 것 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것이 가능한 것은 바로 그의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제사를 통해 더 이상 다른 제사를 반복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 입니다 (v.17,18).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단번에 드리신바 되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 (히.9:28) 입니다. 이는 대제사장이 해마다 황소와 염소의 피로써 성소에서 제사를 드리되 (히. 9:25, 10:4) 우리의 죄를 없이하지 못하지만, 그리스도의 의로우신 피로써만 단번에 자신을 드려 우리의 죄를 없애시고 거룩함에 이르게 하신 것 입니다 (10:10).

이것이 <히. 9:23>에서 부터 <히.10:18>, 오늘 본문 앞까지의 내용인 것 입니다. 그 주제는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이뤄진 속죄>인 것 입니다. 어떻게 우리 인간이 더 이상 구약의 끊임없이 반복되는 짐승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아도 되는지, 아니 더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과 거룩함에 이르는 진정한 그분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수 있을것 인지를 설명해 주고 있는 것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번 자신의 몸으로 이루신 속죄제사를 통해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 입니다.

그리고나서, 오늘 본문이 이어지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죄 씻음받고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 성도들은 그분의 피를 힘 입어 하나님의 성소 안으로 들어갈 담력을 얻게 되었다’ (v.19)는 것 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를 <20절>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v.20) 라고. 이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이것에 대해 <메튜헨리>는 이렇게 탁월한 주석을 하고 있습니다; “1) 이 길만이 유일한 길이다. 2) 이것은 새로운 길이다. 또 이 길이야말로 항상 효력을 발휘하는 길이다. 3) 이 길은 생명의 길이다. 곧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며,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이 길은 비록 죽었으나 다시 살아나신 구세주께서 내신 길이며 또 이 길에 들어서는 사람에게 생명과 삶의 소망을 주는 길이다. 4) 이 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길이다. 하늘나라에 이르는 길은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에 의해서만이 가능한 것이다. 곧 그의 죽으심이 우리의 삶의 길인 것이다” 라고.

특별히 메튜헨리의 마지막 말은 저에게 강한 메세지를 안겨 줍니다. “곧 그의 죽으심이 우리의 삶의 길인 것이다” 라는 해석 말 입니다. 과거뿐 아니라 현재와 그리고 미래의 어떤 인간으로도 이룰수 없는 구원의 길을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열어 놓으셨다는 것 입니다. 제가 오늘의 말씀을 시작하면서 ‘무엇이 성도가 성소 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일까요?’라고 질문 했는데, 그 대답은 “죄 있는 인간이 결코 나아갈수 없는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성소 안으로 이제는 들어갈수 있다”는 뜻이요, “이것이 가능한 것은 우리 주 예수께서 자신의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삶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는 뜻이요, 결론적으로, “우리 성도가 영원한 구원 받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하나님의 성소 안으로 담대히 나아감으로 그분의 임재 안에서 즐거워 한다”는 뜻이 될것 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질문은 이것 입니다. “여러분은 성소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하는 것 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 <히. 10:19>의 ‘성소’는 어디를 가르키는 것일까요? 헬라어로는 “톤 하기온” 인데 그것은 바로 ‘지성소’ (the Most Holy Place)를 가르킵니다. 이 지성소는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성막’을 만들었는데, 그 성막 안에 <언약궤>(Ark of Covenant)를 모셔둔 곳이 ‘지성소’ 입니다. 이 <언약궤>안에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받은 십계명 돌판 2개와, 만나 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이난 지팡이’가 들어 있었고, 언약궤의 뚜껑은 양 옆으로 서로 마주보고 날개를 펼친 두 천사그룹의 형상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두 그룹의 날개 사이를 ‘속죄소’라고 하여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언약궤를 모시고 있는 지성소는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 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민족에게 있어서 ‘성소로 나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나아가서 그분을 예배하는 것을 뜻 합니다. 그리고 이 ‘예배’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선 ‘2가지 예배에 대한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셔서 자신이 구원자되심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을 주실것을 약속 하셨습니다. 그녀는 주님께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요.4:19) 라고 먼저 예배의 문제를 꺼집어 냅니다. 그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리으로 예배할찌니라” (요.4:21,24) 하나님은 우리의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고 기뻐하신다고 주님은 말씀하시는 것 입니다.

둘째로, 사도바울은 <로마서 1~11장>까지 ‘어떻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고, 놀라운 그분의 자녀의 삶을 준비하셨는지’를 복음을 통해 탁월하게 설명하고 나서, <롬. 12장>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2:1) 라고. 우리의 구원과 예배와의 관계를 잘 설명한 말씀인 것 입니다. 이제 짐승을 잡아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너희 자신을 드리라는 것 입니다. 자신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24시간 & 365일 살아가는 삶 자체를 통해 하나님이 받으실 거룩한 산제사의 예배를 드리라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하나님의 거룩한 지성소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 드린다’는 뜻이요, 또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영적 예배를 드린다’는 뜻이 될것 입니다. 따라서, 이 예배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과 교제하는 영적 경험이요, 성령충만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즐거워하는 예배>가 되는 것 입니다.

이제 저의 마지막 질문은 이것 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기뻐하시는가요?”(Why is God pleased with our worship?) 하는 것 입니다.

첫째, “예배는 하나님과의 사귐이기 때문” (Because worship makes fellowship with God) 입니다: 우리 크리스챤들 가운데는 오랫동안 신앙생활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배>라는 것을 하나의 ‘종교적인 행위’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우리 주께서 말씀하시고, 사도바울이 설명 했드시, 성도의 예배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맺어가는 유기적인 생명의 관계인 것 입니다. 특별히 오늘 히브리서 기자가 강조하드시,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가지게 되었다” (19) 는 것은 하나님과 누리게 될 깊은 사랑의 관계를 암시하고 있는 것 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사랑의 사도, 사도요한은 이것을 잘 이해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요일.4:16,18) 라고. 우리 성도들은 더 이상 구약의 짐승을 잡아 드리는 희생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영적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사귐 입니다.

둘째, “예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심이기 때문” (Because worship is the center of fear of God) 입니다: 사실 우리는 신약의 예배는 영적이고, 구약의 제사예배는 형식적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 뿐 아니라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은 동일한 기준을 요구하심을 볼수 있는 것 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언제나 영과 진리로 드려야 하는 것 입니다. 형식적으로 적당히 드려서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것 입니다. 우리가 <창세기서>를 인간 최초의 예배, 즉 제사를 드리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창. 4장>의 카인과 아벨의 제사 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물 보다는 그 제물을 드린 사람에 더 관심이 있으셨다는 사실 입니다. “ ~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 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창.4:4,5) 하나님은 그 제물이 얼마나 기름진 짐승이냐, 얼마나 고가의 헌물이냐 보다는 그 제물을 드린 사람의 중심이 어떠하냐에 더욱 관심 가지신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예배는 그분을 경외하는 마음 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함과 떨림으로 그분 앞에 날마다 나아가는 것 입니다.

셋째, “예배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것이기 때문” (Because worship is to glorify God) 입니다: 우리의 신실한 믿음의 선배들이 성경을 깊이 읽고, 기도 가운데 묵상하며 내린 “인간의 첫째되는 목적” (The chief end of man)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는것” (To glorify God, and to enjoy Him forever) 라는 것 입니다. 이것이 우리 크리스챤들에게 믿음의 ‘표시판’ (guidepost)로서 얼마나 소중한지는 제 개인적으로도 고백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과연 어떻게 신앙생활 하는것이 잘하는 것인지, 무엇이 하나님을 옳바로 믿는 그의 자녀의 삶인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될때마다, 저에게 중요한 ‘표시판’과 같이 영적 길을 알려준 것이 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첫째가는 목적이라는 사실 입니다. 바로 우리성도의 예배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것 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50:23) 라고 하나님은 선언 하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의 제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신다고 말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을 따라 하나님의 지성소 안으로 담대히 들어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영과 진리의 예배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림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습니까? 왜 하나님은 우리의 이런 영적 예배를 기뻐하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이 예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어 놓으신 생명과 사랑의 은혜를 우리 구원받은 그의 자녀들이 온전히 누릴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예배를 통해 성령의 충만으로 허락하신 하나님의 선하시고 거룩하신 임재 안으로 들어갈수 있기 때문 입니다. 바로 이 땅에서 누리는 천국의 맛인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삶 가운데,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 그의 허락하신 모든 충만한 은혜를 누리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