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1, 2019

“더욱 큰 은사” (The Greater Gifts)

Preacher:
Series:
Passage: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12:27,29~31
Service Type:

“더욱 큰 은사”

(The Greater Gifts)

9-1-19

본문말씀: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12:27,29~31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Now you are the body of Christ, and each one of you is a part of it.)

29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Are all apostles? Are all prophets? Are all teachers? Do all work miracles?)

30 다 병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Do all have gifts of healing? Do all speak in tongues? Do all interpret?)

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But eagerly desire the greater gifts. And now I will show you the most excellent way.)

 

[설교 요약]

우리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사랑은 하나님으로 주어지는 무한한 특권임과 동시에 명령 입니다. 사도바울은 많은 크리스챤들이 관심가지고 사모하는 ‘영적 은사들’ (the spiritual gifts)보다 더 큰은사가 있다고 있다고 말하고 그것을 사모하라고 도전 합니다. ‘내가 제일 좋은 길을 보여 주겠다’는 것 입니다. 바로 ‘사랑’ 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우리가 살펴볼것은, 왜 사랑은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요?하는 점 입니다.

첫째, ‘사랑은 은사가 아니기 때문’ 입니다: 사랑이 과연 은사일까요? 하나님은 교회의 몇몇 사람들에게 영적 선물로 사랑을 허락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크리스챤의 가장 우선되는 명령 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마. 22:37,39).

둘째, ‘사랑은 은사보다 우월하기 때문’ 입니다 (Because love is greater than the spiritual gifts): 본문 <31절>의 ‘더욱 큰 은사’라는 표현에서 또 한가지 이해할수 있는 점은 사랑이 그 어떤 영적 은사보다 크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나서, 사도바울은 ‘사랑장’이라 불리는 <고린도전서13장>에서 어떤 은사들보다 우월한 사랑의 힘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친절하며 질투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으며 잘난 처하지 않습니다…”

셋째, ‘사랑은 영원토록 함께 하기 때문’ 입니다 (Because love is forever for us):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7,8) 라고 사도요한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영원한 것은 그 사랑이 영원하신 하나님으로 부터 흘러나오기 때문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라기는 여러분이 ‘더욱 큰 은사’ 곧 사랑을 간절히 구함으로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을 통해 충만하게 임하여 주의 몸된 교회와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는 사랑의 사람이 모두 되시길 소원 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 모든 인간의 삶에 있어서 그 삶을 지탱해 주며, 삶을 살아갈수 있게 이끌어 주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만약 누가 저에게 ‘우리 인간의 삶의 원동력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사랑이라고 저는 주저하지 않고 말할것 입니다. 더욱이 이 사랑은 우리 크리스챤에게 있어서는 단순한 감상적인 것 이상을 뜻 합니다.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사랑은 무한한 특권임과 동시에 의무인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사랑하기를 힘쓰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 아포슬 교회 가족들은 서로 사랑하는 믿음의 공동체 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허락하신 최고의 능력이자 선물인 사랑을 통해 개인의 삶과 가족과 교회와 살아가는 공동체 안에서 충만한 사랑의 사람으로 쓰임 받을수 있기를 기대 합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아는 ‘사랑장’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고전. 13장>에서 사도바울은 사랑의 놀라운 속성과 능력에 대해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 (고전. 13:4) 라는 고귀한 사랑의 선언은 심지어 믿지 않는 청년 남녀들 조차도 그들의 연애편지를 쓰는데 단골로 사용되는 문장이 되곤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말씀은 사도바울의 위대한 사랑의 찬가라고 불리는 <고전. 13장>을 시작하기 위한 서론격의 말씀임을 우리는 이해하게 됩니다.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고전. 12장> 전체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전.12장>의 주제는 ‘성령의 은사와 몸과 지체의 관계’ 입니다.여기서 사도바울은 ‘은사는 무엇이고 왜 은사를 주셨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바울은 이 은사를 주신 이유를 <우리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를 머리로한 한몸의 지체로서 서로 연결된 존재가 되기 위하여> 주셨다는 것 입니다. 바로 성령께서 성도들에게 은사를 선물로 허락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서로 연결되고 교회를 섬기는 일을 감당할수 있게 하기 위한 것 입니다. 따라서 만약 내가 가진 은사가 내 자랑이 되어 서로를 비판하고 헐뜯는데 쓰인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영적 선물로 주신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심히 어리석은 행위가 될 것 입니다.

그런데 이런 안타깝고 잘못된 모습이 영적 은사를 많이 가졌다는 고린도교회 성도들 상호간에 있었다는 것 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나 되지 못하고, 서로 가라졌다는 것 입니다. 이러한 교회 공동체의 잘못된 모습이 오늘 말씀에서 사도바울이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v.31a)고 주장한 이유 입니다. 그리고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v.31b)고 말한 것처럼 <고전.13장>과 이어지는 말씀에서 그 제일 좋은 길, 곧 ‘사랑으로 행하는 삶’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도바울은 그의 고린도 성도들에게 보내는 첫번째 편지를 마루리하면서 이렇게 결론적으로 격려하고 도전 합니다. “너희 모든 일에 사랑으로 행하라” (고전.16:14)라고. 바로 믿음의 공동체와 모든 인간관계 속에서는 ‘모든 일에 있어서 반드시 사랑의 동기로서 행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가장 우선적이고 중요한 관계의 원리가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라고 말 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우리가 살펴 볼것은 이것 입니다. 사도바울이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31)고 고린도 성도들에게 도전하는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는 왜 사랑은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요?” (Why is love so important for our Christians?)하는 점 입니다.

첫째, ‘사랑은 은사가 아니기 때문’ 입니다 (Because love is not the spiritual gifts): (고전.12:27-31) 왜 사랑이 그토록 중요한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오늘 본문을 바로 이해해야만 합니다. 앞에서 이미 언급 했드시 오늘 본문은 ‘사랑’에 대한 서론에 해당 합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v.31)는 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곧 이어질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이 왜 우리 크리스챤에게 가장 중요한가?를 설명하기에 앞서 고린도성도들에게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격려하고 있는 것 입니다. 왜 사도바울은 사랑을 ‘더욱 큰 은사’ (the greater gifts)라고 표현 했을까요? 그것은 ‘고린도성도들은 은사에 매우 관심이 많았기 때문’ 입니다. 우리가 인정하드시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을 통해 주신 은사는 더 귀한 것도 천한 것도 없이 모두 서로를 돕고 공동체를 함께 세워주는 일에 사용되는 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이 관심가지는 은사에서 부터 자신의 논리를 이끌어 내고자 하는 것 입니다. ‘너희가 그토록 사모하는 은사’보다 더 큰것이 있다는 것 입니다. 이 표현을 통해 그들의 관심을 한곳으로 집중시키고 있는 것 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것은 이것 입니다. 바울이 지금 ‘더욱 큰 은사’라고 소개하는 ‘사랑이 과연 은사인가?’하는 것 입니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동의하드시, 사랑은 은사가 아님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그것은 성경 어디에도 사랑을 은사, 즉 ‘영적 선물’로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것 입니다. <고전.12장>에서 사도바울이 상세하게 설명한 영적 은사를 가진 자들은 남의 은사를 부러워하거나 비판 할것이 아니라, 서로의 은사를 존중하며 각자의 은사를 활용하라고 주장하는 것 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사랑은 언제나 추구하고 행하라고 하나님께서 가장 우선적으로 명령하시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몇몇 사람들에게 영적 선물로 사랑을 허락한 것이 아닙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 22:37,39) 라고 우리 주님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명하심을 이렇게 요약하신 것 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은 은사가 아닌 것 입니다.

둘째, ‘사랑은 은사보다 우월하기 때문’ 입니다 (Because love is greater than the spiritual gifts): (그 예와 이유; 1-3,4-7) 오늘 본문 <31절>의 ‘더욱 큰 은사’라는 사도바울의 표현에서 또 한가지 이해할수 있는 점은 ‘더욱 크다’는 것 입니다. 사랑이 그 어떤 영적 은사보다 크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나서, 사도바울은 ‘어떻게 사랑이 은사보다 더 큰가?’를 이어지는 <13장>에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의 표현데로 “ ~ 내가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v.31b)는 것 입니다. 사랑의 우월성을 설명해 주겠다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이 어떻게 은사보다 더욱 크다고 그는 설명하고 있습니까? 비록 사람이 천사의 말과 같은 방언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다면 울리는 꽹과리 밖에 않되며 (13:1), 사람이 모든 비밀과 지식을 예언하고,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을 가졌다 할찌라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는 것 입니다 (13:2). 그는 지금 구체적으로 대표적인 영적 은사 예언과 지식과 방언을 예로 들면서, 우리가 비록 이런 은사를 놀랍게 행한다고 할찌라도 만약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는 것 입니다. 왜 그렇까요?

왜냐하면, 사랑의 본질 때문 입니다. 이것을 사도바울은 이렇게 아름답고도 힘있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친절하며 질투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으며 잘난 처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버릇없이 행동하지 않고 이기적이거나 성내지 않으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 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딥니다.” (고전. 3:4~7/ 현대인의 성경)라고. 사랑은 무엇이 옳고 그르냐를 따지기 이전에 오래 참고 견딘다는 것 입니다. 사랑은 누가 더 크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 입니다. 그럼으로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것을 견디는 것 입니다. 우리가 인간관계속에서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내가 의롭지 못하고, 잘나지 못해서가 아니라, 바로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사도바울은 고발하고 있는 것 입니다. 어떤 영적 은사로도 감당할수 없는 끝까지 인내하고, 끝까지 믿고, 끝까지 바라는 이 놀라운 삶을 사랑만이 가능하게 하는 것 입니다. 사랑은 그 어떤 은사보다 우월한 것 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바로 하나님으로 부터 온것이기 때문 입니다.

셋째, ‘사랑은 영원토록 함께 하기 때문’ 입니다 (Because love is forever for us): (8-12/ 천국가면 오직 사랑…) 사랑이 위대한 것은 그 사랑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한다고 사도바울은 성령의 충만한 계시를 통해 선포하고 있는 것 입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13:8) 고 바울은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언제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여질까요? 지금 당장은 아니다할찌라도 언젠가 주께서 이 땅에 재림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 가운데서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왕노릇하며, 그분과 함께 영광스러운 것을 받게 될때 (롬.8:17) 일것 입니다. 그때 지금 바울이 말한것 처럼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회복되고 충만하게 통치하게 될것 입니다. 모든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 입니다. 그러나, 오직 한가지 ‘사랑’만은 영원토록 우리 성도들과 함께 할것 입니다.

사랑이 위대하고 우리 모든 인간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는 믿지 않는 불신자들도 대부분 동의하는 바 일것 입니다. 이 사랑의 힘이 없다면, 우리는 얼마가지 않아 함께 자멸할수 밖에 없음을 신앙을 떠나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할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연 누가 이 사랑을 실천할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 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 우리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사랑한다’는 것은 무한한 특권임과 동시에 명령임을 말씀 드렸습니다. 바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자녀에게 주신 사랑의 명령인 것 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이 사랑을 실천할수 있을까요? 그것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하는 것 입니다.

사랑의 사도, 사도요한은 이렇게 고백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7,8) 모든 사랑의 출발점이자 근원이신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할때, 나는 나자신도, 그리고 이웃도 참되게 사랑할수 없는 것 입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실은 이기적으로 나와 이웃을 사랑하는 것 입니다. 그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 있는 그 영원한 사랑을 사모할때, 간절히 구할때 하나님은 그의 영 성령을 통해 그의 사랑을 구하는 그의 자녀들에게 충만하게 부어주실것을 저는 믿습니다. 이 사랑이 영원하기에 이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고 열매맺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사랑의 사람 입니까? 여러분을 통해 사랑이 흘러 넘치는 사랑이 충만한 사람 입니까?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는 여러분과 제가 사랑의 사람이 되기를 심히 기뻐하시고 소원 하심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 입니다 (요일. 4:8).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v.31)고 사도바울은 오늘 우리에게 사랑으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어떤 영적 은사보다 더욱 크고 위대한 사랑을 사모하라고, 간절히 구하라고 우리에게 도전하는 것 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그 구하는 자녀의 소원을 결코 거절하시지 않음을 믿기 때문 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이 어떤 교회에 소속되어, 어떤 영적 은사, 어떤 큰 영적 경험을 하든지 관계없이, ‘더욱 큰 은사’ 곧 사랑을 간절히 주께 간구함으로 넘치는 사랑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을 통해 충만하게 임하여 주의 몸된 교회와 이웃에게 그 사랑으로 그들을 섬기는 사랑의 사람이 모두 되시길 소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