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5, 2019

“오직 믿음으로” (Only by Faith)

Preacher:
Series:
Passage: 하박국 (Habakkuk) 2:4
Service Type:

“오직 믿음으로”

(Only by faith)

8-25-19

본문말씀: 하박국 (Habakkuk)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See, he is puffed up; his desires are not upright – 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

 

[설교 요약]

            크리스챤이 진정으로 추구해야할 삶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죄 없다고 불러 주시고,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런 삶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다고 성경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가 되는 <믿음>에 관해서 우리들은 크게 2가지로 구분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무엇이 믿음이 아닌가?이고, 그렇다면 둘째는 ‘무엇이 믿음인가?하는 것 입니다. 그러면,

첫째, ‘무엇이 믿음이 아닐까요?’ (What faith is not?)

  • 믿음은 맹신이 아닙니다’ (Faith is not blind faith): 맹신은 믿음의 가장 심각한 오해요, 참된 믿음을 가로막는 적임.
  • 믿음은 희망사항이 아닙니다’ (Faith is not my hope): 자신의 소원성취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믿음을 도구로 사용하고자 할때, 우리는 영적 우상숭배에 빠지게 됨.
  • 믿음은 실천력이 아닙니다’ (Faith is not the power of performance): 우리 성도들은 믿어 의로와진 결과로 삶의 열매를 거둠. 내 행위와 실천력으로 의로와지는 것이 아님. 그렇다면 이제 살펴볼것은,

 

둘째,‘무엇이 믿음일까요?’ (What faith is?)

  •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것’ (Faith is to belief God) 입니다: 창세기에서 보면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15:6)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어떻게 우리 크리스챤이 죄없다함을 받아 의로와지는 지를 설명해 줍니다.오직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의로와 진것 입니다.
  •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Faith is to know Jesus Christ) 입니다: 나사렛 예수가 누구신지 깨닫아 그를 영접할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구원을 얻게 됩니다. 예수그리스도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것이 믿음의 기초입니다.
  • 믿음은 성령께 순종하는 것’ (Faith is to obey the Holy Spirit) 입니다: 오늘날 수없이 많은 크리스챤들이 문제점은 <성령충만 받는 것을 하나의 선택사항으로 치부>하는 것 입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들은 성령께 순종함으로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요구되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 잘못된 ‘맹신’이나 ‘희망사항’ 혹은 ‘나의 실천력’을 믿음이라고 오해하는 것이 아니라, 성삼위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믿음으로 죄와 싸워 승리하고 풍성한 성령의 열매을 거두실수 있기를 기대 합니다.

 

[설교 전문]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과 함께 ‘오직 믿음으로’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다보면 그냥 습관처럼 ‘오직 믿음으로’라고 말은 하면서도 그 의미를 스스로 잘 이해하지 못할때가 많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분하고, 이 믿음이 왜 이토록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아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함 받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기대 합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에서 ‘과연 누가 의로운자인가?’ ‘과연 누가 하나님께로 부터 죄없다함을 받는자 인가?’를 이렇게 선포함을 우리는 잘 압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함과 같으니라” (롬. 1:17)고 말입니다. 여기서 사도바울이 인용한 ‘기록된 바’라는 말씀이 곧 오늘 본문 말씀, <하박국 2:4> 말씀인 것 입니다.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v.4)는 것 입니다. 사실 크리스챤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단지 열심히, 그리고 소신과 양심컷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압니다. 그것은 우리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본질적으로 ‘하나님께서 죄 없다고 불러 주시고,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삶을 살수 있는가?’하는 점 입니다. 이러한 삶이 우리 크리스챤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인 것 입니다. 그리고 이런 삶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다고 성경은 선언하고 있는 것 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가 되는 <믿음>에 관해서 우리들은 크게 2가지로 구분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무엇이 믿음이 아닌가?이고, 그렇다면 둘째는 ‘무엇이 믿음인가?하는 것 입니다. 그러면,

1. ‘무엇이 믿음이 아닐까요?’ (What faith is not?)

첫째, ‘믿음은 맹신이 아닙니다’ (Faith is not blind faith): 우리 크리스챤들이 가장 착각하기 쉬운 잘못된 믿음의 형태가 ‘맹신’ (blind faith)일 것 입니다. 무엇이 ‘맹신’ 입니까? <국립표준 국어사전>에는 맹신을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덮어 놓고 믿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쉽게 이해하지면 우리가 사이비종교 신도들에게서 그런 맹신의 행태를 찾아볼수 있을 것 입니다. 국어사전의 정의데로 ‘그 주장하는 바가 옳은지 혹은 그른지를 가리지 않고 덮어 놓고 믿는 행태’인 것 입니다. 뿐만 아니라, 독재국가나 어떤 그릇된 리더가 이끄는 조직사회에서 일방적이고 거짓된 사실을 사람들에게 주입시켜 그들이 그것을 믿게 될때, 맹신이 시작됨을 보게 됩니다.

믿지 않는 불신자들 중에는 간혹 크리스챤의 믿음을 마치 ‘맹신’인것 처럼 비난하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맹신과 믿음은 말할것도 없이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을뿐 아니라, 믿음의 가장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이 맹신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 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통해 옳바른 믿음으로서 인격적인 결정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스스로 진정한 믿음을 포기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 입니다. 그럼으로 맹신은 믿음의 가장 심각한 오해요, 참된 믿음을 가로막는 적임을 우리 크리스챤들은 분명히 인식해야 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 성도들이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덮어 놓고 믿는 것’을 믿음 좋다고 말씀하지 않으시는 것 입니다. 도리어 그것은 우리 성도들을 거짓된 진리로 인도하고, 하나님과 바른 인격적 관계를 가로막는 죄악된 것이요, 거짓믿음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경고하는 것 입니다.

둘째, ‘믿음은 희망사항이 아닙니다’ (Faith is not my hope): 솔직히 오늘날 크리스챤들 중에서 자신이 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소원을 성취하는 것으로 믿음을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음을 볼수 있습니다. 마치 옛날 우리네 할머님들이 집뒤 우물가에 물을 길어놓고 정성을 다해 소원을 비는 것 입니다. 물론 그 정성스런 기도가 잘못됐다는 것이나, 그 소원의 제목들이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기도제목은 가족들의 건강이나 안녕을 비는 것이 대부분이었을 것 입니다. 심지어 우리 할머님들은 자신의 복조차도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잘 빌지 못하셨던 것 입니다. 어쩌면 여호와 하나님을 성경을 통해 인격적으로 알지 못하셨던 우리네 할머니들에게 그런 정성스런 기도가 자신이 하실수 있는 최선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서도 이런 식으로 믿음을 적용할때 큰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 입니다. 믿음은 내가 원하는 희망사항을 성취하는 도구가 아니다는 것 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소원성취를 위해 종교를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그 종교가 어떤것인지? 얼마나 참되고 정의롭고 진리로운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그 종교를 믿어서, 그 종교의 신이 내가 원하는 복을 가져다 줄수 있다면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절하는 것 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바로 이스라엘민족들이 이방신을 섬겼던 사실 입니다. 그 신이 나에게 부귀와 영광을 가져다 줄수만 있다면, 그 앞에 나아가 절하는 것 입니다. 물론 이런 우상숭배의 차원은 아닐찌라도, 만약 ‘내가 잘 믿으면 복 받는다’는 식으로 열심을 낼때 전혀 엉뚱한 결과를 가져 올수 있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조차 하지 못했던 놀라운 복을 허락하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은 결코 내 소원성취를 이루는 도구가 아니기때문 입니다.

셋째, ‘믿음은 실천력이 아닙니다’ (Faith is not the power of performance): 또한 우리 크리스챤들의 실천력이 믿음은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이러 이러한 일을 잘하는 사람들을 보고 믿음이 좋다’고 평가 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예배참석 잘하고, 전도도 열심히 하고, 이웃에게 선행을 베푸는 그런 성도들 말 입니다. 물론 이런 분들이 대체로 좋은 믿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저도 기대해 봅니다. 그러나 제가 여기서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것은 ‘우리 인간의 드러난 행위는 때로는 우리의 믿음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 믿음을 떨어 뜨리게도 작용한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것은 우리 인간의 부패한 마음 때문이요, 교만한 마음 때문 입니다. 내가 비록 예수 믿고 거듭났다고 이 모든 육체에 속한 악한 성품이 모두 사라지지 못했기 때문 입니다. 드러난 행위가 결코 우리의 믿음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 뿐 아니라, 신약성경에서도 저자들은 우리 크리스챤의 행함을 강조 합니다. 야고보는 “~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2:17)고 강하게 크리스챤의 행함을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크리스챤은 행함으로 의롭다하심을 받고, 그 행함을 통해 구원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야고보가 강조하는 사실은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 받고 의롭게 되었다면, 이제 삶으로 의롭게 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우리의 행위로 의로와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믿음으로 의로와진 자들은 너무나 당연히 삶으로 자신의 구원과 의롭게 되었음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 입니다. 따라서, 내가 ‘행함으로 의로와지고자 하는 자’인지, 아니면 ‘이미 믿음으로 의로와졌음으로 인해 행하고자 하는 자’인지를 스스로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확인의 기준은 내가 선을 행하면 행할수록 더욱 겸손하고 감사하는지, 아니면 자만하고 내 믿음을 자랑코자 하는지를 돌아보면 될것 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2. ‘무엇이 믿음일까요?’ (What faith is?)

첫째,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것’ (Faith is to belief God) 입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이 믿음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어찌보면 너무도 간단한것이 믿음 입니다. 창세기에서 보면 성경에서 가장 먼저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믿음을 보시고 그 믿음을 인정하셨는지를 간결하고도 분명하게 이렇게 선언하심을 보게 됩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Abram believed the Lord, and He credited it to him as righteousness) (창.15:6)라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과 같이 ‘의인이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게되는’ 것은, 즉 의인이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게 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는 것인가를 풀어주는 매우 중요한 성경말씀의 하나가 <창.15:6>의 “아브람이 여호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인 것 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의로와 진것 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어떤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어떤 교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매우 자기 기준에서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는 분들을 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즉 온 우주와 우리 인간을 포함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라고 하면서도, 실제로 그가 믿는 하나님은 매우 제한적인 하나님을 믿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면, 구약의 출애굽기 사건에서 홍해바다를 가르시고 그 사이를 이스라엘민족이 모두 건너가게 하신 사건을 믿을수 없다는 것 입니다. 또는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의 능력을 통해 아이를 낳게 된 사건이나, 신구약에 기록된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의 사건을 믿을수 없다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제가 반대로 질문해 본다면, 이런 성경의 기적을 믿는 것이 맹신인가요? 아니면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성경에 기록된 이와같은 기적은 충분히 행하실수 있는 권능의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요? “아브라함이 바랄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롬.4:18,19) 사도바울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진술하고 있습니다. 성도여러분은 성경에 기록된 그 어떤 기적 그 이상도 하나님은 행하실수 있는 권능의 하나님이신것을 믿으십니까?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 믿음과 맹신을 구분하실수 있습니까?

둘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Faith is to believe Jesus Christ) 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데로 가장 우선적인 믿음의 정의는 ‘하나님을 믿는 것’ 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 믿음의 정의를 잊지 말아야 할것 입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챤의 믿음은 여기서 그쳐서는 않됩니다. 만약, ‘내는 하나님을 믿는다’만 강조한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중대한 것을 놓치게 되는 것 입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이런 실수를 저지른 민족이 있었습니다. 바로 유대민족 입니다. 우리가 잘 알드시 예수님의 12사도들과 상당수 초대교회 성도들은 유대인들 이었지만, 대부분의 유대민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 이심을 믿지 않은 것 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지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말 입니다. 유대민족의 최대비극은 하나님을 세계 어느 민족보다 먼저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서 그들이 구원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 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 입니다.

제가 조금전에 인용한 <로마서 4:18,19> 말씀에 이어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계속해서 믿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롬.4:23,24) 는 것 입니다. 무슨 말 입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함 받았다는 사실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승화한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핵심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그를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죽은자 가운데서 권능으로 살리신 것을 믿는다는 사실 입니다. 따라서 내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다는 사실은 그를 이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고 죽은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뜻 입니다. 그럼으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이 왜 그토록 우리 성도들에게 중요한 것인지를 우리는 이해할수 있는 것 입니다. 바로 우리 성도가 그분과 함께 죽음에서 부활할뿐 아니라, 그를 살리신 분이 하나님 아버지심을 믿는 것이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이기 때문 입니다.

셋째, ‘믿음은 성령께 순종하는 것’ (Faith is to obey the Holy Spirit) 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성령께 순종하는 것까지가 믿음임을 알수 있습니다. 우리 크리스챤의 믿음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을뿐 아니라,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 또한 믿음임을 살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문을 열어 놓으신 것 입니다. 적어도 옳바른 성경신앙을 가진 우리 크리스챤들은 이것을 믿는다고 저는 확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믿음을 마무리할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수없이 많은 크리스챤들이 성령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인하여 믿음의 많은 문제를 발생하고 있음을 보게 되기 때문 입니다.

만약 저에게 ‘무엇이 크리스챤들의 성령에 대한 가장 큰 오해인지?’에 대해 말해 보라고 한다면, <성령충만 받는 것을 하나의 선택사항으로 치부>한다는 것 입니다. ‘내가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땅에 보내신 예수믿고 구원받았으면 됐다’는 것 입니다. 그 이상은 은연중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그렇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의 충만받기를 명하십니다. 받아도 좋고, 않 받아도 좋은 것이 아닌 것 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5:18) 고 말씀하시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령께 순종할때 그의 영을 통해 우리가 육신으로서는 결코 이길수 없는 죄를 이기고, 성령의 풍성한 거두게 하시는 것 입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5:16) 고 약속하셨기 때문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명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를 얽어매고자 하시는 것이 아니요, 성령의 충만하신 은혜로 우리의 육신으로는 행할수 없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좇아 행할수 있는 축복을 허락하시기 위함 입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것이며” (겔.36:26)라고 하나님은 선지자 에스겔을 통해 장차 임할 성령의 충만하신 역사를 예언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잘못된 ‘맹신’이나 ‘희망사항’ 혹은 ‘나의 실천력’을 믿음이라고 오해하는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을 소유하셨습니까? 그리하여 성삼위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능력을 믿음으로 죄와 싸워 승리하는 믿음의 용사가 되기를 소원 합니다. 선하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함으로 풍성한 성령의 열매을 거두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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