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18, 2019

“영적 기근” (The Spiritual Famine)

Preacher:
Passage: 아모스 (Amos) 8:11~13
Service Type:

“영적 기근”

(Spiritual Famine)

8-18-19

본문말씀: 아모스 (Amos) 8:11~13

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The days are coming.” Declares the Sovereign Lord, when I will send a famine through the land – not a famine of food or a thirst for water, but a famine of hearing the words of the Lord.)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Men will stagger from sea to sea and wander from north to east, searching for the word of the Lord, but they will not find it.)

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In that day” the lovely young women and strong young men will faint because of thirst.)

 

[설교 요약]

            하나님은 아모스를 통해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v.11) 라고. 먹을 음식이 없어서 배고픈 것도 아니며, 마실 물이 없어서 갈증을 느끼는 것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못한 배고픔과 갈증이라는 것 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기근’ (famine)의 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당시 구약시대의 상황에서 본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런 영적 기근이 임하게 된다는 것은 무엇을 실제적으로 의미하는 것일까요? 과연 무엇이 실제적인 영적 기근일까요?” (What is the spiritual famine?) 그것은,

첫째, ‘이스라엘 역사에서 보는 [말씀의 고갈시대]’ 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보면, 구약의 마지막 책 ‘말라기서’가 쓰여지고 난 다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까지 약 400년의 공백기간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것을 ‘신구약 중간기’ (the intertestamental period)라고 부릅니다. 구약의 수없이 많은 선지자를 택하셔서 말씀을 선포하신 하나님의 계시하심이 이 400년간은 사라진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서서 인류를 구원하실때 까지 침묵하신 것 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속에서 이 말씀의 고갈시대가 발생한 것 입니다.

둘째, ‘교회 혹은 국가적으로 닥치게 될 [영적 암흑기]’ 입니다 (It is the spiritual dark age that may suffer in Churches or the country): 이런 영적 기근은 교회 역사를 통해 계속적으로 발생했음을 봅니다. 그 대표적 사건이 중세 천년의 <암흑기>일 것 입니다. 로마카톨릭교회가 대부분의 세계의 교회를 장악하던 이 시기가 암흑의 시기인 것은 무엇보다도 성도들에게 성경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 입니다. 대부분의 평신도들에겐 이해할수도 없는 라틴어 성경만이 존재 했습니다. 말씀의 기근입니다. 그리고 20세기에 형성된 공산국가는 말살했고, 심지어 수없이 많은 교회들에서 말씀의 기근현상이 심각함을 보게 됩니다.

셋째, ‘개인적인 [영적 침체]’ 입니다 (It is the spiritual depression of each person): 이 영적 기근은 각 개인의 삶 가운데서도 찾아올수 있습니다. 이것은 ‘한 성도가 지속적으로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거부할때 경험하게되는 성령의 소멸’인 것 입니다. 즉 영적 침체를 경험하게 되는 것 입니다. 역설적이지만, 이 침체를 벗어나는 길은 여호와를 찾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 (사.40:30,31) 라고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찾기를 심히 기뻐하시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더 이상 성령님을 거부함으로 영적 침체에 빠지지 않고,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실때 그분께 겸손과 정직으로 나아갈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허락한 삶을 통해 그것이 대단한 것이 아닐찌라도 가난한 이웃을 위해 나의 것들을 그들과 나누고 양심과 정의를 따라 첫걸음을 내딛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설교 전문]

            저는 ‘영적 기근’이라는 설교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오늘 말씀을 묵상해 보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v.11) 라고. 먹을 음식이 없어서 배고픈 것도 아니며, 마실 물이 없어서 갈증을 느끼는 것도 아니라는 것 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못한 배고픔과 갈증이라는 것 입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설마 내게 이런 일이 닥치려구!?”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분들도 있을 것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개인이든 민족이든 그 선포하신데로 반드시 이뤄지는 진리의 말씀임을 저는 믿습니다. ‘설마’가 아니라 진실함 가운데 하나님께서 아모스를 통해 주신 말씀을 겸손하게 깨닫음으로서, 참혹한 영적 기근을 경험하지 않고 날마다 풍성한 말씀의 꼴을 먹으며 영적으로 성장하는 복된 성도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소원 합니다.

아모스는 기원전 760-755년경에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던 <북이스라엘>에서 활약했던 선지자였습니다. 비록 아모스는 남유다에서 출생하여 ‘느고아’라는 지역에서 양을 치던 목자였으나 하나님의 명령하심을 좇아 북이스라엘 왕국으로 가서 말씀을 선포한 독특한 성장배경을 가진 선지자 입니다 (암.1:1, 7:14~15).

아모스는 호세아와 동일한 시대에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한 선지자 였습니다. 그 쓰여진 말씀의 목적도 호세아서와 유사하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 할것을 촉구>하고자 한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특히 아모스가 활동했던 북이스라엘왕국, 여로보암 2세 때는 물질적으로 매우 번영하던 시대 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물질적 풍요가 도리어 부자들을 극도의 사치와 타락으로 빠지게 할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고 뇌물을 강요하고 재판을 불공평하게 (=굽게) 행하는 악을 저지르게 했던 것 입니다. 이와같은 이유로 해서, 아모스서는 ‘하나님의 정의와 심판’이 가장 핵심적인 주제를 이루고 있음을 볼수 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이 매우 흥미로운 것은 물질적 풍요가 절정에 이른 사회에 도리어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과 영적 빈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 입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을 생각하면 할수록 오늘날 미국 뿐 아니라 조국 한국의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이런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탐욕에 눈이 어두워진 가진 자들의 물질추구에 혈안이 된 삶,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학대하고 그들의 한벌 옷까지 빼앗으려 하는 그들의 추악한 삶의 모습이 하나님이 아모스를 통해 심판의 메세지를 전하시고자 하는 근본동기인 것 입니다. 그럼으로,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아모스를 통해 선포하신 무서운 영적 기근은 바로 이런 북이스라엘의 사회 상황 가운데서 비롯된 것 임을 우리는 먼저 잘 명심해 두어야 할것 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기근’ (famine)의 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당시 구약시대의 상황에서 본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영을 통하여 택하신 그의 종들을 감동케 하심으로 선포하시는 진리와 생명의 말씀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 입니다. 그리고 이 ‘기근’이라는 단어를 신약적인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옳바로 선포하는 설교자나 그 말씀을 함께 먹고 나눌 영적 공동체가 찾아보기 매우 힘들다’는 뜻일 것 입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였던 사무엘이 어려서 성장하던 때,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삼상.3:1) 라고.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다’ (The Word of the Lord was rare)는 현상이 오늘날도 얼마나 자주 목격하게 되는지 알수없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한다는 설교자들는 많고, 그 말씀을 함께 먹고 살아간다는 신앙공동체는 많은데, 여전히 진리와 생명의 말씀은 희귀함을 우리는 목격하는 것 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이 뜻하는 ‘기근’의 뜻일것 입니다.

그렇다면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런 영적 기근이 임하게 된다는 것은 무엇을 실제적으로 의미하는 것일까요? 과연 무엇이 실제적인 영적 기근일까요?” (What is the spiritual famine?) 그것은,

첫째, ‘이스라엘 역사에서 보는 [말씀의 고갈시대]’ 입니다 (It is the depletion age that we can see through the Israelites’ history):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보면, 구약의 마지막 책 ‘말라기서’가 쓰여지고 난 다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까지 약 400년의 공백기간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신구약 중간기’ (the intertestamental period)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시기를 중간사로 부르는 이유는 구약의 수없이 많은 선지자를 택하셔서 생명과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신 하나님의 계시하심이 이 400년간은 사라졌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하신 아들, 메시야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서서 성령의 충만하신 능력으로 인류를 구원하실때 까지 하나님은 침묵하신 것 입니다.

물론, ‘신구약중간기’는 단순히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들을수 없는 고통과 단절의 시기일뿐 아니라, 이 기간마저도 하나님은 그의 택한 자녀들에게는 더욱 간절히 하나님을 사모하고 그분께로 나아가는 통로로 사용하셨음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평상시에는 물과 공기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다가 물이 부족한 사막이나 산소가 희막한 높은 산에 오르게 될때 우리는 비로소 물과 공기의 고마움을 절실히 느끼게 되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영원하심을 이해 합니까? 그 말씀이 죽었던 생명을 살리고 우리 인생을 새롭게 변화시키시는 권능의 말씀이심을 믿으십니까? 이런 말씀의 기근은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의 역사속에서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하나님은 선포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기 때문 입니다.

둘째, ‘교회 혹은 국가적으로 닥치게 될 [영적 암흑기]’ 입니다 (It is the spiritual dark age that may suffer in Churches or the country): 신구약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라는 관점으로 성경을 이해해 볼때, 앞에서 언급한 400년이라는 신구약중간기 뿐 아니라 신약교회의 시대에도 그것보다 훨씬 길고 어두운 영적 기근의 시기가 존재했음을 우리는 기억 합니다. 바로 <1,000년 암흑기>라 불리는 중세 기독교 교회 역사인 것 입니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로마 카톨릭교회가 대부분의 세계교회를 장악했던 5세기에서 15세기의 시기를 뜻합니다. 왜 우리는 중세의 교회시기를 ‘암흑기’라고 표현 합니까? 그 가장 중심에는 성도들에게 ‘성경’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평민들은 어려운 라틴어로 된 성경을 읽거나 이해할수 없었고, 이 라틴어 성경은 성직자들이 주일날 설교시간에 한번씩 읽어주고 설교해 주는 것이 전부였던 것 입니다. 이것이 종교개혁가들이 ‘종교개혁 5대강령’,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중에서도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가장 먼저 내세운 이유일 것 입니다.

제가 말씀을 시작하면서, 아모스의 주제는 <하나님의 정의와 심판>이라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모스 당시 이스라엘의 실제적인 문제는 ‘경제적 풍요에 반비례하는 불평등한 부의 재분배’였던 것 입니다.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의 옷한벌을 탐내고, 신발 한켤레로 그들을 샀던 것 입니다. 제가 오늘 말씀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고인이 되신 ‘사랑의 교회’, 옥한흠목사님의 <아모스 8:11> 설교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 설교 가운데 매우 충격적으로 발견한 사실은, 옥목사님이 그 설교를 1980년대 후반경에 하셨는데 그분이 우려하시는 상황이 예언처럼 들어 맞았기 때문 입니다. 오늘 말씀이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에 대한 사회정의’를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것인데, 80년대에 민주화와 함께 그 당시 ‘가지지 못한 자들의 사회정의’문제로 한국사회는 많은 진통을 겪고 있었고, 이런 <빈부의 문제>가 대두되는 곳에는 반드시 찾아오는 사상이 <공산주의>라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념적인 갈등이 한국을 더욱 힘들게 할것으로 우려한다고 30여년 전에 옥목사님이 내다 보셨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정부와 가진자들과 우리 크리스챤들이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할때 더욱 심화되는 것 입니다. 그러나 공산주의 체제가 그 국가나 장악할때 성경말씀이 사라지게 됨을 근대역사는 우리에게 밝혀주고 있는 것 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 (벧전.2:9a) 라고 베드로는 흩어진 성도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환기 시킵니다.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으로,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부르셔서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전하는 이런 우리의 신분을 이해하지 못할때 물질의 종이 되어 가난한 자의 것까지 빼앗는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으로 전락하는 것 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일때 빛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 교회를, 그 사회를 그리고 그 국가를 영적 기근의 시기로 추락시킬수 있음을 오늘 말씀은 경고하는 것 입니다.

셋째, ‘개인적인 [영적 침체]’ 입니다 (It is the spiritual depression of each person): 저는 아모스 말씀에서 경고하는 ‘영적 기근’은 첫째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실현되었을 뿐 아니라, 기독교회역사와 기독교가 전파된 각 나라와 개교회 안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수 있음을 앞에서 살펴 보았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 영적 기근은 각 개인의 삶 가운데서도 찾아올수 있음을 봅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이것은 ‘한 성도가 지속적으로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거부할때 경험하게되는 성령의 소멸’인 것 입니다. 즉 영적 침체를 경험하게 되는 것 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v.12,13) 라고 되어 있습니다.

청년 남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찾고자 온 천지를 찾아 돌아다니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여기서의 실제적 의미는 그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것과는 반대로 그들이 자신의 영적 침체로 인해서 스스로 피곤해 하고 지쳐서 심히 절망해 있는 것 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7:7,8)라고. 우리의 하나님은 찾는 이에게 거절치 않고, 만나 주신다고 주님은 말씀 하시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왜 청년남녀는 비틀거리고 피곤해 합니까? 왜냐하면, 그들은 영적인 침체 가운데 있기 때문 입니다. 역설적이지만, 이 침체를 벗어나는 길은 여호와를 찾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 (사.40:30,31) 라고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찾기를 심히 기뻐하시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현재 여러분의 영적 상태는 어떠 합니까? 현재 성령님은 어떻게 여러분을 카운셀링 하시고 돕고 있습니까?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을 감찰하시고 도우실때 그분께 겸손과 정직으로 나아갈수 있기를 원합니다. 더 이상 성령님을 근심시키거나 거부함으로 영적 침체에 빠져 말씀을 상실한 불행을 격지 않기를 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허락한 삶을 통해 그것이 대단한 것이 아닐찌라도 가난한 이웃을 위해 나의 것들을 그들과 나누고 양심과 정의를 따라 첫걸음을 내딛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이것이 비록 연약하고 먼길처럼 보일찌라도 하나님은 그의 자녀를 통하여 약속하신 “ ~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마르지 않는 시내처럼 흐르게 (하는)” (암.5:24)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를 반드시 건설하실 것 입니다. 이런 감격스러운 일에 쓰임받는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