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4, 2021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How God To Live Together!)

Preacher:
Series:
Passage: 시편 (Psalms) 133:1~3
Service Type: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How Good To Live Together!)

10-24-21

본문말씀: 시편 (Psalms) 133:1~3

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How good and pleasant it is when brothers live together in unity!)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It is like precious oil poured on the head, running down on the beard, running down on Aaron’s beard, down upon the collar of his robes.)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It is as if the dew of Hermon were falling on Mount Zion. For there the Lord bestows His blessing, even life forevermore.)

<설교 요약>

            다윗왕은 오늘 말씀에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지!’ (v.1)를 기쁨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형제가 연합함을 기뻐하는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이 왕으로 즉위하기 전에 블레셋에 빼앗겼던 언약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오랫동안 하나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성궤를 모시고 있는 성막을 중심으로 다시 하나로 연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왕, 다윗왕은 이런 하나님의 성막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공동체가 다시 하나로 연합되게 되는 회복의 기쁨을 노래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가면서 이런 회복된 믿음과 하나된 연합으로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오늘 본문의 <시. 133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과연 <무엇이 공동체의 연합이 가져오는 기쁨일지?>를 다음의 2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는 “성도의 연합을 통해 <흘러내리는 축복>”의 역사입니다: 다윗은 노래합니다.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v.2)라고. 지금 다윗은 대제사장으로 상징되는 ‘아론’의 머리에 부어지는 보배로운 기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아론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하시는 은혜가 백성들에게 흘러 넘친다는 의미입니다 (민. 6:22~26). 더 나아가서, 이제 모든 성도는 ‘왕같은 제사장’이 되어 서로를 축복하며 연합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벧전.2:9)

            <둘째>는 “성도의 연합을 통해 <맺혀지는 생명>”의 역사입니다: 이어지는 오늘 본문 <3절>에서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v.3)라고 다윗은 노래합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높은 산, ‘헐몬산’ (=헤르몬 산)에 아침마다 흠뻑내려 초목을 살리는 이슬과 같이 성도의 연합은 목마르고 고통으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립니다.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 (시.110:3)이 되어 서로를 살리고 주님의 몸으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믿음을 통하여 아론의 온 몸을 적셨던 보배로운 기름과 같이 서로를 축복하며, 헐몬의 이슬과 같이 서로를 지켜줌으로 생명을 살리는 주님의 몸된 공동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설교 전문>

            오늘 모처럼 성도 여러분과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에 나와 예배 드리고 함께 교제 나눌수 있게 되었음을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가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아포슬 교회를 개척한 이후의 11년간의 지난 삶 뿐 아니라, 저의 평생을 통해 이끄신 하나님의 손길이 참으로 선하고 놀랍기 때문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임을 고백합니다. 그 모든 것 중에서도 제가 특별히 감사드리는 것은 그동안 저에게 보내 주신 <믿음의 친구들>과로 인함입니다. 그 중에서 나이가 저보다 많든지 비슷하든지 혹은 적은 사람도 있었고, 또한 나이에 관계없이 저에게 신앙적인 소중한 영향력을 주었든지 혹은 제가 말씀으로 섬겼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관계로 만났던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믿음의 친구들 (=벗들)’입니다. 이런 귀한 동역자와 주님의 양들을 저에게 허락해 주심을 생각할 때 기쁨과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오늘 ‘형제가, 그리고 자매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지!’ (v.1)에 대해 함께 말씀을 통해 묵상하기 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 힘든 인생길에 서로를 의지하고, 주를 믿는 믿음으로 서로를 지켜주는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로 자라가는 우리 아포슬 되길 기대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총3절이라는 비교적 짧은 본문으로 구성된 <시편 133편>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다윗의 시,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시. 133편>은 다윗이 지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그리고 그가 이 시편의 노래를 지었을 상황을 이렇게 해석하는 설교자도 있습니다. 그것은 곧, 다윗이 왕으로 즉위하기 전에 블레셋에 빼앗겼던 언약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오랫동안 하나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성궤를 모시고 있는 성막을 중심으로 다시 하나로 연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전회복임과 동시에 신앙에 신앙의 회복이요, 그로 인한 믿음의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왕, 다윗왕은 이런 하나님의 성막을 중심으로 이스라엘민족 한사람 한사람이 믿음으로 서게 되고, 이를 힘입어 이스라엘 공동체가 다시 하나로 연합되게 되는 회복의 기쁨을 노래한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면서 이런 회복된 믿음과 하나된 연합으로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오늘 본문의 <시. 133편>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와 같은 형제자매의 아름다운 연합은 세상에서 자기 뜻과 자기 목적으로 모인 어떤 모임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영광과 그를 믿는 믿음으로 모인 영적 공동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놀라운 특징임을 오늘 다윗의 노래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과연 <무엇이 공동체의 연합이 가져오는 기쁨일지?>를 다음의 2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점을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첫째>는 “성도의 연합을 통해 <흘러내리는 축복>”의 역사입니다: 다윗은 노래합니다.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v.2)라고. 지금 다윗은 대제사장으로 상징되는 ‘아론’의 머리에 부어지는 보배로운 기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왜 아론의 머리에 기름을 부을까요? 그것은 구약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민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대제사장을 임명할 때, 그의 머리에 올리브 기름을 부어 (anointed)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 영적 권위를 주셨음을 공포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다윗의 아름다운 표현과 같이 아론의 머리에 부어졌던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을 타고 흘러내려와서 그의 옷자락 깃까지 흘러내린다는 것입니다. 충만한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의 은혜가 그의 머리에서부터 흘러내려 그의 온 몸을 적시고 흘러내린다는 것입니다. 민수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민. 6:22~26)고 말입니다. 제사장에게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백성을 대표하여 주관할 뿐 아니라, 백성 가운데서 발생하는 분쟁과 소송을 판결하고 또한 율법을 가르치는 다양한 일들을 행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말씀을 통해 아론의 부어졌던 기름이 흘러내리는 은혜는 특별히 대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흘러 넘침을 영적으로 상징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성도 여러분이 잘 아는데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과거 구약시대가 아니라, 새로운 신약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선언한 것과 같이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벧전. 2:9)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남으로 그분의 제자가 되고,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된 우리 모든 성도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인 것입니다. 다만, 오늘날에서 보면 구약에서 대제사장이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축복했던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받아서 예배 마치고 목회자들이 축도를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축복을 믿음으로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다윗의 고백과 같이 참된 축복은 하나님을 삶의 중심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성도가 그 믿음 때문에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 하나되는 영적 연합의 아름다운 모습에서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아포슬 공동체 안에는 이런 아름다운 연합이 있습니까? 서로가 서로를 축복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있습니까? 이 축복은 어쩌면 작은 서로를 향한 관심, 작은 용납의 마음, 작은 내 고집과 내 주장을 포기하는 용기 그리고 조금 더 우리 주님 안에서 성령님께서 다스리도록 나를 비워드리는 데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요?

            <둘째>는 “성도의 연합을 통해 <맺혀지는 생명>”의 역사입니다: 이어지는 오늘 본문 <3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v.3)라고. 여기서 언급된 ‘헐몬산’은 ‘만년설의 눈이 녹지 않는 산’이라는 의미에서 ‘회색머리 산’이라는 별칭이 붙여질 정도로 해발 2,814m의 이스라엘에서 가장 높은 산입니다. ‘헤르몬산’이라고도 불리는 이 ‘헐몬산’은 이와 같이 그 산의 높이로 인해 산의 정상에 갈수록 대기의 온도차에 의해서 아침이면 많은 양의 이슬이 대지를 적시게 됩니다. 특별히 중동지역에 위치한 이스라엘과 같이 비가 잘 내리지 않고 건조한 지역적 특징을 가진 땅에서는 아침에 내리는 ‘이슬’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아침의 이슬은 대지를 덮고 있는 초목들과 동식물의 생명수의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헐몬산’에 이른 아침마다 풍족하게 땅을 적시는 이슬은 과히 생명을 살리는 생수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런 헐몬산의 이슬을 생각하면서, 형제와 자매의 연합하고 동거함이 이와 같은 서로를 살리는 생수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은 다윗이 또한 이렇게 노래한 시편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시. 110:3)라고 말입니다. 복음송가의 애창되었던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라는 이 시편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새벽이슬’같다는 말은 아침의 이슬처럼 수없이 많다는 의미도 될 것이고, 또한 방금 살펴본대로 헐몬산의 이슬이 대지를 풍요롭게 하듯 영적으로 뛰어나고 주님께 탁월하게 쓰임받는 의미도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이만 젊다고 ‘아침이슬 같은 청년’이 아니다는 점을 우리는 이해해야만 합니다. 사실 다윗은 <시. 110편>에서 ‘주의 권능의 날’ 곧 ‘메시야,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날’ 그분과 함께 세상을 다스릴 주의 모든 백성들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성도 여러분 각자가 자문해 볼수 있기를 원합니다. “나는 과연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육체적 나이만 젊은 것이 아니라, 영적 나이도 늙지 않고 더욱 강건한 주의 청년인지?’를 말입니다. 우리 각자는 메마르고 각박한 이 세상에서 흠뻑이 땅을 적시고 서로를 생명으로 살리는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연 우리 아포슬은 주님께서 보시기에 어떤 모습일까요? 진정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하나로 연결된 아름다운 몸일까요? 아니면, 각자가 머리가 되어 하나되지 못하는 예수님과 무관한 존재들일까요? 바라기는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믿음과 사랑을 통하여 아론의 온 몸을 적셨던 보배로운 기름과 같이 서로를 축복하며, 헐몬의 이슬과 같이 서로를 사랑하고 지켜줌으로 생명을 살리는 이런 아름다운 주님의 몸된 우리 아포슬 공동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Top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