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17, 2021

“영원한 말씀” (The Everlasting Word)

Preacher:
Passage: 이사야 (Isaiah) 40:6~8
Service Type:

“영원한 말씀”

(The Everlasting Word)

10-17-21

본문말씀: 이사야 (Isaiah) 40:6~8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A voice says, “Cry out.” And I said, “What shall I cry?” “All men are like grass, and all their glory is like the flowers of the field.)

7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The grass withers and the flowers fall, because the breath of the Lord blows on them. Surely the people are grass.)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The grass withers and the flowers fall, but the Word of our God stands forever.”)

<설교 요약>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v. 8)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민족이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당하고 나서, 절망 가운데 처해 있을 때 선포된 말씀’입니다. 이사야 40장은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v.1)는 하나님의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향한 위로와 회복의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나서,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v.5)고 하나님은 약속합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말씀이 선포됩니다.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v.6~8)라고.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선다는 의미일까요?” 그것은,

          첫째, “우리 인간은 풀처럼 시듦을 깨닫는 것” 입니다: 모세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 90:12)라고 주께 기도합니다. 여기서 지혜로운 마음은 ‘자신의 한계와 끝을 이해하는 마음’입니다. 바로 영원하신 말씀을 통해 내가 풀처럼 마르고 시듦을 깨닫는 마음입니다.

          둘째, “때가 악함을 이해하는 것” 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엡. 5:17)라고. 그렇다면, 어떻게 주의 뜻을 분별하고 이해해 나갈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 무엇보다도 ‘살아 있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함으로 그것을 날마다 묵상하는 삶 (시. 1:2)입니다. 오직 말씀만이 우리를 이 악한 세상에서 지켜 주십니다.

셋째, “말씀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 입니다: 사도요한은 “~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요. 1:14)라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증언합니다. 이 아들의 영광은 밭에 감추인 보화 ()와 같이 복음의 말씀 가운데 영원토록 빛나고 있는 것입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복음 안에 감추인 아들의 영광을 목격하며 말씀으로 죄와 육신과 사단 마귀와 싸워 승리하는 성도 모두 되시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요즘과 같이 유행이나 정보와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사회에 살다보면, 변하지 않는 것이 도리어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몇 달이 지나도, 혹은 몇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은 뭔가 시대에 뒷처진 것처럼 인식되곤 합니다. 우리 모두는 변화된 것이 더 발전적인 것이고, 이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가치관이 팽배한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v. 8)고. 모든 것이 변화되는 것처럼 인식하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요 영원한 것은 없다고 가르치는 세상 가운데서 <변치 않는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으로 살아가는 인생은 복된 인생임을 저는 믿습니다. 이 혼돈된 세상 속에서 영원한 진리의 말씀으로 거짓과 죄악에 맞서 싸워 승리하며 살아가는 축복된 성도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사야서>는 총 66장이라는 ‘장’수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총 150편에 다다라는 <시편>말씀 다음으로 성경에서 긴 말씀입니다. 이사야서는 단순히 길뿐 아니라, 그 내용에 있어서 충만한 영감과 탁월한 문장으로 가득찬 말씀으로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신약서에서 보면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과 베드로등과 같은 여러 신약성경의 저자들에 의해서 대표적으로 인용되는 구약의 말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신기로운 사실은, 성경 전체가 <구약성경 39권>과 <신약성경 27권>이 합쳐져서 <총 66권>으로 구성되 있는데, 이 ‘이사야서’의 구성이 ‘66장’으로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마치 성경 한권을 이사야 1장씩으로 함축하여 구성한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구약성경 39권이 끝이 나고, 신약성경이 시작되는 첫권이 40권째에 해당하는데, 이것이 <이사야서>에서 볼 때는 오늘 본문이 포함된 <사. 40장>이라는 것이고, 실제로 이사야서의 내용에 있어서도 크게 2부분으로 나눠지는데 이것도 신.구약 구성과 묘하게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방금 언급했듯이, 이사야서는 크게 2 부분으로 그 내용이 나눠지는데, 첫째부분은 ‘1~39장’까지로서 그 주제가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경고와 심판>이라면, 둘째부분은 ‘40~66장’까지로서 <죄에 대한 용서와 회복>입니다. 그럼으로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그 죄에 대한 상처에서 치유하시고 회복하는 메시지의 선포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사. 40:1~2)고 하나님은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신약의 시작되는 중요한 사건으로서 ‘오실 메시야’의 서막을 알리는 침례 요한의 사역이라면, 그 침례 요한에 관한 예언이 또한 이어지는 <3절>에서 선포되는 것입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v.3)라고.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평탄케 하고 예비한 침례 요한의 삶을 예언한 말씀인 것입니다.

제가 오늘 말씀을 전함에 있어 본문의 배경적 설명을 비교적 소상히 나누는 이유는 오늘 설교제목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여기 예배에 참석한 성도 여러분 가운데 의심하거나 부인할 사람은 아마도 없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바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자 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볼 때, <사. 40장>은 ‘하나님께서 보내실 메시야’를 준비하고 그분께서 이루실 구원의 사역이 실로 ‘기쁜 소식’ 즉 ‘복음’이라고 선포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 본문이 포함된 <사. 40장>을 살펴볼 때 ‘복음’ (=복된 소식)은 ‘사막에서 하나님의 대로를 준비하고, 골짜기 마다 돋우고 높은 산은 깍아 낮춤으로써 오실 메시야를 준비’ (v.3~4) 하라고 외치는 소리요, 또한 그 메시야께서 이 땅에 오셔서 완성하신 구원의 기쁜 소식이 복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v.9). 그럼으로 저는 막연하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정하는 수준이 아니라, 이 말씀이 어떤 상황 속에서 인용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이해함으로써 말씀이 실제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살아 역사하시도록 적용해 나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 본문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 쓰여진 것인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민족이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당하고 나서, 절망 가운데 처해 있을 때 선포된 말씀’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하나님은 그의 종 이사야를 통해 바벨론의 전쟁포로로 끌려가서 비참하게 절망가운데 신음하는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v.1)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의 백성들을 위로하라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죄에 대한 처벌과 고통의 시간은 끝이 났고, 이제 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구원을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으로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메시야를 통하여 영광스러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심으로서 입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v.5)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말씀은 ‘여호와의 영광을 모든 육체, 곧 모든 사람들이 보게 될 것임’을 예언하고 난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임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v.6~8)는 오늘 말씀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호와의 영광을 모든 육체가 보게 될 것이라는 선포 뒤에 이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영영히 서게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제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선다는 의미일까요?” (What does it mean that the Word of God stands forever?) 에 대해 살펴 봄으로서 그것을 이해하고자 합니다. 저는 이 생명의 말씀이 어떻게 성도의 삶에 역사하는지를 실제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이 질문에 답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첫째, “우리 인간은 풀처럼 시듦을 깨닫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선언하십니다.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v.6~7)라고. 우리 대부분의 인간이 범하는 대표적인 어리석음의 하나는 바로 ‘내가 천년 만년 살 것 같은 착각’ 속에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아포슬교회는 학생(청년)교회이다 보니 대부분의 멤버가 젊은 청년들 입니다. 그리고 저 자신도 청년 여러분의 나이때 그러했지만, 그 젊음이 이처럼 쏜살같이 지나쳐 지난다는 사실을 저는 미쳐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니 별로 믿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챤을 포함한 모든 인간 한사람 한사람이 직면하고 인정해야만 하는 ‘불편한 진실’ (?!)은 우리 인간은 풀과 같이 시들고 꽃과 같이 떨어진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올바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은 자신의 남은 날을 좀 더 분명히 깨닫을 때, 현재의 삶을 좀 더 지혜롭게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은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줍니다. 그는 기도합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 90:10,12)라고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자신에게 자신의 남은 날을 계산할 수 있는 깨닫음을 주셔서,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지혜로운 마음입니까? 지혜로운 마음은 ‘나의 한계와 끝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마음’입니다. 스스로 높이 솟은 산봉우리가 되는 교만함을 깍아 낮출수 있고, 스스로 비관하여 절망감에 빠져 있는 인생의 깊은 골짜기 또한 메꿀 수 있는 마음입니다. 바로 살아 있고 영원한 말씀으로 말입니다. 이 영원하신 말씀 앞에 설 때, 우리는 교만하게 우쭐댈 수도 없고 인간과의 비교를 통해 열등감의 늪에서 허우적 거릴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 풀과 같이 시들고, 우리의 육체는 꽃과 같이 말라 떨어지는 존재일찌라도, 오직 말씀만이 우리를 영원히 붙들고 생명으로 채워 주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둘째, “때가 악함을 이해하는 것” 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함을 믿는다는 의미는 이 말씀만이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을 이 악한 세대로부터 지켜 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말 합니다. “그런 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엡. 5:15~16)라고. 다시 한번, ‘지혜’가 언급되는 것입니다. 바로 앞에서 모세는 ‘지혜로운 마음’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 드렸는데,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지혜 있는 자’가 되라고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들 지혜롭기를 원치 않겠습니까?! 그러나,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자가 되는 것이라고 바울은 도전하고 있습니까? ‘세월을 아끼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때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이 도전은 앞에서 ‘우리 인생이 풀과 같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 것입니다.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어떻게 해야 세월을 아낄 수 있는 것일까요?

바울은 답합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엡. 5:17) 세월을 낭비하는 심히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일은 치밀한 시간 계획표를 수립하고, 그 계획이 얼마나 잘 실천되었는지를 검토하기 이전에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임을 바울은 도전합니다. 주의 살아 있고 영원하신 말씀을 묵상하고 이해해 나가는 것이 지혜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요, 세월을 낭비하지 않고 악한 세상을 이겨 나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바울은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어지는 에베소 말씀의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 5:18)가 이해하는 열쇠라고 저는 믿습니다. 즉 성령의 충만한 영적 능력 아래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산 기도나 금식기도 한번 세게 하고 나서, 갑자기 성령 받았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함을 통해서 입니다.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더 깊이 말씀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 1:1~2)는 것입니다. 날마다 시간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해 살아 있고 영원한 말씀을 묵상하고 그 뜻을 더욱 온전히 이해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원하신 말씀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셋째, “말씀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 입니다: 앞서 오늘 본문 말씀 <이사야서 40장>의 배경을 살펴봤을 때, 이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이 그 긴 역사에서도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 선포되었던 말씀임을 확인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이 강대국 바벨론에게 완전히 멸망당하고 전쟁 포로가 되어 끌려가서 절망 가운데 신음하던 때에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어 이사야가 선포한 말씀이 <이사야 40장>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그의 백성을 위로하시고, 말씀으로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메시야를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육체가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될 것’ (v.5)이라고 예언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씀하는 ‘여호와의 영광’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 놀랍게 빛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은 바로 ‘그 아들의 영광’임을 믿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의 영광을 이렇게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 ‘바로 하나님이셨던 말씀’ (요. 1:1)이 우리 인간과 같이 낮은 육신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독생하신 아들의 영광은 정확히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임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성삼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될 때, 우리 모두는 또한 아버지의 영광을 목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의 마지막 질문은 ‘어떻게 우리는 아들의 영광을 볼 수 있나요?’ 입니다. 여러분은 아들의 영광을 바라봅니까? 베드로는 흩어진 소아시아 성도들에게 그의 첫번째 편지를 쓰면서 오늘 본문말씀을 인용하며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벧전. 1:25)고 했습니다. 복음의 말씀이 곧 세세토록 영원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 안에 감춰진 그리스도의 영광을 성령의 충만한 도우심으로 발견해 나갈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사도 요한이 목격했듯이, 그리고 수없이 많은 주의 성도들이 경험했듯이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누려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인생이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음)” (벧전. 1:24)을 깨닫으십니까? 그러나, 이러한 우리 인생의 짧음과 연약함이 허무와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 것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 역사하셔서 우리를 세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의 말씀은 홀로 영원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그의 자녀들에게 영원한 생명과 능력으로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태초부터 계셨던 영원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를 이기고 육신을 이기고 주와 함께 승리하는 것입니다. 이 영원하신 아버지의 말씀의 강가에서 그 뿌리를 더 깊이 내림으로 늘 푸른 잎사귀와 철을 따라 풍성한 열매를 맺어가는 축복된 성도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