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18, 2022

“두려워 말라” (Fear Not)

Preacher:
Passage: 이사야 (Isaiah) 43:1
Service Type:

“두려워 말라”

(Fear Not)

9-18-22

본문말씀: 이사야 (Isaiah) 43:1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설교 요약]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당하고, 전쟁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너는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은 두려워해서는 안되며, 두려워할 필요조차도 없는 것일까요?

이 질문은 수천년 전에 살았던 이스라엘민족만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동일하게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 지명하여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적 야망으로 형의 발꿈치를 붙잡고 태어난 야곱을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혹은 하나님의 황태자)라는 의미의 ‘이스라엘’로 새이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의 이름을 부르시고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v.1).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을 뜻합니다.
  •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2절>말씀에서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v.2)라고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어떤 고난이나 고통이 없는 ‘무사태평’을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그들과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 즉” (v. 4)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 크리스챤이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영적 승리를 거둘수 있는 마지막 조건은 ‘내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확신일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독생자를 내어 주셔서 그 생명 값으로 살만큼 (롬. 8:31-32) 우리를 ‘하나님의 보배롭고 존귀한 자녀’로 삼아 주심에 대한 확신입니다.

여러분은 삶이 두렵습니까? 알 수 없는 미래가 불안합니까? 우리가 살아갈 때 끊임없이 몰려오는 물의 위협과 불의 위협에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의 힘으로 절망과 허무함을 이기고, 성령의 능력으로 죄와 두려움을 맞서 싸워 이기고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설교 전문]

            요즘과 같이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계절이 돌아오면 문득 문득 기억나는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제가 미국와서 몇년이 지나 신학공부를 시작했는데, 그해 가을 ‘뉴올리언스 신학대학’에서 마지막 1년가량의 과정을 이수하고자 하던 당시였습니다. (참고적으로) 저는 그때까지 아틀란타에 있는 분교에서 공부했었는데, 마지막 1년은 본교인 뉴올리언스 메인 캠퍼스로 가서 공부를 마무리하고자 8월말경에 시작하는 가을학기에 맞쳐 본교에 내려 가고자 할 즈음이었습니다.

그때 불연듯 몰아닥친 거대한 태풍은 뉴얼리언스를 덮쳤습니다. 기억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2005년 몰아 닥친 카트리나 태풍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는 분들이 많지는 않겠지만, 뉴올리언스는 바다의 수면보다 낮은 위치의 해안도시로서 튼튼한 콘크리트 제방이 바닷물의 범람을 막아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category 5’의 초강력 태풍 카트리나로 인해 제방이 무너지게 되었고, 도시는 삽시간에 물바다가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뉴올리언스를 중심으로 한 인근지역은 바닷물의 급작스런 범람으로 인해 미국 역사상 가장 심각한 태풍 피해지역의 하나로 기록에 남게 되었습니다. 정부보고에 의하면, 카트리나로 인한 2005년 8월말 현재로 사망자가 1,800명을 넘었고, 태풍피해액이 $ 1,250억달러 (=174조원)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 6개월이 지난 다음 학기인 2006년 봄학기에 저는 본교에 내려가서 ‘workshop’코스로 한주간 수업을 들게 되었는데, 그때까지는 뉴올리언스 시가지는 대부분 제대로 복구되지 못하고, 특히 학교주위의 상당수의 집들이 폐가로 남아 있어서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가 깊게 파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교의 담벽에 이런 말씀의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When you pass through the waters, I will be with you”라고. 이 말씀은 우리말 성경에는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인데, 그때처럼 말씀이 삶의 현장에서 살아 움직이듯 저에게 강하게 다가온 것은 흔치 않는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수마가 할퀴고 간 주민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을 위로하실 뿐 아니라, 그들과 소망으로 함께 하심을 깊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 곧 뉴올리언스 대학 담벽에 걸려 있던 현수막의 말씀은 오늘 말씀에 이어지는 <사. 43:2-3> 말씀입니다. “네가 물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v.2-3) 우리 가운데 닥치는 물과 같은 혹은 불과 같은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 동행하시고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늘 <본문말씀의 배경>에 대해 우리가 한가지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이것은 이사야가 예언의 말씀을 선포할 때까지 그가 활동한 남유다 왕국은 멸망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가 예언한 것처럼 <사. 43장>을 통해 유다 왕국의 패망과 함께 그들이 깊은 고통과 좌절 가운데 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그의 신실하신 사랑과 은혜로 그의 백성을 지키시고 마침내 자유케 하심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바벨론 제국의 가장 절정이었던 때 신흥국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일으켜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유다 왕국을 다시 본토로 되돌아가게 하는 기적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사건을 우리는 세계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면서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사. 43:19)고 선언하시는 뜻입니다.

저는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에게 선포하시는 것에 대해 묵상하면서 한가지 말씀에 집중코자 합니다. 그것은 오늘 설교의 제목인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는 두려워 말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민족의 고난의 역사는 대부분 그들의 죄와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이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 드린대로, 오늘 본문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는 바벨론에 의한 이스라엘의 멸망과 포로생활이 바로 하나님께서 거듭해서 선지자를 통해 그들의 죄를 경고하셨고, 회개를 촉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악한 길에서 되돌아오지 않은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그 수많은 고난과 아픔의 원인은 자신들의 죄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와 같은 하나님의 백성이 그 죄와 불순종으로 인하여 받게 되는 결과를 성경은 <징계>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여기서 <징계>는 마치 부모가 자녀를 교육적으로 바르게 깨우치고자 행하는 벌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징계의 목적은 자녀를 망하게 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바른 길로 돌이키고 살리고자 함인 것입니다.

그러나 <징계>만이 하나님의 백성 곧 자녀가 겪는 어려움의 전부가 아닙니다. 비록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크리스챤이 죄짓고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이 아님에도 당하는 어려움과 고통이 있습니다. 이것을 <고난> 혹은 <핍박>이라고 성경은 부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고난이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의를 위하여 당하는 고난 (마. 5:10-11)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고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그럼으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8)는 말로 고난의 가치와 그 고난으로 인하여 장차 받게 될 영광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가 겪는 고통이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징계’로 인함 이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고난’이 되었든지 이것은 하나님의 주도하심과 그분의 절대적인 은혜 안에서 행해지는 것임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말씀에서 “너는 두려워 말라”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말씀하는 근거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왜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일까요?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첫째, “지명하여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절>말씀에서 보면,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v.1a)라고 선언하십니다. 여기서 ‘야곱’은 자연인입니다. ‘형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난 야곱, 세상을 향한 야망과 집념으로 움켜잡고 놓지 않는 야곱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혹은 ‘하나님의 황태자’라는 엄청난 이름을 하나님께서 직접 지어서 야곱에게 주신 이름입니다. 바로 야곱이 20년만에 형 에서를 다시 만나기 전날 밤새도록 하나님과 씨름하며 “저에게 축복하여 주지 않으시면 가도록 놓아드리지 않겠습니다”라고 간청하고 나서 그에게 주신 새 이름이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연인 야곱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황태자’라는 놀라운 이름의 이스라엘로 다시 영적으로 새로 지으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야곱의 모든 영적 축복과 정체성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에 숨겨져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스라엘이 된 야곱에게 하나님은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요? 그 이유는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v. 1b)라고요. ‘내가 너를 값을 지불하고 내 소유로 샀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많은 자들 가운데서 이름을 불러내어 나의 소유로 삼았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야곱을 이미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택하셔서 자녀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동일하게 ‘영적 이스라엘’인 모든 크리스챤의 존재이기도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선언하듯이 하나님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 (엡. 1:4)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셨습니까? 여러분과 제가 이런 택함을 받고, 지명하여 불러냄을 받을 만한 어떤 특별한 조건이 있다는 말입니까? 여러분은 여러분 속에서 그 어떤 자격이나 조건을 발견했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의 머리로 다 이해할 수도, 우리의 노력으로 다 갚을 수도 없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과 저는 그분의 자녀들, 곧 영적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바로 천지가 창조되기도 전에 예정하신 그분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 곧 생명을 통해 여러분과 저를 값을 치루고 사셔서 그분의 자녀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되는 이유라고 하나님은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이스라엘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로써 하나님 자신이 친히 그들과 동행할 것이라 약속하기 때문입니다. 앞서도 살펴보았듯이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2절>말씀에서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v.2)라고. 하나님은 그의 자녀 이스라엘이 물 가운데 지날 때 그물이 그들을 덮치도 못하게 할 것이고, 불 가운데 지날 때에 성난 불꽃이 그들을 사르지도 못하게 하겠다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런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말씀을 시작하면서 카트리나 대참사가 벌어졌을 때, 뉴올리언스 신학교 담벼락에 걸린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는 <이사야 43장2절>의 말씀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혹시 여러분 중에서 ‘정말 하나님이 물이 침몰치 못하게 하시고, 불이 사르지 못하게 하신다면 그의 자녀들을 한명도 다치지 않게 지켜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하고 의문스러워하는 분은 없습니까?

이런 생각은 오래전에 제가 읽었던 한 책의 내용을 기억케 합니다. 그것은 제 2차 세계대전이 극에 치닫고 있을 즈음에 나치 독일군은 유대인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여러 강제 수용소에 강금된 유대인들을 가스실에서 집단학살을 행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수용소에서 이런 만행을 목격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된 한 유대인 작가의 글이었습니다. 그 책 중에 보면 유대인들이 가스실로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 한명의 남자가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도데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거야! 하나님은 없어!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우리를 이렇게 죽게 내버려 두실수 있다 말인가?!”하고 절규했습니다. 그리고 잠깐의 침묵 끝에 한 랍비가 이렇게 나지막히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가스실에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라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뜻할까요? 이것은 많은 크리스챤이 기대하는 것처럼 언제나 우리를 육체적으로 안전하게 지켜 주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를 안전한 무풍지대로 지켜 주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본질적인 뜻은 그 어떤 칼과 고난과 죽음의 위협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바로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신 하나님’ 곧 ‘임마누엘’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결코 우리를 끊을 수 있는 존재는 없다는 뜻입니다 (롬. 8:35-39).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어떤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그의 자녀를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시고 그의 구원을 완성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선하신 하나님을 여러분은 신뢰하십니까?!

셋째,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우리 성도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분명한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과 저를 심히 사랑스럽고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은 존재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 즉” (v. 4)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를 지극히 값비싼 보배처럼 아끼고 존귀한 존재로 여기신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과연 여러분은 이제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여전히 불안해하고, 두려움에 떨며 살아 가시겠습니까? 결코 그럴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롬. 8:31-32)고 사도 바울이 감격하여 선포한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내어 주실만큼 보배롭고 존귀한 자녀로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하나님께서 나를 심히 기뻐하시고 사랑하심에 대한 확신이 없는 크리스챤이 참으로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인 것입니다. 늘 엄하고 내게 벌주실 것 같은 두려운 하나님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되, 자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큼 당신을 보배롭고 존귀한 아들과 딸로 사랑하심을 깨닫으십니까? 저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깊은 사랑을 깨닫고 확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크리스챤의 영적 승리의 근거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삶이 두렵습니까? 알 수 없는 미래가 불안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며 ~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노라” (v. 1~4)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이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그 누구가 감히 우리를 공격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 편이시면, 그 누가 우리를 해할 수 있겠습니까? 바라기는 크고 포근한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서 날마다 살아감으로 여러분을 위협하는 공부에 대한 염려, 알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인간 관계의 어려움과 끊임없이 몰려오는 물의 위협과 불의 위협에서부터 구원받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의 힘으로 죄를 이기고, 절망과 허무함을 이겨냄으로 주님 다시 만나는 날 동안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고 생명과 평화의 풍성한 열매를 맺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