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23, 2023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You Have Done A Foolish Thing)

Preacher:
Passage: 사무엘상 (1 Samuel) 13:13~14
Service Type: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You Have Done A Foolish Thing)

7-23-23

본문말씀: 사무엘상 (1 Samuel) 13:13~14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설교 요약]

저는 <성경인물 시리즈> 설교, 두번째 시간으로 지난 주 다윗편에 이어, 이번주에는 사울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울은 다윗과 비교해 볼 때, 이스라엘의 왕이라든가, 또는 두 사람 모두 청년시절 준수한 외모와 용맹한 전사였다는 것과 같은 여러가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사울을 평가할 때 불행한 삶으로 인생의 열매를 거두었다고 말씀함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먼저 사울이 이스라엘의 첫 무대에 등장하여 왕으로 추대될 당시, 그는 겸손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이 왕이 된 것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불량배들에게 대해서도 인내할 줄 아는 성품의 사람임을 볼 수 있습니다 (삼상. 10장).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울의 불순종에 대해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 (삼상. 15:11)라고 하나님은 그에 대해 마음 아파하십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사울왕을 불행한 인생으로 이끈 것일까요? 그것은 그가

첫째, “사람과의 <비교>의식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왔고, 이스라엘 여인들이 그를 맞으며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삼상. 18:7)라고 노래했을 때, 사울은 질투의 화신이 되어버렸습니다. 다윗과의 비교의식에 사로잡혀 서서히 그러나 철저하게 몰락의 길을 걸어 간 것입니다.

둘째, “스스로 <높아진> 마음” 때문입니다: 사울왕의 비극은 또한 스스로 높아진 마음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사울의 아말렉전투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신다’고 하는 절대절명의 상황속에서도 그는 갈멜에서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삼상. 15:12), 사람들 앞에서 위신이 서고 높임 받는 것에 마음이 빼앗겨 있었습니다 (삼상. 15:30).

셋째,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사울왕의 근본적 문제는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입니다. 사울은 당시 선지자 사무엘만 제사 드릴 수 있었던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자신이 제사를 드립니다. 사울의 불행의 시작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삼상. 15:22)라는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신뢰와 순종이 없었던 것입니다. 참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지 못한 것입니다.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의 남은 평생에 마음을 다하고 성품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복된 인생 되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지난주와 이번주, ‘다윗과 사울’이라는 두 인물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저는 지난 주에 다윗의 삶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다윗은 그가 겪었던 그 파란만장한 삶의 과정을 되돌아볼 때, 주관적으로는 매우 다양한 평가를 내릴 수 있겠지만, 신앙의 관점에서는 복된 자임을 결론적으로 내리게 됨을 저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지난 시간 살펴보았듯이 다윗의 삶은 축복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 수많은 고난과 환난의 순간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였던 성실과 믿음에 기초한 인내와 용서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그의 평생에 함께 하셨던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다윗을 다윗되게 하셨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오늘 이 시간에는 이어서 사울의 인생을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시간입니다. 다윗과 비교해 볼 때, 이스라엘의 왕이라든가, 또는 두 사람 모두 청년시절 준수한 외모와 용맹한 전사였다는 것과 같은 여러가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사울을 평가할 때 불행한 삶으로 인생의 열매를 거두었다고 말씀함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단지 사울이 마지막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그의 세 아들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 전부가 아닐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을 통하여 사울의 여러가지 좋은 장점이 있었음에도, 그와 같은 안타까운 열매를 거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봄으로 우리 각자에게 영적 교훈을 삼고자 합니다. 그의 어리석고 인간적인 선택의 결과가 얼마나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이해해 나감으로써 타산지석, 곧 ‘우리 각자에게 경고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로 삼아 나갈 수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첫 무대에 등장한 것은 <사무엘 상 9장>입니다. 사울은 유력한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로서 남들보다 머리 하나만큼 더 클 만큼 훤칠하고 준수한 청년이었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사들의 다스림을 거부하고, 주위 이방국가들처럼 왕을 세워줄 것을 지도자 사무엘에게 막무가내로 요구했고, 하나님은 그것을 허락하셨습니다. 물론 왕의 제도가 얼마나 문제가 많고 그들을 옭아매는 위험한 것인지를 그들에게 경고한 다음에 말입니다. 어찌되었건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명하셔서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사울을 택하여 기름 부으심으로 이스라엘의 초대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삼상.9~10장).

그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하나님에 의해 택하심을 받고 왕으로 추대될 당시, 사울은 자신을 겸손히 드러내지 않고자 짐보따리 사이에 숨었으며, 그리고 어떤 불량배가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고 멸시했지만, 그는 화내지 않고 이런 모욕을 잠잠하게 받아들일 만큼 겸손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삼상. 10:17~27).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울왕의 통치기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왕이 된 이후 어느 날,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 왕에게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게 될 때, 그들의 남녀와 모든 소유를 남김없이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삼상. 15장). 그러나 사울은 아말렉왕 아각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았을 뿐 아니라, 짐승 중에서 쓸모없는 것들만 죽이고, 기름지고 살찐 것은 살려 두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울의 불순종을 슬퍼하시고 사무엘에게 임하셔서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삼상. 15:11)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나서 사무엘은 사울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 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삼상. 15:22,23)라고.

제가 사울왕을 생각할 때마다 안따까움과 저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진정 무엇이 사울을 불행하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인물로 성경에 기록되게 이끈 것인지를 겸손히 돌아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과연 무엇이 사울왕을 불행한 인생으로 이끈 것일까요? 그것은 그가

첫째, “사람과의 <비교>의식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다윗과 사울의 관계를 읽고 묵상해보면, 우리 인간은 서로에게 생명을 나누는 참된 친구가 될 수도 혹은 원수가 될 수도 있음을 목격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사울왕은 다윗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 후자를 택했습니다. 원수의 관계인 것입니다. 지난시간, 다윗의 삶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그가 십대의 어린 나이에 블레셋의 거인 장군 골리앗을 물리치고 승리했을 때, 사울왕은 그를 심히 사랑했고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삼상. 18:1~5). 그러나 이런 사랑과 돈독한 신뢰의 관계는 얼마가지 않아서 끝나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다윗과 군인들이 블레셋과의 한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 노래하고 춤추며 그들을 환영하며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삼상. 18:7)라고.

이 노래 하나가 사울왕의 심기를 매우 건드렸습니다. 그는 이 말이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렇게 혼자 말로 어금니를 깨물며 말했습니다.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 (삼상. 18:8)라고. 그리고 ‘사울은 그날 이후로 다윗을 주목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상. 18:9). 사울왕이 ‘다윗을 주목했다’는 말은 그 전과는 전혀 다른 눈으로 다윗을 대했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다윗이 충성되고 사랑스러운 이스라엘의 용사로 보이지 않고, 자신의 왕권에 대한 경쟁상대이자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각인되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 10여년 (삼상. 18~29장) 가까운 사울왕의 다윗을 향한 강한 질투심은 온 이스라엘을 쥐 잡듯이 뒤지며 그를 죽이고자 하는 광기로까지 이어짐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출발은 바로 다윗에 대한 ‘비교의식’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 인간적 ‘비교 (=경쟁)의식’이 사울을 서서히 그러나 처절하게 몰락의 길로 인도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한가지 공교로운 것은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바로 그 다음 순간부터 그가 악신에 시달리게 되었음을 성경은 지적합니다.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그가 집 안에서 정신없이 떠들어대므로 ~” (삼상. 18:10)라고. 다윗과의 비교의식에 사로잡히는 그 다음 순간 사울왕은 강한 시기와 질투에 시달리게 되었고, 악령이 그에게 강하게 내리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둘째, “스스로 <높아진> 마음” 때문입니다: 사울왕의 비참한 삶의 종말이 다윗과의 인간적 비교로부터 출발했다면, 그 비교의 밑바닥에는 ‘스스로 높아진 마음(교만심/공명심)’이 있음을 우리는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하나님께서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사울에게 모두 진멸할 것을 명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이 일부를 죽이지 않고 남겨두었고,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를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시고, 사무엘은 근심하며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었던 것을 봅니다 (삼상. 15:10~11). 그러나 사울은 사무엘이 그를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 나섰을 때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삼상. 15:12)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음을 봅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사울은 이와 같은 전쟁에서의 승리는 응당 하나님께 그 영광이 돌아가야 하는 것임을 알고도, 하나님께 감사하기보다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그 영광을 자기에게 돌렸던 것입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를 돌려도 부족한 상황에서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운 것입니다. 바로 스스로 높아진 인간의 교만을 적나라하게 나타내는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편 이것이 전부가 아닌 것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사무엘과의 대화에서 잘 나타납니다.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삼상. 15:17)라고 사무엘은 사울왕의 교만을 책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왕에서 패하시고, 버리신 것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15:24)고 말은 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하나님의 인정함보다 사람 앞에서 왕으로서의 위신과 존귀함이 손상되는 것을 더 두려워합니다.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삼상. 15:30)라고. 안타깝게도 그는 하나님께 죄사함 받는 것보다도, 사람들 앞에서 높임을 받고 위신을 세우는 것에 더 가치를 두었던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도 이미 이해 하셨겠지만, 사울왕의 문제는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임을 알수 있습니다. 사람과의 비교의식이나, 스스로 높아진 마음은 결국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신뢰와 사랑의 결여임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향한 불신이 불순종으로 이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이 단지 사울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불행한 인간 삶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벌어진 사건은 사울이 왕으로 택함을 받은지 2년이 되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때 블레셋 군사들이 해변의 모래같이 집결하여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이스라엘 군사들은 두려워 떨었고,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오지 않자 백성들이 사울에게서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사울은 그 당시 선지자 사무엘만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번제와 화목제물을 자기에게 가져오게 하고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이 제사를 마쳤을 때, 사무엘 선지자가 와서 ‘이 상황이 무엇인지?’를 물었고, 이에 대해 사울은 블레셋 군사가 물밀 듯 다가오고 있고 사무엘이 정한 시간에 오지 않았음으로 부득불 자신이 제사를 드릴 수 밖에 없었다고 변명합니다 (삼상. 13:8~12).

이때 사무엘이 사울왕을 향해 선언하는 것이 오늘 본문말씀인 것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삼상. 13:13~14)라고. 사무엘은 사울의 이러한 행동을 망령된 것이라고 책망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을 상대적으로 폄하하고, 상황과 형편에 따라 편의에 따라 선택적으로 그 명령을 취사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런 사울의 행위는 매우 어리석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망령된 행동이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를 왕에서 폐하시고, 그 마음에 맞는 자를 그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실 것을 선언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삼상. 15:22,23)라고 사무엘이 그를 강하게 책망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그의 명령을 불순종하는 것은 신접한 자가 점을 치거나 거짓신에게 우상숭배하는 것과 동일한 가증한 죄악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이 사울왕의 그 젊은 날의 훌륭한 자질과 용맹함을 변질시키고 악신의 조정을 받고 시기와 질투의 화신이 되어 비극적인 종말을 고하게 한 것일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사울이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사랑하지 못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눈보다 사람의 시선에 더 마음이 사로잡히고, 하나님께 드려야 할 감사와 영광을 스스로 가로채고자 하는 인간적 공명심과 높아진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으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요? 바라기는 사울과 같은 망령된 삶을 살지 않고, 성도 여러분의 남은 평생에 마음을 다하고 성품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함으로 그분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날마다 충만하게 경험하는 복된 삶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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