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16, 2023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I Shall Not Be Moved)

Preacher:
Passage: 시편 (Psalms) 16:8
Service Type: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I Shall Not Be Moved)

7-16-23

본문말씀: 시편 (Psalms) 16:8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I have set the Lord always before me: because He is at my right hand, I shall not be moved.)

 

[설교 요약]

           신구약 성경 인물 가운데 ‘다윗과 사울’의 삶은 우리 성도들이 놓치지 말고 묵상하며 우리 신앙의 거울로 삼아야 할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시간에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누린 다윗의 삶과, 다음 시간에 신경쇠약과 왕권 몰락 그리고 하나님과의 단절로 인해 불행하게 삶을 마감한 사울 왕의 삶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다윗은 그 출발이 양들을 치는 목동 출신이었는데, 그가 어린 소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양들을 악한 짐승에게서 구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양들을 지켰던 것을 보게 됩니다 (삼상.17:34-37).

 

먼저 오늘 본문이 포함된 <시편 16편>은 부제로 ‘믹담’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이것은 불로 연단한 정금보다 더 가치있는 <황금의 시>라고 불린다는 점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보면, 베드로가 오늘 본문말씀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설명했습니다.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 임이로다” (행. 2:25~27)라고.

 

그렇다면 좀더 구체적으로 무엇이 다윗을 축복된 삶으로 이끈 것일까요? 그것은

 

첫째, “다윗의 성실함”입니다: 다윗은 골리앗과의 한판승부가 벌어지는 그날이 오기까지 그는 자신이 기르는 양들을 지키고자 사나운 짐승과 맞서 수없이 많은 날들을 물맷돌을 돌리고 온 몸으로 악한 짐승과 맞서 용맹하게 싸워 이겼던 것입니다. 그는 ‘마음의 성실함과 손의 공교함’ (시.78:72)으로 자신을 치열하게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삼상. 17:34~35).

둘째, “다윗의 인내와 용서”입니다: 우리가 다윗의 인생을 살펴볼 때, 사울 왕에 의해 많은 고난과 역경의 시기를 겪었지만, 그는 사울 왕에게 보복하지 않고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선하신 판단에 그 모든 것을 맡겨 드리고, 믿음을 통하여 인내함으로 기다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셋째,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윗의 그런 성실함과 인내와 용서의 좋은 성품에도 불구하고, 만약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지 않으셨다면 그의 그 축복된 삶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것 입니다. 그는 그 하나님의 정죄하지 않으시는 은혜를 고백합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2:1~2)라고 말입니다.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의 삶에 있어서도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부족함이 없는 인생되시길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어떤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다윗과 같이 항상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성도 여러분의 평생에 따름으로 그분의 집에 영원히 거하는 복된 삶 사시길 축원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가 신구약 성경을 읽어보면 이스라엘의 긴 역사 만큼이나 수없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함을 봅니다. 그 각각의 인물이 살았던 시대적 상황과 그들의 성격에 따라서,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성에 따라서 이들의 삶의 모습은 제각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입니다. 이 수많은 인물 가운데서도, 저는 개인적으로 ‘다윗과 사울’의 삶은 우리 성도들이 놓치지 말고 묵상하며 우리 신앙의 거울로 삼아야 할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윗과 사울은 동시대를 살았고, 또한 두 사람 모두 이스라엘의 초대와 그 뒤를 잇는 다음 (=2대)왕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두 사람 다 준수한 외모와 용맹한 장군으로서 청년의 시기를 보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한사람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존귀하고 여기심으로 자신 뿐 아니라 후손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축복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되고, 다른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음으로 인생을 끝내는 심히 안타깝고 불행한 삶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이 두사람을 이토록 갈라 놓게 만든 것일까요? 저는 이번 시간에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누린 다윗의 삶과, 다음 시간에 신경쇠약과 왕권 몰락 그리고 하나님과의 단절로 인해 불행하게 삶을 마감한 사울 왕의 삶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두 인물을 통해 성도 여러분의 삶과 믿음에 소중한 길잡이가 되는 시간 되시길 기대합니다.

 

이번 시간에 함께 살펴볼 다윗은 제가 굳이 자세한 소개를 할 필요가 없으리만큼 우리 크리스챤들에게는 잘 알려진 성경인물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기독교문화에 기반을 둔 미국에서 살아가다 보면, 이 ‘다윗’이라는 영어이름 ‘데이빗’이 사람들의 가장 인기있는 대표적인 이름의 하나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다윗은 성경의 한 인물일 뿐 아니라, 이곳 미국을 위시한 서구권 사회에서는 자신의 종교와는 관계없이 가장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다윗이라는 인물이 끼치는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다윗은 이스라엘의 초대왕이었던 사울왕에 이어서 2대왕으로 등극하여 이스라엘의 긴 역사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한 왕국을 이루고,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은 대표적인 왕이 되었습니다. 사실 다윗은 그 출발이 양들을 치는 목동 출신이었습니다. <사무엘서>에 보면, 그가 어린 소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양들을 악한 짐승에게서 구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양들을 지켰던 것을 보게 됩니다 (삼상.17:34-37). 이것은 마치 예수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느니라” (요. 10:11)고 말씀하신 선한 목자의 상을 연상시킵니다. 이처럼 다윗은 어렸을 때부터 온 힘을 다해 작은 목자가 되어 주어진 양들을 지키고자 성실하고도 용감하게 삶을 살았고,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 일에 능숙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던’ (잠. 22:29) 다윗을 택하셔서 이스라엘민족 곧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는 목자로 세우셔서 복되게 쓰임받게 하신 것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이 포함된 <시편 16편>은 총 시편 150편 말씀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70편 가량을 지은 다윗의 시편의 하나입니다. 그의 이와 같은 여러 시편 가운데서도, 오늘 <시편 16편>이 좀더 특별한 것은 이 시편의 부제로 ‘믹담’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이것은 불로 연단한 정금보다 더 가치있는 <황금의 시>라고 불린다는 점입니다. 다윗의 여러 시편 가운데서도 그가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에 지어진 이 ‘믹담’은 총 6편인데, 이것을 통해 깨닫을 수 있는 역설적인 진실은 <우리 인간의 삶에 있어서 그 누구도 핍박과 고난의 삶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찌라도, 시간이 지났을 때 이 고난의 시간은 정금보다도 더 우리를 순결하고 소중한 믿음의 열매가 맺히도록 연단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조개가 그 살 속에 모래를 품음으로써 그 아픔 가운데 아름답고 최상품의 진주를 잉태하듯’이 말입니다.

 

이것이 사실임을 증명이라도 해 주듯이, <시편 16편>은 구약의 수없이 많은 말씀 가운데서도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 특별히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에 대한 보물과 같은 예언의 말씀으로써 사도 베드로를 위시한 신약의 저자들에 의해 인용되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심은 이미 다윗왕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충만케 하셔서 계시하신 약속의 성취인 것임을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이 포함된 <시편 16:8-10>말씀을 인용해 이렇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니라.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행. 2:24~27)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무엇이 이토록 다윗이 복된 삶을 살수 있는 이유인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원합니다. 다시 말해, 무엇이 다윗을 축복된 삶으로 이끈 것일까요? 그것은

 

첫째, “다윗의 성실함”입니다: 제가 앞서도 잠시 나누었지만, 다윗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명을 쫓아 그 가정에 속한 양들을 한명의 선한 목자가 되어 목숨을 걸고 악한 짐승의 공격에 맞서 싸우며 그들을 지켰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우리 성도들에게 믿음의 용기와 꿈을 심어주는 대표적인 드라마틱한 스토리인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여러분은 기억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크리스챤은 이 스토리에서 다윗이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적국 거인 장수 골리앗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용맹하게 싸워 이겼다고 이해합니다. 그렇습니다. 전적으로 맞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믿는 순전한 믿음으로 도저히 적수가 되지 않는 거인 장수 골리앗을 용맹하게 물리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 크리스챤 청년들이 결코 놓쳐서는 안되는 지점은 그가 이 날이 오기까지 수없이 많은 날을 성실과 용맹으로 실력을 길렀다는 점입니다.

 

다윗은 이 결전의 날, 그 골리앗과의 한판승부가 벌어지는 그날이 오기까지 그는 자신이 기르는 양들을 지키고자 사나운 짐승과 맞서 수없이 많은 날들을 물맷돌을 돌리고 온 몸으로 악한 짐승과 맞서 용맹하게 싸워 이겼던 것입니다. 이런 다윗의 ‘마음의 성실함과 손의 공교함’ (시.78:72)으로 자신을 준비함 없이, 다윗은 결코 골리앗을 이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치열하게 준비한 자신의 삶을 사울 왕에게 이렇게 설명합니다.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삼상. 17:34~35)라고. 나태하고 게으른 삶의 태도가 아니라, 다윗과 같이 하루 하루를 마음의 성실과 손의 공교함으로 살아 가는 자를 하나님은 그의 역사에 때가 되었을 때 쓰임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다윗의 인내와 용서”입니다: 만약 우리가 다윗의 전 인생을 한번 살펴보게 된다면, 그처럼 많은 고난과 역경의 삶을 살았던 인물은 성경 전체에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특별히 이런 고난은 그가 청년시절, 사울왕의 시기 질투로 인하여 그를 죽이고자 했을 때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다음 시간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사울 왕이 그를 죽이고자 집요하게 그를 추격해 왔는데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다윗이 그를 추격해 오는 사울을 결정적으로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사울왕을 용서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도전과 같이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 12:21)는 하나님의 뜻을 그가 확신했을 뿐 아니라, 그 뜻에 순종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적지 않은 크리스챤들처럼 본인 스스로 ‘복수의 칼’을 휘두르지 않은 것입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소리지르며, 다윗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왕을 칠 수 없다’ (삼상. 24:6)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께서 반드시 그분의 때에 선하게 심판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다윗의 하나님의 선하신 심판 (이끄심)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다윗은 끝까지 사울 왕에게 복수하지 않고 인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그의 인내와 용서는 사울 왕 뿐 아니라 왕이 된 이후에서도 경거망동하게 자신을 저주하는 ‘시므이’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을 대적하여 왕권을 찬탈하고자 했던 아들 ‘압살롬’에 대해서 인내할 수 있었고 용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셋째,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제가 앞에서 살펴본 다윗의 그런 성실함과 인내와 용서의 좋은 성품에도 불구하고, 만약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지 않으셨다면 그의 그 축복된 삶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것임을 저는 믿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가장 지혜롭다고 일컬어지는 ‘솔로몬왕’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시. 127:1)라고.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고전. 15:10)고 고백했듯이, 진정으로 다윗을 다윗으로 만든 것은 단지 그의 성실함이나 인내와 용서가 전부가 아닌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을 다윗은 철저하게 깨닫았기에 이렇게 고백했던 것입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2:1~2)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그 끝임 없는 환난과 연단 가운데서도 다윗이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자포 자기하는 삶을 살지 않고 도리어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윗을 소개하면서 이것이 그가 행복한 삶을 살수 있었던 비밀이라고 소개하는 것입니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은 사람의 행복” (롬. 4:6)에 대해서 다윗이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방금 <시편 32편>에서 보았듯이 다윗 자신은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고 존귀한 삶을 누릴 때 뿐 아니라, 사람들의 업신 여김을 받고 저주거리가 되는 고난의 삶’을 산다 할찌라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와 허물에 가림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행위 (일)의 결과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을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평화와 만족을 누릴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다윗은 이렇게 ‘주님께 나의 그 수많은 죄와 허물을 그 은혜로 가려 주심으로,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v.8) 다윗은 어떤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그가 ‘항상 여호와를 자신 앞에 모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항상 여호와를 모셨다’는 뜻은 그가 날마다, 새벽에 눈을 뜨고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그분의 영광과 임재를 갈구하고 추구했다는 뜻입니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시. 17:15)라고 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윗을 존귀한 인생으로 열매 맺게 하셨듯이,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의 삶에 있어서도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부족함이 없는 인생되게 하시고, 아버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성도 여러분의 평생에 따름으로 그분의 집에 영원히 거하는 복된 삶 사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