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9, 2023

“천국의 서기관” (A Scribe Unto The Kingdom Of Heaven)

Preacher:
Series:
Passage: 마태복음 (Matthew) 13:51~52
Service Type:

“천국의 서기관”

(A Scribe Unto The Kingdom Of Heaven)

7-9-23

본문말씀: 마태복음 (Matthew) 13:51~52

51 이 모든 것을 깨닫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Jesus said unto them, “Have you understood all these things?” They said unto Him, “Yea, Lord”)

52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Then said He unto them, “Therefore every scribe which is instructed unto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unto a man that is an householder, which brings forth out of his treasure things new and old”)

[설교 요약]

            오늘 본문이 포함된 <마태복음 13장>은 <천국장>이라 불립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알곡과 가라지 비유> 등과 같은 다양한 비유의 말씀을 통해 쉽고도 탁월하게 천국의 본질을 설명해 주십니다.

이런 천국에 대한 비유를 말씀을 모두 선포하고나서, 주님은 말씀을 듣고자 몰려 든 사람들을 향해 “이 모든 것을 깨닫았느냐” (51a)라고 묻으셨고, 그들은 “그러 하오이다” (51b)라고 씩씩하게 답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은 이렇게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v.52)라고. ‘너희들은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이 되어야 한다’고 도전하시는 것입니다.

먼저 ‘서기관’ (scribe)은 어떤 사람일까요? ‘서기관’은 원래 율법해석의 훈련을 받은 유대교 학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율법을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 예수님의 책망을 많이 받았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변질된 서기관이 아니라, 천국복음을 전할 수 있는 서기관이 되라고 제자들에게 도전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무엇이 주께서 명하시는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이란 뜻일까요? 그것은

첫째) ‘하나님 말씀에 능통함’: 기독교 2천년 역사를 통하여 독버섯처럼 퍼지는 거짓 이단 사상과 맞서 싸워 나가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에서 능통함으로 그 말씀의 뼈대가 되는 교리를 통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거짓사상을 분별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마.10:16).

둘째) ‘옛 구약과 새 신약성경을 통합할 수 있음’: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통일되게 이해하는데 문제를 겪습니다. <율법폐지론> 혹은 <율법주의>와 같은 양 극단론에 빠지지 않고, 옛 구약말씀과 새 신약말씀을 서로 짝을 이루며 이해해 나가는 것은 진정한 성화의 핵심인 것입니다 (마.5:17).

셋째) ‘곳간에서 곡식을 내어오는 집주인’: ‘천국의 서기관’은 자신의 곡간에서 곡식을 퍼내어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자비로운 집주인과 같음을 주님은 밝히십니다. 이것은 우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항상 대답할 말을 준비하는 충성된 증인의 마음입니다 (벧전.3:16~17).

바라기는 신.구약 말씀에 능통하고, 서로 잘 통일해 나감으로 하늘의 양식이 필요로 하는 모든 자들에게 마음컷 나눠주는 충성된 천국의 서기관이 된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설교 전문]

            저는 문득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따르는 제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곰곰히 고민해 볼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의 판단기준이나 자기만족이 아니라, “나를 따르라” (마. 4:19)고 저를 부르신 주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제자의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 충성되고 복되게 주님의 뜻을 따라 쓰임 받는 제자의 삶이 바로 오늘 주님의 도전의 말씀 안에 있음을 저는 깨닫게 됩니다. 주님은 그런 자를 오늘 말씀의 제목과 같이 ‘천국의 서기관’ 좀더 정확히 말하면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 (a scribe which is instructed unto the kingdom of heaven)이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그의 제자로 부르신 주님의 은혜 안에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으로써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복되게 쓰임 받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

오늘 본문이 포함된 <마태복음 13장>은 흔히 <천국장>이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이 <마.13장>에서 예수님이 비유를 통하여 무엇이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에 속한 자의 삶인 것인지를 잘 설명해 주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비유는 먼저 <씨 뿌리는 자의 비유> (1-23절), <알곡과 가라지 비유> (24-30, 36-43절),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31-33절),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값진 진주의 비유> (44-46절), <물고기 그물의 비유> (47-50절)와 같이 매우 다양한 그 당시 사람들이 흔히 먹는 음식이나 잘 알고 있는 사물 등을 통하여 쉽고도 탁월하게 천국의 본질을 설명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오늘 본문말씀은 주님의 “천국이 무엇인지?’라는 한가지 주제에 대한 다양한 비유로 이어지는 가르침을 마무리하고서 주시는 결론적인 가르침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은 먼저 ‘천국은 무엇인지?’를 다양한 비유로서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고 나서 “이 모든 것을 깨닫았느냐” (51a)라고 말씀을 듣고자 모여든 사람들에게 묻으시는 것입니다. 그 때 그들은 대답합니다. “그러 하오이다” (51b)라고. 그들은 ‘잘 이해했습니다’라고 주께 대답합니다.

이제 주님은 그들의 대답을 듣고나서 이렇게 다시 그들에게 도전하십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v.52)라고. 주님은 자신을 제자로써 따르고자 하는 자들에게 ‘너희들은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이 되어야 한다’고 도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천국의 서기관’의 핵심 되는 역할을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은 삶’이라고 규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주께서 자신의 제자로서의 조건으로 말씀하신 <천국의 서기관>에서 ‘서기관’ (scribe)은 어떤 사람일까요? ‘서기관’은 원래 율법해석의 훈련을 받은 유대종교의 학자이자 교사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율법을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해석함으로 예수님으로부터 바리새인과 더불어 혹독한 꾸지람을 받은 유대종교의 대표적인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문제는 예수님 당시 서기관들이 유대민족에게 부여된 거룩한 하나님의 율법을 깨닫고 해석함에 있어서, 겸손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 율법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부여된 율법을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을 오용하여 그 당시 자신들과 같은 기득권층을 옹호하는 도구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와는 전혀 다르게 율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잘못 가르친 것입니다. 그럼으로 구약이 결론적으로 주목하는 구원자이자,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그들은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그 중심되는 이유로써 ‘서기관’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율법을 맡은 자로서의 특권을 가졌음에도, 그들에게 주어진 이런 ‘선한 율법’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깨닫게 해주시기를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의 말씀을 듣는 제자들에게 분명에게 도전하시는 것은, 우리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그의 제자는 방금 언급한 것과 같이 예수님 당시의 특권의식에 사로잡히고 기득권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변질된 서기관과 같은 자들이 되지 말고,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이 되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원래 서기관의 진정한 역할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구약의 말씀을 잘 보전하고, 또한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힘있게 전파하는 역할>일 것입니다. 그럼으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 즉 우리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그분의 제자들은 율법의 정신을 잘 깨닫고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충성되게 전파시키는 ‘천국의 서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주님의 ‘천국복음’을 선포하시고 난 이후, 그 말씀을 듣고 그분을 따르고자 하는 자들에게 던지시는 강력한 도전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의 핵심적인 역할이 무엇인지를 이렇게 한 줄로 설명하십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v.52)라고.

이제 그렇다면 무엇이 주께서 명하시는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이란 뜻일까요? 그것은

첫째) 주님의 제자들은 하나님 말씀에 능통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소년시절에 잠시 기독교 이단사상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그 거짓 가르침에 빠지지 않고, 주님의 몸된 교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들의 가르침이 매우 비성경적이고 거짓된 사상들에 기초한 것임을 알 수 있지만, 그 당시는 그들이 마치 진리를 말하는 것인 양 솔깃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런 거짓 가르침에 미혹되는 핵심되는 이유는 그 당시 저와 같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말씀, 특히 성경 말씀의 뼈대를 이루는 <성경교리>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 성경말씀의 뼈대가 되는 건전하고도 올바른 교리에 대한 지식에서 무지할 때, 누가 되었건 간에 악한 짐승과 같은 이단교회 교사들의 마수에 쉽게 먹이감이 될 수 있음을 저는 조금씩 말씀에서 눈을 뜨고 믿음에서 자랄수록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럼으로 단순히 초대교회 뿐 아니라, 기독교 2천년 역사를 통하여 날이 갈수록 더욱 심각하게 독버섯처럼 퍼지는 거짓 이단 사상과 그 무리들로부터 우리 자신과 주님의 몸된 교회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선 성경 말씀에서 깨어 있는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 주님의 도전과 같이 ‘천국의 서기관’이 되어 말씀에 능통한 제자로 자라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이런 교활하고 악한 계략에서 ‘나는 안전하다’고 큰소리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얼마 전에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 10:16)고 도전하신 이유일 것입니다. 이 세상은 언제나 주님의 양인 성도들을 삼키고자 하는 수없이 많은 악한 짐승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비둘기 같은 영적 순결을 잃지 않아야 함과 동시에 말씀에 능통함으로써 그 말씀의 분별력으로 무장하여 뱀과 같이 지혜롭게 이 악한 세상을 주님의 강한 군사로 헤쳐 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둘째) 주님의 제자들은 옛 구약성경과 새 신약성경을 통합할 수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서 중의 복음서라고 불리는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먼저 ‘무엇이 복음인지?’를 이렇게 잘 정의합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롬. 1:2)라고. 사도는 결코 ‘이 복음은 구약의 선지자들에게는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가 이제야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때가 차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까지 구약의 선지자에게 조차 그 복음의 비밀은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은 복음의 점진적 완성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복음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긴 역사 가운데에서 먼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이미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시고 구체적으로 이루어 오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그 동안 수천년의 세월동안 세우신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아니 ‘모든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 곧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복음을 선포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성경’이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세우신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분의 구원의 복음의 말씀을 누누히 선포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나사렛 예수님이 오심으로 ‘짠’하고 나타난 것이 복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사도 바울의 복음에 대한 정의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 크리스챤의 성경관이 알게 모르게 상당히 왜곡되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앞서 언급했던 여러 사악한 기독교 이단들과 같은 정도는 아니라 할찌라도, 문제는 건전한 교리를 믿는다고 하는 교회 안에서 성도들 뿐 아니라, 목회자나 신학자들 가운데서도 우려스러울 만큼 편향된 성경에 대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구약’과 ‘신약’성경말씀을 균형 잡힌 시각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구약은 마치 ‘예수님이 오셔서 구원을 완성하셨으니, 이제 별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간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성도들에게는 더 이상 구약이 중요하지 않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약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도행전과 서신서 그리고 계시서>말씀에서 주님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방식을 보게 될 때, 그들은 언제나 <구약에서 약속하시고 예언하신 하나님의 뜻에 근거하여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고, 구원을 성취하셨다’>고 복음의 핵심을 선포함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선포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마. 5:17)고. 주님은 구약의 모든 예언과 약속을 완성케 하시고자 오셨다고 분명히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구약의 말씀을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식의 <율법폐지론>을 주장하거나, 반대로 율법준수만이 우리를 의롭게 되는 것처럼 <율법주의>에 빠지는 21세기의 크리스챤도 실제적으로 적지 않음을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서 충분히 간파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의 생명의 복음을 온전히 깨닫아 나가기 위해서, 그리고 주의 충성된 제자가 되어 그분을 힘 있게 증거하기 위해서 언제나 우리는 ‘옛것과 새것’, 곧 ‘구약과 신약의 복음의 말씀’을 하나로 통합해 나감으로써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이 되어 충성되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주님의 제자들은 곳간에서 곡식을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천국의 서기관’된 제자들은 자신의 곡간에서 곡식을 퍼내어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자비로운 집주인과 같음을 주님은 밝히십니다. 이런 사랑과 긍휼이 넘치는 넉넉한 집주인과 같은 존재가 천국의 보화와 복음의 진리를 소유한 제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v.52)고 말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어느날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갔을 때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었던 한 사람이 구걸하고자 성전 미문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가는 것을 보고 구걸했을 때, 베드로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행. 3:6) 이 때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었던 그 사람은 발과 발목에 곧 힘을 얻고, 성전에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입니다 (행. 3:7~10). 비록 베드로와 요한이 금과 은은 없음으로 그에게 몇 푼 쥐어 주지는 못했다 할찌라도, 그들은 그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그리스도의 치유하시는 권능과 주의 사랑을 그에게 베푼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의 사도들은 언제나 복음과 주님의 치유의 능력이 필요한 자들에게 아낌없이 하늘 곳간의 문을 열어 자비로운 집주인과 같이 성령의 능력과 권세로 맡기신 하늘 양식을 나눠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제자들의 모습은 바로 제자들에게 본을 보였던 우리 주님의 모습임에서 비롯된 것임을 우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공생애 사역을 감당하시는 동안, 모든 성과 촌을 두루 돌아다니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사람들의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9장>에서 보면,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고 유리함이라” (마. 9:36)고 예수님의 마음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주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또한 육신의 병을 고침 받고자 모여 드는 한사람 한사람을 선한 목자로서 품어 주시고, 상한 목자의 심정으로 불쌍히 여기셔서 치유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주님의 긍휼에 넘치는 사랑의 섬김이 초대교회 사도들과 신실한 성도들이 서로를 향해, 그리고 세상의 목자 없는 양 같은 영혼들을 향하여 활짝 열려 있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주님의 충성된 제자로서 세상의 잃어버린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고자 하는 중대한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선,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복음 안에 통일되게 연결된 신.구약 말씀으로써 옛것과 새것을 사람들에게 지혜롭게 내어주고, 한편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목자의 상한 심령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상한 목자의 마음이 있을 때, 사도 베드로가 우리에게 도전하듯이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벧전. 3:16-17)는 말씀을 통해 자신을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통로가 되고자 힘써 대답할 말을 준비할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신구약 성경말씀에 능통하여 준비될 뿐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을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말을 항상 준비함으로 주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섬길 수 있을 것입니다. 곳간의 풍성한 곡식을 아낌없이 심령이 가난한 자를 위해 내어주는 자비로운 집주인과 같이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주인 되신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여러분과 제가 천국의 서기관이 되어 새것과 옛것을 능숙하게 그리고 긍휼한 사랑의 마음으로 마음껏 나눠주는 집주인과 같은 그분의 제자가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말씀은 인정하지만, 말씀의 능력은 부인하는 이 세대에 참으로 그분의 생명의 말씀과 사랑으로 교회 공동체와 잃어버린 영혼을 넉넉히 섬길 수 있는 주님의 제자된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