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7, 2019

“목자없는 양과 같이”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Preacher:
Passage: 마태복음 (Matthew) 9:36
Service Type:

“목자없는 양과 같이”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4-7-19

본문말씀: 마태복음 (Matthew) 9:36

36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When He saw the crowds, He had compassion on them, because they were harassed and helpless,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설교 요약]

우리 주님은 우리인간을 한마디로 ‘목자없는 양’ (sheep without a shepherd)과 같다고 정의 하셨습니다. 오늘말씀을 통하여 ‘우리 인간은 누구인지?’ 깨닫고, 주님 안에서 참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선한 목자의 양으로써 복되게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무엇이 ‘목자없는 양같은 삶’ 입니까? 그 이유는 양의 특징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양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시력이 나쁘고, 분별력이 형편 없어서 잘 속아 넘어 갑니다. 그뿐 아니라, 양들은 중심을 잘 잡지 못하고 잘 넘어집니다. 방향감각이 없어서 쉽게 길을 잃어버리고 스스로 방어할 능력조차 없습니다. 거기다가 양들은 온순한듯 하지만 상당히 고집이 세고 이기적이어서 목자가 돌보고 인도해 주질 않으면 쉽게 제 멋대로 흩어져서 길을 헤메게 되는 것 입니다.

이러한 양의 특성을 통해 ‘목자없는 양의 상태’는 살아남을 가망성이 없는 절망이자, 죽음을 의미하는 것 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선한 목자를 따르는 양으로 살아갈수 있을까요?” (How are we able to follow the good Shepherd as His sheep?)

첫째, ‘우리가 양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We ought to recognize our spiritual condition as ‘sheep’): 이사야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2:6) 우리는 모두 그릇 행하여 고집부리며 제 갈길로 간 목자없는 양이라는 것 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었다고 자동적으로 그분을 잘 따르는 양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분을 나의 선한 목자로 모시고 살아간다면 동일하게 그분을 떠나서는 생존할수 없는 양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하는 것 입니다.

둘째, ‘예수님이 선한 목자되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We ought to trust Jesus as my ‘good Shepherd’):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 10:14~15) 라고. 여기서  주께서 ‘내 양은 나를 안다’ (my sheep know Me)라고 말씀 하십니다. 주님의 양은 그를 알아본다는 것 입니다. 어떻게요? 그것은 그분을 믿을 뿐 아니라, 믿고 따른 만큼 삶을 통해 그분이 선하심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 입니다. 양으로서 목자의 음성을 식별할줄 알고, 목자가 평상시 자기를 어떻게 지켜주고 인도했는지를 경험함으로 그분을 더욱 더욱 신뢰해 나가는 것 입니다.

셋째,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점점더 알아가야’ 합니다 (We ought to know the will of our heavenly Father day by day): 선한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무엇일까요? “ ~ 내가 온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b) 고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할뿐 아니라, 더 풍성한 삶을 주시고자 함 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풍성한 삶일까요? 그 풍성함은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누리는 유업이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를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깨닫고 누려나가는 것> 입니다.

바라건데 약속의 성령께서 성도 여러분의 영의 눈을 여셔서 ‘목자없는 양’같았던 우리 존재를 바라보게 하시고, 귀를 열어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마음을 열어 선한 목자를 삶으로 따르기를 결단하는 풍성한 삶 살도록 인도하시기를 간절히 축원 합니다.

 

[설교 전문]

세상의 많은 지혜자와 철학자들은 ‘인간은 누구인가?’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가 그들의 가장 큰 주제가 되어왔습니다. 그래서 유교의 시조라고 할수있는 공자는 그의 제자가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라고 질문했을때, “내가 지금의 삶도 모르는데 어떻게 죽음을 알겠느냐!” 고 솔직하게 대답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대표적인 책, <논어>에서 “아침에 도를 듣고 깨우쳤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朝聞道 夕死可矣)고 말했던 것 입니다. 인간 마음의 중심에는 참된 진리를 깨닫기 원하는 갈구가 강하게 요구되기 때문일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우리의 인생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우리 주님은 우리인간을 한마디로 ‘목자없는 양’ (sheep without a shepherd)과 같다고 정의 하셨습니다. 오늘말씀을 통하여 ‘우리 인간은 누구인지?’를 주님의 말씀을 통해 깨닫고, 주님 안에서 참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선한 목자의 양으로써 복되게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주님은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든 자들의 모든 병과 악한 것을 고쳐 주셨습니다 (마. 9:35). 이런 상황속에서 주께서 그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병고침을 받고자 몰려오는 무리들을 보실때 그들이 ‘목자없는 양과 같음을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음’을 오늘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과 상황은 다르지만, 매우 유사하게 주님의 마음을 표현한 복음서 말씀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마가복음 6장>인데, 저자 마가는 이렇게 주님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막. 6:34) 고. <막. 6:34>말씀의 배경은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빈들로 갔는데 저녁이 되고 날도 저물어서 먹을것이 없고 지쳐있을때 하신 말씀 입니다. 어떻게 본다면 그들의 육신의 배고픈것도 불쌍하지만, 그들의 인생전체가 갈곳을 몰라서 목자없는 양같이 방황하는 모습이 더욱 불쌍하다는 뜻이 될것 입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께서 베푸신 이적이 우리가 너무도 잘아는 <5병2어>의 기적인 것 입니다.

무엇이 ‘목자없는 양같은 삶’ 입니까? 왜 인간은 이런 목자없는 양의 불쌍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까? 먼저, <목자없는 양과 같다>는 뜻은 간단히 말하자면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산다는 뜻이 아니라, 얼마가지 않아서 (몇시간 혹은 하루나 이틀을 못넘기고) 죽음에 처하게 되는 매우 절망적이고 희망이 끊어진 상황을 뜻하는 것 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양의 특징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양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시력이 나쁩니다. 그말은 악한 짐승들이 가까이 다가와도 그들을 좀처럼 식별하지 못한다는 뜻 입니다. 더욱이 양은 분별력이 형편 없어서 잘 속아 넘어 갑니다. 그뿐 아니라, 양들은 중심을 잘 잡지 못하고 쉽게 넘어지고, 넘어지면 잘 일어나지 못합니다. 방향감각이 없어서 쉽게 길을 잃어버리고 스스로 방어할 능력조차 없습니다. 거기다가 심각한 것은 양들은 온순한듯 하지만 상당히 고집이 세고 이기적이어서 목자가 돌보고 인도해 주질 않으면 쉽게 제 멋대로 흩어지서 길을 헤메게 되는 것] 입니다.

이러한 양의 특성을 통해 ‘목자없는 양의 상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수 있는 것 입니다. 그것은 절망이요, 죽음 입니다. 왜냐하면, 안타깝게도 양의 특성상 그들 스스로는 야생에서 생존할수 있는 방어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양이 야생에서 살아 남기를 바란다는 것은 비유 하자면 태어난지 몇시간 않되는 새끼 새를 어미새의 돌봄없이 살아남기를 바라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우리는 이해해야 하는 것 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인간의 처해있는 상황이 본질적으로 이런 목자없는 양과 같다는 것 입니다. 살아 남을 가망이 없고 악한 짐승에게 속히 먹힘바 될수 밖에 없는 양이라는 것 입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애쓸찌라도 결과는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 입니다. 목자없는 양과 같이, 길잃은 양과 같이 죽음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요. 10:11~12) 라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만이 유일한 선한 목자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선언하시는 것 입니다.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목숨을 버린다는 것> 자체의 강조점 보다도, 바로 앞절에서 밝히신 <양들의 생명을 살린다>는데 그 진정한 중요점이 있는 것 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제가 성도여러분과 남은 시간 생각해 보기 원하는 것은 이것 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우리는 선한 목자를 따르는 양으로 살아갈수 있을까요?” (How are we able to follow the good Shepherd as His sheep?) 라는 것 입니다. 그것은,

첫째, ‘우리가 양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We ought to recognize our spiritual condition as ‘sheep’): 우리가 어떻게 선한 목자되신 주님을 따르는 양으로 살아갈수 있을것인가를 결정하는 첫걸음은 ‘내가 양과 같은 존재임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 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600여년전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 죄악을 담당할 것임을 예언했던 이사야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2:6) 우리는 모두 그릇 행하여 고집부리며 제 갈길로 간 목자없는 양이라는 것 입니다. 그런데, 우리 크리스챤들 중에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은,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된것은, 기쁘고 자랑스럽게 여기면서도 ‘내가 영적으로 예수님의 양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은근히 부끄러워하거나 거북하게 여기는 크리스챤들을 보게 됩니다. 마치 미국사람들 가운데 ‘Don’t be a sheep’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 처럼, 이런 표현 가운데 <양이 된다는 것>이 <자기 판단력이 없고 스스로 독립성이 없이 의존적이고 시키는데로 따라만 하는 지적 능력이 부족한 자가 되는것>으로 비꼬고 비하하는 생각이 있는것 입니다. 양이 된다는 것이 한마디로 무능하고 바보같은 자로 살아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 합니까? 다시말씀 드리지만 내가 예수님을 따르는 양으로 살것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은 ‘나를 포함한 우리 인간의 본질을 내가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 입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이 분명히 이해해야하는 것은 ‘내가 예수님을 믿었다고 자동적으로 그분을 잘 따르는 양이 되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 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양과 같은 존재임을 자각함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내 스스로 내 뜻데로 나의 갈길로 가겠다고 고집피우며 제갈길로 갔던 양임을 시인하는데서 부터 시작 됩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분을 나의 선한 목자로 모시고 살아간다면 동일하게 그분을 떠나서는 생존할수 없는 양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하는 것 입니다. 양은 목자없이는 한시도 생존할수 없는 존재인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런 깊은 자신에 대한 자각이 있습니까?!

둘째, ‘예수님이 선한 목자되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We ought to trust Jesus as my ‘good Shepherd’): 만약 성도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자신의 선한 목자로 신뢰 하십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 10:14~15) 라고.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한가지 사실은 주께서 ‘내 양은 나를 안다’ (my sheep know Me)라고 말씀 하셨다는 것 입니다. 주님의 양은 그를 알아본다는 것 입니다. 어떻게요? 그것은 그분을 믿을 뿐 아니라, 믿고 따른 만큼 삶을 통해 그분이 선하심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 입니다. 양으로서 목자의 음성을 식별할줄 알고, 목자가 평상시 자기를 어떻게 지켜주고 인도했는지를 경험함으로 그분을 더욱 더욱 신뢰해 나가는 것 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것은 내 삶에서는 목자되신 주님과의 인격적 관계성이 얼마나 형성되어 가고 있는지? 그로말미암아 나는 얼마나 그분을 신뢰해 가고 있는지를 스스로 자문해 보아야하는 것 입니다. 나는 다윗이 고백했드시 그 선한 목자로 부터 날마다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함을 받고, 그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말미암아 못된 짐승의 공격과 잘못된 길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받고 인도되어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어보아야 합니다. 만약 이런 목자와의 깊은 관계와 신뢰를 누리는 삶의 경험이 내게 부족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목자가 내게 관심이 없어서도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요, 그의 양인 내가 그분을 신뢰함으로 따르지 않은 까닭인 것 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분명히 도전하십니다. “또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마. 10:38) 라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인격적인 결단 가운데 날마다 그분을 따르지 않는 제자, 그의 양들이 있다는 것은 불행한 삶 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셋째,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점점더 알아가야’ 합니다 (We ought to know the will of our heavenly Father day by day): 제가 여기까지 ‘어떻게 우리가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의 양으로 살아갈수 있을까?’에 대해 말씀 드렸지만, 여전히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속시원하게 ‘예수님의 양’이 되었음에 대한 확신과 감격이 부족하다면 그 중심에는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선한 목자로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함일 것 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그분의 뜻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우리를 살리고자 하심 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까? 한가지 안타까운 현실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는 성도들 가운데 적지않은 분들이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라고만 이해한다는 것 입니다. 그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 ~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요. 10:10) 그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것 입니다. 우리를 구원할뿐 아니라, 더 풍성한 삶을 주시고자 함 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풍성한 삶일까요? 그 풍성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통해 그분안에 감추인 모든 풍성한 복을 누리는 삶’인 것 입니다 (엡. 1:3~14). 구원받았다는 것이 ‘단순히 죽어서 천당간다’는 뜻이 전부가 아닌것 입니다. 구원은 풍성함으로 열매맺어 가는 것 입니다. 이 풍성함은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누리는 유업이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를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깨닫고 누려나가는 것>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선한 목자되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풍성한 삶을 현재 누려나가고 있습니까?

이제 2주후면 우리 선한 목자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자기 양들에게 생명주시고자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부활절 입니다. 주님의 부활사건이 진정으로 우리 크리스챤들의 최고의 기쁨이요 승리의 사건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이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을 통해 오늘 우리가 살펴 본데로 ‘왜 여러분과 제가 목자없는 양이었는지?’ ‘왜 우리 성도는 주님을 신뢰하며 따라가야 하는지?’ 그리고 ‘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더 깊이 알아가야만 하는지?’를 최종적으로 확증하고 깨닫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앞으로 오는 2주에 걸쳐 주님의 부활사건의 의미를 살펴볼것 입니다. 바라건데 약속의 성령께서 성도 여러분의 영의 눈을 여셔서 ‘목자없는 양’같았던 우리 존재를 바라보게 하시고, 귀를 열어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마음을 열어 선한 목자를 삶으로 따르기를 결단하는 풍성한 삶 살도록 인도하시기를 간절히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