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14, 2019

“하나님의 어린 양” (The Lamb of God)

Preacher:
Passage: 요한복음 (John) 1:29
Service Type:

“하나님의 어린 양”

(The Lamb of God)

4-14-19

본문말씀: 요한복음 (John) 1:29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The next day John saw Jesus coming toward Him and said, “Look, the Lamb of God, who takes away the sin of the world!)

 

[설교 요약]

            오늘은 우리의 선한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지? 오셔서 이땅에서 이루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 침례요한은 예수님의 나아오심을 보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29) 라고.

무엇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뜻일까요? (What means that Jesus is the Lamb of God?) 하는 것 입니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의 죄에 대한 진노가 만족되어야 함’을 뜻 합니다 (It means that the wrath of God against sins must be satisfied): 사도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롬. 1:18) 고 선언한 것과 같은 영적 진리를 밝힌 것 입니다. 이 복음은 바로 ‘하나님의 죄에 대한 진노’ (The wrath of God against our sins) 에서 시작됨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시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아담으로 부터 시작된 인간의 원죄가 하나님의 속죄양되신 예수님의 피흘림으로서 처벌되어야 함을 선언하는 것 입니다.

둘째, ‘우리 인간은 그 죄를 담당할수 없음’을 뜻 합니다 (It means that none of us are not able to undertake our sins): 그렇다면, 왜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셔야 하는것일까요? 왜냐하면, 그리스도만이 우리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 담당하실 자격이 있다고 성경은 선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인간도 물려받은 ‘아담의 원죄’ (the original sin of Adam)를 대신 담당할수 없고, 하늘의 천사조차도 불가능하다는 것 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어린양, 하나님의 독생하신 성자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위해 단번에 죽으심으로 영원한 죄사함의 은혜를 주실수 있기 때문 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놀라운 은혜 누림’을 뜻 합니다 (It means that we may enjoy His amazing grace through the Cross of Christ): 주님이 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님은 ‘내가 온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할뿐 아니라, 더 풍성케 하시기 위해’ (요. 10:10) 이 땅에 오셨다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는 것 입니다. 우리를 구원케 하실뿐 아니라, 더 풍성한 삶을 주시고자 오셨다는 것 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런 풍성함이 있습니까? 이 풍성함은 하나님과 누리는 평화요, 그를 통한 은혜가 왕노릇하는 삶이요, 그 은혜가운데 점점더 뚜렷하게 보이는 하나님의 영광, 이로 말미암아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꺽이지 않는 소망과 즐거움을 누리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어린양’되신 예수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죄사함받고 구원얻을 뿐 아니라,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으로 풍성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이 진정한 축복을 결코 놓치지 않는 주님의 복된 양들 모두 되시기를 소원 합니다.

 

[설교 전문]

            오늘은 우리의 선한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지? 오셔서 이땅에서 이루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 침례요한은 예수님의 나아오심을 보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29) 라고. 바로 나사렛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 그리고 그의 삶은 어떻게 될것인지?를 가장 짧고도 정확하게 묘사한 말인것 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The Lamb of God)인 것 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더욱 분명히 이해하고, 이를통해 그를 믿는 성도 여러분과 저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은혜와 뜻이 얼마나 큰것인지를 깨닫음으로 믿음과 확신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원합니다.

사도요한은 <요한복음서>를 시작하면서 <1장>에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깊은 영적 충만함을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잘아는데로 예수님의 본체는 ‘말씀’ (the Word) 즉 ‘로고스’라는 것 입니다. 그런데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 1:1,2) ‘그 말씀이 태초에서부터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고 선언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신다)” (요. 1:14)는 것 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이것은 태초전부터 성부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거하시며,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성자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 입니다. 제가 이해하기로 성경의 기록중에서 가장 놀랍고 신비로운 사건은 ‘말씀이 육신’이 된 사건, 즉 ‘성육신’의 사건일 것 입니다. 바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000여년 전에 팔레스타인땅 나사렛지방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의 탄생인 것 입니다.

그렇다면, 왜 나사렛 예수님의 탄생이 그토록 우리 모든 인간에게 중대한 사건이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데로, 그리고 주님 자신이 밝히셨드시 그분만이 우리에게 구원을, 영원한 생명을 허락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저는 지난 시간에 ‘왜 우리 인간은 양인가?’하는 것을 살펴 봤습니다. 성경은 우리 모든 인간은 양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양이지만 분명한 차이는 내가 ‘목자없는 양’이냐 아니면 ‘목자있는 양’이냐로 결정된다는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나는 선한 목자라 ~” (요. 10:11a) 고 밝히셨드시, 내가 그분을 믿고 영접한 그의 양이냐, 아니면 여전히 그분을 거부하고 따르지 않는 목자없는 양이냐가 우리 모든 인간의 삶을 결정하게 되는 중대한 갈림길인 것 입니다.

이제 우리가 좀더 집중해서 오늘 이시간을 통해 생각해 보기 원하는 것은 무엇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뜻일까요? (What means that Jesus is the Lamb of God?) 하는 것 입니다. 도데체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사도요한이 영의 충만함으로 외쳤던 그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첫째, ‘하나님의 죄에 대한 진노가 만족되어야 함’을 뜻 합니다 (It means that the wrath of God against sins must be satisfied): 히브리서기자는 율법에 있는 <죄사함>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 9:22) 고. 저는 <로마서 1장>을 설교하면서 사도바울이 복음중의 복음이라고 하는 로마서말씀을 시작하면서 진정한 ‘기쁜소식’ (The Good News), 복음은 어디에서부터 출발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사도바울은 “ ~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 (롬. 1:16)이 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은 바로 ‘하나님의 죄에 대한 진노’ (The wrath of God against our sins) 에서 시작됨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 혹은 ‘하나님의 용서’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의 죄에 대한 진노’가 그분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지 않는다거나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님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겸손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자 말씀을 주의해서 살펴볼때, 우리의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죄용서하시는 사랑은 언제나 죄에 대한 진노하심으로 부터 출발함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것이 예외없이 그의 택하신 이스라엘민족의 역사에서 발견하게 되는 진리인 것 입니다. 하나님은 결단코 그의 자녀 이스라엘의 죄악을 못본척 넘어 가신적이 없습니다. 반대로 반드시 그 죄에 대해 진노하시고 심판 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라 치유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치유의 역사를 통해 그들을 용서하시고 사랑의 관계로 회복시키시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죄에 대한 진노에서 시작 하는 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이어지는 <18절>에서 이렇게 선언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롬. 1:18) 라는 것 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시작인 것 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소위 복음주의자라고 하는 신학자나 목회자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진노’라는 말을 매우 꺼리고 말하기를 주저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는 마치 ‘하나님의 사랑’ 이나 ‘하나님의 용서’와 정반대개념 정도로 치부하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그렇치 않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진정한 용서와 사랑은 그분의 의로우심으로 말미암아 죄에 대한 진노하심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 입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결코 죄와 함께 하실수 없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은 결코 죄를 못본척하며 눈감아 주고 넘어갈수 없는 것 입니다. 조금전 살펴보았드시 “~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는 것이 구약뿐 아니라, 성경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죄를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영적 원리라는 것 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시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아담으로 부터 시작된 인간의 원죄가 하나님의 속죄양되신 예수님의 피흘림으로서 처벌되어야 함을 선언하는 것 입니다.

둘째, ‘우리 인간은 그 죄를 담당할수 없음’을 뜻 합니다 (It means that none of us are not able to undertake our sins): 그렇다면, 우리의 질문은 ‘왜 나사렛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는 것인가?’ 하는 것 입니다. 장차오실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누구보다도 잘 묘사한 이사야선지자는 이렇게 말 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는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2:6) 라고. 지난시간 살펴본데로, 우리 모든 인간은 아담의 원죄로 인하여 선한 목자되신 하나님을 떠난 양인 것 입니다. 모두 한결같이 자기 갈길로 간 목자없는 양인 것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목자없는 양과 같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를 포기하지 않고 구원하기 원하신다는 것 입니다. 어떻게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킴으로써’ 그렇게 하신다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왜 꼭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셔야 하는것일까요? 왜냐하면, 그리스도만이 우리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 담당하실 자격이 있다고 성경은 선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인간도 물려받은 ‘아담의 원죄’ (the original sin of Adam)를 대신 담당할수 없고, 하늘의 천사조차도 불가능하다는 것 입니다. [오직 죄없으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어 하나님께 흠없는 합당한 제물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드려질수 있는 ‘화목제물’ (The Propitiation) 되신다]고 성경은 선언하고 있는 것 입니다 (롬. 3:25)

히브리서기자는 이렇게 선언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드러 가셨느니라” (히. 9:11,12) 예수 그리스도가 대제사장 되셔서 ‘손으로 짓지 아니하고 더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다’는것 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이 말씀은 매우 신비롭고도 놀라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죽음 (생명)을 통한 구원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것 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모든 크리스챤들의 <대제사장> 되셔서 손으로 짓지 않은 더 크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장막, 즉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나아가 희생제단 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셨는데, 그 속죄함의 제물은 다름아닌 자기자신이라는 것 입니다. 자기자신이 속죄제물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어 단한번에 그 십자가 위에서 그 보배로운 피를 흘리셔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는 것 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유일한 대제사장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셔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것 입니다. 그것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죄까지도 모두 사하여 주셨다는 것 입니다. 어떤 인간도, 어떤 천사도 불가능한 것 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어린양, 하나님의 독생하신 성자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위해 단번에 죽으심으로 영원한 죄사함의 은혜를 주실수 있기 때문 입니다. 이것을 믿으십니까?

셋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놀라운 은혜 누림’을 뜻 합니다 (It means that we may enjoy His amazing grace through the Cross of Christ): 그렇다면 저의 마지막 질문은 이것입니다. 저는 지난주 설교에서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는지?’를 여러분에게 질문했습니다. 그 대답이 ‘나를 구원시키시고자’ 오셨다고만 대답한다면, 그것은 충분하지 못하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내가 주님을 믿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해 나가고자 하는 크리스챤들이라면, 영적 어린아이처럼 계속해서 ‘내가 구원 받았나? 않 받았나?’만을 질문하는 것은 어리석은 질문인 것 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님은 ‘내가 온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할뿐 아니라, 더 풍성케 하시기 위해’ (요. 10:10) 이 땅에 오셨다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는 것 입니다. 우리를 구원케 하실뿐 아니라, 더 풍성한 삶을 주시고자 오셨다는 것 입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이 얼마나 자주 자주 이 사실을 망각하는지 저는 단지 놀라울 뿐 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런 ‘풍성한 삶’은 무엇이고 나는 이 풍성함을 누리고 있는가?하는 것은 우리 거듭난 성도들에게는 매우 중요하고도 심각한 질문이 되어야 할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만약 <내가 예수 믿음으로 죄없다고 하나님으로부터 인정함 받았다>면, 다시 말해서 <의롭다하심을 받았다> (칭의)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해야하는지를 이렇게 선언하고, 또한 그렇게 되자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롬. 5:1,2) 라고. 더나아가서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 (롬. 5:3a) 라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자라면 그 <풍성한 삶>을 반드시 누려야만 하는데, 그 풍성함은 다름아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음으로서 하나님 아버지와 더불어 평화를 누리는 것’ 입니다. 또한 ‘그 평화 가운데 은혜가 통치하는 삶의 영역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 하는 것’이 풍성한 삶이라는 것 입니다. 이것은 더 나아가 ‘우리가 겪게 될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낙심하거니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워할수 있는 세상이 막을수 없는 소망의 삶’을 뜻하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것이 풍성한 삶임을 깨닫습니까? 여러분에게는 이런 풍성함이 있습니까? 하나님과 누리는 평화, 그를 통한 은혜가 왕노릇하는 삶, 그 은혜가운데 점점더 뚜렷하게 보이는 하나님의 영광, 이로 말미암아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꺽이지 않는 소망과 즐거움… 왜 우리에게 이 풍성함이 없는 것일까요? 그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예수믿는다는 것을 단지 구원받았다는 것으로, 죽어서 천국가는 것으로 이해한 때문은 아닐까요?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신 목적을 이해하고, 그분이 약속하신 풍성함을 누리고자 하는 인격적 결단이 부족해서가 아닐까요? 그 약속하신 성령님께 전적으로 순종함으로 그의 충만하신 가운데 허락하신 풍성한 삶을 반드시 누리고자 하는 열망과 소망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침례요한은 예수님의 나아오심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외쳤습니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는 실로 하나님의 흠없는 어린양되셔서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시고자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뜻 입니까? 그것은 죄는 결코 의로우신 하나님과 함께할수 없고,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죄에 대한 진노는 반드시 만족되어져야 함을 뜻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죄를 담당하고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화목제물되실 자격이 있음과 주님의 대속죽음은 우리가 단순히 구원받을뿐 아니라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됨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예수님의 이름속에서 발견되는 진리인 것 입니다. 그 이름을 통하여 구원받은 성도가 날마다 약속하신 성령을 통하여 풍성한 삶을 살아갈수 있음을 영광스럽게 선포하고 있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어린양’되신 예수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죄사함받고 구원얻을 뿐 아니라,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으로 풍성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이 진정한 축복을 결코 놓치지 않는 주님의 복된 양들 모두 되시기를 소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