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31, 2017

“미래의 영광” (The glory of our future)

Preacher:
Passage: 로마서 (Romans) 8:17,18
Service Type:

“미래의 영광”

(The glory of our furure)

12-31-17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8:17,18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것 이니라 (Now if we are children, then we are heirs – heirs of God and co-heirs with Christ, if indeed we share in His sufferings in order that we may also share in His glory)

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I consider that our present sufferings are not worth comparing with the glory that will be revealed in us)

<서 론>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과 함께 크리스마스 특집, 4번째 마지막 메세지, ‘미래의 영광’ 을 나누기 원합니다. 첫 설교 ‘창세전에’ 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 한사람 한사람을 천지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예정 하셨음을 살펴 보았습니다. 두번째 설교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에서 첫사람 아담의 범죄 이후 죄는 그의 모든 후손들에게 한명도 예외없이 왕노릇하고 그로인한 고통의 삶을 살수 밖에 없었음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지난주, 세번째 설교 ‘임마누엘’ 에서 우리 모든 인간의 이런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이해함을 통해 크리스마스 하루뿐 아니라, 1년 365일 언제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갈수 있는 삶은 무엇인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이제 오늘 마지막 설교 ‘미래의 영광’ 을 통해 우리 성도의 삶은 왜 이토록 영광스럽고 확정적인 것인지를 함께 깨닫아 나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충만하신 은혜로 우리의 남은 삶이 감사와 기쁨으로 넘쳐나시길 기대 합니다.

<본 론>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과 집중해서 생각해 보기 원하는 오늘 말씀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의 미래는 무엇인가?’ 로 요약할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시간 ‘임마누엘’ 이라는 제목의 설교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억하겠지만, 그것은 1) ‘예수님의 생명을 통해 우리가 살게 된다’ 는 뜻이요, 2) ‘성령님이 우리 안에 충만히 거하신다’ 는 뜻이며, 그리고 3)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게 된다’ 는 뜻 임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요약해서 강조하기 원하는 것은 이것 입니다; 오늘의 주제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됨을 통해 내가 누리게 될 미래의 삶<장차 그분과 함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 이라는 사실 입니다. 이것은 언제나 우리 거듭난 크리스챤이 생명처럼 붙들고 놓치지 말아야 하는 진리인 것 입니다. 그리고 <장차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게 된다> 는 진리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살아 계시다> 는 사실에서 시작되고 그 곳에서 마쳐지는 진리임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바로 ‘내가 나사렛 예수를 믿어 영접함으로 구원을 얻은 그 첫순간부터 장차 그리스도와 누릴 영광을 누릴 그때까지’ 그 중심엔 언제나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 있다는 것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그분을 믿음으로 ‘내가 구원 받을 뿐 아니라, 영원토록 그분 안에서 영광된 삶을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함’ 인 것 입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 1:3,4) 우리를 예정하셨다는 뜻 입니다. 또한 “또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영원 전부터 숨겨졌던 신비로운 계획이 어떤 것인가를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알리기 위해서 입니다 ~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세우신 영원한 계획에 따라된 것 입니다” (엡. 3:9,11) 고 선언한 골자인 것 입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이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이유인 것 입니다; “ ~ 내가 온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 고. 예수믿는 자를 단순히 살리는 것만이 아니라, 더 풍성하게 하시겠다는 것 입니다. 어떻게요? 이 땅을 살아 가면서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풍성케 하실뿐 아니라, 더 나아가 주와 함께 장차 왕노릇하고 모든 영광을 누리게 하심으로 풍성케 하여 주시고자 주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셨다고 선언 하시는 것 입니다.

이제 우리 성도가 추구하고 소망해야할 것은 ‘예수 믿음으로 죄 씻음 받고 천국 간다’ 는 사실 뿐 아니라, ‘주께서 성령 충만을 통해 나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장시키시고, 장차 그와 함께 영광을 누리는 것’이 되어야 할것 입니다. 그 사실을 여러분이 분명이 이해 했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그 영광된 삶을 준비해야 할까요? 다시말해서, 장차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기 위해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맗(How should we prepare ourselves to receive the glory with Christ?) 라는 질문이 될것 입니다; 그것은

첫째, ‘성령께 순종해야’ (We should obey the Holy Spirit) 할것 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 받은 거듭난 성도임을 스스로 이해하고 점점 더 확신할수 있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예수 믿고, 구원 받으면 그것이 자동으로 될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왜 오늘날 삶의 무의미와 무기력, 그리고 삶의 고통 가운데 힘들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이렇게 많은지?’ 를 설명해주는 증거가 됩니다. 이것은 예수믿고 영적인 출생을 했다고 자동적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은 내 영으로 증거하시는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성경은 언제나 우리에게 밝히고 있는 것 입니다. “~ 다시 무서워 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 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는)” (롬. 8:15) 우리 크리스챤의 영적 상태는 결코 자연적인 영적 출생만으로 자동적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바로 성령의 충만한 도우심으로 가능한 것 입니다.

저는 그동안 틈나는데로 ‘거듭난 성도’ 가 반드시 구하고 결코 무관심해서는 않되는 것이 바로 ‘성령을 사모하라’ 는 것 임을 강조 했습니다. 비유하자면, 어떤 나라의 왕자라는 신분으로 태어났다고 그 아기가 당장에 왕을 이어 나라를 다스릴수는 없는 것 입니다. 시간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훈련과 노력’ 이 필요한 것 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우리 크리스챤의 존재에 대해 말씀하는 바 입니다. 그리스도의 영, 성령님의 도우심과 능력이 없이는 우리 성도들은 결코 열매 맺을수 없습니다. 결코 내 육신과 공중 권세잡은 사단 마귀의 능력을 이길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나는 아직 죄에 속한 육신의 옷을 입고 살아가기 때문 입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불가능 합니다. “힘으로도 되지 않고 능력으로도 되지 않으며 오직 내 영으로 된다” (스가랴 4:6) 고 하나님은 유대민족의 지도자로서 파괴되었던 성전을 재건하고자 하는 스룹바벨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자녀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삶은 힘으로도 되지않고 능력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 성령을 통해 가능하다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는 것 입니다. 이것이 성도들이 반드시 ‘성령의 충만한 도우심을 간구하고, 그분께 순종함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만 하는 이유’ 일 것 입니다. 이것이 장차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기 위해 준비하는 가장 구체적이고 우선적인 삶이 될것 입니다.

둘째, ‘고난을 이겨내야’ (We should overcome sufferings) 할것 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말씀의 ‘고난’을 사도바울이 왜 성도가 성령을 통해 도달할수 있는 가장 영광된 상태 (롬. 8:16, “성령께서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심”) 를 밝히고 나서 비로소 언급 했는지를 몇차례 설명 드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이 고난은 거듭난 성도들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과정’ 이라는 것 입니다. 단 한사람의 예외가 없다는 것 입니다. 이 고난에 대해서 설명하는 사도바울 자신이 고난을 그 누구보다도 풍성하게 받은 자였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고난이 내가 겪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보호주시지 않거나 하나님이 무관심 하거나 하나님이 능력이 부족 하셔서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강력한 증거’ 라는 것 입니다. ‘이 고난은 나를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지지 않을 순금과 같은 믿음으로 훈련할 뿐 아니라, 이 고난을 통하여 장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속한 모든 유업을 누리며 함께 왕노릇 할수 있는 우리 신분에 걸맞는 장성한 수준으로 성장케 된다는 것 입니다. 앞에서 말씀 드렸드시, 단순히 왕자라는 신분으로 태어난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아기가 자라서 아버지를 이어 왕으로 백성을 훌륭히 다스리기 위해선 혹독하고 뼈를 깍는 모든 ‘독수리 훈련’ 과 같은 ‘왕자의 수업’ 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 입니다. 바로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고난은 이런 훈련의 용광로요, 영적 축복의 통로라고 사도바울은 오늘 로마서 8장 본문말씀에서 주장하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고난은 결코 불행도, 실패도, 재앙도 아니요, 도리어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영광스러운 특별훈련이요, 자녀임에 대한 확실한 증거라는 것 입니다.

그뿐 아니라, 사도바울이 성령을 통해 우리 크리스챤이 도달할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상태를 밝히고 (롬. 8:16) 난 다음 ‘우리가 받아야 할 고난’ 을 언급한 것은 ‘이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이 당한 고난은 심히 혹독한 시련’ 이었기 때문일 것 입니다. 그 고난은 곧 ‘순교’ 를 의미 했습니다. 따라서, 이 고난을 이겨내기 위해선 이들은 먼저 내가 성령을 통해서 도달할수 있는 놀라운 영적 충만을 확신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확신할때 비로소 ‘고난’ 도 맞서 싸울 준비가 되는 것 입니다. 이것이 사도 베드로가 흩어진 성도들에게 불같은 고난 가운데 도리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격려한 이유 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 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벧전. 4:12,13,16) 라고 베드로는 거듭 거듭 고난은 부끄러운 일도 비참한 것도 아니요, 즐거움과 기쁨이 넘치는 것이라고 선언 합니다. 왜냐하면, 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며,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림을 확신하게 되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은 고난을 기뻐하고 즐거워 하십니까?

셋째,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영광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아 나가야’ (We should open our eyes to recognize the glory with Christ in the future) 할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마지막 때에 있을 세상의 징조 (sign) 를 다음과 같이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말세에 어려운 때가 있으리라는 것을 잊지 마시오. 그 때에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뽐내고 교만하고 하나님을 모독하고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을 것 입니다. 그들은 감사할 줄도 모르고, 거룩하지도 않으며, 사랑이 없고, 용서하지 않고, 남을 헐뜯고, 자제하지 못하며, 사납고, 선한 것을 싫어하고, 배반하고, 조급하며, 거만하고,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고, 겉으로는 신앙심이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 능력은 거부할 것 입니다. 그대는 이런 사람들과 같이 되지 마시오” (딤후. 3:1~5) 라고 말 입니다. 오늘날의 사람의 상태를 사도바울이 보면서 고발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때에 있을 하나의 싸인이라고 사도바울은 밝히고 있습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우리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와 누릴 영광을 준비할수 있는지는 점점 더 우리의 감겨진 눈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영광을 밝히 봄으로 견고하게 준비할수 있다고 믿습니다. 왜 마지막때에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교만하고 뽐내고, 사랑이 없고,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는 줄 아십니까?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다는 자들 조차 말 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눈이 감겨 있기 때문 입니다.

사도요한은 그가 목격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고 말입니다. 요한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살았기 때문 입니까? 예수님의 영광을 보았다는 것이 요한이 자신의 ‘육체의 눈으로 본것’ 을 뜻 한다면, 왜 그 당시 바리새인과 많은 유대인들은 주님의 영광을 보지 못한 것 입니까? 이 영광은 오직 믿음의 눈으로 볼수 있는 것 입니다. 성령의 은혜와 능력으로만 볼수 있는 것 입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벧전. 1:8) 라고 베드로는 한번도 예수님을 자신들의 육체의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그분을 영의 눈으로 바라보고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격려하고 확신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영광된 삶은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게 되지만, 그것을 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깨닫고, 붙잡을수 있는 것은 바로 지금 가능하다고 도전 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아들의 영광을 성령을 통해 깨닫고 붙잡음으로 말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 아들의 영광을 성령의 은혜로 점점 더 밝혀 보고 있습니까? 깨닫아 나가고 있습니까?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래의 영광은 현재의 그리스도 안에 속해서 점점 더 성장해 나가고 있느냐가 결국 결정하는 것 입니다. 성경은 믿음없이 세상과 동행하여 성령을 불순종하는 자에게 결코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영광을 약속하고 있지 않습니다. 주님은 ‘영생’ (the eternal life) 은 미래에 주어질 어떤 삶’ 이 아니라,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요. 17:3) 이라고 분명히 정의 하셨습니다.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바로 지금 아는 것’ 이 영생임을 주님은 선언하시는 것 입니다. 바로 지금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 통해 미래의 영광을 영의 눈을 열어 바라보는 것 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현재에 성도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모든 불같은 고난를 넉넉히 이겨나갈수 있기를 소원 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영광을 향해 성령의 충만한 능력으로 날마다 열매맺고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