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4, 2017

“믿음이 없이는” (Without faith)

Preacher:
Series:
Passage: 히브리서 (Hebrews) 11:6
Service Type:

믿음이 없이는”

(Without faith)

9-24-17

본문말씀: 히브리서 (Hebrews) 11:6

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And 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please God, because anyone who comes to Him must believe that He exists and He rewards those who earnestly seek Him)

 

<론>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과 함께 ‘믿음이 없이는’ 이라는 말씀의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히브리서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주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기 때문 입니다. 저는 말씀을 통해, 우리 각자는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이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 되길 원합니다. <내 마음대로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믿음> 이 과연 무엇인지 말씀을 통해 살펴보고, 함께 고민하는 시간 되기 원합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를 목마른 사슴과 같이 간절히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일 것 입니다. 그 어떤것 보다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를 간절히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음’ 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충만한 열매를 거두는 믿음의 사람들이 모두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 합니다.

 

<론>

신약의 <마가복음 11장> 을 보면,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베다니’라는 지역을 지나다가 배가 고팠을때 한 무화과나무를 보고 가까이 가서 봤을때, 그 나무는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가 아무것도 없는 것을 주께서 보시고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먹지 못하리라’ (. 11:14) 말씀하신 것을 제자들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그들이 그 나무를 지나 갔을때 그것이 뿌리로 부터 마른 것을 보고선 베드로가 예수님께 선생님,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가 말랐나이다” (21) 고 말했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 하십니다; “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산더러 들이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말하는 것이 이를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 11:22~24) 고 말 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매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과 그 나무가 말랐음을 통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통해 주시고자 하는 메세지는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왜 주님은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것일까요? 배가 고팠는데 열매가 없자 화가 나서 그렇게 하신 것일까요? 결코 그렇치 않을 것 입니다. 그것은 1) 첫째, 제자들에게 영적 열매를 맺어야 하는 중요성 일깨우고자 하심 입니다. 도전 하심 입니다. 다시말해, 우리 인생도 진정한 성령의 열매를,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잎사귀만 무성한 열매없는 살게 될때 우리 인생도 이 무화과 나무와 같이 뿌리채 말라 버리는 최후를 맞이하게 될것이란 사실일 것 입니다. 이러한 결과를 주님은 <요한복음 15장> 에서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사람이 내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 15:6) 고. 참 포도나무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접붙임’ (grafting) 받음으로 그분 안에서 ‘영적 영양분’ (spiritual nutrition) 을 공급받지 못할때, 우리 모두는 영적으로 말라죽는 가지가 되어 불에 던져지는 존재가 된다는 것 입니다. 참포도나무되신 예수님 안에서만 생명과 풍성한 열매를 거둘수 있는 비밀이 바로 이것 입니다. 주님을 벗어날때 어떤 열매도 거둘수 없을뿐 아니라, 결국 말라죽는 가지가 되는 것 입니다. 주님은 배가 고파서 화가 나신것이 아니라, 이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를 통해 ‘열매맺는 삶’ 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시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열매맺는 삶’ 은 어떻게 가능한 것 일까요? 그것을 설명하신 핵심이 바로 두번째 교훈 입니다. 그것은, 2) 둘째, 하나님을 믿는 것이 열매 맺는 삶의 핵심 이라는 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교훈과 도전은 ‘제자들이 귀신들린 한 아이를 고치지 못하고, 결국 주께서 그를 고치셨을때,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왜 자신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는지?’ 를 묻었을때 주께서 하신 말씀과 유사 합니다; “ ~ 너희의 믿음이 적기 때문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 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산더러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면 그대로 될것이요, 너희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 17:20) (표준새번역) 라고.

따라서, 예수님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주님의 제자들이 열매 맺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고 도전 하시는 것 입니다. 만약, 우리 안에 겨자씨 만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더라도 그 믿음데로 될것이라는 말 입니다. 이 믿음을 통해 ‘이 산더러 바다에 던지우라’ 할찌라도 그 말한데로 이루어지는 능력의 삶을 살게 될것이요, 기도 응답의 삶을 살게 될것이라 도전하시는 것 입니다. 저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방금 말씀드린 ‘무화과 나무’와 ‘귀신 들렸던 아이’ 의 교훈에서 제자들에게 주시고자 했던 핵심적인 교훈이 바로 오늘 설교와 동일한 기초를 이룬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열매맺고 능력을 가져오는 신앙생활의 시작은 언제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 (Faith, in truth God) 안에서 시작된다는 것 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임을 고백하는 크리스챤이라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의 중요성을 굳이 제가 또다시 설명한다는 것이 도리어 이상할 것 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모든 크리스챤의 첫 출발점이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신앙생활 했건 관계없이 ‘하나님을 믿은 믿음’ 을 다시한번 집어보고, 점검해 보아야 하는 이유는 이 믿음이 그만큼 우리 크리스챤에게 중요할뿐 아니라, 이 믿음이라는 이름 아래 ‘잘못된 믿음’으로 인도될수 있는 많은 거짓 가르침들이 있기 때문 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일까요?” (What is the genuine faith to believe in God?) 저는 히브리서 기자가 <믿음장, 11장> 을 통해 특별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 (. 11:8~19) 통해 ‘하나님을 믿는 믿음’ 을 설명하고, 우리에게 본 (=교훈) 을 보여주고자 했음을 믿습니다. 그것은 무엇 입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믿음은

첫째, 약속을 의지하는 믿음 입니다 (It is the faith that depends on the promise of God):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 11:8) 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그에게 먼저 약속하시고, 또한 명령 하셨을때 그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아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을때에 순종하여 나아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가운데 나아 갔다는 것 입니다. 어떻게요? 오직 ‘약속을 의지’ 함으로 나아 갔습니다. 그렇다면, 그 약속은 무엇이었습니까? <창세기 12장> 은 이렇게 기록 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 12:1~3) 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자’ 가 될것을 약속 하셨습니다. 누가 복의 근원자 입니까? ‘모든 족속에게 복을 나누어주는 자’ 입니다. 우리 인간은 복받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복을 나누어 주는 진정한 ‘복의 근원자’ 의 축복을 허락하신 것 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내가 네게 지시할 ’ (the land I will show you) 을 약속 하셨습니다. 이것이 왜 히브리서 기자가 아브라함의 마음을 설명하면서 “ ~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 (8) 고 표현했는지를 이해하는 정확한 이유 입니다. 그것이 무엇 입니까? 하나님은 ‘약속의 땅’ (the promise land) 를 약속 받았지만, 그곳이 어디인지 아브라함에게 이미 가르쳐주신 것이 아니라, 앞으로 가르쳐 주시겠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가라’ 고 하십니다. 먼저 ‘출발하라’ 는 것 입니다. 이것이 그가 ‘갈바를 알지 못한 이유’ 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언제 그 땅에 가는 길을 가르쳐 주신다는 말 일까요? 그것은 ‘날마다, 시간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여 ‘한걸음 한걸음’ (step by step) 발걸음을 땔때마다 가르쳐 주시겠다는 것 입니다. 저는 이것이 아브라함뿐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들의 고민이요, 딜레마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한꺼번에 ‘그 약속의 땅을 모두 가르쳐 주시길’ 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그것이 아님을 우리는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방법을 통해 봅니다. 아브라함은 그분의 약속을 의지 했습니다. 비록 갈바를 알지 못했지만, 장차 주실 약속의 땅을 믿음의 눈을 열어 바라보며 말씀에 순종하여 떠났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약속에 의지한 믿음’ 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어떤 약속을 주셨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약속을 받았습니까? 여러분은 이 약속이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임을 신뢰 합니까? 신뢰 하기에, 그 약속을 믿고 의지 합니까?

둘째, 약속을 붙듦으로써 인내하는 믿음 입니다 (It is the faith that endures difficulties by holding the promise):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어떻게 약속의 땅에 가서 하루 하루를 살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그는 약속 받은 낯선 땅으로 가서 같은 약속을 받은 이삭과 야곱과 함께 나그네 처럼 천막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설계하여 세우신 견고한 하늘의 도성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 입니다” (. 11:9,10/ 현대인의 성경) 라고. 이것은 무슨 뜻 입니까? 이것은 지금 당장 하나님의 약속이 ‘내 시간 계획표’ (my time table) 데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약속을 의심하거나, 스스로 낙심하지 않고, 도리어 그 약속을 붙들고 인내 하며, 반드시 그 약속이 이루어질것을 믿고 살아 갔다는 뜻 입니다.

사실, ‘약속을 붙들고 인내하는 믿음’ 은 어쩌면 오늘날 우리 크리스챤, 특히 청년 크리스챤들에게 가장 힘들고 어려운 점이 아닐까 저는 생각해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빠른 것이 좋다 세대에 살고 있기 때문 입니다. 우리는 아무 문제없이 노트북을 잘 사용 하다가도 다른 친구가 자기것 보다 더 큰 용량의 메모리를 장착한 조금만 더 속도가 빠른 컴퓨터를 구입하면 얼마가지 않아 쓰던 것을 폐기 처분하고 새것을 삽니다. 셀폰도 마찬가지로 일단 속도가 느리면 구입하는 명단에서 제외가 됩니다. 속도가 느리다는 것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구시대의 유물’ 이 되고, ‘질이 낮은 것’ 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우리 사회 가운데 팽배해 있는 것 입니다. 오늘날, 특별히 청년들에게 ‘기다리라’ 는 말은, ‘인내하라’ 는 말은 가장 인기 없고 가장 참기 힘든 말 중에 하나임에 틀림 없습니다. 아니, 솔직히 청년들 뿐 아니라, 청년 사역을 하는 목회자로서 저 자신도 이 ‘기다림’ (=인내) 는 저를 가장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는 점임을 고백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연락없는 한 지체를, 주일 예배때 보이지 않는 한 지체를,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부흥의 때를 인내 하면서 믿음으로 기다린다는 것은 저에게도 결코 쉽지 않는 혹독한 영적 훈련임을 저는 고백 합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께서 제에게 진정으로 요구하시고, 또 훈련 시키시기 원하시는 점이 저의 재능과 능력과 실천력 그 어떤것 보다 바로 <믿음으로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 임’ 을 또한 믿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75세때에 그의 본토 아비집을 떠나라 명령하시고 나서 25년이라는 노인네로서는 참기 힘든 긴 시간을 통하여 마침내 그가 100세 되었을때 비로소 ‘약속의 아들’ 을 허락 하셨습니다. 누구도 기다림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다림의 고통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자’ 로, ‘우리 모든 믿는자의 조상’ 으로 세우신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끝까지 붙드는 기다림의 시간’ 을 허락 하셨다면, 여러분과 저도 결코 예외가 될수 없음을 우리는 이해해야만 합니다. 저는 지난 시간에 시편기자가 자신의 고난 가운데 깨닫은 진리를 이렇게 고백함을 함께 나눴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It was good for me to be afflicted so that I might learn your decrees) (시편/ Psalms 119:71) 라고. 기다림과 인내함은 어쩌면 심한 고난 입니다. 그러나, 이 고난 가운데 우리는 비로소 주님의 철든 자녀가 되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놀라운 계획을 깨닫게 되는 것 입니다. 마침내,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아들, 이삭을 허락하신 것과 같이 말 입니다. 우리의 모나고 까칠한 성품, 참지 못하는 급한 성격이 하나님의 손에서 하나 하나 깍여 나감으로서 하나님은 점점 더 여러분과 저를 그의 약속의 자녀로 변화시켜 나가시는 것 입니다.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인내함으로 걸어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약속이 빨리 이뤄지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불신하며 낙심해 있습니까?

셋째, 약속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입니다 (It is the faith that trusts God who promises): 저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믿는다’ 는 것은 ‘나에게 약속한 그 하나님 자신을 믿는 믿음’ 이라고 말씀 드릴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 ‘약속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은 제가 앞에서 말씀드린 첫번째와 두번째의 믿음 (약속을 의지한 믿음 & 약속을 붙들고 인내하는 믿음) 을 모두 결정하는 가장 기초가 되는 믿음이라 말씀 드릴수 있습니다. 어떻게 제가 그렇게 말씀드릴수 있을까요? 그점을 가장 잘 밝혀주는 것이 바로 <히브리서 11:17~19> 말씀 입니다. 그것은 무엇 입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창세기 22장> 에서 소위 ‘하나님의 마지막 테스트> 라고 불리는 ‘100세 되어 낳은 이삭을 바치라’ 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아브라함이 어떻게 믿음으로 순종할수 있었는지를 너무도 핵심적으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가 순종할수 있었다구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하심’ 을 조금의 의심없이 믿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약속을 주신 하나님 자신을 더욱 신뢰’ 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 입니까? 하나님은 먼저 그의 말씀을 통해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셀수 없이 많게 해 주시겠다’ 고 약속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손은 바로 ‘100세 되어 낳은 이삭을 통해 이루어 짐’ 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몇년이 지났을까요? 이제 이삭이 성장해서 청년이 되고 장가가서 후손을 볼 나이가 될때쯤 하나님은 느닷없이 이 약속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아브라함이라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저는 아브라함이 진정 믿음의 조상으로서의 놀라운 면모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의 반응에서 볼수 있는 것 입니다.

그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이삭을 모리아 산에 가서 제물로 드리고자 했습니다. 왜요?!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의 마음의 중심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이렇게 놀랍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은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 11:17~19) 고 말 입니다. 결론은 무엇 입니까? 아브라함이 이 모든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의 충돌> <그의 약속과 명령의 이해되지 않음> 가운데서도 끝까지 최종적으로 믿은것은 하나님 자신 이었습니다. 그것은 만약 하나님께서 약속의 아들, 이삭을 그의 명령에 순종하여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그의 아들 이삭을 다시 살리실줄 믿는 아브라함의 믿음 인 것 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믿음’ 입니다. 이 부활의 믿음으로 그는 하나님의 약속과 동시에 하나님의 명령을 어떤 충돌과 모순없이 믿고 순종할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생명까지도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수 있는 생명의 하나님 이시다는 것을 그는 신뢰한 것 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모든 상황 가운데서도 반드시 약속을 이루시고, 반드시 그의 선하심과 사랑 가운데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 이심을 믿으십니까? 아브라함은 바로 이런 하나님을 믿었던 것 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ㅁ은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의 명하심에 순종할수 있었는지를 잘 이해하게 해 줍니다. 바로 하나님은 살아 계실뿐 아니라, 선하심과 완전한 권능의 하나님 이시기에 그를 믿고 손종하는 자에게 상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아브라함은 믿은 것 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가 살아 계심으로 나에게 말씀을 통해 약속하신 것을 결코 잊어 버리시지도, 취소 하시지도 않으시고, 반드시 그분의 계획하신 때에 신실하게 이루어 주심을 믿는다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내가 희망하고 계획하면 어떤 것이라도 들어 주셔야 하는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은 성도의 믿음을 가져오는 ‘약속’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입니다. 이 약속은 언제나 하나님께로 부터 말씀 가운데 오는 것 입니다. 따라서, 참된 믿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를 간절히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하나님 이심을 믿는 믿음’ 인 것 입니다. 이런 선하신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으로 점점 더 자라나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사랑 많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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