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17, 2017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The dew of your youth)

Preacher:
Passage: 시편 (Psalms) 110:1~3
Service Type: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The dew of your youth)

9-17-17

본문말씀: 시편 (Psalms) 110:1~3

1 여호와께서 나의 주님에게 말씀 하셨다. ‘내가 원수들을 앞에 굴복 시킬때까지 너는 오른편에 앉아 있거라.’ (The Lord says to my Lord: “Sit at my right hand until I make your enemies a footstool for your feet.”)

2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능력의 지팡이를 뻗치실 입니다. 주는 원수들을 다시리소서. (The Lord will extend your mighty scepter from Zion; you will rule in the midst of your enemies.)

3 주의 능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자진해서 주께 나아갈 입니다. 그들은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 입니다. (Your troops will be willing on your day of battle. Arrayed in holy majesty, from the womb of the dawn you will receive the dew of your youth.)

 

<론>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성령의 충만함으로 장차 오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을 다스리시고, 원수들을 그 발아래 굴복시키시는 권능과 영광의 날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과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들이 거룩한 옷을 입고 자진해서 주께 나아간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주의 백성이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 인 것 입니다. 청년사역을 하는 목회자의 한사람으로서 오늘 본문말씀의 ‘새벽이슬 같은 청년들’ 이란 표현은 저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그러나, 저는 주 앞에서 진정한 청년들은 나이만 젊다고 청년은 아님을 믿습니다. 나이와 관계없는 영원한 주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인 것 입니다. 바로 ‘거룩한 옷을 입고 자진해서 주님 앞에 나아갈수 있는 자’ 가 청년인 것 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과연 청년사역이 무엇인가?’ 라는 우리교회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말씀을 통해 함께 성찰해 보기 원합니다. 이것을 통해 성도 여러분과 저 모두 ‘우리의 대장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군사가 되어 거룩한 옷을 입고 그분께 자진해서 나아가는 새벽 이슬같은 영적 청년들’ 로 언제나 살아갈수 있기를 소원 합니다.

 

<론>

오늘 <시편 110편>, 본문말씀은 저자가 다윗 입니다. 이것은 오늘 시편 본문이 시작 하기에 앞서 첫머리에 <다윗의 시> 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음으로서 모든 구약의 성도들이 믿었을뿐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변론 하시면서 오늘 <시편 110편>의 글을 인용 하시면서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다)” (. 22:43) 고 다시한번 시편 오늘 본문의 저자가 다윗임을 인정하셨습니다.  사실, 다윗의 시편 110편 말씀은 히브리 문학에서 가장 장엄한 노래 (=찬양)들 가운데 하나 입니다. 더욱이 <110편>은 메시야 시편의 진주 라고 불립니다. 장차 이 땅에 오실 구원자 그리스도는 이 세상을 통치할 왕이시요, 모든 원수들을 그 발아래 굴복시키실 것을 다윗은 성령의 충만함으로 예언하고 있는 것 입니다.

<1절> 의 첫시작인 “여호와께서 나의 주님에게 말씀 하셨다는 말씀에서 영어번역, ‘킹제임스버젼’ 에서는 ‘The LORD said unto my Lord’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첫단어 ‘주’ (LORD) 라는 단어를 히브리어로 바꾸어 다시 적어보면, “Yahweh said unto ‘adoni” 라고 표현됩니다. 이것은 야훼가 주에게 말씀 하셨다 라고 번역될 것 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 시편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이 시편의 말씀은 ‘성부 하나님’ 이신 ‘여호와 하나님’ 과 ‘성자 하나님’ 이신 그리스도와의 대화라고 해석 하셨다는 사실 입니다. 그리고, 그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바로 자신이라고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선포하고 계시는 것 입니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태어날것이다’ (마. 22:42) 는 구약성경의 예언을 언급하시면서, 그러나 ‘어째서 그 오실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이 될수 없는지?!’ 를 설명 하십니다. 즉, 그리스도가 다윗보다 먼저 계셨고, 다윗이 ‘주님’ 이라고 부를만큼 영광스런 존재임을 다윗의 말을 인용하여 드러내시는 것 입니다. 이분이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이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존귀하고 영광된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셔서 원수를 제압 하시고, 시온에서 여호와의 권능의 지팡이로서 세상을 심판하실 뿐 아니라 다시리시는 것 입니다. 이런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들이 거룩한 옷을 입고 나아올 것 입니다. 바로 이들이 ‘새벽 이슬같은 주의 청년이다’ 라고 다윗은 충만한 영의 은혜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 언급하고 있는 청년들은 말씀해석에서 볼수 있드시, 하나의 문자적인 ‘청년들’, 곧 ‘나이가 아직 젊은자들’ 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누가 청년들 입니까? 다윗은 <주의 권능의 날에 거룩한 옷을 입고 자진해서 주께 나아오는 자>들을 묘사하고 나서, 이들이 바로 ‘새벽이슬같은 주의 청년들’ 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나이가 젊은 청년이 됬건, 장년 혹은 나이많은 노년이 됬건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주의 권능의 날에 자진해서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나아올수 있다면 그는 ‘새벽이슬같은 주의 청년들’ 인 것 입니다. 그들이 주께 나아와서 무얼 하는 것 입니까? 다윗은 오늘 시편 말씀을 노래하면서, 장차 올 메시야가 여호와의 권능의 날에 ‘세상의 통치자 (1-3) 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영원한 제사장’ (4) 으로서 원수를 파하고, 그의 발아래 제압 한다는 것 입니다. 따라서, 주의 백성들, 곧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 이 그리스도 앞에 자발적으로 나아오는 이유는 주와 함께 원수를 무찌르기 위해 ‘여호와의 강력한 군대로 자진해서 영적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서 입니다. 여기서 ‘새벽이슬’ 이란 표현은 아름다운 시적 표현으로 ‘순결과 깨끗함’ 으로 이해하는 분도 있겠으나, 히브리원어에서 표현방식에서 볼때는 ‘엄청나게 많은 규모의 숫자’ 를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본문에 충실한 해석이 될것 입니다. 여호와의 군대로 자원하여 거룩한 옷을 입고 집결한 주의 백성, 즉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 로 구성된 그리스도의 군사가 수없이 많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 입니다. (삼하. 17:11,12)

우리 <아포슬교회>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들을 예수님을 영접할 뿐 아니라, 평생을 통해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가 되게 세워주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다> 라는 ‘우리의 비젼’ (our vision statement) 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 저는 그동안 청년들을 만나고 교제해 오면서, 얼마나 수많은 청년들이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함으로 구원의 소망없이 살아가고 있는지를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청년들에게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믿고 영원한 구원을 누릴수 있는 일에 앞장서야 할것 입니다. 그런데, 이런 불신앙의 청년들 못지않게 솔직히 저를 놀라게 하고 힘들게 한 사실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 영접했다는 많은 청년들을 보게 될때 입니다. 이들은 ‘세상의 가치관과 풍조’ 에 휩싸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서의 삶과 전혀 관계없는 헛된 삶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 입니다. 제가 지난 시간 여러분과 살펴 보았드시 ‘내가 예수님을 한번 영접’ 했다고, 모든 믿음생활이 자동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그분의 화목제물되신 의로우신 피로서 내 죄사함 받고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계속해서 나아가야 하는 것 입니다.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인도하심과 통치하심을 통해 ‘내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임에 대한 확증’ 을 누려 나가야 됩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안에서 죄와 사망으로 부터 해방되었음을 생명의 성령의 다스림을 통하여 확신해 나가야’ 하는 것 입니다. 이것이 없기에 ‘좋은 공부를 하고, 좋은 환경 가운데 살아가다고 하면서도’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갈등하고 고민하고, 방황하는 많은 크리스챤 청년들을 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훈련 받지 못하고, 성령의 진정한 인도하심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이런 청년들을 바로 세워주고, 그리스도 안에서 비젼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 또한 저희 아포슬교회의 사명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지난주에 보았던 QT 본문말씀인 ‘디모데전서 6장’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그의 영적 아들인 젊은 영적 지도자인 디모데에게 사랑과 영적 지혜를 통해 격려와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 다시 이 권고의 말씀 가운데 은혜가 된 것은 <딤. 6:12> 말씀 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원한 생명을 굳게 잡으시오. 이것을 위해 그대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그대의 신앙을 고백 하였습니다” (Fight the good fight of the faith. Take hold of the eternal life to which you were called when you made your good confession in the presence of many witnesses) (딤전. 6:12) 라고. 사도바울은 이 편지에서 우리 거듭난 성도들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것이 무엇 입니까? 그것은 ‘내가 예수 믿고 영접 하였다고 자동으로 자라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는 사실 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피흘리기까지 싸우라고 그는 준엄하게 격려하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믿음을 통하여 선한 싸움을 ‘죄와 육신에 속한 것들’ 과 싸워 나가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굳게 잡는 거듭난 자의 정상적인 삶이기 때문 입니다. 세상과 평화하고, 세상에 동화되어 지배 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결코 거듭난 자,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이라고 볼수 없기 때문 입니다.

 

<론>

사랑하는 아포슬 가족 여러분, 여러분은 현재 어떤 상태의 삶을 사고 있습니까? 아직까지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습니까? 속히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죄사함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 합니다. 이미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잘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 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라나야만 합니다. 믿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워 나가야 합니다.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워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되고 축복된 아들과 딸로서 거듭난 우리 성도의 삶의 열매인 것 입니다. 포도나무에서 포도가 맺히고, 무화과 나무에서 무화과 열매가 맺히듯 말 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다윗이 성령의 충만함으로 노래한 ‘주님의 백성들이 거룩한 옷을 입고 자원함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고자 새벽이슬과 같이 수없이 주 앞으로 나아오는 모습’ 일 것 입니다. 이런 ‘새벽이슬 같이 주님의 참된 제자로 살아가는 영원한 청년들’ 모두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