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4, 2022

“반석 위에 지은 집” (The House On The Rock)

Preacher:
Passage: 마태복음 (Matthew) 7:24-27
Service Type:

“반석 위에 지은 집”

(The House On The Rock)

12-4-22

본문말씀: 마태복음 (Matthew) 7:24~27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설교 요약]

오늘 본문의 마태복음 7장에서 주님의 말씀은 5장에서 시작되는 ‘산상수훈’ (The Sermon on the Mountain)의 마지막 결론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v.24)라고 주님은 도전하십니다.

그렇다면, 주께서 말씀하시는 ‘반석’ (rock)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먼저

  • ‘여호와 하나님’이 반석 되십니다 (시편 18:2)
  • ‘신앙고백’이 반석입니다 (마태복음 16:18)
  • ‘주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반석입니다 (마태복음 7:24)

3가지 모두 성경에서 언급된 반석의 의미이지만,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반석’에 해당하는 정확한 의미는 3번째임을 알수 있습니다. ‘주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 입니다.

또한 주께서 경고하신 모래 위에 지은 집의 경우에 “‘그 무너짐이 심할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그것은 주께서 앞절에서 2번의 비유로 경고하신 것으로서,

  • ‘넓은 문’으로 들어감으로 멸망에 이르게 됨 (v.13-14)과
  • ‘나쁜 열매’맺음으로 찍혀 불에 던져 짐 (v. 18-20)을 뜻합니다

이것은 바로 주님의 최후심판에 받게 될 악인의 멸망, 곧 지옥불의 심판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주님의 준엄한 경고의 말씀을 통해 제가 깨닫게 되는 것은 ‘구원은 행위가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구원받은 자는 반드시 그 구원의 증거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하고,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1-32)고.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거한다’는 의미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또한 행하는 것’ 입니다. 그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주의 참된 제자가 되고, 진리를 통해 자유케 된다고 주님은 약속하십니다.

이 자유는 ‘죄와 사망’으로 부터의 자유 (롬. 8:1)입니다. 그리스도의 성령의 법을 통해 죄로부터 자유케 됨으로, 영생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진리되신 말씀 안에 거하여 죄를 이기고, 견고한 구원의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성도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설교 전문]

많은 성경학자들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여러 가르침 중에서도 ‘산상수훈’ (The Sermon on the Mountain)을 그분의 가르침의 핵심이라고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이 ‘산상수훈’ 가운데서 ‘팔복’으로 불리는 ‘누가 복있는 자’인지를 가르쳐 주시고, ‘누가 천국에 속한 자’인지를 다양한 <천국 비유>를 통해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장>을 시작하면서 시작되는 주님의 산상수훈은 <마태복음 7장>의 오늘 본문말씀을 끝으로 삼장에 걸친 말씀은 마무리됩니다. 그럼으로 주님께서 한편의 긴 천국복음의 말씀을 마무리하시면서, 마지막 결론처럼 하신 오늘말씀은 우리 성도가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말씀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치 않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반대로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행하는 지혜로운 자 곧 ‘반석 위에 지은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반석 위에 집을 짓고자 결단함으로 주의 구원의 은혜와 약속하신 유업을 누려나가는 지혜로운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기대합니다.

앞서 말씀 드린대로,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산에 오르셔서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마. 5-7장>에 이르는 주님의 가르침은 한편의 ‘긴 설교’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 각 장마다의 소주제도 살펴봐야 하지만 ‘산상수훈’이라는 전체 주제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관점을 놓치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주님의 산상수혼의 주제를 “천국시민의 헌장”이라고 정의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사람들의 태도나 방법을 본받지 않고 (6:8), 하나님의 법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주님의 가르치심 (5:48)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산상수훈’을 그 내용면에서 살펴본다면, 먼저 ‘천국시민의 특징과 그들이 누리게 되는 8가지 복’을 <마. 5:3-12>에서 주께서 가르치셨고, 이어지는 <5장> 뒷부분에서 천국시민의 진정한 모습은 ‘빛과 소금’이 되는 것임 (5:13-16)과, ‘살인, 간음, 이혼, 맹세, 복수, 사랑 등’을 예를 들면서 ‘하나님 나라의 의’가 무엇인지를 가르치셨습니다 (5:21-28). 그리고 이어지는 <마. 6-7장>에서는 천국시민의 마땅한 생활인 ‘구제’ (6:1-4)와 ‘금식’ (6:16-18)과 ‘재물관’ (6:19-34) 그리고 ‘이웃에 대한 태도’ (7:1-5)와 종합적으로 천국을 추구하는 시민의 자세로서 ‘구하고, 찾고, 두드릴 것’을 격려하면서 (7:6-13) ‘좁은 문으로 들어갈 것’과 ‘좋은 열매를 맺을 것’ (7:14-23)을 도전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 앞까지의 주님의 산에서 가르치신 내용입니다. 그리고나서, 주님은 결론적으로 오늘 말씀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산상수훈’ 전체의 목적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서 주께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 (v.24) 이라고 시작하는 <24절>의 “그러므로”는 바로 앞 절의 답변이기도 합니다. 즉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v.23)에 대한 결론일 수도 있지만, 저는 그것보다도 주님은 산상수훈 전체의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너희가 만약 내 말을 깨닫고 이해한다면, 그러므로”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러므로’는 <마. 5-7장> 전체를 받는 것입니다. ‘이제 나의 이런 천국복음을 이해했다면, 그러므로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행함으로 지혜로운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말씀의 결론인 것입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오늘 말씀을 살펴볼 때, 먼저 주님은 ‘반석 위에 집을 지어야 할 것’을 그의 제자된 우리들에게 도전하십니다. 그렇다면, 주께서 말씀하시는 ‘반석’ (rock)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먼저 시편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반석>되심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 18:2)라고 말입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반석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 성도의 신앙고백이 반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 하느냐” (마. 16:15)는 주님의 질문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6)라고 대답합니다. 그때 주님은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8)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주께서 말씀하시는 “이 반석”은 무엇을 뜻할까요? 이 반석을 카톨릭 성도들은 베드로라고 해석합니다. 베드로라는 그의 제자 위에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주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프로테스탄스 교회 성도들 대부분은 여기서 주께서 말씀하시는 ‘반석’은 인간 베드로가 아니라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라고 이해합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주님을 향한 신앙고백이라는 반석 (=기초석) 위에 자신의 교회를 세울 것임을 약속하셨다고 말입니다.

물론, 방금 말씀드린 ‘하나님께서 반석’되심, 그리고 ‘성도의 신앙고백’ 또한 ‘믿음의 반석’됨을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지만, 오늘 <24절> 말씀에서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으라)”는 도전에서 의미하는 반석은 주께서 바로 같은 절 앞에서 말씀에 열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 7:24)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반석 위에 집을 지는 지혜로운 자의 삶’ (v.24)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주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그 말씀을 따라 행치 않는 사람’은 ‘그 집을 모래 위에 짓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v.26)고 주님은 그의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곧 든든한 기초가 되어,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결코 그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석이 무엇을 뜻하는지?>라는 질문에 이어서 두번째 질문은 이것입니다. ‘말씀을 듣기만하고, 행치 않는 사람’은 ‘그 집을 모래 위에 짓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은데 그 이유는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었을 때, 그로 인하여 그 집의 무너짐이 심할 것이다’ 고 주께서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주님말씀의 ‘무너짐이 심할 것이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화/ 팔레스타인의 모래 언덕) 저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태복음 7장>에서 오늘 본문 앞에서 주께서 2가지 비유의 말씀으로 경고하시는 것이 무엇을 이해해 나갈 때 더 분명해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첫번째는 ‘좁은 문’에 관한 비유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v.13-14)고. 여기서 ‘좁은 문’은 생명 곧 천국으로 인도하는 문이요, ‘넓은 문’은 반대로 멸망 곧 지옥으로 인도하는 문임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그 열매로 그들을 알다’는 비유의 도전입니다. 주님은 먼저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 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v.18-20)고 선언하십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어지는 문장에서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v.22)라고 많은 사람들이 불어 짖었을 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v.23)고 주께서 준엄하게 선언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좋은 열매가 천국에 들어가게 됨’을 상징적으로 비유한 것이라면, ‘나쁜 열매를 맺음으로 찍혀 불에 던져 진다는 것이 지옥에 가게 됨”을 뜻함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의 ‘그 기초를 반석 위에 지은 집’이란 의미는 앞의 두가지 비유로 본다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좋은 열매 맺는다’는 뜻입니다. 반면, ‘그 기초를 모래 위에 지은 집’이란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또한 ‘나쁜 열매 맺는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모래 위에 지은 집의 결과는 필연적으로 ‘그 무너짐이 심하게 될 것’이고 이것은 바로 ‘멸망이요, 지옥 불에 던져지게 됨’을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께서 7장에서 몇가지 비유를 통해 강조하시는 목적입니다. 그것은 ‘신앙의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불신의 삶을 살 것인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좁은 문이냐 vs 넓은 문이냐?’ ‘좋은 열매 맺느냐 vs 나쁜 열매 맺느냐’ 그리고 ‘반석 위에 집을 짓느냐 vs 모래 위에 집을 짓느냐’로 다양하게 비유를 통해 동일한 주제를 강조하시는 주님의 목적인 것입니다.

사실 오늘 제가 말씀드린 것이 어느 것 하나 이해하기 힘들고 까다로운 것은 없다고 믿습니다. 단지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린 것의 문제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제가 오늘 제가 한가지 성도 여러분 각자가 자신을 돌아 보기를 원하는 것은 ‘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잘 행하지 못하는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마음은 원이로되, 여전히 주님의 말씀을 잘 실천하지 못하고, 순종하기 힘들다’고 인정하신다면,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인 것 같습니까? 의지와 결단력이 부족해서 입니까? 영적으로 부지런하지 못하고 게을러서 입니까? 혹은 세상이 줄 것 같은 쾌락과 풍요와 권력의 유혹이 너무 강렬해서 입니까?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관계없이, 문제는 ‘여러분은 반석 위에 집을 짓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여러분은 현재까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분명한 평가라는 사실입니다.

제가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할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의 구원은 <성령의 은혜>를 통한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구원받은 자라면 그 구원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만 한다’고 도전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앞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v.21)고 강하게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주님의 의중은 무엇일까요? 이것을 매튜 헨리는 이렇게 주석합니다. “이런 주님의 도전은 우리로 하여금 ‘주여 주여’하지 말며 주의 이름을 부르거나 담대히 고백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는 경건의 능력은 없으면서 모양만 가지고 그렇게 부르는 것으로 안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경건의 삶을 살지 못하면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내 구원은 보장된 것처럼 안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오늘 주께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자가 되라’고 도전하심을 통해 그분을 믿는 우리 성도들이 진정 어떤 삶을 살아가길 원하시는지를 결론적으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서 주께서 주신 한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 말씀은 예수께서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1-32)고. 우리 모든 거듭난 성도는 주님의 제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있는지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if you continue in my Word, you are really my disciples)라고 주님은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주님의 말씀은 ‘권능의 말씀’이기에, 그 말씀만이 우리 인간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참된 그분의 제자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다른 것으로 변화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변화의 궁극적인 결과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것은 ‘주님의 제자만이 누리게 되는 진리를 깨닫음으로, 그 진리로 말미암아 자유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자유는 곧 ‘죄와 죽음에서의 자유’입니다. 사도 바울이 선언했듯이, 우리 구원받은 자가 생명의 성령의 법을 통해 누리게 되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는 자유)” (롬. 8:1)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그분의 말씀을 통하여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를 누린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많은 크리스챤들은 구원을 천국가서 영원한 생명 얻는 것으로만 이해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 구원은 언제나 ‘죄로부터의 자유’함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주의 말씀을 통한 죄로부터의 자유가 우리를 의롭게 하고, 이것이 죽음에서 해방되는 영생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죄로부터의 자유가 사망으로부터의 자유로 나아가는 선결조건인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진리의 말씀을 통하여 변화된 참된 그의 제자들에게 이런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자유케 되는 축복이 임하게 된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자’의 삶의 핵심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집을 짓고 있습니까? 낭만 넘치는 언덕 위에 하얀 집을 짓고 있습니까? 아니면 궁궐같이 화려한 집을 짓고 있습니까? 어떤 집을 짓든 그것은 여러분의 자유이지만, 그러나 한가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다면, 언젠가 바람이 불고 홍수가 날 때 그 무너짐이 심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반석 위에 집을 짓는다면, 여러분의 집은 태풍이 불고 홍수가 나더라도 결코 흔들림없이 든든히 설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반석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반석 위에 집을 건축하는 지혜롭고 축복된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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