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15, 2022

“부모와 자녀” (II) (Parents and Children)

Preacher:
Passage: 에베소서 (Ephesians) 6:1~4
Service Type:

“부모와 자녀” (II)

(Parents and Children)

5-15-22

본문말씀: 에베소서 (Ephesians) 6:1-4

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Children, obey your parents in the Lord, for this is right.)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Honor your father and mother” – which is the first commandment with a promise--)

3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that it may go well with you and that you may enjoy long life on the earth.”)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Fathers, do not exasperate your children; instead, bring them up in the training and instruction of the Lord.)

[설교 요약]

우리는 지난 주에 ‘자녀들에 대한 부모 공경’에 이어, 오늘 크리스챤 부모를 향한 자녀양육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도는 자녀양육에 있어서 먼저 ‘부정적’인 것부터 말합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v.4a)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너희 자녀를 노엽게 말라”는 사도의 권고는 오늘날 일부 교육학자들이 주장하는 ‘모든 것을 대화로 풀어가라’든가 ‘어떤 경우라도 체벌은 않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누누이 이렇게 분명한 징계를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매를 아끼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잠. 13:24);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 22:6)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가 크리스챤 부모에게 경계하는 것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의 양육하는 <태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일관성 없고, 성급하고,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이요 비인격적인 태도가 자녀를 노엽게 합니다.

이것이 사도가 두번째로 자녀양육에 있어서의 ‘긍정적’인 가르침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바로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v.4b)는 것입니다. 여기서

  • ‘교양’(nurture)은 헬라어 <파이데이아>로서 ‘교육, 훈련, 징계’ (discipline/ training/ chastisement)등의 의미입니다
  • ‘훈계’(admonition)는 헬라어 <누데시아>로서 ‘훈계, 권면, 경고’ (exhortation/ caution/ lecture)의 뜻입니다

여기서 “주의 교양”으로 훈련하고 징계하는 실제적인 행동을 하고, 또한 “주의 훈계”로 자녀를 권면하고 경고하는 모든 말로 하는 가르침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앞서 살펴 본대로,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도록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지혜롭게 그들을 양육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의 부모에게 있어서 자녀교육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구원의 신앙’ (the saving faith)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남으로 자녀가 누리는 은혜를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진정한 신앙을 아이들이 가지게 하는 시작은 말과 행위 이전에 ‘마음’의 변화를 통해 가능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잠.4:23/ 눅.6:4-5).

무엇보다도 자녀들이 자신의 죄성을 이해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자녀로 죄를 이기고 성령의 다스림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로 복된 삶으로 인도하는 신앙의 부모들 되시길 기대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지난 주 사도 바울이 주를 믿는 자녀들을 향해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6:1)고 영적으로 지도함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요, 이는 자녀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는 길’ (v.2-3)이 되기 때문임을 사도는 십계명의 <제 5계명>을 인용하면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모든 인간관계의 출발점으로, 그리고 약속하신 축복을 내리시는 첫 계명으로 허락하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부모에 대한 공경’은 본질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공경’ 즉 ‘경외함’으로 나아가는 길이요, 영적으로 훈련되는 최선의 방법이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지난 주에 이어서, 크리스챤 부모들에게 어떻게 그들의 자녀를 양육할 것인지에 대해 사도의 가르침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는 아비들로 통칭되고 있는 크리스챤 부모를 곧 ‘아버지와 어머니들’에게 도전합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v.4)라고 말입니다. 먼저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크리스챤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행해야 할 그 수없이 많은 영적 가르침과 본을 사도는 단 한문장으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v.4a) 하면서 권면을 시작합니다. 사도는 크리스챤 부모들에게 자녀들을 대함에 있어서 먼저 ‘부정적인 것’부터 언급하는 것입니다. 즉 ‘하지 말아야 할 것’부터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Do not exasperate your children)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자녀들을 노엽게 해서는 안될 것입니까?” 여기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사도가 주장하는 것이 “너희 자녀의 성미를 건드리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화나게 해서는 안되고, 아이들이 기분 좋게 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날의 교육 전문가라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언제나 아이들을 부드럽게 대하고, 아이들과 대화로 모든 문제를 풀어가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럼으로 이런 사람들을 소위 ‘체벌’은 전혀 자녀교육으로 바람직하지 않음으로 금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와 같이 일부 교육학자처럼 자녀에 대한 ‘처벌’을 금지하고 자녀에게 언제나 부드러운 말로 지도하는 것이 여기에서 사도가 말하는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뜻일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언제나 성경의 중심되는 가르침을 따랐는데, 그럼으로 필요에 따라 눈물이 나도록 매서운 자녀에 대한 징계가 있어야 한다고 사도가 여겼으리라고 저는 믿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언제나 이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매를 아끼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잠. 13:24)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잠. 23:13)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 22:6) 이와 같은 성경말씀은 언제나 아이들을 대화로 부드럽게 교육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강하게 징계해야 할 때가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크리스챤 부모가 조심해야 하는 것은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혹은 징계함에 있어서 <어떤 자세>로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비록 아직까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1-2살 먹은 어린 아이들도 뭔가를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음에도 행했을 때, 그것을 알아듣게 꾸짖으면 (=나무라면) 금방 자기의 잘못을 수긍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부모들의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이를테면, 부모의 일관성 없는 기준으로 신경질적인 반응, 버럭 ~ 화내고 흥분하고 윽박지르며 아이의 행동에 비이성적이요, 비인격적으로 반응할 때 아이들은 결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자녀들이 부모에 대해 화를 반항적으로 되는 것은 아이들이 자신의 행동이 전혀 잘못한 것이 없어서라기 보다도, 일관성 없고, 비인격적인 부모의 반응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빠와 엄마’ (부모)는 어떻게 자녀를 대해야 하는 것일까요? 저는 이부분이 앞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부정적>인 것에 이어 ‘해야 할 것’에 대한 <긍정적>인 것에 대해 사도가 크리스챤 부모들에게 권면하는 내용이라고 이해합니다. 즉 ‘무엇 무엇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v.4b)는 것입니다. 여기서 ‘교양’(nurture)이라는 헬라어 원어는 <파이데이아>로서 ‘교육, 훈련, 징계’ (discipline/ training/ chastisement)등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리고 ‘훈계’(admonition)라는 단어는 헬라어에서 <누데시아>로서 ‘훈계, 권면, 경고’ (exhortation/ caution/ lecture)의 뜻을 가집니다. 여기서 “주의 교양”으로 교육하고 훈련하고 징계하는 실제적인 행동을 하라는 의미이고, 또한 “주의 훈계”로 자녀를 권면하고 경고하는 모든 말로 하는 가르침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구약성경에 기록된 중요한 자녀교육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민족의 지도자, 모세는 40년간의 광야생활을 마감하고 이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고자 진격하고자 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마지막 고별설교를 하는 장면입니다. 이 고별설교에서 모세는 하나님꼐서 이스라엘민족에게 명령하시는 가장 중심되는 말씀을 <신명기서 6장>에서 선포합니다. 이 말씀은 정통 유대종교를 따르는 이스라엘민족들에게 있어서는 수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날마다 외우고 묵상하는 그야말로 그들 삶의 중심이 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소위 “들으라 이스라엘아”로 시작되는 <신명기 6:4>의 히브리 원어인 “쉐마 이스라엘”로 불리어지는 (=시작되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듯이 이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들으라 이스라엘아,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4-5)고.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렇게 계속됩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 6:6-7)라고 말입니다. 저는 이것을 2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너희 자녀에게 부지런히 말씀을 가르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어떤 의미에서는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크리스챤 부모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이 바로 이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것이 오늘 에베소서 본문 말씀에서 사도가 믿음의 부모들에게 도전하는 핵심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네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라” (신. 6:7)는 신명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명령은 이제 사도 바울을 통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적용하여 선포되는 것입니다.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v.4)고 말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성도 자신의 신앙 뿐 아니라, 그의 자녀들에게 신앙으로 훈련되고 양육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심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서 사도가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잠시 살펴보았지만, 오늘 말씀에서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권고했을 때, 이런 자녀에 대한 신앙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는 점을 우리는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사도의 권고가 크리스챤 부모에게 자녀들을 양육하는 핵심적인 가르침이라고 한다면, 그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녀가 ‘구원에 이르는 신앙’ (the saving faith)일 것입니다. 다르게 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분을 경외하는 법을 배워 나감으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과 은혜를 누려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인격적으로 복음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복된 삶을 시작하게 하고, 더 성장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목적은 일반적으로 성인인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제시함으로 그리스도를 영접케하는 복음전도의 목적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 아이가 비록 나의 자녀지만 그 아이를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인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케 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여 주 안에서 자라나게 돕는 것이 믿음의 부모에게 주어진 가장 우선적인 의무인 것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아이들이 구원의 복음을 어떻게 잘 이해하도록 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고, 계속해서 자라가게 할 것인가가 크리스챤 부모의 목표임을 생각할 때, 이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아이들을 노엽게 하는 것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아이들을 노엽게 할 때, 복음으로 그들을 양육할 기회가 막혀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생각하면서, 존 맥아더 목사가 제시한 소위 <자녀를 노엽게 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만약 아이들이 노엽게 되고, 부모와의 진정한 인격적 소통이 가로막히길 원한다면 이 방법을 써보라’는 식의 반어법 적인 도전을 하는 것입니다.

첫째, “그들을 버릇없게 만드세요”: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고, 단지 그들은 당신 뒤에 숨겨 두세요. 그리고 그가 잘못했을 때 약간 잔소리 정도 하다가, 결코 혼내지 마세요, 남을 위해 희생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게 하고 단지 이기적인 아이로 만드세요!

둘째, “자녀들이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도록 가둬 두세요”: 그들이 어떻게 독립적으로 설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지 말고 단지 당신만을 의존하게 하세요. 그렇게 할 때, 그들은 결국 당신 대신에 약물과 알콜에 의존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아이들을 편애하세요”: 이삭이 에서를, 리브가가 야곱을 편애하듯이 자녀들을 편애하세요. 그러면 그 아이들은 노엽게 될 것입니다.

넷째, “아이들이 죄지었을 때 대가지불없이 달아나게 하세요”: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아들들에게 보인 제사장 엘리의 잘못된 신앙교육이 자기 가정 뿐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에 까지도 재앙을 초래했음을 <사무엘서> (삼상. 2-4장)는 준엄하게 고발하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다섯째, “아이들이 실수를 통해 배우지 못하게 하세요”: 여러분은 아이들이 실수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대신, 그 실수에 대해 화내거나 질책함으로써 그들이 배우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놓쳐서는 않되는 한가지 진실히 있습니다. 그것은 <잠언서 4장>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4:23)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인간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마음이 우리의 말과 행동을 결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은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눅.6:4-5)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밖으로 드러나는 행위 이전에 우리 속에 있는 생각 곧 마음인 것입니다.

따라서 아이들의 행동을 바꾸는 것은 양육의 핵심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정말이지 마음 (=중심)의 변화 없는 행동의 변화는 아무것도 아니요, 그것은 도리어 무서운 위선을 가르칠 뿐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자녀들이 스스로 얼마나 ‘죄악된 마음’ (a sinful heart)을 가진 존재인지를 깨닫게 도와 주십시요. 문제는 ‘하는 말과 행동이 잘못되고, 예의 없는 것이 문제’이기 이전에, 이미 아이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부패 (the inner corruption)가 문제인 것입니다. 입으로 나오는 악한 말과 행동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로 다만 드러나는 것임을 그들로 알게 하십시요. 그럼으로 자녀양육 (=교육)은 그들의 ‘마음’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단순히 밖으로 드러난 행동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여러분은 자녀들을 단지 죄에 대해 겁먹거나, 죄책감에 빠트리는 것에 그쳐서는 안되며,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죄용서 받고 하나님과 화해함으로 그분의 복되고 영광스런 자녀가 되게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베소 전체의 요지요, 사도가 신앙의 부모들에게 도전하고 격려하는 결론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라고. 여러분 각자가 현재 부모의 위치에 있든, 혹은 머지 않아 미래의 부모가 되든 관계없이 하나님은 우리 믿음의 가정에 소중한 자녀를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 자녀들을 양육해야 할까요? 그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인내와 사랑으로 양육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의 교양과 훈계로 그들을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로 거듭나게 하고, 복음으로 양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부모의 아름다운 삶을 실천하는 복된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