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14, 2018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Though the fig tree does not bud)

Preacher:
Series:
Passage: 하박국 (Habakkuk) 3:17~19
Service Type: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Though the fig tree does not bud)

1-14-18

본문말씀: 하박국 (Habakkuk) 3:17~19

17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Though the fig tree does not bud and there are no grapes on the vines, though the olive crop fails and the fields produce no food, though there are no sheep in the pen and no cattle in the stalls,)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yet I will rejoice in the Lord, I will be joyful in God my Savior.)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The Sovereign Lord is my strength; He makes my feet like the feet of a deer, He enables me to go on the heights.)

<서 론>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과 함께 구약의 하박국선지자가 고백한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신앙고백을 통하여 성도 여러분과 함께 믿음의 비밀과 능력을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기 약 6~700여년 전에 활동한 선지자였습니다. 하박국서는 세장에 걸친 비교적 짧은 분량의 말씀 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중심주제라고 할수 있는 ‘구원 받은자, 의인’ (롬. 1:17) 을 정의하면서 하박국선지자의 글을 인용 했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 2:4) 고 말 입니다. 하박국선지자는 하나님의 영, 성령의 충만을 통해 누가 의롭다고, 누가 죄없다고 인정함을 받는 자 인가를 선언하고 나서, 그 의인의 삶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오늘 본문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 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믿음으로 구원받고 의롭게 된자라면, 오늘 말씀을 통해 구체적인 삶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것인가를 우리는 하박국선지자의 신앙고백을 통해 배워야 할것 입니다. 오늘 말씀에 대한 묵상 가운데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 (17,18) 할수 있는 성도 여러분의 축복된 삶 사시길 간절히 소원 합니다.

<본 론>

하박국서의 저자, ‘하박국’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동사 <하바크>의 ‘포옹하다, 매달리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의미를 가지고 마르틴 루터는 ‘하박국 선지자는 자기 백성을 위로하고 그들의 삶을 껴 안고 포옹한다’ 는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했고, 어떤 신학자는 ‘하박국선지자가 한명의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에 의해 포옹을 받는다’는 수동적인 의미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어느 것이 되었건 모두 일치되는 것은 ‘포옹한다’ 는 것이요, ‘껴 안는다’ 는 것 입니다. 하박국선지자는 그의 민족의 허물과 죄를 껴 안았고, 또한 하나님의 폼에 안김을 받았던 것 입니다. 수동적이든 능동적이든 말 입니다.

그리고, 하박국서의 대표적인 특징은 대부분의 선지자들의 글이 <하나님의 심판과 예언의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선포하는 형태> 라면, 이 하박국서는 <하나님과 선지자 자신과의 대화형태> 가 전체 내용을 이루고 있다는 점 입니다. 그는 자기 민족 남유다의 심각한 죄악상과 이방 강대국의 횡포에 대해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악을 허용하셨는지?’ 를 질문하며, 그분의 선하신 개입과 바르게 하여 주실것을 호소 했습니다.(합. 1:1-4, 12-17) 하나님은 그의 질문과 호소에 침묵하지 않으시고 신실하게 구체적으로 응답하여 주셨습니다.(합. 1:5-11, 2장)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악을 다루시고, 그의 온전한 선을 이루실 것인지를 깨닫게 해 주신 것 입니다.그때 하박국 선지자는 비로소 자신의 무지함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긍휼에 무궁하심을 그의 감겼던 눈을 떠 바라보면서, 구약에서도 가정 아름답다고 인정함 받는 ‘감사의 기도’ 이자 ‘가슴 깊은 곳에서의 찬양’ 을 마지막 3장에서 고백 함으로서 그의 글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찬양의 절정이 바로 오늘 본문말씀, ‘17~19절’이 될 것 입니다.

저는 오늘 하박국선지자의 삶과 고백을 통해서 저를 포함한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이 반드시 배우고 삶에 실천해야할 한가지 자세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삶의 문제를 혼자서 끌어 안고 고민하지 말고, 그것을 하나님께로 가지고가서 해결함 받는 자세’ 라는 점 입니다. 이것이 ‘하박국 선지자’ 에게서 진실로 돋보이는 점 입니다. 그가 평소에 얼마나 흠없이 깨끗하게 살았는지는 알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고백 (합. 2:4) 을 통해서 그는 ‘오직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 믿음을 통해 죄 없다고 인정함 받고, 의롭게 되었다’ 는 진리를 붙들었던 의인의 삶을 살았음을 우리는 적어도 이해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통한 의인의 삶은 ‘어떤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바뀔수 없고, 취소될수 없는 축복된 삶’ 이라는 것 입니다. 왜 축복된 삶 입니까? 그것은 돈을 많아서도 아니요, 건강해서도 아니요,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하는 행운의 삶 이라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를 지키시고, 그를 아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는 그분의 품안에 있는 자녀의 삶’ 이기 때문 입니다. 이것이 하박국이 “왜 하나님께서 나의 힘이시요 ~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19) 라고 고백할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유인 것 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자녀의 삶을 결코 모른채 하시지 않으시고, 그 삶에 있는 어떤 고통과 악의 문제를 가볍게 넘어가지 않으시고, 가장 적극적으로 그리고 그분의 선하시고 사랑 많으신 뜻데로 그의 자녀를 살리시고 믿음으로 승리케 하시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선하신 계획을 그의 구하고 간구하는 자녀에게 숨기지 않으시고 밝히 보여 주시는 것 입니다. 이것이 하박국선지자가 자기 동족 유대민족과 주위의 더 악한 이방 강대국 바벨론 & 갈대아인들의 죄악에 대한 불만과 ‘하나님께서 왜 악을 허락하시는가?’ 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인 것 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선을 행하시고, 의의 심판을 이루신다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하박국선지자가 고백한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할수 있는지?”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의 신학적인 이론이 아니라, ‘이 악한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들이 어떻게 승리하는 삶을 살수 있는가?’ 라는 매우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것 입니다. * “어떻게 성도들은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함에도 불구하고 기뻐할수 있을까요?” (How are the saints able to rejoice in the Lord, even-though the fig tree does not bud?);

첫째,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 입니다 (Because we may see the world by the our eyes of faith): 저는 지난시간 성경에서 ‘무엇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건’ 에 대해 말씀 드렸습니다. 그것은 무엇 입니까? 그것은 바로 <민수기 21:4-9> 에 나오는 ‘놋뱀사건’ 입니다. ‘놋뱀사건’ 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 입니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너희가 마음으로 하나님이 너희를 살리실것을 믿으면 살게 될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장대에 높이 달린 놋뱀을 본자는 살것이다” (민. 21:8) 고 말씀 하셨다는 것 입니다.

물론 우리는 압니다. 그것은 ‘모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그를 마음으로 믿음으로 살게 된다’ 는 것을. 그러나, <민수기 21장> 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도전하시는 것은 무엇 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눈을 들어 봐라 보아야 한다’ 는 사실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너가 나를 믿는다면 눈을 들어 바라 보아야 한다!!’는 것 입니다. 이런 ‘눈을 들어 보는 것을 하나님은 요구 하신다’ 는 것 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내가 눈을 들지 않아도 하나님을 믿는줄 하나님은 아시지 않느냐?!’ 고 반문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장대위의 놋뱀’을,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 를 반드시 바라 보아야 한다고 요구하시는 것 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렇다면, ‘무엇이 눈을 들어 놋뱀을, 아니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일까요?’ 그것은 ‘현재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수 있는가? 하는 것 입니다. 현재 내가 심각한 병 가운데 고통 받거나, 직장을 구하지 못하여 힘들어 하거나, 재정적인 어려움, 사람과의 관계성으로 인한 고통,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현재 여러분이 당하는 어려움을 믿음의 눈을 떠서 바라볼수 있다면, 나는 기뻐하고 즐거워 할수 있다는 것 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히. 11:6) 믿음의 눈이 없이는 세상은 온통 불평과 불만의 거대한 집합소 입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때 우리는 이 세상 가운데 좌정하셔서 죄악과 공중권세 잡은 자 사단마귀를 반드시 멸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승리를 바라볼수 있는 것 입니다. 오직 믿음의 눈으로 말 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대답 하시기 때문’ 입니다 (Because the Lord answers our questions (appeal, complain)): 시편에 보면, 한 시편기자는 하나님께 불평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 입니까? 이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 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건만, 나는 ~ 그 믿음을 버리고 미끄러질뻔 했구나” (시. 73:1,2) 라고 고백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내가 악인들이 잘 되는 것을 보고 그들을 질투 하였다” (3)는 것 입니다. “그들은 평생토록 아무런 고통도 없이 건강하게 지내며, ~ 교만을 목걸이 삼고 폭력을 옷으로 삼으며 ~ 하나님을 대적하고 ~ 언제나 편안한 생활을 하고 그들의 재산은 날로 늘어만 간다” (4~12) 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악인이 잘되고, 착한 자가 고통받는 이 세상의 불공평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진 적이 없습니까?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이런 불의하고 불공평한 상황을 수없이 목격 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 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인줄 압니까? 문제는 ‘이 시편기자가 세상의 악에 대해, 악인이 잘되는 이 세상의 불공평을 불평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통치’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깨닫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이러한 사실을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는 것 입니다. 어떻게요? 그는 이렇게 고백 합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간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7) 라고. 무엇을 깨닫았다는 말 입니까? 악인의 심판을 깨닫았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성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영이 거하시는 곳에 이르렀을때, “하나님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셔서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순식간에 멸망하여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18~19) 고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그는 이런 것을 알지 못한 그의 영적 상태를 “어리석고 무식하여 주앞에 짐승과 같습니다” (22) 고 고백 했습니다. 시편기자뿐 아니라 우리 모든 크리스챤들도 하나님께서 성경에 분명히 대답하여 주시는 말씀을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그와 같이 어리석게도 불평하고 불만하는 것’ 입니다. ‘왜 악인들이 잘 먹고 잘살고, 의인이 고통받는 것인가요?’ 하고 말 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런 그의 자녀들을 위한 수없이 많은 약속과 속히 임할 최후의 진리를 밝혀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악인의 잘됨을 부러워 말고, 고난을 이기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고 말 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악인을 멸망의 심판으로, 의인을 생명의 심판으로 갚으시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악인의 잘 됨을 부러워 합니까? 기록된 성경말씀을 살펴 봄으로 그의 자녀에게 약속하시는 ‘악인과 의인의 최후’ 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있습니까?

셋째, ‘성령께서 증거하시기 때문’ 입니다 (Because the Holy Spirit testifies us our Sonship): 저는 그동안 여러번의 설교를 통해서 우리 거듭난 성도들에게 있어서 ‘성령님의 절대적인 역활’ 이 무엇인지를 강조 드린바 있습니다. 저는 비록 예수 믿고 영으로 거듭난 성도라 할찌라도, 성령의 충만한 은혜와 도우심이 없을때 불행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수 있음을 강조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어떻게 불행한 그리스도인이 있을수 있는가?’라고 질문 하신다면, 저는 여러분들에게 ‘구원받은 자의 삶은 어떤 삶일 것인가?’ 를 우리 각자가 심각하게 물어보고 이해해야만 한다고 도전하기 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난 자의 삶은 ‘영생을 소유한 삶’ 일 것 입니다. ‘영생을 소유 했다는 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 처럼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요. 17:3) 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우리 믿는 자는 어떻게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나가는 영생’의 삶을 살아 나갈수 있을까요? 이 마지막 질문을 답하는 가장 중심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 성령의 은혜와 능력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의 상태를 이렇게 선언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롬. 8:1) 는 것 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하였음이라” (롬. 8:2) 는 것 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게 될때 ‘성령을 통해 죄와 사망의 법’ 에서 해방되게 되는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는 것을 사실 입니다. 이것은 크리스챤의 출발점 입니다. 거듭난 자는 이제 죄와 사망이 다스리는 영역에서 성령님에 의해 은혜가 왕노릇하는 영역으로 옮겨진 것 (롬. 5:21) 입니다. 이것이 거듭난 자의 영적 출생인 것 입니다. 이제 그는 자라나야 합니다. 반드시 영으로 자라나야 하는 것 입니다. 어떻게요? 성령의 증거하심을 통해서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양자의 영을 통하여 증거하실 뿐 아니라 ~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롬.8:15,16) 을 받는 것은 자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고 저는 말씀 드렸습니다. 바로 우리 각자의 인격적인 믿음의 반응을 통해서 입니다. 성령은 바로 우리 각자의 성령님을 향한 이런 인격적 반응을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격적인 반응 입니까?성령을 사모하고, 순종함을 통해 충만한 성령의 증거를 받게 되는 것 입니다. 이런 성령님의 충만한 증거를 통하여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점점 더 자라나고, 그 분의 뜻 안에서 성장해 나가는 것’ 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박국선지자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3장의 노래를 이렇게 시작 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합. 3:1) 라고.성도 여러분, 여기서 하박국 선지가 하나님께 ‘이 수년 내에 부흥케 되기를 간구하는 주의 일’ 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 입니다. 진노하시는 심판 입니다. 그 진노의 심판은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는 것” (합. 3:16) 같다고 하박국은 고백하지만, 하나님의 일이 속히 임하시길 간구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악인의 번영보다 참된 희망을 가져오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우리를 치시는 혹독한 징계가 악인이 누리는 안락함보다 우리를 진정으로 살리는 은혜가 되기 때문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앞에 놓인 고난과 징계는 무엇 입니까? 바라건데, 여러분 앞에 놓인 고난과 징계의 아픔을 넘어선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볼수 있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기대 합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할찌라도, 내 삶이 하나님의 손길 안에 있음을 신뢰 함으로서 이 모든 상황 가운데 나의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 하고 기뻐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축복된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소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