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21, 2018

“성령의 충만을 받아라” (Be filled with the Spirit)

Preacher:
Series:
Passage: 에베소서 (Ephesians) 5:17,18
Service Type:

“성령의 충만을 받아라”

(Be filled with the Spirit)

1-21-18

본문말씀: 에베소서 (Ephesians) 5:17,18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Therefore do not be foolish, but understand what the Lord’s will is.)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Do not get drunk on wine, which leads to debauchery. Instead, be filled with the Spirit.)

<서 론>

저는 오늘 성도 여러분과 함께 ‘성령의 충만을 받아라’ 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은 자라면, 여러분과 성령님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 일까요?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왜 여러분은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성도 여러분과 함께 ‘거듭난 성도들과 성령과의 관계는 무엇’이며, ‘왜 성도들은 반드시 성령께 순종함으로 ‘성령충만을 받아야 하는지’를 살펴 보기 원합니다. 저는 성도 여러분 모두, 이 성삼위의 거룩한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하신 모든 자녀의 권세와 유업을 날마다 점점 더 깨닫고 충만하게 누려나가는 복된 여러분 되시기를 소원 합니다.

<본 론>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성령님’ 에 대해서 다음의 3가지 점을 중심으로 살펴보기 원 합니다. <첫째>는 ‘왜 성도들은 성령충만을 받아야만 하는가?’ 하는 것 입니다; <둘째>는 성령은 누구신가?’;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로 어떻게 성령충만을 받을수 있는가? 하는 것을 살펴 볼것 입니다.

그렇다면, 첫째) ‘왜 성도들은 성령충만을 받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이 첫번째 질문에서 여러분도 짐작 하셨을줄 압니다만, 사실 예수 믿지 않고 구원받지 않지 않은 자에게는 ‘성령충만한 삶’ 은 처음부터 이해할수도 기대할수도 없는 것 입니다. 아니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 즉 그리스도인들만이 성령을 이해할수 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성령충만 할수 있다는 사실 입니다. 이것을 통해 확인해야만 하는 진리는 그리스도인의 첫 출발이 바로 성령님을 통해서 시작 되었다는 사실 입니다. 우리 주님은 밤중에 자신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 ~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수 없느니라” (요. 3:5) 고. 이 말씀은 ‘누구도 성령님의 은혜와 능력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수 없다는 것’ 입니다. 이것은 ‘성령님만이 우리가 마음 문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갈수 있는 천국백성으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는 뜻 입니다. 바로 ‘모든 구원받은 자의 영적 출발이 성령님을 통해서 가능하게 되었다’ 는 뜻 입니다. 이것은 ‘성도와 성령님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진리’ 라는 저는 생각 합니다.

성령을 통해 성도들은 영적 생명을 가지게 되는 첫 출발을 맞을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요, 그것은 성도의 삶은 절대적인 성령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해해야만 하는 것 입니다. 더 나아가서, 성경은 구약과 신약 그 어느 한곳도 예외없이 성령의 절대적인 성도의 인도자요, 중보자 되심을 증거하고 있는 것 입니다. ‘왜 성도들은 성령충만을 받아야만 하는 것 일까요?’ 그 이유는 ‘성령은 모든 거듭난 성도들의 첫 영적 출생에서 뿐 아니라 영적 성장과 더 나아가서 장차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게 될 영광에 이르기 까지 우리 안에서 한결같이 성도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유일하신 분’ 이기 때문 입니다. 우리 자신도 아니요, 어떤 사람도 아니요, 하늘의 어떤 천사조차 아닌 것 입니다. 오직 성령이십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이시요, 성령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비하신 모든 하늘의 유업과 충만’을 누리게 하시는 주체가 되신다고 성경의 저자들은 증언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과연 성령님이 누구시기에?’ 우리 성도들은 그분의 충만을 받아야만 하는지를 살펴 봅시다.

둘째) 과연 성령님은 누구신가요?; 성령님은 무엇보다 ‘성삼위의 하나님’ 이십니다. ‘제 3위에 위격을 가지신 삼위일체의 하나님’ 인 것 입니다. 이 성령님이 처음으로 묘사되는 말씀은 <창세기 1:2> 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 하시니라” 라고. 여기서 ‘하나님의 신’ 은 영어 성경에 ‘the Spirit of God’ 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신 (=영)’(The Spirit of God) 이 바로 ‘성령’ (The Holy Spirit) 임을 성경은 한결같이 드러내고 있습니다.창세기에서 말씀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영’, ‘성령님’ 은 하나님의 첫 창조의 역사에서 부터 함께 하심으로 혼돈되고 공허한 흑암 가운데서 빛과 어둠을, 하늘과 땅을, 자연만물과 온 우주와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 속에 우리 인간까지도 창조하신 것 입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을 따라 성령님은 태초에서 부터 생명의 창조의 역사를 시작 하신 것 입니다. 그 이후 성령님은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쓰임 받게 하는 모든 자들에게 임하셔서 구원의 역사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도록 충만하게 함께 하셨음을 보게 됩니다.

신구약에서 보듯이 택함받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구약에서 수없이 많은 믿음의 조상들과 택하신 선지자들은 세상으로 부터의 그 악하고 끊임없는 핍박과 환란 가운데서도 오직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반드시 믿음으로 승리할수 있었던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의 스가랴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스룹바벨에게 이렇게 선포하시고 약속하셨습니다; “ ~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 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스가랴 4:6) 고. ‘성령은 누구실까요?’ 오늘 성령에 관련된 성경의 모든 구절을 찾기에는 안타깝게도 시간이 부족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한가지 분명히 성령이 누구신지에 대해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성령은 거듭난 성도들의 삶에서 처음시작부터 마지막 끝날까지 열매맺게 하고 영으로 승리하게 하시는 존재’ 라는 점 입니다. 그 누구도 성령님의 이 역할을 대신할 존재는 없습니다. 나 자신도, 어떤 다른사람도, 하늘의 천사도 않됩니다.

성령님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첫 영적 출생에서 뿐 아니라,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고 주님의 평안을 누릴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요. 14:26,27) 우리 주님은 그의 지상의 마지막 사역을 마감하시면서, 약속하신 영 성령님이 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실것’ 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하실것’ (요. 16:8~13) 을 약속 하신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아직도 ‘성령충만’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까? 결코 그렇치 않습니다. 성령의 충만하신 은혜와 능력이 없이는 우리는 결코 주께서 약속하신 성도의 삶을, 풍성한 삶을 이룰수 없는 것 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성령의 충만을 받을수 있을까요?

셋째) ‘어떻게 성령충만을 받을수 있을까요?;

첫번째, <죄를 회개함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저는 이미 성령이 아니고는 누구도 거듭날수 없고, 하나님의 나라를 볼수 없음을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을 통해 설명 드렸습니다. “ ~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수 없느니라” (요. 3:5) 고 말 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아직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분이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길 간절히 소원 합니다. 이 순간은 우리 각자가 주 앞에서 인격적으로 결단하는 가장 중요한 영적 생명으로 태어나는 순간임과 동시에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심으로서 가능한 은혜의 순간 입니다. 베드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 2:38) 라고 선포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존재하심과 그분이 누구신지에 대해 우리의 영적 눈이 열리지 않고서는 우리는 결코 성령에 대해 단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갈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악된 본성은 성령을 반드시 거부하며 성령을 결코 원하지도 관심 갖지도 않을 것 입니다.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눈이 열리고, 자신의 죄를 깨닫아 회개함으로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 합니다

두번째, <성령께 순종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났다면 여러분 안에 성령께서 거하심을 분명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이 사실을 “ ~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9b) 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거하신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성령이 거하신다’는 말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았다’ 는 의미가 아님을 분별해야만 합니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을 향해 “성령을 소멸치 말며” (Do not put out the Spirit’s fire) (살전. 5:19) 라고, 그리고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향해서는 “ ~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 ( ~ do not grieve the Holy Spirit of God ~)(엡. 4:30) 고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 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소멸’하거나 ‘성령을 근심’시키는 불행한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뜻 입니다.

그렇다면, 좀더 구체적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는 길’ 이 ‘성령을 순종하는 것’ 이라면, 무엇이 성령께 순종하는 것 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성령께 순종할수 있을까요? 저는 얼마 전부터 다시 읽고 있는 <A.W. 토저>의 ‘하나님을 추구함/ The Pursuit of God’이라는 책에서 ‘휘장을 치우는 것’ 라는 소제목의 장에서 ‘어떻게 자아를 죽일 것인가?’라는 것이 성령께 순종한다는 매우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뜻 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본문에서 일부를 발취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몸이 찢기심으로 휘장이 제거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 쪽에서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데, 우리는 밖에서 머무는 데 만족하고는 하나님을 우러러 보기 위하여 들어가려 하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 처음 휘장처럼 걷혀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어서 빛을 막고 하나님의 얼굴을 우리로 부터 가리게 하는 그 휘장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안에서 심판되지 않은 채 십자가에 못 박혀지지 않은 채, 부정되지 않은 채 살고 있는 육적으로 타락한 우리의 성품이라는 휘장이다. 그것은 우리가 결코 솔직히 인정해 본 적이 없는 것, 우리가 비밀히 부끄럽게 생각해 온것,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결코 십자가의 심판으로 끌고 간적이 없는, ‘자기생명’ (self-life) 이라는 촘촘히 짜여진 휘장이다. ~ 나는 내적 휘장을 짠 실들의 이름을 감히 말할 것이다.그것은 ‘자기 의’,‘자기동정’,‘자신감’, ‘자기충족’, ‘자기감탄’, ‘자기사랑’, 그리고 그와 같이 수많은 것들이다. 그것들은 우리 안에 너무 깊이 자리잡고 있으며 너무 많이 자신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빛이 그것들 위에 초점을 맞추어 비추기 전에는 우리의 주의를 끌기가 어렵다. ~ 이 자아는 피 흘리는 희생 제물인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지만, 보는 바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 자아는 우리로 부터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우는 불투명한 휘장이다. ~ 우리가 이 자아로부터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죄악을 파괴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우리는 우리 안에 십자가를 초대해야 한다. 우리 자아들을 십자가로 끌고가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모든 일을 해 주셔야 한다. 우리 편에서 할 일은 항복하고 의탁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일이 진정 이루어지도록 고집하라. 그러면 그렇게 될 것이다”

‘성령께 순종한다’ 는 것은 하나의 신학적인 지식을 머리로 이해했다는 뜻도, 아니면 잠시 뭉클한 감정으로 다짐했다는 정도로 끝나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토저가 분명하게 밝히고 도전하듯이, 이것은 ‘내 자아를 구성하는 신경세포 하나 하나가 끊겨나갈때 마다 죽을것 같이 고통스러운 자아를 죽이는 순간’ 이 됨을 뜻 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에 나의 자아를 못받는 것’ 이요 ‘예수 믿었다고 하면서도 내 깊은 내면속에 은밀하게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을 가로막고 단단하게 쳐저 있던 휘장’ 인 것 입니다. 왜 이 휘장을 치워야만 하는 것일까요? 왜 자아라는 휘장을 잘라내야 하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이 육신에 속한 자아가 언제나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을 대적하기 때문 입니다. 이것이 왜 사도바울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 5:17) 고 말한 이유일 것 입니다. 언제나 성령을 대적하는 ‘육체의 소욕인 자아’ 를 성령님께 맡김으로 십자가에 못박을때 비로소 성령은 충만하게 나를 다스리시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성령의 충만을 경험 하셨습니까?

마지막으로, <성령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저는 이제 성령충만을 받기위한 마지막 한가지를 생각하기 원합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성령충만 만큼 중요한 주제도 없지만, 성령충만 만큼 잘못 이해되거나 엉뚱한 결과를 가져 오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는 기독교회 2000년의 역사에서 잘 보여지고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말해서, 성령충만은 기독교인의 삶에서 핵심적인 것이지만, 이 충만을 잘못 이해하고 비성경적인 ‘성령충만’ 을 추구할때 그 폐해도 더욱 심각하다는 점을 우리는 교회사에서 수없이 목격하는 것 입니다. 아니 오늘날에 있어서도 ‘소위 성령파’ 라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성령충만’ 이 얼마나 비성경적인 성령운동인가는 성경을 묵상하면 할수록 자명해 지는 것 입니다. 특별히, 신앙의 열심이 있다는 성도들 중에서 보면, 성령충만을 받기 위해서 금식 하면서 받을때 까지 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19세기 영국교회에서도 성령충만 받기 위해 몇날동안 금식하면서 구했던 ‘성령운동’ 그룹도 있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성령충만을 나의 계획에 따라, 내가 원하는 시간에 받게 해 달라고 온종일 구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조심해야 하며, 위험한 소지가 있음을 이해 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구한것은 받은 것으로 믿어라’ 는 식으로 해석하면서, 내가 받았다고 할때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이 스스로 받았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 입니다. 성령충만은 스스로 설득함으로 믿는 정신작용이 아닌 것 입니다. 그리고, 영적 분별력 없이 구함으로 잘못된 것을 받게 되는 위험성 까지 있는 것 입니다.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이 누구신지를 이해해가고 있다면, 더 이상 성령을 내가 명령하거나 지시하거나 부리는 대상으로 취급 해서는 결코 않됨을 깨닫아야만 할것 입니다. 반대로 그분은 내가 경배하고 순종해야 할 하나님이시요, 전적으로 그 분의 뜻에 순종해야 할 분이심을 이해해야 하는 것 입니다. 따라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성령충만 받겠다는 식의 자세의 매우 위험하고 걱정스럽다는 것이 신실한 성도들의 판단인 것 입니다. 우리 성도가 취해야 할 바람직한 자세는 선하시고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성령님이 그의 온전한 뜻데로 그의 방법을 따라 충만을 허락하시도록 그분을 신뢰함으로 끝까지 기다리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 성령님을 신뢰함으로 가다리십니까?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하나님 우리 좋으신 아버지께서 어찌 그의 구하는 자녀에게 성령의 충만을 주시지 않겠는지를 이렇게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눅. 11:13) 는 것 입니다. 반드시 구하는 자녀에게 성령의 충만을 주신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 입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몇번 구했으나 못 받았다고 실망하지 말고 끝까지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눅. 11:9,10) 고 주님은 도전하고 격려 하시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을 더욱 알아 나가고 그분을 신뢰함으로 그분께 순종해 나가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기쁘신 뜻 가운데 허락하신 모든 성령의 충만을 마음컷 누리는 복된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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