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9, 2019

“사람을 얻으려고” (To Win People)

Preacher:
Series:
Passage: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9:19~21,23
Service Type:

“사람을 얻으려고”

(To Win People)

9-29-19

본문말씀: 고린도전서 (1 Corinthians) 9:19~21,23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Though I am free and belong to no man, I make myself a slave to everyone, to win as many as possible.)

20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 (To the Jews I became like a Jew, to win the Jews ~)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To those not having the law I became like one not having the law ~ so as to win those not having the law.)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I do all this for the sake of the gospel, that I may share in its blessings.)

 

[설교 요약]

사도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 ~유대인들을 얻고자” (v.20)했고, “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v.21)했으며, “ ~ 약하고 여러모양의 사람들을 얻고자” (v.22)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사도바울이 말한 사람을 얻고자 한다는 뜻인가요?” (What does the meaning of the Apostle Paul’s confession, ‘to win people’?):

첫째, ‘복음을 통해 한 영혼을 구원한다’는 뜻 입니다 (It means that he may save people through the gospel). 사도바울은 우리가 잘 아는데로 때가 이르든지 이르지 않든지 그가 언제나 전하기를 힘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믿지않는 영혼을 구원코자 온 삶을 바쳤습니다. 이것이 그 무엇보다도 ‘사람을 얻고자 한다’고 그가 말했던 뜻 입니다.

둘째, ‘신앙 공동체를 하나로 연결시킨다’는 뜻 입니다 (It means that he may build up the spiritual community through connecting them each other): 오늘 본문말씀의 앞장에 해당하는 <고전.8장>에서 사도바울은 당시 ‘고린도교회의 음식문제’를 지적하면서“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고전.8:8-9)라고 조언 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행이나 의로움 이전에 서로 믿음 안에서 연결되는 것이요, 사람을 얻는 것 입니다.

셋째, ‘사랑의 섬김으로 선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뜻 입니다 (It means that he may have a good influence through serving others) 저는 ‘사랑의 섬김으로 선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이 앞에서 말한 ‘신앙공동체를 하나로 연결’시키는 열쇠가 된다고 믿습니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막.10:44)고 하신 주님의 말씀과 같이 그는 성도들과 이웃들을 사랑으로 섬겼고 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쳤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전.11:1) 고 선언 합니다. 바로 섬김의 본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복음으로 한 사람의 영혼을 얻고, 교회공동체와 이웃을 사랑으로 섬김으로 아무쪼록 여러사람을 얻음으로서 성령의 충만한 열매를 맺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기대 합니다.

 

[설교 전문]

            예수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 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막.8:36-37)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바꾸어 말해서, 우리 각자의 생명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수 없을만큼 소중한 것이라는 뜻이 될것 입니다. 왜냐하면, 한번 잃어버린 생명은 두번다시 찾을수 없고, 천하를 다 줄지라도 죽은자 한사람을 살릴수 없기 때문일 것 입니다. 오늘말씀에서 사도바울은 ‘나는 사람을 얻고자 한다’고 고백 합니다. 그것도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한다’(v.19)고 고백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천하보다도 더 귀하게 여기시는 한 영혼을 얻고자 하기 때문 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잃어버린 한마리 양을 찾도록 찾는 선한 목자되신 우리 주님의 마음을 더 깊이 깨닫음으로 말미암아 사도바울과 같이 그분의 사랑의 포로가 되어 사람을 얻는 일에 온 삶을 투자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기 전에 먼저 살펴볼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사도바울이 “ ~ 내가 사람을 얻고자” (v.19)고 말한 1차적인 이유가 무엇인가?하는 점 입니다. 그것을 이해할수 있기 위해서는 바로 앞장인 <고전.8장>에 나와 있는 내용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전.8장>의 주제는 ‘음식에 대한 고린도교회 성도들 간의 분쟁’ 입니다. 그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크리스챤으로써 ‘어떤 음식은 먹어도 되고, 어떤 음식은 먹어서는 않되는지?!’를 놓고 공동체 안에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는 것 입니다.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서로를 정죄하기 때문 입니다.

사도바울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이와같은 분열현상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입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가 무엇보다도 영적인 문제, 즉‘영적 우선순위’의 문제이기 때문 입니다. 그럼으로 바울은 그들에게 이렇게 영적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으리라 ~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를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고전.8:8,13)고. 이 말은 오늘 본문말씀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 입니다. 먹고 마시는 음식의 문제로 인하여 형제를 넘어지게 하고, 잃어버리게 된다면 그것보다 더 어리석고 잘못된 크리스챤의 모습은 없다는 것 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을 보게되면, 사도바울은 거듭해서 “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는 말을 선언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본다면, “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 (v.20)이요, 또한 “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 (v.21)이며, “ ~ 약하고 여러모양의 사람들을 얻고자 함” (v.22)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이렇게 반복적으로 ‘사람을 얻고자 한다’고 강조해서 말하는 뜻은 무엇일까요? 바울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진정으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알려주고자 한 진실은 무엇이었을까요? * 과연 무엇이 사도바울이 말한 사람을 얻고자 한다는 뜻인가요?” (What does the meaning of the Apostle Paul’s confession, ‘to win people’?):

첫째, ‘복음을 통해 한 영혼을 구원한다’는 뜻 입니다 (It means that he may save people through the gospel). 대부분의 성도 여러분들이 우선적으로 생각하시드시, ‘사람을 얻고자 한다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한다’는 뜻이 될것 입니다. 바울은 <고전.9:22>에서 왜 자신이 이렇게 사람을 얻고자 열심을 내는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v.22)라고.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말할것도 없이 때가 이르든지 이르지 않든지 그가 언제나 전하기를 힘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믿지않는 영혼을 구원코자 함이라는 뜻이 될것 입니다. 즉, 전도와 선교의 목적이 되는’ 불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자 함’이라는 것 입니다.

사실 이런 불신자들에 대한 복음전파와 주님의 제자로 삼게 하는 소명은 사도바울 한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주님의 제자들, 즉 거듭난 성도들에게 부여된 영광스러운 명령임을 우리는 압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죄와 죽음을 이기시고 3일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40여일동안 여러 제자들에게 자신을 보이시고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이렇게 명하신것을 우리는 기억 합니다. “ ~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28:19-20)고. 모든 족속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케 하여 침례를 주고, 주의 제자로 삼게 하라는 명령은 우리 모든 성도의 미션인 것 입니다. 여기서 질문은 ‘어떻게?’ 입니다. 어떻게 모든 족속으로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주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가르쳐 제자로 세워줄수 있을것인가? 입니다.

사도바울은 주님의 복음을 통해 한 영혼을 구원하는 그 놀랍고 영광스러운 시작은 사람을 얻는 것에서 시작되며, 그 원리는 바로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처럼’ 그리고 ‘율법 없는 자, 즉 이방인들에게는 이방인들처럼’ 됨으로서 그렇게 한다는 것 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신앙의 양심을 어겨가면서 그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라는 뜻 입니까? 아니면 속으론 전혀 아니면서 겉으로만 포커 페이스하며 그들에게 접근하자는 얘기 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비본질적인 것을 과감하게 제거할수 있는가? 하는 것 입니다. 이것은 때로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베드로가 끝까지 포기할수 없었던 율법주의라는 유대전통에서 자유할수 있도록 ‘보자기에 싸인 부정한 짐승’의 환상을 통해 그것을 깨우치게 도우셨습니다 (행.10장). 우리 모두는 아직도 각자 비본질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 비본질에서 벗어날수 있는 길은 ‘진리에서 자라난만큼’ 자유할수 있는 것 입니다. 우리 주께서 약속하셨드시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2)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진리 안에서 날마다 자라남으로 자유자의 삶을 살아가고, 그를 통해 아직까지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를 구원코자 하는 간절함이 있습니까? 비본질적인 가치관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그들의 영혼을 얻음으로 복음으로 구원코자 하는 간절함이 있습니까?

둘째, ‘신앙 공동체를 하나로 연결시킨다’는 뜻 입니다 (It means that he may build up the spiritual community through connecting them each other): 저는 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 왜 사도바울이 ‘나는 사람을 얻고자 한다’고 그렇게 밝히는지에 대한 배경설명을 드렸습니다. 그 1차적인 이유는 그 당시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우리가 크리스챤으로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어서는 않되는 것인가?’라는 이슈로 인해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었음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당시 고린도지역의 시장에서 판매되었던 짐승의 고기중에는 우상신전에 재물로 바쳐졌던 짐승의 고기중에 일부가 블랙마켓을 통해 포함되 있었던 것 입니다. 그로말미암아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크게 2그룹으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고기를 먹지 않는 자들은 먹는 자들을 향해 ‘신앙양심을 저버리고 무분별하게 음식을 먹는 세속화된 자’들이라고 비난 했습니다. 거기에 반해, 고기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들을 향해 ‘너희들은 아직도 미성숙하다. 음식은 결코 본질이 아니다. 어떤 음식을 먹고 마신다고 결코 속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성숙된 믿음을 가졌음으로 결코 이런 음식이 문제가 안된다’고 당당하게 반응했습니다 (고전.8장). 여러분은 이런 음식의 문제에서 어떤 견해에 동의 합니까? 그리고 사도바울은 음식에 어떤 견해를 가졌다고 여겨집니까?

제가 이해하기로는 사도바울은 아마도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세우지 못한다’고, 다시말해 ‘무슨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은 결코 본질적인 것이 아니요, 따라서 음식문제에서 상당히 자유한 자’였을 것임을 <고전. 8장>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해할수 있는 것 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도바울이 음식문제에 있어서 결론적으로 이렇게 자신의 입장을 지혜롭게 정리하는 것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놓쳐서는 않된다고 저는 생각 합니다.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고전.8:8-9)라고. 무슨 말입니까? 비본질적인 음식문제로 인해 형제를 실족시켜서는 않된다는 것 입니다. 사람을 얻는다는 것은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한 선교적 사명 뿐 아니라,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의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연결시키는 것 입니다. 사실 주의 몸으로 함께 모인 우리 성도들은 서로 다른 성장배경을 가졌고, 성격과 기질과 관심이 서로 다를수 있음을 압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판단하고 서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세워주고 존중할수 있는 것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요, 우리의 주인이시요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몸으로 연결되고자 함 입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엡.2:13~14)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우신 피로 말미암아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가로막혔던 담이 허물어 졌다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치관과 기득권과 자랑을 내려놓고 함께 그리스도의 보배로우신 피를 통하여 그분의 몸으로 부름받은 지체 한사람을 얻고자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소가 닭보듯 하며, 여전히 나만의 세계에 갇혀 살아가고 있습니까?

셋째, ‘사랑의 섬김으로 선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뜻 입니다 (It means that he may have a good influence through serving others) 이제 3번째로 ‘어떻게 사람을 얻을수 있을것인가?’를 살펴봄에 있어서 저는 ‘사랑의 섬김으로 선한 영향력을 미침으로서’라고 마지막으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사람을 얻는다는 뜻은 먼저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하나로 연결될수 있도록 우리 각자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바로 두번째 대답에서 살펴보았다면, 세번째 대답은 이런 하나됨이 가능할수 있었던 원동력은 ‘사랑의 섬김’임을 밝히고자 하는 것 입니다. 우리는 초대교회 하면, 늘 이상적인 교회로 연상하기 쉽지만 사실 초대교회도 이런 저런 문제가 많았음을 고린도교회를 보면 잘 이해할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도 연약함이 있었고 부족함이 있었고 문제가 많았음을 알수 있는 것 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보는 것과 같이 사도바울 뿐 아니라 믿음에서 먼저된 자들이 보여주는 사랑의 섬김을 볼수 있는 것 입니다.

사도바울이 오늘 말씀을 전하기에 앞서서 <고전.9장> 에서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은 예수님으로 부터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은 자로서 성도들로 부터 재정적인 후원과 여러가지 사도의 권리를 주장할 자격이 있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입니다. “ ~ 내가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찌언정…” (고전.9:15)이라고 매우 강한 어조로 말합니다. 사도가 여기서 정말 전하고 싶어하는 그의 메세지는 무엇일까요? 저는 사도바울은 우리 주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막.10:44)고 하신 말씀을 겸손히 실천했음을 고백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을 자랑함이 아니라, 이런 주님의 섬김을 본받아 또 한명의 사랑의 종으로 섬김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미친 자신의 삶을 고백하면서 성도들을 격려하고 있는 것 입니다. 진정한 리더가 되기를 원하는 자는 사랑으로 종노릇해야 한다는 것을. 이런 온힘을 다해 섬김으로 살아온 인생이기에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전.11:1)고 도전하는 것 입니다. 참으로 영적 리더로서 자만하지 않고 올곧으면서도 부끄러움없이 ‘나를 본받는 자 되라’는 놀라운 도전을 하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사랑으로 지체를 섬겨 선한 영향력을 미침으로서 사람을 얻어가고 있습니까?

사도바울은 <고전.9장>을 마무리하면서 ‘운동장에서 열심히 달리는 달리기 선수의 목적이 무엇인가?’ (v.24,25) 라고 질문하고 나서, 그 이유는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 (v.25)라고 대답 합니다. 그런데, 그 면류관은 얼마 지나지 않으면 마르고 썩을 나무 잎파리의 면류관이라는 것 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이 받게 될 면류관은 그렇치 않다는 것 입니다.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는다는 것 입니다. 세상의 면류관은 오직 한명에게 주어지지만, 우리 성도가 받을 면류관은 믿음으로 죄와 싸워 이긴 모든 성도들이 함께 받게 되는 면류관이라는 것 입니다. 이것이 왜 사도바울이 사람을 얻기를 그렇게 힘쓰고 원했는지를 이해할수 있는 이유 입니다. 의의 면류관, 즉 하나님 아버지께서 의의 선한 싸움을 온전히 싸워 이긴 그의 자녀들에게 칭찬과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게 될 영광스러운 하늘의 유업인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 복음으로 한 사람의 영혼을 얻고, 교회공동체와 이웃을 사랑으로 섬김으로 아무쪼록 여러사람을 얻음으로서 성령의 충만한 열매를 맺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