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1, 2022

“사랑과 존경” (Love & Respect)

Preacher:
Passage: 에베소서 (Ephesians) 5:31-33
Service Type:

“사랑과 존경”

(Love & Respect)

5-1-22

본문말씀: 에베소서 (Ephesians) 5:31-33

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For this reason a man will leave his father and mother and be united to his wife, and two will become one flesh”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This is a profound mystery—but I am talking about Christ and the church.)

33 그러나 너희도 가가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However, each one of you also must love his wife as he loves himself, and the wife must respect her husband.)

[설교 요약]

            사도 바울의 오늘말씀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부부관계>가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영적으로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남편을 경외하고,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아내들은 ‘남편을 경외하라’는 것이 남녀 간의 불평등 적인 개념으로 잘못 이해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는 의미를 이해하지도 아예 관심 갖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크리스챤 부부에게 ‘남편과 아내’에게 주신 부부됨의 원리”를 사도 바울을 통해 말씀합니다. 그것은 먼저,

  • <아내>에게 “남편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창조질서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첫 인간 아담에게 그를 <돕는 배필>로 하와를 허락하심 (창. 2:20). 또한 영적 질서에서 볼 때, <남편을 머리>로 세우셨다는 것 (엡.5:22-23; 고전.11:3)
  • <남편>에게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가 남편들에게 명하는 ‘사랑’ (v.33a)의 의미는 헬라어 원어에서 ‘아가페’ 즉 무조건적 사랑이요, 하나님의 사랑. 이 아가페사랑은 곧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 (엡.5:25) 신부된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사랑이요, 교회를 말씀으로 씻고 거룩하게 하실 뿐 아니라, 그 교회와 연합하는 사랑(엡.5:26-32) 이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

 

하나님께서 사도를 통해 크리스챤 부부들에게 권면하듯이, ‘남편을 경외’하고, ‘아내를 주의 사랑을 사랑’함으로 크리스챤 부부의 놀라운 비밀의 연합을 일구어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설교 전문]

            하나님께서 이 세상 가운데 허락하시고 복주시는 대표적인 두 기관이 있는데, 그것은 ‘교회와 가정’이라고 신학자들은 주장합니다. 교회가 성도의 믿음과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 가는데 있어서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기관임은 제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첫 인간부부 아담과 하와를 통해 시작된 가정은 교회보다도 먼저 시작되었을 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교회보다도 더 강력하게 그 사람의 신앙과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가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가정은 그 사람이 부모에게서 태어나서 성장하여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가장 그 사람 가까이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관계를 맺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이어져가는 삶의 울타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에 핵을 이루는 단위가 ‘남편과 아내’ 즉 ‘부부’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아포슬교회는 청년교회인지라 현재 저희 부부를 제외하면 멤버 전부가 싱글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여러분 모두 예비 신랑과 신부들로서 사도가 오늘말씀에서 촉구하는 크리스챤 부부를 위한 영적 가르침은 청년 여러분들의 다가올 결혼과 부부관계에 있어서 귀한 영적인 말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저는 사도 바울의 하나님의 근거한 <부부관계>, 즉 ‘남편과 아내관계’를 생각하면서 먼저 2022년 현재의 시점에서 성경에서 제시하는 올바른 부부관계를 방해하는 대표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게 됩니다. 그것은 아내들의 경우는 <남편을 ‘존경’ (respect) 혹은 ‘경외’ (reverence)하라>는 것에 대한 무척 부정적인 의식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남편의 경우에는 <아내를 사랑하라>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먼저 아내들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오늘날 아내들에게 “남편을 경외하라” (Reverence your husband)는 오늘 성경의 말씀인 바울의 권고는 사람에 따라서는 상당히 이질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아내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불신자들 뿐 아니라, 심지어 크리스챤 여성들에게 조차 말입니다. 문제는 성경의 가르침으로 살아가고자 힘쓰는 크리스챤 여성들의 경우에 있어서도, 현대인의 기준에서 ‘뭔가 시대에 뒤떨어졌다’든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그것이 비록 성경의 말씀이라 할찌라도 쉽게 평가절하하고, 그 이유를 성경저자의 개인적인 편견이나 지식 (도덕)적 한계로 치부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 뿐 아니라, 모든 경우에 있어서도 성도가 명심해야 하는 한가지 사실은 ‘성경의 말씀을 그 성경을 기록한 저자의 개인적인 견해나 사상으로 취급하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처사라는 점입니다. 비록 성경을 기록한 저자는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지고 한계가 있는 연약한 사람일 수 있지만,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그 저자를 사용하셔서 그의 온전하고 거룩하신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 (딤후. 3:16)고 바울은 그의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분명히 선언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는 왜 아내들에게 ‘남편을 경외하라’고 권고하는 것일까요? 왜냐면,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창조의 원리’에서 출발하게 됩니다.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그가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함을 보시고, ‘돕는 배필’ (the helf)로서 하와를 지으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 2:20). 그럼으로 ‘아담이 먼저 지음 받고, 하와가 그 다음’ (딤전. 2:13)이었고, ‘아담이 먼저 뱀의 꾐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와가 꾀임을 받아 죄에 빠졌기 때문’ (딤전. 2:14)임을 사도는 지적합니다. 안타깝게도 하와는 남편인 아담을 돕는 배필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것을 ‘영적 질서’에서 사도는 설명함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남편을 아내의 머리로 삼으셨다’ (v.23)는 것인데, 그는 이렇게 그 ‘영적 질서의 원리’를 설명합니다.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고전. 11:3)고 말입니다.

사도는 오늘 본문 앞 <22-23절>에서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라” (v.22-23)라고 부부관계에서의 영적 원리를 아내들에게 밝히고 있습니다. 사도가 여기서 크리스챤 아내들에게 주는 영적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인간 부부를 만드셨을 뿐 아니라, 가정을 창설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을 아내의 머리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남편을 경외 (=존경)함으로 하나님의 인간 부부에 두신 복된 삶을 누려가라는 것’이 사도가 아내들에게 격려하는 핵심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남편을 경외한다’는 것이 결코 남편이 아내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 어디에도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남편을 아내의 머리로 두신 것’은 하나님께서 가정에 두신 <영적 질서>에 기인함 입니다. 이것은 남성과 여성에 평등함 가운데 ‘부부의 역할’에 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군부대에서 소속 단위별 지휘관을 두어 그 군대조직을 일사분란하게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 지휘관이 다른 병사들보다 더 우월한 존재라서가 아닙니다. 혹은 축구팀에서 리더를 두어 팀전체를 이끌어가게 합니다. 그 리더가 그 팀에서 가장 실력이 있는 경우는 아닐 때가 많은데, 리더는 팀전체의 팀웍을 맞추고 최상의 조직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리더쉽을 발휘하는 것이 그의 역할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잠언서 기자는 잠언을 마무리하면서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남편을 존경하며 지혜롭고 현숙한 믿음의 열매를 맺는 여인을 이렇게 영광스럽게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잠언 31:30) 이것이 정확히 가정 (부부관계)에서 ‘남편’에게 부과된 ‘리더쉽’이요, ‘아내의 머리’로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요즘과 같은 시대에는 ‘여성운동’ (Feminism) 에서와 같이 ‘남녀평등’의 이슈로 인한 외곡된 영향으로 ‘남편을 경외하라’는 오늘 말씀이 제가 처음 언급했듯이 ‘뭔가 거부되거나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있음을 봅니다. 그러나 사도가 아내들에게 ‘남편을 경외하라’는 것은 아내가 지혜롭게 남편을 도와서 함께 팀웍을 이루어 최상의 가정을 이루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것을 올바르게 깨닫는 것이 앞서 잠언서에서 보게 되듯이, 성숙된 크리스챤 아내의 부부 관계일 뿐만 아니라, 크리스챤 어머니로서의 현숙한 삶을 성숙해 가는 길임을 믿습니다.

이제, 그렇다면 남편들은 어떻습니까? 저는 오늘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측은 어쩌면 ‘아내들’이 아니라 ‘남편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도가 남편들에게 촉구한 “아내를 사랑하라”는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남편은 많지 않고, 그것을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더욱 소수라고 추측되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남편들을 향하여 그의 아내를 사랑할 것’을 도전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v.33a)라고 합니다. 사도는 지금 남편들이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같이 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는데, 이것은 예수께서 한 율법학자에게 사랑의 명령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레. 19:18)고 레위기서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을 연상하게 됩니다. 물론 대부분의 남편들이 자신의 아내를 자신의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옳지 않다거나, 잘못된 명령이라고 주장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어떻게 아내를 나 자신처럼 사랑할 것인가?’를 실천할 것인지에 대해 남편들은 별로 고민하지도, 노력하지도 않는데 문제가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한편 ‘사랑’이라는 단어는 ‘헬라어’에서는 3가지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에로스/eros>인데 이것은 ‘순전히 육신에 속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많은 청춘남녀들이 서로 사랑한다고 말할 때, 쓰여지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육신의 사랑이요, 정욕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사랑입니다. 두번째는 <필레오/phileo>인데 이것은 ‘좋아한다’는 의미입니다.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께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요. 21:15)고 고백했을 때, ‘사랑’의 의미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우리말의 의미에서 본다면 ‘우정’ 혹은 ‘형제간의 사랑’ (동반자)이라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세번째로는 <아가파오/agapao>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듯이 ‘가장 높은 차원의 사랑이요, 무조건적 사랑이며, 이것은 곧 하나님의 사랑’임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가 오늘 본문에서 남편들에게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v.33a)라고 했을 때, 사용한 ‘사랑하기를’이라는 헬라어 단어가 ‘아가파오’라는 것입니다. 바로 ‘무조건적 사랑’이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도는 남편들에게 이와 같은 하나님의 숭고한 사랑으로 그들의 아내들에게 행하라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한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부부의 사랑 가운데 ‘에로스’적인 남여간의 육체의 사랑이나 ‘필레오’적인 우정의 사랑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부부간에는 분명히 육체적인 사랑이 존재해야만 하고, 또 친구와 같은 우정의 사랑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만 그쳐서는 안되며, ‘무조건적 사랑’인 ‘아가파오’의 사랑에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 바로 사도의 남편들을 향한 강력한 도전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제 저는 이것을 이렇게 정리해보고 싶습니다. 무엇이 사도가 남편들에게 도전하는 아내를 향한 사랑일까요? 그것은 첫째)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출발함을 봅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v.25) 고 사도는 <25절>에서 주장합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사도가 남편들에게 도전하는 아내들을 향한 사랑은 ‘아가파오’의 사랑인데 이것은 곧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사랑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께서 어떻게 교회를 사랑하셨죠? 그렇습니다! 주께서 자신을 몸을 십자가 위에서 버리심으로 그 피로 그분의 사랑하는 교회를 값주고 사셨다는 것입니다.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내어 주셔서, 그 신부된 교회를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셨다)” (v.26-27)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사도가 남편들에게 강조하고 도전하는 주님의 사랑은 바로 ‘신부된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죽기까지 내어 주신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 오늘날 남편들의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봅니다. 아내들을 위한 헌신적인 사랑을 행하고자 노력하기 보다는, 권위적이거나 폭력적이거나 이기적이거나 성질 부리거나 혹은 남편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무책임하거나 무기력한 남편들을 수없이 우리는 목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남편의 한사람으로써, 아내들이 왜 남편을 경외하지 않고, 존경하지 않는 그 이유의 중심에는 많은 경우 남편들의 아내들을 향한 자기 희생의 사랑 없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저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또 한가지 빠트릴 수 없는 남편을 향한 사랑의 의미는 “연합”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도가 남편들에게 진정으로 격려하는 아내들을 향한 사랑의 최종적 메세지는 ‘연합’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v.31-32)라고 사도는 크리스챤 부부의 참된 축복은 그 연합에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신랑되신 그리스도께서 신부된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것은 궁극적으로 교회와의 영원한 연합을 이루고자 함인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는 이와 동일한 원리로 그리스도인 남편은 그의 아내를 죽기까지 자신을 내어준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함으로 그 아내와 궁극적인 하나됨, 즉 연합을 이루어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는 여기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 2:24)는 <창세기 2장>말씀을 인용하면서, 이 부부의 연합이 얼마나 신비롭고도 축복된 것인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큰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적으로 성숙해가면 갈수록 교회 안에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얼마나 축복된 것인지를 깨닫아 나갈 수 있듯이, 크리스챤 부부간의 연합도 이와 같이 ‘남편을 경외하고, 아내를 주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 부부 가운데 허락하신 그 깊고 놀라운 축복의 비밀을 깨닫아 나갈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남편과 아내를 맞이하길 원하고 꿈꾸십니까? 제가 크리스챤 부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무리하며 진정을 다해 청년 여러분들에게 격려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복된 남편과 아내로 존중받고 그런 삶을 살고 싶으시다면, ‘남편을 경외하시고, 아내를 주의 사랑으로 사랑하십시오!’ 아내를 향해 요구하지 말고, 남편을 향해 판단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남편 혹은 아내로서의 역할을 최선을 다해 행하십시오. 그러할 때, 여러분의 삶은 하나님이 칭찬하시고 인정하시는 현숙한 아내로, 그리고 주의 사랑으로 충만한 남편으로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아름답고 비밀된 부부의 연합의 열매를 맺어 나갈 것입니다. 믿음 가운데 이런 미래의 복된 부부의 삶을 이루어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