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1, 2023

“서로 사랑하자” (Let Us One Another)

Preacher:
Series:
Passage: 요한일서 (1 John) 4:7~8
Service Type:

“서로 사랑하자”

(Let Us Love One Another)

1-1-2023

본문말씀: 요한일서 (1 John) 4:7~8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Dear friends, let us love one another, for love comes from God. Everyone who loves has been born of Gof and knows God.)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Whoever does not love does not know God, because God is love.)

[설교 요약]

            2023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습니다. 저는 성도 여러분과 신년 새해의 첫날을 열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최고의 명령, 곧 ‘사랑의 명령’을 어떻게 행해 나갈 수 있을 것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랑의 사도’로 불리는 사도 요한은 성도에게 보내는 첫번째 편지에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라고 촉구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요,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두가지 질문에 대답으로서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와 실천적 삶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 왜 크리스챤은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 크리스챤이 왜 사랑해야만 하는 것인가? 라는 본질적 물음의 대한 답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오늘 말씀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이 사랑임으로, 그분과 사랑의 관계 (=사귐)를 맺은 우리는 필연적으로 또한 ‘서로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창. 1:26-27). 그렇다면, 이제 두번째 질문인
  • 어떻게 우리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1.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입니다: 사도는 편지에서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요일. 2:28a)라고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를 격려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명하심과 같이 ‘그분의 말씀을 순종함’을 통해 주님 안에 거하게 되고 (요. 15:4-7), 또한 서로를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요일. 2:5).
  2. ‘우리의 죄를 자백함’으로써 입니다: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요. 1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각자는 날마다 주께 죄를 회개함으로 깨끗함을 받을 뿐 아니라 (요일. 1:9), 이를 통해 서로의 더러워진 발을 씻겨 줌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3. ‘세상에 속한 것을 미워함’으로써 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선 먼저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니 미워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 속한 것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요일 2:16)입니다. 만약 우리가 세상을 사랑한다면, 결코 형제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없기 때문입니다.

2023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날마다 주의 말씀 안에 거하며, 나의 허물과 죄를 날마다 자복함으로 주의 성령을 통해 세상에 속한 죄와 정욕과 싸워 승리하는 복된 올 한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2023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개인과 가정에, 그리고 우리 아포슬 믿음의 공동체 위에 올 한해동안 주의 은혜와 사랑이, 그리고 영적으로 부흥케 하시는 역사가 넘치길 소망합니다. 저는 신년 첫날 1월1일임과 동시에 첫 주일인 오늘 어떤 말씀으로 새해를 성도 여러분과 열 것인지를 고심하다가 지난 연말 큐티 말씀으로 은혜받은 <요한일서>말씀을 나누고자 정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것이지만, 사랑만큼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고 우리의 인생을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차게 하는 것이 없지만, 또한 사랑만큼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잠못 이루는 밤으로 몰고가는 힘든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해하기로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명령하시는 것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면, 그것은 “사랑하라”라는 말씀이 아닐까 하고 저는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요,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며, ‘여러분이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 (고전. 13:1)처럼 시끄럽기만 하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올 2023년 한 해는 성도 여러분의 삶에서 그 어떤 것보다도 각자 사랑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서로를 뜨겁게 사랑함으로 주님의 사랑의 명령을 함께 행할 수 있는 우리 아포슬 공동체 되기를 기대합니다.

‘사랑의 사도’라고 불리었던 사도 요한은 원래 그렇게 사랑이 많고 온유한 그런 타입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그는 성격이 급하고 과격한 사람으로서 예수님으로부터 ‘우뢰 (번개)의 아들’이란 의미의 ‘보아너게’라는 별명을 받기까지 했던 사람입니다 (막. 9:38, 눅 9:54). 그런 그가 ‘사랑의 사도’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그가 3년반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다니며 그분의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이요, 주께서 십자가 위에서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시고 승천하심을 목격했기 때문이요, 그 이후 그의 남은 60여년의 평생동안 주의 영, 성령 안에 거하며 그의 모나고 부족한 성품이 날마다 깍여 나감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장성한 성품의 ‘사랑의 사람’으로 날마다 빗여졌던 결과였으리라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오늘 저는 사도 요한이 첫번째 편지를 쓰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를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도 요한은 성도들에게 보내는 첫번째 편지를 쓰면서, 이 편지를 쓰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이렇게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일. 1:3-4) 사도는 이 편지를 통해 서로를 더욱 알아나가고 사귐을 통해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실천하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가 이런 사귐을 힘쓰는 이유는 이것이 주님의 명령일 뿐 아니라, 이미 먼저 주님의 몸으로 연결된 사도와 믿음의 공동체 간에 기쁨이 충만한 열매를 맺어 나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사랑의 명령에 순종했을 때 참된 사랑의 열매를 풍성하게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사도는 확신과 기쁨 가운데 이 편지를 받는 성도들에게도 이런 사랑의 관계 맺어 나가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 말씀에 돌아와서 살펴보면, 사도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라는 도전을 통해서 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요,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도의 이와 같은 도전 (=격려)를 통해서 저는 오늘 말씀 가운데 두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해 보고자 합니다. 그 첫번째 질문은 “왜 우리 크리스챤은 사랑해야만 하는가?” 라는 것이고, 둘째는 “어떻게 우리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질문에 대해 함께 생각해 봄으로서 사도 요한이 왜 성도들을 향해 ‘서로 사랑하자’라고 강권하는지를 영적으로 깨닫아 나가고자 합니다.

이제 그렇다면, 첫번째 질문은 왜 크리스챤은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에 대한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대답은 앞서도 사도가 선언했듯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분의 ‘전지전능, 공의, 긍휼, 자비’와 같은 대표적인 특성이 있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 (=성품)을 가장 완벽하게 드러낸 단어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8)는 선언을 통해 잘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 중에 하나님이 사랑이시다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우리 인간도 그분과 같이 사랑을 해야만 하는가?!’ 하고 질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 경우에 여러분이라면 무엇이라고 그 질문한 사람에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왜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처럼 사랑의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그 질문에 대한 성경에 나오는 가장 첫 대답이 <창세기 1:26~27>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하나님은 선하시고 권능이 넘치는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특별히 인간을 그분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으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분을 꼭 닮은 창조물로 우리 인간을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우리 크리스챤이 사랑해야 하는 존재인지, 아니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에 대한 성경의 궁극적인 설명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그렇게 지음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 심령 깊은 곳에 그분의 사랑을 심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과 사랑을 나눌수 있는 존재가 됨으로 또한 자기 자신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축복하는 핵심일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부담을 주거나, 힘들게 하고자 함이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과 권세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먼저 누리고, 또한 세상 사람들에게 알게 하시고자 함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첫 인간부부의 하나님과의 이러한 사랑의 관계는 오래가지 않아 깨어져 버렸습니다. 첫 인간부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경고를 어기고 먹지 말라 한 선악과 열매를 따먹고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인간이 범죄했다는 사실은 곧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의 관계’가 깨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분을 신뢰하지 못하고, 의심함으로서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생명과 사랑’에서 ‘죄와 죽음’으로 굴러 떨어지게 된 이유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크리스챤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다는 뜻이요, 이런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는 그의 자녀는 필연적으로 서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사랑의 속성이요, 그 사랑의 능력이라고 사도는 도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우리 크리스챤들은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대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두번째 질문인 어떻게 우리 크리스챤은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앞서 살펴 본데로, 사랑의 실천은 우리 크리스챤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의 구원을 받았음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속담에 “누가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라는 말이 있듯이, 말로 만이 아니라 어떻게 우리는 사랑을 실제적으로 실천에 옮길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첫째,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입니다: 사도는 그의 첫번째 편지를 쓰면서 그 무엇보다도 우리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할 것을 우리에게 격려합니다.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요일. 2:28a)고. 저는 그 무엇보다도 우리 각자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서로 사랑을 행할 수 있는 핵심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렇게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4,7)라고 말입니다. 주님은 자신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시고, 그 거한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임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주님의 말씀을 사도가 분명하게 영적으로 재해석한 것이 <요일. 2장>말씀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로 아노라” (요일. 2:5) 여기서 사도는 매우 중요한 ‘사랑을 실천하는 원리’를 밝히고 있습니다. 주께서 약속하셨듯이, 만약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지킴으로 그 말씀 안에 거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우리 안에 온전히 살아 역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충만하게 할 때, 우리가 그의 말씀께 순종하고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역사하시기를 열망할 때, 하나님은 그의 사랑으로 우리를 채워 주시며,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존재로 변화되어진다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죄를 자백함으로써’ 입니다: 사도 요한은 첫번째 편지의 1장을 마무리하면서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라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죄를 고백하고, 주께서 죄 사하여 주실 것을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날 밤, 자신의 허리를 수건으로 동이시고 12제자들의 먼지묻고 더러워진 발을 한사람 한사람 정성껏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당황해 있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요. 13:14)라고.

우리 주님의 제자들은 그분을 믿음으로 구원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허물과 연약함으로 날마다 발이 더러워지듯이 죄를 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사도가 우리를 격려하듯이 죄를 고백함으로 아버지의 신실하신 죄사함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주께서 명령하시듯 ‘주께 깨끗하게 발 씻음 받은 자는 또한 옆에 있는 형제 자매의 발을 씻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의 선하신 은혜로 깨끗함을 받게 될 때, 나 또한 주의 사랑으로 지체를 깨끗케 하는 섬김을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세상에 속한 것을 미워함으로써’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도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위해 한가지 분명한 조건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것은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요일 2:15-17)

세상을 사랑해서는 않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세상을 향한 사랑은 하나님과 원수 맺는 것이요, 이것은 필연적으로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게 하며 자매를 미워하게 만드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에 속한 것,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맺게 되는 열매입니다. 시기와 질투와 미움과 사망이라는 죄의 열매인 것입니다. 혹시 성도 여러분은 여전히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2023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여러분이 소망하고 간구하는 모든 기도의 제목들이 주님의 은혜 가운데 풍성하게 열매 맺는 올 한 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주께서 약속하신 진정한 축복은 단지 시간이 지난다고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님을 저는 믿습니다. 주께서 명령하신 ‘서로 사랑하기를 힘써야’할 것입니다. 먼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함을 통해 ‘내가 나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게 되며, 이런 자신에 대한 참된 자존감으로 사랑함으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랑의 사람이 됨을 통해 우리는 주께서 약속하신 영적 축복과 은혜를 누려 나가게 될 것입니다. 주의 말씀 안에 거하며, 나의 허물과 죄를 날마다 자복하며, 주의 성령으로 세상에 속한 육신의 정욕과 죄와 싸워 승리해 감으로써 말입니다. 이런 사랑의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사랑의 아포슬 공동체로 성장하는 2023년 한 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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