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4, 2021

“성도의 비밀” (The Secret of the Saints)

Preacher:
Passage: 에베소서 (Ephesians) 1:17~19
Service Type:

“성도의 비밀”

(The Secret of the Saints)

4-4-21

본문말씀: 에베소서 (Ephesians) 1:17~19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설교 요약]

            “주께서 다시 사셨습니다!” (He is risen!) 오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다시 사신 부활절입니다. 저는 오늘 ‘성도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성도의 비밀일까요? 그것은 <전에는 비밀과 같이 감추어져 있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드러나고 밝히 깨닫아 가는 구원받은 성도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축복이자 은혜의 비밀>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저는 ‘에베소 성도’를 향해 바울 사도가 밝히고 있는 오늘 본문 말씀을 포함한 <엡. 1장>말씀은 우리 주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목적이 과연 무엇인지를 매우 본질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제 그렇다면, 무엇이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성취하신 것일까요?” (What are accomplished by the Jesus’ death on the Cross?) 그것은

첫째, ‘그의 피로 죄사함을 받음’ (We may be forgiven by His blood) 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영적 사실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 (엡.1:7)라고 말입니다. 두말할 나위없이,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그의 선하신 피로 우리의 죄를 대신 갚아 주심으로 구원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함’ (We may praise for the glory of God) 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에서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 이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삼으신 뜻은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 (v.6)이요,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v.12)고 사도 바울은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그분의 권세와 능력을 교회에 주심’ (Church may receive the authority & power by Jesus) 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주께서 제자들을 향해 분명하게 명령하신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첫째는 ‘서로 사랑하라’ (요. 13:34)는 말씀이고 둘째는 ‘성만찬을 기념하라’ (눅. 22:19~20)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두가지는 모두 우리 성도의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서 주의 몸된 교회에게 주신 명령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 명령들은 단순한 의무사항이 아니라, 주께서 그분의 모든 권세와 능력을 위임받은 교회 공동체가 누리는 영광된 미션인 것입니다. 바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마. 28:18~20)

성도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그 보혈로 남김없이 갚으시고,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의 남은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혜로 감춰졌던 하늘에 속한 모든 충만한 복으로 채워지시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주께서 다시 사셨습니다!” (He is risen!) 오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다시 사신 부활절입니다. 그의 보배로운 피를 흘리심으로 사단의 권세를 깨트리고 그의 머리를 부수어 승리하신 부활절입니다. 저는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지만, 이번 부활절 하루 뿐만 아니라 성도 여러분 모두 우리 주님의 부활의 승리와 능력으로 여러분의 매일 매일의 삶이 죄를 이기고, 육신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주와 함께 승리하며 약속한 풍성한 열매을 거두는 주의 충성된 제자 모두 되시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십자가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이 땅에 오셨으며, 십자가 위에서 어떤 일을 이루셨는지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토록 여러분과 저의 유일한 자랑과 감격이 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아낌없이 우리를 살리고자 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의 아들을 유월절 희생제물로 드려진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게 하셔서 십자가 위에서 그의 보배로운 피를 남김없이 흘리게 함으로 그를 믿는 우리들을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해 살게 하시는’ (벧전. 2:24)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구원의 지혜와 능력이 십자가 안에 숨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럼으로 이런 우리를 살리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은 십자가 비밀로 숨겨져 있지만, 이것이 결코 비밀로 머물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그의 은혜와 도우심을 구하는 자녀들에게 십자가의 진리는 찬란하게 비취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오늘 ‘성도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성도의 비밀일까요? 그것은 <전에는 비밀과 같이 감추어져 있었고, 드러나지 않은 것인데 이제는 드러나고 밝히 깨닫아 가는 구원받은 성도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축복이자 은혜의 비밀>인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예비하신 영광스러운 삶이 무엇이며,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누려 나갈수 있는지를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점은 이 영광스런 성도의 삶이 오랜 인간의 역사 기간동안 비밀로 감추어져 있다가 이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되고 밝히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해 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승리가 그를 믿고 따르는 성도들, 즉 그의 제자들에게 어떤 삶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는지를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바로 십자가의 부활의 승리로 말입니다.

저는 가능한 멀지 않은 시간에 ‘에베소서’를 강해설교로 성도 여러분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은혜의 시간가지기를 원합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서 중에서 우리가 잘 아는대로, <로마서>는 복음의 진리를 핵심적으로 담고 있기에 복음서 중의 복음서라고 불리어 집니다. 거기에 비해, 에베소서는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비교적 짧은 분량의 서신서이지만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바울신학의 면류관이요, 절정’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로마서’가 ‘우리 인간을 구원케 하는 복음의 진리를 치밀하고 깊은 영적 통찰력을 통해 선포한 것’이라면, ‘에베소’는 ‘구원받은 성도의 삶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놀라운 것인지를 탁월한 성령의 계시를 통해 밝힌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에베소는 그 어떤 다른 성경과 비교해 볼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통해 구원받은 성도가 누리게 되는 삶이 왜 이토록 영광스럽고 소망스러운지를 충만한 성령의 감동을 통해 사도는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저는 ‘에베소 성도’를 향해 바울 사도가 밝히고 있는 오늘 본문 말씀을 포함한 <엡. 1장>말씀은 우리 주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목적이 과연 무엇인지를 매우 본질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제 그렇다면, 무엇이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성취하신 것일까요?” (What are accomplished by the Jesus’ death on the Cross?) 그것은

첫째, ‘그의 피로 죄사함을 받음’ (We may be forgiven by His blood) 입니다: 아마도 구원받은 성도들이라면 대부분이 이해하는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것이 ‘그의 피로 죄사함을 이루셨다’는 사실 아닐까요? 불뱀에 물린 자 마다 모세가 높이 달아 올린 놋뱀을 바라봄으로 살아나듯이, 십자가 위에 높이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마다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 3:13~14). 바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나사렛 예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임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홍같이 붉은 죄가 흰 눈처럼 깨끗하게 죄사함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사람도 예외 없이 예수를 믿고 영접함으로 구원받게 된 자의 영적상태인 것입니다. 사도는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영적 사실을 <엡 1:7>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 (엡.1:7)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도들이 인정하는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의 첫번째 영적 상태를 확인함에 있어서 제가 성도 여러분에게 도전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새삼스럽게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질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예수님에 대한 이해가 매우 추상적이고 구체적이지 못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C.S 루이스가 그의 책, <순전한 기독교>에서 독자들에게 도전하고 있듯이 ‘우리는 나사렛 예수가 누군지에 대해서 분명히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길과 진리요 생명이다 ~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 라고 분명하게 선언하는 나사렛 예수는 ‘정신병자이든지 아니면 사기꾼이든지, 아니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든지 이것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예수님을 ‘인류의 위대한 도덕적 스승’이라고 부르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그런 여지를 결코 우리에게 남겨주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것입니다. 정신병자냐, 간교한 사기꾼이냐, 아니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냐는 것입니다. 제가 이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내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면, 예수님의 존재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우리는 점점 더 구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이 복되신 존재를 이해하면 할수록, 그분의 피로 죄사함 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축복된 삶의 출발점임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사함 받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복된 것일까요?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라고 베드로는 구원받은 성도의 영광스러운 존재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함’ (We may praise for the glory of God) 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성경을 제외하고 가장 자주 자주 묵상하고 마음 깊이 새겨보는 것 중에 하나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의 ‘첫 질문과 대답’입니다. 그 질문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What is the chief end of man?) 라는 것이고 그 대답은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 (to glorify God, and to enjoy Him forever) 입니다. 요즘처럼 ‘인간중심적 가치관’에서 살아가다 보면, 신실한 성도들이 고백했던 것과 같이 ‘우리 인간의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삶의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는 <인간목적의 정의>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 저는 추측해 봅니다. 그러나 분명한 성경의 진리는 우리 구원받은 성도의 가장 우선적이고 중요한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임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시 이점을 <에베소서 1장>에서 바울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삼으신 뜻은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 (v.6)이요,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v.12)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의 영광일까요?’ 사실 이 질문만큼 방대하고 힘든 질문도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은 누구신가?’ 라는 질문만큼이나 유한한 우리 인간이 대답하기 힘든 질문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그의 택함 받은 자녀들이 하나님을 깨닫고 그분께 합당한 찬양과 영광을 돌리기에 부족치 않을만큼의 자신을 알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어떻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서’입니다.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이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한없고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헤아려 나갈수 없기에 성령님을 통해 점점 더 자신을 드러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 2:10) 고 오직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더 깊은 마음과 뜻을 깨닫아 나갈수 있으며, 깨닫은 만큼 그분을 더욱 사랑하고 그분께 합당한 영광과 경배를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여러분의 단순한 의무사항이 아니라, 자녀의 말할 수 없는 특권과 풍성한 삶의 근거임을 우리는 이해하고 있습니까?

셋째, ‘그분의 권세와 능력을 교회에 주심’ (Church may receive the authority & power by Jesus) 입니다: 오늘 이 메시지 후에 우리는 함께 ‘주의 만찬’을 나눌 것입니다. 이 성만찬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께서 설명해 주신 것과 같이 우리가 함께 나누는 ‘떡 조각’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찢으신 살을, 그리고 ‘포도즙 잔’은 주님의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배로우신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런 주의 만찬식을 주께서 명령 하신대로 다시 오실 때까지 기념하는 것입니다. 바로 주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구원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주의 만찬식’ 뿐 아니라 분명히 ‘행하라’는 ‘명령’으로써 주신 말씀이 “서로 사랑하라” (Love one another) 인데 이 2가지에서 공통점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그것은 주님은 그 대상이 성도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그의 몸된 <교회 공동체>에 이 명령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십자가 위에서 죄와 사망을 이기신 주께서 명령하시는 그 중심되는 대상은 <그분의 몸된 교회 공동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은 자신의 몸된 교회를 향한 ‘주의 만찬’을 모일 때마다 행하라 명하셨고, 또한 교회를 향해 ‘서로 사랑’할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물론, 우리 성도 한사람은 교회라는 공동체의 한 지체요, 구성원이기에 그분의 명령은 우리 각자에게 해당되지만, 그 명령은 언제나 교회공동체의 차원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함께 성만찬을 나누고, 함께 사랑을 훈련해 나가는 것입니다. 제가 이것을 분명히 밝히고자 노력하는 이유는 주님은 이와 같이 교회를 향해 명령하실 뿐 아니라, 또한 교회를 통하여 자신의 권세와 능력을 넘치게 부어 주신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어디서나 모든 것을 넘치도록 채워 주시는 분이 계신 곳입니다” (엡.1:23/현대인의 성경)라고 사도 바울이 설명하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데로 우리 주님은 지상에서 세우신 유일한 영적 기관인 그의 몸된 교회를 통하여 음부의 권세를 무너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주님은 이 교회 위에 자신의 권세와 능력을 날마다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복음서 마지막에 주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마. 28:18) 가지시고 제자들을 향해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주께서 명령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할 것을 명령’하신 것은 우리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서, 그의 몸된 교회인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것이 우리가 함께 서로 사랑하며, 우리가 함께 주께서 명하신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힘쓰며 싸워 나가야 되는 이유일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2천여년전 오늘 새벽에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시신을 안치했던 돌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주님의 장례를 준비하려고 무덤에 갔을 때, 돌문은 옮겨져 있었고, 주님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인들이 놀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있을 때, 흰옷입은 천사가 말했습니다. “너희는 무서워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마. 28:5~6)고.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그 보혈로 남김없이 갚으시고,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믿고 구원받으셨습니까? 이 구원의 은혜를 그 독생자를 통해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거듭남은 시작입니다. 우리의 남은 삶은 이제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약속하신 성령의 도우심으로 허락하신 영광의 풍성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는 성령의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감춰졌던 하늘에 속한 성도의 모든 축복된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 다시 만나는 날까지 이런 풍성한 삶을 더욱 누려 나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