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10, 2022

“성령충만” (I) (Filled With The Spirit)

Preacher:
Passage: 에베소서 (Ephesians) 5:17-18
Service Type:

“성령충만” (I)

(Filled With The Spirit)

4-10-22

본문말씀: 에베소서 (Ephesians) 5:17-18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Therefore do not be foolish, but understand what the Lord’s will is.)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Do not get drunk on wine, which leads to debauchery. Instead, be filled with the Spirit.)

[설교 요약]

오늘 본문말씀에서 사도는 우리를 권고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v.18)고. 오늘 본문처럼 우리 크리스챤이 성령에 대해 취해야 할 태도를 명확하게 밝힌 말씀도 흔치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앞절에서 “~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v.15-16) 고 성도를 도전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에베소 성도들에게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도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지혜롭게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v.17)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뜻까지도 통달하시는 영 (고전. 2:10)이시기에 성령의 충만을 통해 더욱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한 성령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은 이것입니다.

  • ‘성령은 누구실까요?’: 성령은 ‘제3위격’ (The Third Person)에 해당하는 ‘성삼위 하나님’ (The Trinity God)입니다.
  • ‘성령의 사역은 무엇일까요?’: 성령은 ‘창조사역’ (창.1:2), ‘구원사역/중생’ (요.3:5),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생각나게’ (요.14:26),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 (요.16:8), ‘기쁨이 충만하게’ (요.16:20-24)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하기 앞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라고 먼저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술의 알코올 성분이 온몸에 퍼지게 될 때, 우리의 정신과 몸 전체가 술기운에 장악되기 때문입니다. ‘술 취하는 것’ 과 ‘성령 충만한 것’을 대조적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게 될 때도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는 그의 통치하심으로 장악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차이점은 ‘술 취하게 될 때’ 인간은 무절제와 육체적 탐욕이 극대화되어 방탕의 열매를 맺게 되는 반면, ‘성령의 충만을 받게 될 때’ 인간은 더욱 분별력과 인격적으로 성숙된 영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성령은 지혜와 진리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성령충만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성도의 신분에 걸 맞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꼭 필요한 ‘자동차의 연료 (fuel)’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받지 못할 때, 죄와 싸워 승리하며 약속하신 모든 은혜를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시간에는 ‘무엇이 성령충만인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설교 전문]

            제 개인적으로 말씀을 읽고 묵상해 나가면 갈수록 그 어떤 것보다도 새로운 깨닫음과 더 깊은 이해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 ‘성령’에 관한 것입니다. 사실 신.구약 성경을 읽어보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자녀 삼으신 하나님 아버지가 누구이신지, 그리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 세상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에 관한 말씀은 우리가 관심과 열심을 가지고 찾기만 한다면, 성경 곳곳에서 넘치도록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한 분이신 성령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거기에 해당하는 말씀을 찾기가 그리 많지 않음이 사실입니다. 얼핏 보기엔, 성령에 관련된 말씀은 많지도 않을 뿐 아니라 또한 왠지 모호하거나 불명확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 성령에 대한 말씀의 이해는 결국 우리의 영적 상태에 따라 좌우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 사도는 우리를 권고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v.18)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처럼 우리 크리스챤이 성령에 대해 취해야 할 태도를 명확하게 밝힌 말씀도 흔치 않는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크리스챤이 성령님을 아는 지식에서 더욱 자라나가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성령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시켜 나가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바로 성령의 충만함 받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기대합니다.

저는 이번 주와 다음 주 두번의 메시지를 통해 ‘성령충만’이라는 제목으로 성도 여러분과 ‘성령’에 대해서 그리고 그중 에서도 ‘성령충만’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세월을 아끼라”는 제목으로 <에베소서 5장>말씀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빛된 자녀로서 세월을 아끼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 한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우리 인간의 노력과 능력 (=재능)으로 얻어지는 지혜가 아닌데, 이 <지혜>는 하나님의 성품에 속한 지혜요, 성령의 은사 (=선물)로 주어지는 지혜임을 우리는 확인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영적 잠에서 깨어나서 지혜와 진리의 성령님을 의지하여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지혜롭게 시간을 관리하고 사용해여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지혜로운 청지기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값을 주고 시간을 되찾는 지혜로운 빛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사도가 말씀을 시작하면서 밝히듯이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다” (17b)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지혜가 필요한 것은, 그 지혜를 사용하여 세월을 아끼고자 힘써야 하는 것인데, 결국에는 이 지혜는 곧 ‘주님의 뜻을 이해함으로 그 뜻을 따르는 지혜’인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의 첫 질문과 대답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근본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인데 어떻게 이 목적을 우리는 달성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이해하는 만큼’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제가 이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고 온전하신 뜻을 이해해 나가는 것’이 오늘 에베소서 말씀 뿐 아니라 모든 신구약 성경 말씀의 한결같은 성도들 향한 도전이자 격려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이해하는 핵심’은 바로 ‘성령님의 은혜 (도우심/능력)’이라는 점을 우리는 깨닫아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에서 사도가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말한 다음 곧 바로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도전하는 핵심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바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시기에 하나님의 깊은 뜻을 감찰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고린도교회 성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 하시느니라” (고전. 2:10)라고 성령의 놀라운 사역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깊으신 마음과 뜻을 그의 자녀들에게 깨닫게 해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의 영, 성령님 만이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성령은 누구시가?’ 하는 ‘성령론’에 대해 개략적인 요점을 살펴보고 나서, 성령의 사역에서 사도가 오늘 본문에서 도전하는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함께 확인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성령’ (The Holy Spirit)은 누구실까요?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 (The Trinity God)이십니다. 즉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에 이어서 ‘삼위일체 하나님에서 제 3위격에 해당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성경에서 가장 먼저 성령이 등장하는 말씀은 <창. 1:2>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 하시니라” (창.1:2) 여기서 ‘하나님의 신’ (The Spirit of God)은 ‘성령’을 뜻합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태초에서부터 천지를 창조하시는 그 모든 역사를 실제적으로 행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첫 순간에서부터 지금까지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의 창조사역을 주관하시고 행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성령님은 ‘인간을 구원시키는 중대한 사역’을 행하십니다. 예수께서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3:5)고 선언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시지 않으면 누구도 예수를 주라고 시인할 수 없고, 따라서 구원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령사역의 전부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임박한 죽음을 앞두고 ‘보혜사 성령님’이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16:8)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앞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하나님 아버지의 그 깊으신 뜻까지도 통찰하셔서 우리로 깨닫아 알게 하시는 분이 곧 성령님이십니다. 이것이 대략적으로 성령이 누구시며, 그분의 사역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사도가 에베소 성도를 향해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도전하는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는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성도를 격려하고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도전합니다. 여기서 왜 사도는 주의 뜻을 이해함에 있어서 먼저 ‘술 취하지 말라’는 것으로 시작할까요? 사실 ‘술’은 오늘날에 있어서도 크리스챤들에게 있어서 실제적인 큰 이슈의 하나입니다. 특히 우리 교회와 같이 청년들이 주를 이루는 공동체에 있어서 ‘음주’는 큰 이슈의 하나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는 “성경에 ‘술 마시지 말라’고 한 말씀이 있습니까?”라고 질문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술 마시지 말라’고 한 말씀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술 취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방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도는 왜 ‘술 취하는 것이 방탕한 것이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먼저, 사도 바울 당시에 그리스 로마의 술의 신은 ‘디오니소스’이고 이것을 라틴어로 발음하면 ‘바쿠스’ 혹은 ‘바카스’가 됩니다. 요즘 전세계적으로도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모으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디오니소스>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냥 취해 마치 디오니소스/ 한손에 술잔/ 다른 손에 든 티르소스 ~~ 해가 뜰때까지/ 잠이 들때까지/ 불러 다시/ 마셔 다시/ 우리 두번 태어나지” 여기서 등장하는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는 사도 바울 당시 여러 이방백성들에게서 숭배의 대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들이키고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며 소위 ‘디오니소스 축제’라는 광란의 축제를 즐겼다고 합니다. 많은 고대 이방종교에서 볼 수 있듯이, 술에 인사불성이 되도록 취함으로 이와 같은 환각상태에서 신들과의 접신의 행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행위에서 볼 수 있는 이런 술에 취해 광란의 축제를 즐기면서 또 한편에서는 그런 가운데 혼잡한 성행위를 행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고대 이방종교’의 신들에 대한 숭배행위의 절정에서 찾아올 수 있는 대표적인 특징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무절제와 육체적 환락과 영적 방탕함이 하나가 되어 거짓신에 대한 우상숭배 행위를 행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우상숭배행위에 있어서 술 취함은 빠질 수 없는 핵심을 있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는 술 취함은 바로 영적으로 타락하고 방탕한 이방백성들의 우상숭배의 본질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한편 ‘술 취하지 말라’는 경고속에 담긴 또 다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 ‘술 취함’ (drunkenness)자체가 가져오는 불행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도 보면, 노아가 포도주를 먹고 취해서 벌거벗고 자다가 둘째 아들 함이 그것을 보고 나가서 다른 아들에게 고한 것으로 인해 노아가 그를 저주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의인이라 불리던 노아가 술 취함이 원인이 되어 벌어진 불행한 사건입니다. 한편 아브라함의 조카 롯에게는 아들이 없었는데, 그의 두 딸이 아버지에게 술을 먹여 인사불성이 되게 해서 아버지의 아들을 낳습니다. 술 취함으로 말미암아 근친상간이라는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입니까? 수천년 전 성경의 사건이 전부가 아니라, 오늘날 이 시간에도 술 취함으로 인한 얼마나 많은 돌이킬 수 없는 개인적 불행과 가정이 파괴가 발생하는 지를 우리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문제는 술의 성분, 알콜이 몸 안에 퍼지게 될 때 자연스럽게 그 술의 기운은 우리를 장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술의 그 강력한 기운은 우리 몸 전체를 통제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내가 정상적인 생각과 지각을 사용할 수 없도록 장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가 “술 취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경고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런데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라고 경고하고 나서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사도가 ‘술 취하는 것’과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을 대칭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대칭되는 것일까요? 앞서 살펴본대로, 술에 취하게 될 때 온 몸이 그 술 기운으로 인해 장악되는 것입니다. 그 술 기운이 뇌와 온몸의 신경을 장악하여 인사불성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반해, 성령의 충만을 받게 될 때도 그 성령의 강력한 능력의 통제를 받게 됨을 볼 수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모든 성령충만을 받게 된 성도들의 상태는 매우 놀라운 것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게 되었을 때 자신 뿐만 아니라, 함께한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성령의 충만을 받게 될 때, 그 사람과 그를 본 사람이 함께 그 충만을 확인하고 인정할 만큼 이 충만은 분명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술 취하는 것과 성령 충만을 받는 것에 있어서 공통점은 그 사람을 분명하게 장악하고 통제하는 것인 반면에 차이점도 있습니다.

그것은 ‘술 취하게 될 때’ 그는 이성을 잃고 스스로 정상적인 사고가 마비된 위험한 상태가 되는 반면, ‘성령에 충만하게 될 때’ 그는 더욱 맑은 이성과 지혜를 소유하게 되는 인격적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혜와 진리의 영이신 성령으로 충만하게 그의 속사람이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그 선하신 성령께서 그의 인격적인 신뢰와 자발적인 순종을 통하여 그를 다스려 나가시기에 성령의 충만을 누리면 누릴 수록 그는 참으로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함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왜 우리 크리스챤은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이점에 대해서 ‘존 맥아더목사는 그의 에베소 5장강해 설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까지 에베소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 하나님의 자녀의 놀라운 신분을 영적으로 놀랍게 밝혔습니다. 이것은 마치 매우 멋진 자동차와 같은 삶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멋진 자동차가 움직이기 위해선 ‘연료’ (fuel/gas)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로서의 삶이 ‘시동을 걸고 움직이기 위해선 연료’가 필요한데 그것은 곧 ‘성령충만’입니다.”라고 맥아더 목사는 말합니다. 이것은 옛날 Amish성도들이 자동차 한 대를 가지게 되었는데 어떻게 그 차를 움직일지를 알지 못한 나머지, 결국 자신의 마차에 그 자동차를 메달아 끌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혹시 성도 여러분 중에는 연료가 없어서, 여러분들의 육신이라는 오래된 마차에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의 멋진 자동차를 힘겹게 끌고 다니는 분은 없습니까? ‘성령충만’이라는 연료가 없어서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성령의 충만을 약속하셨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 할지라” (겔. 36:26-27)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그의 택하신 자녀를 구원하실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성취될 성령의 충만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성령의 충만을 통하여 우리는 옛사람을 날마다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둠의 옷을 벗고 그리스도의 빛의 갑옷을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께서 우리 육신의 굳은 마음을 제거하셔서 부드러운 성령의 마음을 부어 주심으로써 말입니다. 여러분의 멋지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 자동차가 성령충만이라는 연료를 통해 시동이 걸리고, 영적 승리의 대도 위를 질주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런 복된 성령의 충만을 날마다 추구하고 누려 나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