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25, 2021

“성령충만” (I) (The Fullness of the Holy Spirit)

Series:
Passage: 요엘 (Joel) 2:28
Service Type:

“성령충만” (I)

(The Fullness of the Holy Spirit)

4-25-21

본문말씀: 요엘 (Joel) 2:28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보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And afterward, I will pour out my Spirit on all people. Your sons and daughters will prophesy, your old men will dream dreams, your young men will see visions.)

[설교 요약]

저는 ‘성령충만’이라는 주제로 이번 주와 다음 주, 2주동안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은 누구실까요?”: 성령님은 삼위일체에서 제 3위의 하나님” (The third Person of the Trinity)입니다. 즉, ‘성부 하나님’ (God the Father), ‘성자 하나님’ (God the Son), 그리고 ‘성령 하나님’ (God the Holy Spirit)이 각각 독톡한 인격을 가지고 동일한 본질 안에서 존재하시는 ‘삼위일체’ (The Trinity) 안에서 제 3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다음으로,

“성령의 사역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1. ‘창조’의 사역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 1:1~2)
  2. ‘구원’의 사역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3. ‘영적 성장’ (=성화)의 사역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 16:13)이제 그렇다면,
  • 왜 성도는 성령충만을 받아야 하는것일까요?” (Why Christians need be filled with the Spirit?)

첫째, ‘신분을 깨닫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성령의 충만하신 도우심을 통해서만 우리 성도자신의 신분을 이해해 나갈 수 있다고 선언합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롬. 8:16) 라고, 우리는 성령의 충만한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의 신분을 더욱 깨닫아가고 있습니까?

둘째,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4)고 명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약속하신 성령의 능력을 받게 될 때만 우리가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충성된 증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행. 1:8).

셋째,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요엘 선지자는 장차 임할 하나님의 영, 성령의 충만을 받게 될 때 ‘우리의 자녀들은 장래일을 말하고, 늙은이는 꿈을 꾸고, 젊은이는 이상을 본다’ (욜. 2:28)고 예언했습니다. 성령충만은 성령의 은사를 받는것 뿐 아니라, 성령으로 꿈꾸고 비젼을 회복함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통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치는’ 풍성한 생명의 삶을 누리게 됩니다. 바라기는 날마다 성령님과 사귐 가운데 이런 풍성한 삶을 누려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기대합니다.

 

[설교 전문]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우리 크리스챤이 영적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심적인 주제에 대해서 이번 주와 다음 주, 2주에 걸쳐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성령’입니다. 즉 ‘성령의 충만’입니다. 만약 우리 성도가 신앙생활함에 있어서 풍성한 열매 맺으며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성령의 충만하심’을 구해야만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왜냐하면, 이 성령충만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요, 동시에 행하라고 명령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충만을 받지 못할 때 여러분과 저는 결코 주님의 신실한 제자로 그를 따를수 없으며, 그분의 충성된 증인의 삶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성령님에 관련한 이번 메시지를 통해 그분을 알아가는 지식에서 더욱 자라나가고, 자라난 만큼 성령의 충만한 열매를 거두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

먼저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번 시간에 <성령님은 누구신가?> 그리고 <왜 성도는 성령충만을 받아야만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시간에 <어떻게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으며, 성령충만을 통해 어떤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를 함께 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도 기억하시겠지만, 저는 그동안 ‘성령의 사역’에 대해 설명하면서 ‘성령의 사역은 우리 성도를 거듭나게 하실뿐 아니라, 성도가 살아가는 평생의 삶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영적 성장을 이뤄가게 하심’을 강조해서 말씀드렸습니다. 한마디로 성령은 <인간의 구원 뿐 아니라 성도의 성화에 절대적인 주체>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우리가 성령님이 누구신지? 에 대해 더 깊이 알아 나가야 하는 중요한 이유인 것입니다. 성령에 대한 더 깊은 이해없이, 믿음의 올바른 성장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우리가 질문할 것은 ‘과연 성령님은 누구신가요?’하는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성령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 (The Trinity God)이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삼위일체’ 즉, ‘성부 하나님’ (The Father of God), ‘성자 하나님’ (The Son of God), 그리고 ‘성령 하나님’ (The Holy Spirit of God)인 ‘제 3위의 하나님’ (The Third Person of God)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어떻게 그분을 이해하고 추구해 나가야 하는가 하는 출발점이자, 핵심적인 근거가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성령의 본질을 근거해볼 때, 소위 자기 스스로를 ‘성령 받았다’고 하고, 그리고 ‘성령파’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성령님에 대한 자세에 있어서 얼마나 잘못되었고, 성령의 능력을 부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심엔 <성령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부족한데서 오는 문제점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들에게는 성령이 ‘거룩한 하나님’ 즉 ‘성삼위의 하나님’이라는 분명한 인식 (=깨닫음)이 없기에, 성령을 인격적으로 대하기 보다는 마치 내 마음데로 사용하는 <힘/에너지>으로 여기거나 어떤 <부리는 영>정도로 이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충만’을 받고자 함에 있어서 그 출발점은 ‘내 목적에 따라서 성령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성령이 누구시고, 그 분이 어떻게 나를 쓰시고자 하시는지를 깨닫아 나가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충만을 받는 첫 걸음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럼으로, 성령은 <성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며, 또한 성령은 신.구약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영> (The Spirit of God) 혹은 <그리스도의 영> (The Spirit of Christ)으로 불리어집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 혹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성령이 불리어지는 것으로부터 그분이 어떤 사역 (=일)을 하시는지를 밝히고 있음을 봅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의 사역’은 무엇일까요? 먼저,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던 그 첫 순간에서부터 성령은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신)이 되셔서 ‘창조사역’을 담당하셨음을 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 1:1~2). 그리고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주제인 ‘구원’에 있어서 그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또한 성령이십니다. 주님은 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이 사실을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5)라고. 주님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거듭나게 되는 것은 오직 물과 성령으로서만 가능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하여 우리는 비로소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또한 성령께서는 인간의 구원 뿐 아니라, 구원이후에도 절대적인 사역을 하심을 밝혀 주셨습니다. 주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실 것을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7~8) 주님은 성령님을 ‘보혜사/협조자/보호자’ (The Counselor)라고 부르시면서, 그분을 보내셔서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실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이것이 이어지는 말씀에서 잘 요약되고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요. 16:13~15)고.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으로 나타나실 뿐 아니라, 주님 자신의 ‘그리스도의 영’이 되셔서 우리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왜 성도는 성령충만을 받아야 하는가요?” (Why Christians need be filled with the Spirit?) 에 대해 함께 묵상해 보기를 원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우리 성도가 성령충만을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고 봅니까? 그렇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신분을 깨닫게’ (Because we may recognize our statuses through the Spirit-filled) 됩니다: ‘왜 우리에게 성령충만이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를 함께 살펴봄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은 여기서 ‘우리’는 믿지 않는 불신자를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거듭난 성도>에게만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그럼으로 아직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에게 우리는 결코 성령충만을 기대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성령을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 분을 거부하고 심지어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여러분과 제가 예수 믿고 거듭난 성도들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받아도 좋고, 안 받아도 상관없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성경에서 일관되게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제자’된 우리들에게 성령충만을 받아야 함을 선언하는 이유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우리 성도가 성령충만을 받아야만 하는 그 첫째 이유는 ‘나의 영적 신분’을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점을 가장 영광스럽고도 감격되게 우리에게 밝혀주는 말씀의 하나가 사도 바울의 <로마서 8장>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사도는 선언합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롬. 8:15)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양자가 될 수 있는 특권을 허락하신 성령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고 감히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롬. 8:16) 라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신 성령님은 더 나아가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그의 로마서 강해에서 바로<롬. 8:16>이 성령의 증거를 통해 우리 성도가 다다를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럽고 감격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된 확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거듭난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성령충만은 먼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가장 영광스럽게 확신시켜주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이런 영광스러운 신분을 성령을 통해 깨닫아 가고 있습니까?

둘째, ‘사명을 감당하게’ (Because we may make our missions through the Spirit-filled) 됩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신 주님은 40일 (?!)동안 여러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승천하시면서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4)고 말입니다. 왜 주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명하신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급하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주의 제자들은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는 결코 주께서 명하신 미션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28:19~20)는 주님의 명령은 성령의 충만을 먼저 경험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주님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8)고 제자들에게 약속하시고 나서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이것이 정확히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경험했던 것임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바로 주께서 잡히시던 날 밤, 목숨이 두려워 대제사장의 뜰에서 3번씩 주를 부인하고 배반했던 베드로가, 주께서 부활하시고 몇 날이 못되어 마가의 다락방에 제자들과 함께 모여 합심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불의 혀 같은 성령강림의 역사를 경험했던 것입니다. 성령충만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 이후에 베드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유대종교지도자들이 베드로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하지 말 것을 경고하며 위협했지만,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담대하게 자신이 복음을 전해야만 하는 이유를 이렇게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행. 4:19~20)라고.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게 될 때, 베드로 만이 아니라 우리 모든 주님의 제자들도 비로소 명령하신 미션/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풍성한 삶을 누리게’ (Because we may enjoy됩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 요엘 선지자는 장차 하나님의 영, 성령을 통해 세상만민에게 부어주실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선언하셨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보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라고. 앞서도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성령강림사건>을 언급했지만, 베드로 사도는 이 예언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이 합심하여 기도할 때 불의 혀같이 임하신 <성령강림>사건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행. 2:14~36). 그렇다면, 요엘이 예언한 ‘너희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하고,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고, 젊은이는 환상을 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이것은 초대성도들이 경험했던 ‘방언, 예언, 병고침’과 같은 성령의 은사도 포함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닐 것입니다. 더욱 분질적인 이런 꿈꾸고, 영적 비젼을 보는 것은 우리 주께서 성령을 통해 약속하신 풍성한 삶입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짧은 문장 안에서 놀랍도록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b)고 말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임을 분명히 밝히셨지만, 안타깝게도 그분을 믿는 성도들 가운데 아직도 그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치 않은가 하고 저는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이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그 이유는 주님의 양되는 우리를 살리시고자 하시는 것이요, 더 나아가 풍성한 삶으로 이끄시고자 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운데는 여전히 ‘구원’에만 관심가지고 ‘풍성한 삶’에는 관심이 없든지 아니면 그 풍성의 의미를 잘못 적용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우리 성도가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주께서 허락하신 풍성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읽을 때 마다 우리에게 많은 감동과 소망을 주는 <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신 주님의 스토리>를 우리는 잘 기억할 것입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3~14)고 자신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 되심을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수를 마신다’는 것은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임을 우리는 이해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명절 끝 날에 다시한번 영적 목마름 가운데 허덕이는 인생들을 향해 생수의 강으로 초대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요. 7:37~38)고. 그리고 나서, 사도 요한은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 7:39)고 ‘생수를 마시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정확하게 영적으로 해석했습니다. 그것은 ‘성령을 마신다’ 곧 ‘성령의 충만을 받는다’는 뜻인 것입니다. 우리 성도가 이런 성령의 충만을 경험하지 못할 때, 오래 믿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텅 빈듯하고 허무한 심령으로 괴로와하는 육신에 속한 크리스챤의 안타까운 삶을 살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결코 우리에게 이러한 삶을 계획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직까지도 성령의 충만을 받지 못한 안타까운 결과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 믿어 영생의 축복과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충만을 통해 풍성한 기쁨과 만족의 열매를 맺어가고 있습니까? 날마다 더 깊이 성령님과 사귀어 감으로 이런 충만한 복을 누려나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