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27, 2021

“성적 유혹” (The Sexual Temptation)

Preacher:
Passage: 데살로니가전서 (1 Thessalonians) 4:3~6
Service Type:

“성적 유혹”

(The Sexual Temptation)

6-27-21

본문말씀: 데살로니가전서 (1 Thessalonians) 4:3~6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It is God’s will that you should be sanctified: that you should avoid sexual immorality;)

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that each of you should learn to control his own body in a way that is holy and honorable,)

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not in passionate lust like the heathen, who do not know God;)

6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and that in this matter no one should wrong his brother or take advantage of him.)

[설교 요약]

우리 아포슬 교회는 청년사역을 하며, 청년이 주를 이루는 교회입니다. 우리 청년들이 신체가 성인이 된 만큼 이성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무분별한 추구로 인하여 삶이 변질될 때 본인 자신 뿐 아니라, 가족과 주위의 많은 사람들까지도 그들의 삶을 파괴시킬 수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의 주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인데, 사도는 오늘 본문말씀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로써 ‘무엇이 참된 성도의 육체적 성화인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는 오늘 말씀을 이렇게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v.3)라고. 그렇다면 무엇이 거룩하게 된다는 뜻일까요? 이 ‘거룩’의 원의미는 히브리어로 <코데쉬/ kodesh> 로써 ‘깨끗함’ ‘잘라냄’ ‘분리’를 뜻합니다. 그리고 여기서의 분리는 곧 ‘죄에서 분리’를 뜻 합니다.

그리고 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성도를 지도합니다.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v.3b~6)라고. 이것은 곧 ‘우리의 몸 (=육체)의 거룩함’ 입니다.

그런데, <4절>에서 사도가 “자기의 아내 취할 줄 알고” (v.4)라고 <개역한글>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만, <흠정역>에는 “자기 그릇을 소유할 줄 알되” (to possess his vessel) (KJV)라고 번역함으로 이것은 “자기의 몸을 다스릴 줄 안고” (to control his own body/NIV)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결혼한 기혼자이든, 하지 않은 미혼자이든 관계없이 자신의 몸을 음란으로 부터 깨끗하게 지켜야 한다고 사도가 강조함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시. 119:9~10) 라고. 그렇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좇아 그의 말씀에 의지하지 않을 때 우리는 육신의 소욕과 세상의 온갖 유혹에서 맞서 싸워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를 둘러 싸고 있는 세상의 유혹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청년 크리스챤들이 직시하면서 성적 유혹과 관련한 대표적인 이슈에서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 첫째, <육체적 순결>입니다: 기혼자는 <부부간의 순결>이요, 미혼자는 <혼전 순결>입니다.
  • 둘째, <동성연애는 죄>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동성연애자들을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라 품어주고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 주어야 하지만, 동성연애가 하나님이 금하시는 분명한 죄임을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레. 18:22; 롬. 1:26~27).
  • 그 밖에 <문신/ 지나친 장신구>사용이 있습니다: 이것은 죄의 차원 이전에 하나님의 성전된 우리 몸을 어떻게 잘 관리할 것인가를 각자 돌아본다면 지혜롭게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잘 지켜 나가고 순결한 그분의 자녀로 복된 미래를 준비해 나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복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 아포슬 교회는 청년사역을 하며, 청년이 주를 이루는 교회입니다. 청년의 시기는 특별히 신체적으로 활력이 넘치고 왕성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시기입니다. 육체적인 왕성한 활력이 넘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성에 대한 관심과 충동도 그만큼 큰 시기라는 뜻입니다. 제가 오늘 ‘성적 유혹’이라는 설교제목을 잡았지만, 우리 청년들이 신체가 성인이 된 만큼 이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성적인 충동을 느끼는 자체는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고, 도리어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모든 우리 인간의 신체를 만드시고, 성인이 된 남녀가 사랑함을 통해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은 것 까지가 모두 하나님의 복되고 신비한 창조의 능력과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무분별한 추구로 인하여 삶이 변질될 때 본인 자신 뿐 아니라, 가족과 주위의 많은 사람들까지도 파괴시킬 수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올바른 성에 대한 지식에서 자라나며 남녀가 하나되는 가정을 통해 허락하신 하나님의 온전한 축복을 깨달아 나감으로 지금에서부터 그 복된 삶을 준비해 나가는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

유대인들이 성경 다음으로 신뢰하고 사랑하는 ‘탈무드’에는 <성>을 ‘강’이라고 묘사한 것을 저는 먼저 언급하기 원합니다. ‘강’이란 적절히 잘 흘러갈 때는 주위의 모든 생물들을 살리고 생명을 잉태 시키지만, 가뭄으로 인해 강줄기가 줄어들 때는 주위의 생명을 고갈시키게 되고 반대로 홍수로 인해 강물이 범람하게 될때 가뭄보다 더 강력한 재앙이 되어서 주위를 초토화시키고 파괴시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잘 설명한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 성경본문말씀을 포함한 <데살로니가 전서>의 주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사도는 오늘 <살전. 4장>말씀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올바른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말씀에서는 ‘무엇이 참된 성도의 육체적 성화인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성도로서 성에 대한 성숙된 모습인지를 영적으로 지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오늘 말씀을 이렇게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v.3)라고. 여기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뜻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거룩함’ (v.3)인 것이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복 주시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중심되는 뜻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자 함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레. 11:45)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 이스라엘에게 거룩을 명령하신 첫째이유는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의 자녀이기 때문이요, 그분을 신뢰함으로 더욱 그를 닮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대해 성도 여러분들이 동의하신다면, 그렇다면 ‘무엇이 거룩하게 된다는 뜻인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먼저 ‘무엇이 거룩인가?’에 대한 가장 짧은 대답은 앞에서 말씀 드린대로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완전한 거룩에 도달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도 물론 그것을 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죽는 순간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거룩을 향해 점점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요, 참된 영적 축복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거룩’을 좀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그 거룩의 원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그것은 히브리어로 <코데쉬/ kodesh> 라고 불리고, ‘깨끗함’ ‘잘라냄’ ‘분리’의 의미를 뜻합니다. 그리고 여기서의 분리는 곧 ‘죄에서 분리’를 뜻입니다. 그럼으로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육신의 소욕과 싸워 이겨 나감>으로써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이요, 거룩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라면, 다음 질문은 ‘어떻게 거룩한 삶을 실천할 것인가?’를 질문할 순서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점에서 우리에게 대답한다고 믿습니다.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v. 3a)고 선언하고 나서, 그렇다면 무엇이 거룩함 인지를 구체적으로 삶에서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v.3b~6)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우리의 몸 (=육체)의 거룩함’ 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 인간존재를 ‘몸과 마음과 영혼’으로 표현 하듯이, 우리가 거룩하다는 것은 단지 그 어느 하나만이 아니라, 이 세가지가 모두 거룩해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그동안 에베소서, 빌립보서, 로마서등 여러 서신서에서 마음과 영혼 뿐 아니라, 몸의 거룩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곧 음란을 버리라” (v. 3a)는 것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한국 크리스챤의 경우, ‘성에 관련한 교육이나 가르침’은 가정이나 교회에서도 전무하다시피 한 것이 사실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물론 이곳 미국의 경우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소위 ‘성교육’ ()이라는 명목으로 상당한 수준의 성생활과 관련한 자료와 지식을 아이들에게 가르침으로 도리어 그렇게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크리스챤의 경우 가정과 교회 안에서 올바른 신앙적 관점의 성에 대한 가르침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물론, 우리 교회 청년들은 더 이상 미성년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은 단순히 성에 대한 교육의 시간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을 시작하면서 언급 드렸듯이 우리 아포슬교회의 사역대상이 청년들이기에 이 ‘성’에 관련된 하나님의 뜻과 가르침은 우리 신앙공동체에게 있어서 또한 시급히 요구되는 말씀이라고 저는 믿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청년들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미래의 축복된 가정을 지혜롭게 준비해야 할 뿐 아니라, 현재의 세상으로부터 밀려오는 죄악된 성적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 나가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성도가 거룩에 이르는 삶’에 대한 구체적 방법에 대해 이렇게 가르침을 줍니다. 그것은 ‘음란’ 곧 <성적으로 음탕하고 난잡한 행위>를 버리고, 각자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를 대할 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처럼 성적 욕망에 빠지지 말고, 이런 일로 인해 형제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사도가 일차적으로 가르침을 주는 대상은 결혼한 ‘기혼 형제 & 자매들’ 입니다. 그는 ‘어떻게 음란을 버리고,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 아내를 대할 것인지?’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하는 가정 안에서의 아름다운 성생활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결혼한 자들 뿐 아니라, 동시에 아직 결혼하지 않은 ‘미혼 형제 & 자매들’의 경우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을 말씀 아래 통제하고 절제하며 살아야 하는 것임을 도전함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본문 <4절>말씀에서 사도가 “자기의 아내 취할 줄 알고” (v.4)이라고 <개역한글> 성경 버젼에서는 번역하고 있지만, 헬라어 원어에 가장 가깝게 번역되었다고 인정받는 <흠정역>에서는 “자기 그릇을 소유할 줄 알되” (to possess his vessel)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자기의 그릇을 취한다’는 의미는 기본적으로 ‘결혼’을 의미하지만, 이 말의 의미는 성경적 용법에 따라서는 <자기의 몸을 다스릴 줄 안다> (to control his own body/NIV)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신학자 ‘크리소스톰’이나 ‘칼빈’의 견해를 따른 것입니다. 그럼으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결혼을 했건 안했건 자기의 몸을 음란과 색욕에 빠지지 않게 잘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르침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생활은 오직 <결혼한 부부의 관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혼 외의 성관계는 음란의 죄요, 간음의 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잘 압니다. 청년의 시기에 자신을 주위의 모든 음란의 유혹으로부터 지켜 나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저 역시 청년시절, 여러가지 세상의 유혹으로 힘들어 하기도 했고 언제 이 시기가 끝이 날 것인지 막막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나, 제가 집사람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지도 벌써 30여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제가 이 시간 우리 믿음의 청년들에게 도전하고 격려하기 원하는 것은 주님을 신뢰하며 이 청년의 때를 아름답게 지켜 나가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악한 성적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여러분이 이러한 자신을 지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다윗이 지은 시로 추정되는 <시. 119편>에서 시인은 이런 소중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시. 119:9~10) 라고 말입니다. 이 고백은 피가 끓는 청년의 시기를 세상의 유혹에서 지켜 나간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기 때문에 자신을 깨끗케 할수 없다고 자포자기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렇기 때문에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를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않게 지켜 주십시요”라고 하나님께 겸손하면서도 간절하게 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온갖 유혹 가운데 자신을 지켜 깨끗케하며 순결하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음을 그가 깨닫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으로 시인은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시. 119:11)고 주의 말씀에서 떠나지 않을 것을 굳게 다짐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말씀만이 여러분을 모든 죄악된 유혹으로부터 지켜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오직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고, 그분의 말씀에서 떠나지 않음으로 자신을 순결한 그분의 자녀로 지켜 나갈 수 있음을 믿으십니까? 이것을 믿으신다면, 현재 우리를 둘러 싸고 있는 세상의 유혹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여러분은 직시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별히 저는 오늘날 우리 크리스챤 청년들을 위협하는 ‘성적 유혹’에 대해 말씀을 전하면서 여러분이 경험하는 그 대표적인 몇가지 이슈들에 대해 살펴봄으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첫째 <육체적 순결>입니다. 이것은 곧 기혼자들에게는 <부부간의 순결>이고, 미혼자들에게는 <혼전 순결>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앞에서 오늘 말씀을 통해 ‘음란을 버리고, 색욕을 좇지 말라’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의 의미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육체적 순결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인정하시는 결혼을 통해서 ‘부부관계’ 안에서만 지켜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미혼의 청년들은 ‘혼전 성생활’의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에 의지하여 자신을 지켜 나가도록 해야 하며, 동일한 관점에서 이미 결혼한 자들도 부부 이외의 다른 사람과의 어떠한 육체적 음란을 행치 않음으로써 자신을 깨끗이 지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룬 부부관계 안에서 아름다운 성생활을 허락하시는 것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둘째, <동성연애>는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죄악입니다. 특별히 이 ‘동성연애’의 문제는 오늘날 사회적으로도 많은 논란을 일으키는 뜨거운 감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이 동성연애에 대해 분명히 성도 여러분과 확인하고자 원하는 것은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지지하고, 또 얼마나 이것을 반대하느냐 하는 통계자료나 각각의 견해가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이것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구약의 <레위기>에 보면, “너는 여자와 교합함 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레. 18:22)고 되어 있고, 신약의 <로마서>에서는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 하매” (롬. 1:26~27) 라고 사도 바울은 동성연애의 죄악상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동성연애의 이슈에 대해서 우리 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취해야 할 지혜로운 태도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첫째, 동성연애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금지하는 죄라는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그러나 둘째, 그들을 배타적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대하고 다시 그분의 은혜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울 것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 밖에 신체에 관련한 <문신>이나 <지나친 장신구>등을 사용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죄인가 아닌가의 차원보다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이 몸, 성령께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의 몸을 어떻게 잘 관리하고 아름답게 관리해 나갈 것인가 하는 차원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 문제도 좀더 선명하게 우리의 생각들을 정리해 갈 수 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그의 자녀가 자신을 닮아 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 날마다 거룩을 향해 점점 더 성장해 나가기를 기뻐하십니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도 여러분 모두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의롭다고 인정함 받을 뿐 아니라,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성숙된 그분의 자녀가 되시길 기대합니다. 바라기는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잘 지켜 나가고 순결한 그분의 자녀로 복된 미래를 준비해 나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