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19, 2022

“쇠사슬에 매인 사신” (An Ambassador in Chains)

Preacher:
Passage: 에베소서 (Ephesians) 6:19~20
Service Type:

“쇠 사슬에 매인 사신”

(An Ambassador in Chains)

6-19-22

본문말씀: 에베소서 (Ephesians) 6:19~20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Pray also for me, that whenever I open my mouth, words may be given me so that I will fearlessly make known the mystery of the gospel,)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for which I am an ambassador in chains. Pray that I may declare it fearlessly, as I should.)

[설교 요약]

            오늘로써 에베소서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사도는 그의 글을 마감하면서 자신은 “쇠사슬에 매인 몸”임을 성도들에게 다시한번 환기시킵니다. 그러나 죄수가 아닌 ‘사신’ 즉 ‘하나님 나라의 대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그런데 본문 앞절 <엡. 6:18>에서 사도는 이렇게 에베소 성도들을 힘주어 독려합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v.18/개역개정)라고. 이것을 <KJV>에서 보면 “Praying always with all prayer and supplication in the Spirit, and watching thereunto with all perseverance and supplication for all saints”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는 한문장에 무려 3번씩 “모두” (=all)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함을 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모든 성도를 위해” “모든 인내와 간구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두를 아우르는 한 단어를 그는 먼저 제시하는데, 그것은 “항상” (=always)입니다. ‘항상,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 기도는 개인적인 기도도 있겠지만, 특별히 사도는 <중보기도> (intercessory prayer)를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 중보기도는 ‘주 안에서 그분의 몸된 지체들’ 곧 ‘성도들 상호간의 기도’인 것입니다.

사도가 우리 하나님의 자녀가 얼마나 영광스럽고 신령한 복을 누리는 신분을 지닌 존재인지를 지금까지 설명하고 나서, 그는 편지를 마감하면서 먼저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 5:18)고 도전하고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악한 영과 싸우라’고 (엡. 6:11-17) 성도들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 (=교회)로서 자라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가 자신을 포함해서 ‘성도상호간의 뜨거운 중보기도’를 당부하며 그의 글을 마무리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서로를 향한 이 강력한 기도의 끈을 통하여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고, 함께 자라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사도 바울 한사람만이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들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 아버지의 부르심의 소망을 날마다 깨닫아 한 몸된 주의 군사로 힘써 싸우고, 서로를 기도로서 섬김으로 하나님 나라의 자랑스런 대사로 그 사명을 충성스럽게 완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설교 전문]

            이제 우리는 오늘로써 사도 바울의 에베소서 마지막 메시지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지난해 11월 첫주에 <에베소강해>를 시작하여서 오늘까지 몇번의 다른 본문을 제외하면 대략 7개월 가량을 함께 에베소 말씀으로 은혜를 나눴습니다. 사도는 이제 그의 글을 마감하면서 자신의 현재 처한 상황을 성도들에게 다시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자신은 지금 “쇠사슬에 매인 죄수의 몸”이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어떤 이웃을 해하거나 사회적으로 해악을 끼친 적이 없었습니다. 도리어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좇아 양심과 진리를 따라 하나님의 빛된 자녀로 온 힘을 다해 살아왔을 따름입니다. 그럼 그런 그가 왜 쇠사슬에 매인 죄수의 몸이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전함으로 세상에서 핍박과 고난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는 이제 에베소 성도를 향한 편지를 마감하면서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성도들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복음사명> 곧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는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사도가 이렇게 성도들에게 그의 편지 마지막에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기를 당부하고 도전함으로 그의 글을 마무리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우리 모든 성도의 최종적인 ‘영적 호흡’이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부르신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더욱 깨닫아 나가게 되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악한 영과 싸워 이길 힘을 성령을 통해 공급받게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신’이 되어 세상으로 나아가 제자의 삶을 힘있게 살아가고자 결단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절 <엡. 6:18>에서 사도는 이렇게 에베소 성도들을 힘주어 독려합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v.18/개역개정)라고. 이것을 <King James Version>에서 보면 “Praying always with all prayer and supplication in the Spirit, and watching thereunto with all perseverance and supplication for all saints”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는 한문장에 무려 3번씩 “모두” (=all)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함을 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모든 성도를 위해” “모든 인내와 간구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두를 아우르는 한 단어를 그는 먼저 제시하는데, 그것은 “항상” (=always)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그리고 모든 인내함으로 간구할 것’인데, 그것은 어떤 일정 기간만 하라든지, 기회가 주어지면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하라’는 것입니다.

사도가 순교 당하기 전, 마지막 편지를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쓰면서 그에게 ‘말씀전파를 권면’하며 도전했듯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딤후. 4:2)는 것입니다. 동일한 의미에서 사도는 그의 영적 자녀인 에베소 성도들에게 사랑과 영의 진리로 충만한 편지를 마감하면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기도에 힘쓰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을 독려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앞서도 언급했듯이 기도만이 성도의 최종적인 승리를 가져오는 강력한 무기요, 영적 능력의 파이프라인이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자 말아야 할 기도에 대한 사도의 분명한 권면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 각자의 자신을 위한 기도 뿐 아니라, <중보기도> (intercessory prayer)입니다. 그럼 무엇이 ‘중보기도’입니까? 여러분들도 잘 아시듯이 중보기도는 ‘남을 위한 기도’입니다. 나 자신의 기도를 넘어서서,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가 바로 중보기도인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특별히 ‘주 안에서 그분의 몸된 지체들’ 곧 ‘성도들 서로 서로를 위해’ 기도할 것을 강하게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를 위하여” (for all saints)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성도 여러분도 기억하시겠지만, 에베소서의 주제말씀은 <엡. 1:10>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런 선언에서 알 수 있듯이, 사도는 우리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통일되어 짐을 영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가 그동안 에베소 말씀 가운데 이점을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강조했는지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나로 통일된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the body of Christ)입니다. 그러나 이 몸은 완성된 몸이 아니라, 완성을 향하여 날마다 ‘성장하는’ (=자라나는) 몸인 것입니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로 연결된 <하나님의 성전> (the temple of God)라고 사도는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성전에서도 마찬가지로 완성된 성전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머리돌’ (The Cornerstone)하여 함께 연결되고 ‘함께 지어져 가는’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몫이라고 사도는 도전하는 것이 아닐까요? 바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함께 성장해 나가고, 그리스도를 머리 돌로 하여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함께 지어져 갈 수 있을 것인가는 우리 성도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말씀을 처음 시작하면서 사도가 선포했듯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완벽한 ‘마스터플랜’을 세우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그 보혈을 흘리심으로 그 계획을 완성시키셨고, 그리고 성령께서 구원받은 성도 안에서 완성된 ‘신령한 복’ (자녀의 복)을 날마다 믿음으로 적용시켜 나감으로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다고요? 바로 기도로써 열매맺고, 완성되어 진다고 사도는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가 누릴 그 영광스럽고 강력한 능력과 은혜가 무엇인지를 바울은 앞에서 소상히 밝히고 나서 이제 기도를 거듭 거듭 도전하며 편지를 마무리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성도 자신을 위한 기도는 말할 것도 없고, 서로를 향한 능력있는 중보의 기도를 더욱 더 실천해 나감으로써 예정하신 신령한 복을 함께 누려 나가고, 한 몸으로 아름답게 지어져 나가자는 것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기도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 때 하는 ‘공기도’가 있는가 하면, 성도 각자가 혼자 골방에서 드리는 ‘개인기도’가 있습니다. 혹은 ‘소리내어 드리는 기도’가 있는가 하면, ‘마음 속으로 그리고 속삭이듯 하는 기도’도 있습니다. 또한 기도를 행하는 자세에서 본다면, ‘서서 드리는 기도’ ‘무릎 꿇고 드리는 기도’ 혹은 ‘눈을 뜨고 하는 기도’로써 ‘산책을 하거나, 설거지나 심지어 일을 하면서도 드리는 기도’도 있는 것입니다. 모든 기도의 형식과 종류를 통하여 언제든지 수없이 많은 방법으로 성도들은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 우리는 ‘중언부언’ 하지 않을 수 있으며,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친히 그 뜻대로 간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도가 로마서에서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6)고 밝힌 영적 진실인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회성도를 향하여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17)고 권면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기도의 형식과 종류를 통하여 영의 자유함으로 드리는 기도요, 항상 성령 안에서 드리는 기도인 것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사도가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모든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라고 권면하고 나서, 앞서 확인한 것처럼 마지막으로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당부함을 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누굽니까?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최고의 신학과 성령의 충만함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서의 사역을 탁월하게 감당했던 사도가 아닙니까? 그런데도, 그는 “나를 위하여 구하여 달라” (v.19a)고 기도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사도의 모습을 통하여 아무리 위대하고 능력 있는 주님의 제자라 할찌라도, 함께 주의 몸된 성도가 드리는 중보기도의 지원은 그토록 절대적인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역설적으로 사도 바울이 사도 바울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수없이 많은 신실한 초대교회 동역자들의 중보기도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게 됩니다.

더욱 구체적으로 사도가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기를 부탁한 기도제목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건강을 위해서도’ ‘재정적은 넉넉함을 위해서도’ 더 나아가 ‘쇠사슬에 매인 죄수의 신세에서 벗어나기를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당부한 기도제목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v.19)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의 놀라운 비밀을 담대하게 증거하는 심히 축복되고 영광스러운 일에 쓰임 받고자, 그는 지금 쇠사슬에 매인 죄수의 몸으로 감옥에 갇혀 있게 되었음을 그는 정확히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이 죄수의 몸은 복음을 담대히 선포하게 하시고자 바울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의 도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그는 자신을 얽어 매고 있는 쇠사슬이 풀리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쇠사슬을 통해 그는 자신의 영광스런 주님을 담대하게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감당할 수 있고, 주님 나라의 자랑스런 ‘사신’ 곧 ‘대사’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할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죄수의 몸은 부끄러움도 실패도 아니요, 영광스럽고 자랑스런 그리스도의 대사의 몸임을 바울은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도가 에베소서 3장 (3:1)과 4장 (4:1)을 시작하면서 뿐 아니라, 이제 그의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번 자신이 쇠사슬에 얽매인 죄수의 몸이 된 것을 언급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이것은 부끄러운 것도 아니요, 실망스러운 것도 아니요, 도리어 자랑스러운 것이요, 영광스러운 것이란 사실입니다. 그것은 ‘이방인을 구원하고자’ ‘그리스도의 복음의 비밀을 능력으로 증거하고자’ 죄수의 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사도의 담대한 죄수의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대사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과 저는 어떻습니까? 이런 하나님나라의 대사로써의 사명은 사도 바울에게만 주어진 것일까요? 여러분과 저는 아닙니까? 저는 사도가 성도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당부에서는 함께 이 사명을 감당하자는 도전이 있음을 믿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 한사람에게만 주어진 사명이 아니요, 그 성격과 내용은 다르다 할찌라도 우리 모든 성도 한사람 한사람을 우리 주님은 부르셔서 그 부르심에 합당한 그리스도 왕국의 대사로서의 독특한 사명을 맡기셨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주께서 허락하신 이 대사로서의 사명을 이해하십니까? 그리고 감당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에베소서 강해말씀을 이제 마무리하면서 마지막 확인하기 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지체된 서로를 위해서, 그리고 입을 열어 복음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도록 사도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기를 당부하는 것은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처해 있는 이 치열한 싸움에서의 상황은 영적 전쟁의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악한 영 사단 마귀와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성도는 ‘오직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함께 싸워 나갈 때만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명심해야 할 것은 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요, 이것은 우리 각자가 치루는 전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서로 연약한 곳을 방어하기 위해 함께 그리스도의 군사로 싸우는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지 않을 때, 교활한 우리의 적 사단 마귀는 우리의 가장 취약한 곳을 집중공격 합니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도, 공동체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명심해야 할 것은 함께 힘을 모아 방어해야 하는 것입니다. 연약하고, 공격당하는 지체가 우리 가운데 있다면 ‘그건 내 일 아니다’라고 모른 척 눈 감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승리하고, 함께 패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기도와 간구로” “모든 성도를 위해” “모든 인내와 간구로”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담대히 입을 열어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각자 있는 곳에서 선포하는 주님의 대사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에베소서 말씀을 오늘로서 마무리하며 제 개인적으로는 아쉬움과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 이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다 나누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언제 다시 에베소 말씀을 함께 나눌지 알 수 없지만, 우리 각자에게 있어서 에베소서 말씀에 대한 더 깊은 성찰과 묵상은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 되어야 함을 믿습니다. 우리가 많은 말씀을 들은 것이 전부가 아니라, 우리가 듣고 깨닫은 만큼 이제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획하신 모든 신령한 복을 이제 우리 각자가 사도의 계시의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깨닫는 만큼 삶으로 누려 나가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요? 바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대장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나로 연결되어 죄와 사단 마귀와 싸워 이겨 나감으로서 입니다. 이를 위해 언제나 행할 것은 항상 기도로써 서로를 위해 간구하고 함께 싸워 나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한사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하나님 나라의 자랑스런 대사가 되어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서 하나님의 빛과 진리를 전하는 자녀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신령한 복을 누려 나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