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12, 2022

“죄 죽이기” (The Mortification of Sin)

Preacher:
Passage: 에베소서 (Ephesians) 6:12~13
Service Type:

“죄 죽이기”

(The Mortification of Sin)

6-12-22

본문말씀: 에베소서 (Ephesians) 6:12~13

12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For our struggle is not against flesh and blood, but against the rulers, against the authorities, against the powers of this dark world and against the spiritual forces of evil in the heavenly realms.)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Therefore put on the full armor of God, so that when the day of evil comes, you may be able to stand your ground, and after you have done everything, to stand.)

[설교 요약]

우리는 지난 2주에 걸쳐 “하나님의 전신갑주을 입으라”는 사도의 말씀의 의미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오늘 ‘죄 죽이기’라는 설교제목으로 ‘영적 싸움’의 의미를 우리 각자에게 적용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저는 청교도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존 오웬’ (John Owen)의 책 <죄 죽이기>을 통하여 우리 크리스챤들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어떻게 죄와 싸워 이길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존 오웬’은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 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 8:13)라는 말씀을 주제로 삼습니다. 여기서 ‘너희’는 불신자가 아닌 성도들입니다. 왜냐하면 성도 안에 존재하는, <‘죄는 육신의 행실들을 끊임없이 생산’해 내고, 이 죄를 내버려두게 될 때 영혼을 파멸로 이끌게 된다>는 것임을 오웬은 설명합니다.

이 책에서 그는 ‘죄 죽이기’는 신자의 평생을 통한 의무요,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함을 강조합니다. 오웬은 먼저 ‘하나의 외적인 행위를 중지했다고 죄를 죽인 것이 아님’을 언급하면서, 우리 내면의 죄가 함께 죽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죄를 죽인다는 뜻일까요?’ 그것은

  • ‘죄의 성향을 약화시키는 것’ (약. 4:7)
  • ‘죄와 맞서서 싸우는 것’ (엡. 6:12)
  • ‘죄를 죽이는 데 지속적으로 성공하고 있다는 것’ (빌. 3:13-14)이라고 그는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는 어떻게 죄를 죽일 수 있을까요?’ 그것은,

  •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죄를 죽이실 수 있는 주체임을 밝힙니다. “~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요. 15:5)고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 오직 성령을 통해서우리 주님은 약속하신 승리를 이루십니다. 그렇다면 성령은 어떻게 죄를 죽일까요? 그것은 첫째) ‘죄를 제대로 깨닫게 해 주심’으로, 둘째) ‘그리스도의 충만을 경험케 하심’으로, 셋째) ‘우리 속에 성화를 시작하여 완성하여 가심’으로 죄를 죽이는 것입니다.

이제 결론은 우리 각자가 싸워야 할 ‘영적 전투’ 곧 <세상적인 성공, 야망, 돈에 대한 사랑, 육체의 정욕, 공부에 대한 욕심, 자신의 계획과 철학>으로 유혹하는 악한 영과 맞서 싸우는 치열한 영적 전투를 행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바라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날마다 죄와 싸워 승리하며 성령의 풍성한 열매 맺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는 지난 2주에 걸쳐 “하나님의 전신갑주을 입으라” (v.11,13)고 사도가 촉구하는 말씀을 주제로 하여 그 말씀의 의미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도전하는 것인지?’ 그것은 ‘그 전신갑주는 무엇이며, 어떻게 입을 수 있는지?’ 하는 것인지를 우리는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저는 오늘 ‘죄 죽이기’라는 설교제목으로 성도 여러분과 함께 지난 2주간의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악한 영, 사단 마귀와 싸워 이기자’고 도전했던 사도 바울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처럼 구체적인 말씀의 적용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죄 죽이기> (The Mortification of Sin)이라는 설교제목은 300여년 전에 청교도의 대표적인 신학자의 한사람인 ‘존 오웬’ (John Owen)의 책 제목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오늘날 역사의 시간속에 묻혀서 잘 모르는 성도들도 많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우리의 육신과 사단 마귀와 싸우고자 결단하며 선한 싸움을 싸우는 수많은 성도들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영적 전투의 교과서’가 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웬은 죄와 싸우는 그 내용이 무엇이며 어떻게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지를 탁월하게 영적으로 지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는 이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사도가 우리 성도들에게 도전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죄와 싸워 이겨 나갈 수 있는지를 적용의 차원에서 함께 점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존 오웬’을 잠깐 소개하자하자면, 그는 영국의 청교도 신학자로서 종교개혁자 칼빈 이후 가장 탁월한 신학자의 한사람으로 불립니다. 그는 옥스퍼드대학 퀸스 칼리지에 입학하여 1632년 인문학 학사, 1635년엔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하루 4시간씩만 자면서 학문연구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그는 그 이후 <하나님의 의> <분파주의> <복음의 신비> <히브리서 강해>등과 함께 그의 대표적 저서인 <죄 죽이기>를 집필하게 됩니다. 이 책은 그동안 여러 세기동안 많은 신실한 신자들에게 큰 영적 영향력을 끼쳤는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 (Knowing the God)으로 잘 알려진 20세기 대표적 신학자 <제임스 패커>는 그 중의 한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존 오웬의 <죄 죽이기>라는 이 책이 자신에게 끼친 막대한 영향력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나는 [죄 죽이기]에 가장 많은 빚을 졌다. 이 책은 영적 금광이다”라고.

‘존 오웬’은 그의 책을 시작하면서 이 책의 전체 강론의 토대로써 <로마서 8:13>을 삼았습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 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 8:13)라고.

이제 저는 여러분과 <롬. 8:13>에 관련해서 몇가지 질문과 답을 해가면서, 말씀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먼저, <첫번째 질문>은 “누가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하는 자일까?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그리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앞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롬. 8:12)라고. 사도는 함께 주 안에서 가족의 영적 관계를 맺은 그리스도 형제에게 ‘몸의 행실을 죽이라’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그렀습니다.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 크리스챤인 것입니다. 당연하지만 여기서 인정해야 하는 진실은 ‘모든 사람은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가 오직 크리스챤에게 이런 도전을 한 이유는 불신자들은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할 이유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능력도 의지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두번째 질문>은 “왜 우리 크리스챤은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하는 것일까?하는 것입니다. 그 중심되는 이유는 ‘우리가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나게 되었지만, 우리 육신 안에 거하는 죄는 완전히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원죄로부터 완전히 씻음 받음으로서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 거듭난 성도에게 더 이상 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런 우리의 영적 상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영은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완전한 구원을 누리게 되었지만, 우리의 육신은 여전히 죄가 거하는 썩어질 몸의 상태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고전. 15:53-54). 더 나아가 오웬은 <‘죄는 육신의 행실들을 끊임없이 생산’해 내고, 이 죄를 내버려두게 될 때 영혼을 파멸로 이끌게 된다>고 고발합니다.

따라서, 사도가 강조하는 것은 ‘죄가 함께 거하는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챤 자신의 실존’을 직시했다면, <이제 그 죄가 거하는 육신으로 말미암아 저지르게 되는 몸의 악한 행실을 반드시 죽여야만 우리는 살게 된다>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게 된다”고 말입니다.

제가 여기까지 말씀드리면, 성도 여러분 중에 “목사님, 저는 예수 믿고 구원받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어요!”라고 답하는 분은 없습니까!? 저는 성도 여러분이 이 지점을 잘 이해한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이미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받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도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라”고 촉구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웬은 이렇게 성도 안에 있는 죄를 내버려두게 될 때, ‘우리 영혼이 죄로 인해 파멸된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크리스챤들의 몇가지 ‘잘못된 생각들’을 나눠보겠습니다.

자, 계속해서 ‘죄 죽이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존 오웬은 그의 책 <죄 죽이기>에서 ‘죄를 죽이는 일은 성도의 평생에 걸친 의무’라는 사실과, ‘오직 성령만이 죄를 죽일 수 있다’는 매우 중요한 영적 진리를 먼저 밝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어떤 성도라 할찌라도 몇번의 죄 죽이기로써 죄를 결코 박멸할 수는 없으며, 주님 만나는 그 순간까지 이 일은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일은 오직 성령께서 그분의 능력을 통해서만 우리 성도의 죄를 죽일 수 있는 것임을 그는 핵심적으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또한 오웬은 ‘무엇이 죄를 죽이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것은 ‘죄를 완전히 죽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바로 앞서도 언급했듯이 죄 죽이기는 평생을 통한 성도의 일이요, 영적 싸움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죄 죽이는 성도의 목표는 이 땅 (=현세)에서는 결코 완전히 이뤄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 죽이기’는 어떤 외적인 어떤 행위를 그만 두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 보다도 더욱 그의 마음이 변화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무엇이 죄를 죽인다는 뜻인가?’에 대해서 그는 본격적으로 설명합니다. 첫째로 ‘죄 죽이기는 죄의 성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미 죄의 지배에서 벗어난 신분을 지닌 신자는 죄의 성향을 약화시켜서, 자신의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죄를 이기고 선과 의와 거룩함을 이루는 삶을 지향해야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죄 죽이기는 죄와 맞서서 싸우는 것이다’라고 그는 정의합니다. 오늘 에베소 본문 말씀에서 보듯이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 6:12)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할 이유’인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이자 싸움의 상대는 혈과 육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공중 권세 잡은 자, 악한 영 사단 마귀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를 죄 짓게 하는 악한 영과 맞서 싸우는 것이 곧 죄를 죽인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세번째로, ‘죄를 죽인다는 것은 죄를 죽이는 데 지속적으로 성공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죄를 죽이는 이 싸움은 몇번 하고 끝나는 싸움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언제까지요? 그렇습니다. 우리 코에 호흡이 멎을 때까지 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 좇아가노라” (빌. 3:13-14)고 사도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그 누구도 잡았다고 온전히 이루었다고 말할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무엇이 죄를 죽인다는 뜻인지?’에 관련해서 살펴보았는데, 그렇다면 ‘우리 성도는 어떻게 죄를 죽일 수 있을 것인가?’가 오웬의 핵심적인 ‘죄 죽이기’의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은 이런 우리 안에 거하는 죄와 싸우는 것, 곧 몸의 행실을 죽일 수 있는 주체는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러면, 좀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죽일 수 있는 것일까요?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주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능력’이 ‘죄와 사망의 능력’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성도가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주님 자신을 떠나서는 할 수 없음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요. 15:5)고 말입니다. 그리고 <에베소 3장>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우리의 속사람이 능력으로 강건하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기” (엡. 3:16-17)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우리의 죄와 싸우시고, 몸의 행실을 죽이시는 지는 주의 영, 성령께서 구체적으로 행하시는 사역을 통하여 우리는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 죽이기’라는 주제를 마감해 나감에 있어서 결론적으로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성령만이 죄를 죽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죄를 죽이기 위해’ 그리고 ‘악한 영 사단 마귀와 싸우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성령님의 역사는 ‘우리의 믿음과 의지를 통해 역사’하심을 우리는 이해해야 함을 오웬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 없이 우리를 거슬러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우리와 더불어 역사하신다”라고 오웬은 성령의 행하시는 방법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또 한가지 이해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과 함께 성령과 더불어 일(=협력)하는 우리의 의지는 많은 부분 우리의 ‘지성’이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의 판단과 명령은 지성을 통해 좌우되기 때문에, 이 지성을 어둡게 하고자 악한 영이 죄의 욕망과 기질을 통해 간교하게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의 지성을 활용하여 이런 죄를 낱낱이 파악하여 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더욱 효과적으로 우리의 믿음과 함께 성령께서 강력하게 사역하시도록 협력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어떻게 죄와 싸워 이기시는 것일까요?” 그것을 무엇보다도 ‘죄를 제대로 깨닫게 해 주심으로’입니다. 오직 성령만이 우리 속에 있는 죽어야 할 부패와 죄악된 욕망과 육신의 소욕의 정체를 깨닫게 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속이고 현혹시키는 악한 영의 교활한 술책을 백일하에 드러나게 하시는 분은 오직 성령인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충만을 경험케 하셔서, 그리스도만으로 죄를 이기기에 충분함을 계시’해 주십니다. 또한 성령님은 ‘죄를 죽이는 능력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음’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게 될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롬. 6:3). 그리고 더 나아가 성령님은 ‘우리 속에 성화를 시작하여 완성해 나가시고, 영혼의 기도를 지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시는 분이 성령님인 것입니다 (롬. 8:26).

이제 저는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에게 ‘우리 각자가 싸워야 할 그 영적 전투현장은 무엇인지?’를 되돌아 보기를 촉구하면서 말씀을 마무리하기 원합니다. 우리는 앞에서 ‘무엇이 죄를 죽이는 것이며, 어떻게 죄를 죽일 수 있을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처해 있는 실제적인 영적 전투현장은 어떠한 가 하는 점입니다. 만약 육신의 욕망이 상습적이고 고질적으로 여러분의 삶을 지배하고 있지는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세상적인 성공, 혹은 돈에 대한 사랑, 야망, 육체적 정욕, 그리고 공부에 대한 욕심에 빠져서 오랫동안 하나님과 내면적인 교제를 나누지 못하고 있지는 않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위험한 것은 이런 죄악된 욕망에 사로잡혔음에도 그 위험성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험성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는 줄 아십니까? 그것은 우리가 죄를 죽이는데 온 힘을 쏟지 않고, 도리어 죄와 욕망이 우리 안에 존재함에도 스스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자신을 설득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께서 내 마음 가운데 깨우쳐주는 죄의 덩어리를 죽이고자 전심으로 애쓰지 않고, 도리어 죄를 방치하고 은밀히 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연약과 죄성을 솔직하고 겸손하게 주께 고백하고, 결단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죄와 싸워 이길 수 있기를 간절히 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 놀라운 영적 승리를 가져다 주실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자신의 죄성을 숨김없이 하나님께 고백했습니다.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내가 우매한 까닭이로소이다” (시. 38:5)라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어떻게 하나님의 복된 아들과 딸로서 빛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부르심에 합당한 자녀로서 신실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몸의 행실을 죽이고 육신의 소욕과 악한 영 사단 마귀와 싸워 승리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오직 그분의 영, 성령님의 권세와 능력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신 말씀으로 무장하고, 성령으로 죄와 악한 영의 간교한 계략을 점점 더 간파해 나감으로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고 죄와 싸워 승리하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