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5, 2022

“전신 갑주” (II) (The Full Amor of God)

Preacher:
Passage: 에베소서 (Ephesians) 6:13
Service Type:

“전신 갑주” (II)

(The Full Armor of God)

6-5-22

본문말씀: 에베소서 (Ephesians) 6: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Therefore put on the full armor of God, so that whin the day of evil comes, you may be able to stand your ground, and after you have done everything, to stand.)

[설교 요약]

            지난 시간, 사도가 왜 편지를 마감해 가면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도전하는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영적 출생을 했다면, 반드시 자라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영적 성숙은 악한 영, 사단 마귀와의 영적 전투를 통해서 이루어짐을 사도는 역설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요, 어떻게 그것을 입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무엇이 하나님의 전신 갑옷입니까?’ (What is the full armor of God?)

  • <진리의 허리띠> (The belt of truth)입니다: ‘진리의 허리띠를 띤다’는 말의 의미는 ‘복음의 진리로 허리를 단단히 묶는다’는 뜻입니다. 영적 전장에 나가기 전 먼저 ‘구원과 생명의 진리’로 허리를 동이는 것입니다.
  • <의의 가슴막이> (The breastplate of righteousness)입니다: 인간의 낡고 더러워진 옷과 같은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요 ‘예수 그리스도의 의’ 로서 가슴막이를 하는 하는 것입니다.
  • <평화의 복음이라는 신발> (The shoes of the gospel of peace)입니다: 인간을 구원하는 복음의 신발을 신게 될 때, 우리의 심령은 기쁨과 평화로 가득차게 됩니다.
  • <믿음의 방패> (The shield of faith)입니다: 그리스도의 군사인 우리 크리스챤들에게 있어서 그 믿음은 원수 마귀가 쏘는 모든 불 (=독)화살을 막아주는 튼튼한 방패입니다. 오직 믿음을 통해 우리는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고, 약속의 유업을 받게 됩니다.
  • <구원의 투구> (The helmet of salvation)입니다: 사단의 우리 성도의 ‘구원’을 의심케 하는 강력한 공격을 막기 위해 우리는 ‘구원의 확신’이라는 투구를 써야 합니다.
  • <성령의 검> (The sword of the Spirit)입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것이 적의 공격에 대비한 방어장비라면, 성령의 검은 강력한 하나님의 공격 무기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기)” (히. 4:12) 때문입니다.
  • <기도로 간구> (Pray with requests)입니다: 성도의 기도는 영적 무장의 물림쇠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을 머리로 한 몸된 서로를 위해 항상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앞절에서 사도는 말합니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 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엡. 6:10-11)라고. 우리는 먼저 “주님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야 만” 비로소 전신갑주를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영적 강건은 ‘오늘’이라는 시간을 놓치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이라는 시간이 있을 동안에 매일 서로 권면하여 아무도 죄의 유혹으로 못된 고집을 부리지 않게 하십시요” (히. 3:13)라는 히브리서 기자의 도전과 같이 말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사단 마귀와 싸워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설교 전문]

            저는 성도 여러분과 지난 시간, 사도가 왜 편지를 마감해 가면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도전하는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 중심이 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영적 출생을 했다면, 반드시 자라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크리스챤의 영적 성장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성장은 ‘내가 예수 믿었다고 자동적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우리 각자가 그분의 몸의 지체가 되어 하나로 연결되어 자라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라나야 할까요? 이것을 사도는 앞에서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 새사람을 입으라” (엡. 4:22-24)고 격려하는가 하면,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엡. 4:27)고 도전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 5:18)고 5장에서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촉구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이 바로 ‘영적으로 성장하라’는 말의 여러가지 다양한 표현방식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결론적으로 이런 성장의 핵심은 ‘악한 영과의 싸움’이라고 정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공중 권세 잡은 자 사단 마귀와의 싸움’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크리스챤의 성장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그 무엇보다도 악한 영과의 ‘영적 싸움’은 그 중심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가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도전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요, 어떻게 그것을 입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사도는 이어지는 본문 <14~18절>에서 ‘하나님의 전신 갑주’가 무엇인지를 소상히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평안의 복음의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그리고 ‘기도로 간구’입니다 (v.14~18). 사도는 오직 성도를 위해 지으시고 허락하신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음으로서 사단 마귀의 간교한 계략을 맞설 수 있고, 그와 맞서 싸워 승리할 수 있다고 힘주어 성도들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무엇이 하나님의 전신 갑옷입니까?’ 사도는 <14-18절>에서 이것을 자세히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진리의 허리띠> (The belt of truth)입니다. “그러므로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v.14a) 그러면 ‘진리의 허리띠를 띤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여기서 먼저 ‘진리가 무엇이냐?’ 는 것을 질문했을 때, 성경학자에 따라서 보편적인 ‘하나님의 말씀’ 혹은 ‘성실, 정직, 솔직함’과 같은 인간의 주관적인 성품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이 말씀과 잘 연결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진리’는 성경의 부분적인 진리를 논하기 전에 성경전체의 진리라고 할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복음의 진리’입니다. 주께서 자기를 믿는 자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1-32)고 선언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었을 때 깨닫게 되는 진리가 바로 복음의 진리요, 사도가 말하는 진리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로 허리를 단단히 묶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 당시에 사람들이 대부분 입었던 길고 거추장스런 옷이 흘러내리지 않게 허리에 잘 동여매어지게 될 때, 군인들은 비로소 전장에 나가는 첫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로 내 마음과 영혼을 단단히 동여매는 것은 사단과의 영적 전투의 첫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 <의의 가슴막이> (The breastplate of righteousness)입니다. 여기서 사도가 말하는 ‘의’는 우리 인간의 의로움과 도덕적 깨끗함을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이사야가 선언했듯이 인간의 의로움은 낡고 더러워진 옷과 같아서 자랑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의’는 바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입니다 (빌.3:9). 우리가 스스로의 의로운 행위에 의지하고자 했을 때, 우리는 실망할 수 밖에 없고 절망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의’는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의’ 곧 ‘그리스도의 의’인 것입니다. 주께서 십자가에서 그의 보배로운 피를 흘려 우리의 죄를 씻어 주셨음으로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죄에서 자유케 하고, 그 믿음을 통하여 의롭다 하시는 권세를 주시는 ‘의’입니다. 이 ‘의’만이 사탄이 교활하게 우리의 죄에 대해 정죄함으로 찌르고자 하는 어떤 날카로운 창에도 뚫리지 않는 하나님의 의로운 가슴판으로써 우리 자신을 넉넉히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의의 가슴막이를 붙이고” (v.14b)입니다. 셋째, <평화의 복음이라는 신발> (The shoes of the gospel of peace)입니다. 고대 전쟁시에는 적군을 대비하여 땅 곳곳에 발을 상하게 할 목적으로 함정이나 덫을 설치했는데, 이것을 대비하기 위해 군인들은 ‘견고한 신발’이나 ‘장화’를 신었습니다. 전쟁시에 발이 다친다면 우리는 적군을 향해 돌진할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경험하시겠지만, 불편한 신발을 신게 되면 걷는 내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이 신발을 ‘평화의 복음이라는 신발’이라고 묘사합니다.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v.15)라고. 그렇습니다. ‘복음’ (The Good News/ Gospel)이라는 기쁜 생명과 구원의 소식을 신고 걸어가는 자의 발은 심히 가볍고 평안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사도는 로마서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이 아름답다고 이렇게 노래하는 것입니다.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롬. 10:15)고 말입니다. 복음의 신발은 정말이지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는 엄중한 영적 전쟁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고 기쁨 가운데 평화로 지켜 주는 하나님의 복음인 것입니다.

넷째, <믿음의 방패> (The shield of faith)입니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v.16)라고 사도는 선언합니다. 사실 성도의 삶에서 믿음의 역할과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군사인 우리 크리스챤들에게 있어서 그 믿음의 역할은 악한 마귀가 쏘는 모든 불 (=독)화살을 빈틈없이 막아내 주고, 소멸시키는 방패와 같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믿음만큼 강력하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경험하게 하는 열쇠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우리 청년들이 ‘진정으로 순전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도록 늘 도전하기 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의롭다고 인정하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 반면, 믿음과 정반대인 우리가 매우 경계해야 할 ‘맹신’은 무엇일까요? 이러한 믿음에 대한 질문은 우리 각자가 평생을 통해 언제나 묵상하고 답해야 하는 소중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구원의 투구> (The helmet of salvation)입니다. 또한 사도는 “성령의 투구(를 쓰라)” (v.17a)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가 전장에 나갈 때 머리에 쓰는 ‘구원이라는 투구’를 쓰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에서 머리만큼 중요한 부분은 없을 것입니다. 그 어떤 사람도 머리를 결정적으로 다치고 살아남을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중요한 머리를 보호하는 영적 투구가 바로 ‘구원’입니다. 여기서 제가 다시 한번 이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되는 사실은 우리 성도를 향한 사단의 그 수없이 많은 공격 가운데서도 ‘성도의 구원’을 의심케 하는 공격은 가장 강력한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사단의 끊임없이 공격해오는 구원에 대한 공격을 하나님께서 성령 안에서 주시는 구원의 확신이라는 투구를 쓰고 넉넉히 이겨 나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행위에 근거해서 구원의 확신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날마다 흔들리고 있습니까?

여섯째, <성령의 검> (The sword of the Spirit)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진리의 허리띠’에서 시작하여 ‘구원의 투구’까지가 적의 공격으로부터 나 자신을 방어하는 성격의 전쟁장비 (=무기)라면, 여기 여섯번째의 ‘성령의 검’은 보다 적극적이요 공격적인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v.17b)고 성도들에게 도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는 너무도 분명히 ‘무엇이 성령의 검인지?’를 밝히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잘 묘사했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 4:12)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40일 금식을 마치시고 사단의 공격을 받으셨을 때에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를 물리치셨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그와 싸워 무찌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임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일곱번째는, <기도로 간구> (Pray with requests)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v.18) 이 구절을 주석가 매튜 헨리는 설명하면서,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무장에 대해 물림쇠 역할을 한다. 우리는 기도로 이 모든 은혜를 한데 묶어야만 한다. 또한 우리는 항상 기도하여야 한다. 우리는 부단히 ‘모든 기도와 간구로’ 즉 온갖 종류의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주석하였습니다. 매튜 헨리의 말처럼 성도의 기도는 영적 물림쇠와 같이 우리의 전신갑주가 풀려나지 않고 단단히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한데 묶여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 서로 서로를 위해 늘 깨어 기도함으로써 우리 모든 성도의 공동의 적 사단 마귀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이뤄 나가야 한다고 사도는 우리를 격려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가 무엇인가에 대한 대략적인 우리의 성찰이라면, 다음으로 이 전신갑주를 우리는 어떻게 입을 수 있을까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주 살펴본 <엡. 6:10-11>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깨닫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지난 주 말씀에서 분명히 이해해야 할 점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는 것에도 순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 순서가 있는 것일까요? 사도는 말합니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 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v.10-11)라고. 사도는 <10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기를 성도들에게 먼저 촉구합니다. 여기서 사도가 강건하여 지라고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기 위한 우선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에 <사무엘서> 큐티 말씀을 보신 분은 기억하시겠지만, 성경에서 가장 흥미롭고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벌어지기 직전에, 사울 왕은 자신이 입고 사용하던 놋투구와 갑옷 그리고 칼을 다윗에게 입히고 차게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윗에게 너무 무겁기도 하고 익숙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데로 다윗은 그 갑옷과 칼 사용하기를 포기하고 시냇가에 가서 돌 다섯개를 골라서, 돌 던질 때 쓰는 물매와 함께 들고 싸움에 나아갑니다 (삼상. 17:38-40). 그리고 다윗은 골리앗을 이기고 승리했습니다.

물론 인간과의 싸움에서는 갑옷을 입든지, 혹은 물맷돌을 쓰던지 그 결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놀랍게도 다윗은 물매 돌 하나로 거인 골리앗을 물리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 크리스챤의 진정한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 즉 인간과의 싸움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공중권세 잡은 자, 악한 영 사단 마귀와의 싸움이요 전쟁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영적으로 강건하여 져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지 않고, 맨몸으로 나가 악한 영과 싸운다면 백전 백패라는 것입니다. 사도는 여러분과 저에게 <하나님의 전신 갑주>가 입을 준비가 되었냐고, 아니 입고 있느냐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아직까지 내게는 이 갑옷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고, 익숙치 않아서 입기 불편해요!’라고 말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영적으로 더욱 강건하여 짐으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불편함없이 입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든 크리스챤의 <숙제/의무>라는 것을 이해하십니까? 왜냐하면, 이 하나님의 전신갑옷을 입지 않고 사단과의 전쟁에서 싸워 이길 수 있는 성도는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지으신 갑옷을 입을 만큼 영적으로 강건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주신 이 전신 갑주를 어떻게 입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하나의 방법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신뢰와 순종의 문제라고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을 온 마음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고 그분을 신뢰함으로써 그의 뜻에 순종하는 만큼, 우리 각자는 이 갑옷을 더욱 온전히 입고 싸울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이라는 허락하신 시간에서 말입니다. 그럼으로 히브리서기자는 이렇게 우리를 향해 도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이라는 시간이 있을 동안에 매일 서로 권면하여 아무도 죄의 유혹으로 못된 고집을 부리지 않게 하십시요” (히. 3:13)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가 그분의 전신갑주를 입을 수 있는 첫걸음은 ‘오늘’이라는 시간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내일로 미루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주 안에서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케 되는 길이요, 이 영적 강건함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갑옷을 넉넉히 이길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입니까? 그렇다면, 자라나야 합니다.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자라나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용서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의 자녀 삼으신 뜻입니다. 우리가 성장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허락하신 모든 약속들을 충만하게 누려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장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사단 마귀와 싸우는 영적 전투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과 함께 악한 영과 싸워 승리의 은혜를 누려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