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23, 2018

“십자가의 길” (The way to the Cross)

Preacher:
Passage: 이사야 (Isaiah) 53:4,5
Service Type:

“십자가의 길”

(The way to the Cross)

12-23-18

본문말씀: 이사야서 (Isaiah) 53:4,5

4 그는 우리의 질병을 지고 우리를 대신하여 슬픔을 당하였으나 우리는 그가 하나님의 형벌을 받아 고난을 당하는 것으로 생각 하였다 (Surely He took up our infirmities and carried our sorrows, yet we considered Him stricken by God, smitten by Him, and afflicted.)

5. 그가 우리의 죄 때문에 찔림을 당하고 상처를 입었으니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다 (But He was pierced for our transgressions, He was crushed for our iniquities; the punishment that brought us peace was upon Him, and by His wounds we are healed.) (현대인의 성경)

 

[설교 요약]

오늘 성탄주일을 맞아 성도 여러분과 함께 성탄절 시리즈 두번째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성탄절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누기 원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600여년전 이사야 선지자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장차 이 땅에 오실 인류의 구원자, 그리스도를 예언 했습니다.

오실 그리스도는 “찔림을 당하고 ~ 징계를 받고, 심지어 채찍에 (맞는)” (v.5) 심히 큰 고난 당하는 자의 모습이라는 것 입니다.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바로 이사야가 예언한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그의 의로우신 피를 남김없이 흘리심으로 죽으셨을때 일어난 것 입니다.

왜, 이런 일이 그분에게 일어나야 되는 것일까요? 도데체 그분이 지신 십자가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What is the meaning of ‘the way to the Cross’ to Christ?);

첫째,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자 함’ (To destroy the devils work) 입니다: 사도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사단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 입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요일. 3:8) 주의 십자가의 비밀과 신비는 오직 그 십자가만이 마귀의 일을 멸하심으로 여러분과 저를 구원하실수 있다는 것 입니다.

둘째, ‘화목제물 되셔서 우리를 살리시고자 함’ (To save us through setting forth His life as the propitiation) 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 (reconcile) 시키게 한다고 선언 합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롬. 5:10) 그의 죄없는 생명이 구약에서 하나님께 바쳐졌던 흠없는 어린 양과 같이 희생제물로 드려진다는 것 입니다. 바로 십자가의 화목제물되신 죽으심을 통해서 말입니다.

셋째, ‘모든 창조물의 회복을 위함’ (To reconcile all the creatures) 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갑자기 알듯 말듯한 말을 합니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롬. 8:19,21) 라고. 미래에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하는 영광된 삶을 살아가면서,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을 원래의 창조 질서대로, 그 창조의 완전함대로 회복시키게 된다는 뜻 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질 미리의 회복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남은 평생의 삶동안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더욱 사랑하고, 그로말미암아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이 바로 여러분의 것이 되는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설교 전문]

오늘 성탄주일을 맞아 성도 여러분과 함께 성탄절 시리즈 두번째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성탄절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누기 원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 그 목적을 말해 보라고 한다면 저는 ‘십자가를 지시기 위한 삶’, ‘십자가를 향하여 걸어가신 삶’ 이었다고 말씀할수 있을 것 입니다. “십자가의 진리가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고전. 1:18) 라고 사도바울이 고백 했던것 처럼,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성도 여러분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진리와 능력을 점점 더 깨닫고 누려 나가는 그분의 진정한 제자로 살아 가시기를 기대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600여년전 이사야 선지자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장차 이 땅에 오실 인류의 구원자, 그리스도를 예언 했습니다. 바로 오늘 말씀에서 보는바와 같이 이사야선지자는 마치 그 구원자를 옆에서 자세히 바라보듯이 상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사야가 묘사하는 그 구원자의 모습은 흔히 우리 인간이 예상하는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그의 백성들로 부터 섬김과 존귀함을 받는 모습이 아니다는 것 입니다.

그와 반대로 그는 “찔림을 당하고 ~ 징계를 받고, 심지어 채찍에 (맞는)” (v.5) 심히 큰 고난 당하는 자의 모습이라는 것 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심한 고난을 당하는 것은 “~ 그가 하나님의 형벌을 받아 고난을 당하는 것으로 생각 하였다” (v.4) 고 이사야는 말 합니다. 그는 마치 죄를 범한 범죄자처럼 취급을 받았고, 하나님의 형벌을 받아 채찍에 맞고 찔림을 당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는 것 입니다.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바로 이사야가 예언한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그의 의로우신 피를 남김없이 흘리심으로 죽으셨을때 일어난 것 입니다.

왜 왕의 왕되신 우리 주님은 이런 고난의 삶을 살다가 가신 것일까요? 사람들이 그를 오해하고 그를 미워했기 때문에 그는 이런 불행한 죽음을 겪으신 것일까요? 만약 인간들이 우리 주님을 알아보고 잘 영접 했다면 주님은 이런 범죄자 취급을 받지 않고, 이런 고난의 삶을 살지 않아도 되시는 것이었을까요? 여기에 대한 대답을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는 그분의 고난을 묘사하기 전에 이렇게 짧고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질병을 지고 우리를 대신하여 슬픔을 당하였(다)” (v.4a) 고.

‘그가 찔리고 상처 받은 이유는 그가 죄를 범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이요, 그가 고난과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고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v.5) 고 이사야는 놀라운 진술을 하는 것 입니다. 심지어 오늘 본문 바로 앞절, <3절> 에서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고 슬픔과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사람들이 그를 외면하고 우리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현대인의 성경) 고 이사야는 선언합니다.

왜, 이런 일이 그분에게 일어나야 되는 것일까요? 도데체 그분이 지신 십자가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분의 선하신 생명을 내어주신 십자가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저는 예수님의 이 땅의 삶을 한마디로 ‘십자가를 향한 길을 걸어가신 삶’이었다면, 그럼으로 그 십자가를 마침내 지심으로 그의 미션을 완성하셨다면,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What is the meaning of ‘the way to the Cross’ to Christ?) 라는 질문에 대해서 여러분과 함께 묵상하고 이해할수 있기를 원합니다.

첫째,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자 함’ (To destroy the devils work) 입니다: 저는 지난 시간,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죄범한 인간들을 향한 ‘복음’ (the Good New) 의 메세지는 예수님이나 신약의 주의 제자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 복음은 이미 창세기에서 첫 인간 부부가 하나님을 거역하게 했던 뱀을 향한 하나님의 선언에서 시작 됨을 말씀 드렸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것이니라 하시고” (창. 3:16) 라고 말 입니다. 이 ‘the Good New’, 복음은 장차 여자의 후손 가운데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고 승리하셔서,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가 오실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 입니다.

사도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악한 영, 사단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 입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요일. 3:8) 무엇이 ‘마귀의 일’ 입니까? 그것은 사도요한이 먼저 언급하고 있드시 ‘우리를 죄 짓게 하고 범죄하게 하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죄 짓고 범죄하게 하는 것 일까요? 그것은 첫 인간부부를 타락시킨 마귀의 전략에서 알수 있드시 ‘우리가 하나님을 의심하고 불신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심하고 불신하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없읍니다. 모든 죄와 사망의 시작은 바로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 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이 되셔서 뱀의 머리를, 바로 사단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고자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마귀의 일,즉 죄와 사망을 멸하려 하시는 것 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 입니다. 주의 십자가의 비밀과 신비는 오직 그 십자가만이 마귀의 일을 멸하심으로 여러분과 저를 구원하실수 있다는 것 입니다. 주님은 “~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 (마. 26:39b) 고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간절한 겟세마네에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만이 유일한 길임을 아셨기에 주님은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 26:39c) 라고.

둘째, ‘화목제물 되셔서 우리를 살리시고자 함’ (To save us through setting forth His life as the propitiation) 입니다: 우리 거듭난 성도들이 잘 이해하는데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 놓으심으로 그를 믿는자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밤에 조용히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자신이 왜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하는지를 이렇게 밝히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4,15) 주께서 그렇게 십자가 위에 높이 달려 돌아가신 이유는 저를 믿음의 눈을 열어 바라보는 자들을 살리시고자, 그를 영접한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 주시고자 하심이라는 것 입니다.

제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결심한 시점이 언제인가에 대해 저는 말씀 드린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셨지만 그들이 그 선한 율법을 지킬 능력이 없음을 보시고 난 다음 결심한 것도 아니요, 바로 앞에서 살펴 봤드시 첫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창. 3:16> 에서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할것임’ 을 선포 하셨을 때도 아니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럼 언제 입니까?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작정하신 때가 언제인지를 성령의 충만을 통해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엡. 1:4,5) 라고.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 주시고자 결심한 때는 천지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시작되었다는 것 입니다. 첫 인간부부를 창조하기도 전에, 사단이 범죄케 하기도 전에 그렇게 결심 하셨다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보시고, 모든 가능성을 꾀뚫어 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타락과 범죄를 아시고 천지가 창조되기도 전에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계획하신 것 입니다. 그 구원을 창세전에 계획하셨다면, 그 구원의 방법은 무엇 입니까? 그의 독생하신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 입니다. 왜 십자가 입니까? 사도바울은 그것은 그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 (reconcile) 시키게 한다고 선언 합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롬. 5:10) 그의 죄없는 생명이 구약에서 하나님께 바쳐졌던 흠없는 어린 양과 같이 희생제물로 드려진다는 것 입니다. 바로 하나님에 대한 진노를 누그러트리고, 죄로 인해 그분과 깨어졌던 관계를 화해 시키는 ‘화목제물’ 로 말입니다. 성경은 오직 이런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제물’되신 십자가의 죽음만이 죄와 죽음에서 여러분과 저를 살리시고 영원한 생명을 줄수 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으십니까?

셋째, ‘모든 창조물의 회복을 위함’ (To reconcile all the creatures) 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우리 믿는 크리스챤이 성령의 증거와 충만을 통해 현재와 미래에 누리게 될 확신과 영광의 삶을 너무도 감격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가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게 될 영광의 큼을 선언하고 나서 (롬. 8:17,18), 갑자기 알듯 말듯한 말을 합니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롬. 8:19,21,22) 라고.

몇절에 걸쳐서 사도바울은 ‘피조물’ (the creature) 에 대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는 것 입니다. 피조물들이 죽음의 종살이에서 해방되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여기서 언급한 ‘피조물’은 누구를 뜻하며, ‘피조물이 간절히 기다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고,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죽음의 종살이에서 해방되는 자유’를 누리는 상태는 무엇을 뜻하는 것 일까요? 여기에 대해서 신학자들마다 다양한 의견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들에 대해 대표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으로는 ‘피조물’은 ‘자연만물’을 뜻한다는 것 입니다. 나무와 새와 모든 생명체와 하나님으로 부터 지음바 된 창조물을 말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고대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우리 거듭난 성도들’을 말 합니다. 그리고, ‘죽음의 종살이에서 해방되는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우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로 말미암아 전 우주적으로 회복될 구원의 역사’를 뜻 한다는 것 입니다. 다른말로 표현한다면, 미래에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하는 영광된 삶을 살아가면서,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을 원래의 창조 질서대로, 그 창조의 완전함대로 회복시키게 된다는 뜻 입니다. 죽음 아래에서의 탄식함 가운데 모든 피조물들은 이런 원래의 창조질서대로 회복되는 자유를 간절히 기다린다고 사도바울은 놀라운 성령의 통찰력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것 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 예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리 믿는 성도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피조물의 완전한 회복을, 다시말해 피조물 모두에게 구원을 가져오는 유일한 길임을 성경은 선언하고 있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 놀라운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비밀과 능력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이런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이해해 가고 있습니까? 이런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사랑 합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번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맞이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태어나심이 여러분과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 고 말씀하신 예수님. 주님은 이 땅에 우리에게 섬김을 받고자 온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고자 오셨다 (막. 10:45) 고 말씀하신 우리 주님. 성도 여러분은, 진정 이렇게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자,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자신의 생명을 주시고자 이 땅에 오신 우리 주님을 더 사랑하기 원합니까? 더 우리 주님을 알아가기 원합니까? 그렇다면, 십자가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신 그 삶을 여러분과 저의 평생의 삶을 통해 묵상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자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이유일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남은 평생의 삶동안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더욱 사랑하고, 그로말미암아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이 바로 여러분의 것이 되는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