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7, 2017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Where are you, Adam?)

Preacher:
Passage: 창세기 (Genesis) 3:8~10
Service Type: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Where are you, Adam?)

12-17-17

본문말씀: 창세기 (Genesis) 3:8~10

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Then the man and his wife heard the sound of the Lord  God as He was walking in the garden in the cool of the day, and they hid from the Lord God among the trees of the garden.)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But the Lord God called to the man, “Where are you?”)

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He answered, “I heard you in the garden, and I was afraid because I was naked; so I hid.”)

<서 론>

저는 지난 시간, 크리스마스 특집 메세지 1편을 ‘창세전에’ 라는 제목으로 성도 여러분과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그의 자녀들을 향한 원대한 계획하심과 무궁하신 은혜는 인간의 범죄보다도, 인간의 창조보다도 더 훨씬 이전인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시작 되었음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와 목적을 가장 근본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 임을 함께 나눴습니다. 예수님은 물론 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그의 생명을 값주고 나를 구원 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의 전부가 아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럼 또 무엇 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님의 피를 통해 구원 받은 모든 거듭난 성도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모든 유업을 물려 받는 상속자가 되고, 영광스러운 자녀로 완성 시켜 나감을 깨닫고 그런 자녀로 우리 각자 온 힘을 다해 살아가게 하시고자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구원의 확신만이 전부가 아니라, 이제 시작인 것 입니다. 저는 오늘 크리스마스 특집 메세지, 2번째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는 제목으로 성도 여러분과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범죄한 아담를 찾아오셔서 “네가 어디 있느냐?” 묻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 하나님의 음성은 아담을 향한 질문일뿐 아니라 우리 각자를 향한 존재의 질문일 것 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는 질문을 통하여 우리 각자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영적 상태를 깨닫을수 있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품안으로 돌아가 영원한 자녀의 영광을 지금부터 영원토록 누리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소원 합니다.

<본 론>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의 경고를 어기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고 범죄한 인간 부부에게 죄와 죽음은 어떻게 찾아 왔는지? 그 죄로 인해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모든 인간들에게는 어떻게 죄로 인한 고통과 죽음의 삶이 지배하게 되었는지?’를 살펴 보기 원합니다. 나에게 죄와 죽음의 고통이 왕노릇하는 것은 단순히 아담이 죄를 범했기 때문이라고, 조상 잘못 만나서라고 말할것이 아니라, 이 죄와 죽음은 그 보다 더 나 자신의 존재 안에서 확인해 나가야 할것 입니다.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통해서만 이 죄와 고통에서 벗어날수 있고 자유할수 있는 것임을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와 사망을 이기고 진정으로 승리하고, 열매맺는 삶을 사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기대 합니다.

사실 오늘 말씀을 통해 제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죄’ 입니다. 그리고 그 죄로 인한 ‘고통의 삶’ 입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여러날 동안 제 자신을 포함한 우리 인간의 죄와 그로인한 고통의 삶을 생각하면서 이 암담하고 비참한 죄의 상태를 바로 보지 못하고 분명히 느끼지 못하는 영적인 무감각을 강하게 실감 했습니다. 죄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죄를 미워하지 못하는 저의 영적 둔감이 저에게 있음을 실감 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55) 고 선포했던 사도바울처럼 죄와 사망의 실체를 향한 인식과 선언을 하지 못하는 것 입니다. 이 말이 제가 죄를 사랑한다는 뜻은 분명히 아닙니다. 제가 도덕적이지 않다는 뜻도 물론 아닙니다. 청년 사울이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고 사도바울로 거듭나기 전에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도덕성과 스스로 하나님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자부 했지만, 그가 예수의 영을 통해 진정한 자신의 실존을 발견 했을때 자신은 죄인의 괴수요 하나님을 사랑치 않았고,예수 그리스도를 심히 핍박한 죄인임을 조금의 의심도 없이 깨닫게 된것 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으로 내 죄가 얼마나 무서운 죄요 스스로 그 죄의 힘에서 구원 받을수 없었음을 잘 압니다. 오직 예수의 피 만이 나를 그 가공할 죄의 힘에서 건져낼수 있음과 그분을 이 땅에 나를 위해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이 무한하심을 저는 지금도 날마다 알아 나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지금 마음의 답답함으로 고백 드리지 않을수 없는 것은 ‘과연 나는 죄에 대해 직시하고 있는가? 죄를 미워하고 있는가? 죄에 대해 깨어 있는가?’ 하는 것 입니다. 이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선 먼저 성경에서 말하는 ‘죄에 대한 정의’ 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약의 히브리어 원어에서 볼때 ‘죄’ 는 ‘하타’ 라는 단어로 사용되는데 그것은 ‘과녁에서 벗어나다’ 는 뜻 입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 일까요? 마치 화살이 과녁에서 벗어나듯이,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더 나아가 하나님을 벗어 났을때 바로 그것이 죄라는 것 입니다. 언젠가 한 목사님이 이렇게 크리스챤의 존재를 설명한 것이 기억 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도덕적 이라야 할것 입니다. 또한 양심적 이라야 할것 입니다. 그러나, 도덕적이라고 양심적이라고 그리스도인은 아닌 것 입니다” 라고. 무슨 말일까요? 우리 거듭난 성도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통하여 거져 주시는 은혜로 죄 용서 하시고, 그분의 자녀가 되었기에 우리의 남은 평생의 삶은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선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양심을 지키는 삶’ 을 분명히 살아 가는 것 입니다. 그러나, 내가 법을 잘 지키고 도덕적이라는 사실이 내가 크리스챤이냐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는 뜻 입니다. 그러면, 그럭은 무엇 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입니다. 그분께서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바울이 복음중의 복음이라는 로마서에서 선언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롬. 1:17b) 고 밝힌 이유 입니다. 죄없다고 인정함 받은 의인, 하나님의 자녀라고 정의되는 의인이 될수 있는 길은 오직 ‘믿음’ 을 통해서라는 것 입니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은 한결같이 이점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게 된다’ 는 것 입니다.

이제 저는 성도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에게 이런 한가지 질문을 해 보시길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가?’ 라고. 이 질문이 중요한 것은 첫 인간부부의 범죄가 모든 인류가 죄와 사망의 왕노릇하는 비참한 결과의 이유가 되었다는 점 입니다. 그것은 첫 인간부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을 불신했다는 것 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죄요, 또한 동일하게 모든 인류의 죄가 되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습니까?’

이제 범죄한 인간부부로 인해 죄와 죽음이 그의 모든 후손들 가운데 왕노릇하게 되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구도 아담의 원죄를 벗어날수 없습니다. 그 죄로 인해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인간은 점점 더 깊은 죄의 수렁 가운데 고통받고 신음하게 되었음을 성경은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 인간의 죄가 얼마나 크고 그로인한 죄의 고통이 심한지를 다 다루기에는 시간이 부족 합니다. 성경에 묘사된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헛됨과 무의미함을 몇가지만 살펴 보겠습니다;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 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 뿐이니이다” (시. 39:5);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시. 144:4) 라고 다윗은 하나님 없는 인생의 허망함을 토로 했습니다. 또, 야고보는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 4:14) 고 우리 인간의 운명을 선언 했습니다. 왜일까요? 바로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 입니다. 이런 비참하고 허무한 인간의 삶이 언제부터 시작 되었습니까? 바로 ‘아담과 하와’의 범죄할때 부터 입니다. 그들은 범죄하고 비록 몸은 몇백년 더 살았지만, 범죄하는 그 순간 이미 하나님과 단절되었고 죄와 사망이 그들을 장악한 것 입니다. 인간이 몇십년을 더 산다고, 혹은 몇백년을 더 산다고 그것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영원의 차원에서는 그들 모두 한사람도 예외없이 성경에서 말한데로 우리의 인생은 ‘손바닥 넓이 보다 더 작고, 잠시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 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 입니다.

인류의 조상,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로 그 죄는 점점 더 깊어 갔고 더 악해졌습니다. 이 사실을 성경은 이렇게 묘사하고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 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 6:5,6) 라고. 심지어 “ ~ 내가 사람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창. 6:7b) 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시게 된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어떻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과 모양데로 만드신 창조물의 영광인 인간을 향해 ‘그들을 지었음을 한탄’ 한다고, 후회한다고 말씀할수 있을까요?하나님이 인간을 잘못 창조하셔서, 창조물에 무슨 결함이 있어서 후회하시는 것일까요?믿지 않는 자들은 이 본문을 가지고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문제를 제기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을 잘못 이해한 결과 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한탄 (후회) 하신다’ 는 것은 문자적인 후회가 아닙니다. ‘내가 잘못 만들었다. 내가 만든것을 후회한다’ 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을 부모의 심정으로, 창조자의얭애타는 심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그 뜻을 오해하게 되는 것 입니다. 그만큼 우리 인간의 죄가 심히 깊고도 타락 했다는 뜻 입니다. 그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아프게 해 드리고 그분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는 뜻 입니다.

이제 저는 우리 <인간의 죄와 고통은 어떤 해결책이 있는가?> 하는 것을 살펴 보면서 말씀을 정리해 나가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은 죄를 범한 아담에게 찾아 오셔서 묻으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고. 하나님이 그에게 묻으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담의 죄를 범한 상태를 정직하게 돌아 보고,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아 오기를 원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자신이 벗었음을 알았음으로 두려워 숨었다는 것’ 이요, ‘그 벗었음을 알게 된것은 바로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여자 때문이라’ 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는 커녕 도리어 하나님이 주신 여자 탓으로, 그리고 여자를 준 하나님 탓으로 죄를 떠 넘기고 있습니다. 이것이 죄를 범한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인 것 입니다. 인류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이방민족은 말할것도 없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민족들까지도 안타깝게도 이 죄의 힘에서 벗어나지를 못 했던 것 입니다. 바로,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까지 말 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율법을 가졌다고, 그 율법을 지키고자 노력 한다고 ‘내가 죄로 부터 자유로와졌고, 의로와졌다’ 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었던 것 입니다. 이것이 왜 유대인들 중에서도 가장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고자 노력했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가장 심하게 미워하고 믿지 않았는지를 이해하는 주요한 열쇠가 될 것 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의로와졌고, 이미 깨끗하여 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판단은 정반대 였습니다. 예수님은 나면서 부터 맹인 되었던 자의 눈을 뜨게 하시고 나서, 자신의 권능과 그리스도로 오심을 믿지 않는 바리새인들의 ‘영적 맹인’ 과 같은 상태를 지적하시면서 이렇게 선언 하셨습니다;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요. 9:41) 고. 예수님을 믿지 않기에 그들의 죄가 그대로 있는 것 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가졌다고, 그것을 지키고자 노력한다고 그것이 그들을 구원할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율법은 ‘우리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구원을 이룰수 없고, 오직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유대인들은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율법으로 의로와지고자 했던 인간의 내면적인 고통과 한계를 잠시 살펴 봅시다. 이 상태를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것이 <로마서 7장> 입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롬. 7:19,23) 는 것 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다메섹 언덕에서 만나기 전의 율법에 열심이었던 청년 사울의 고통이요,교회는 다니지만, 성령의 빛으로 하나님의 율법이 선하심을 알지만 그 뜻데로 살고자 하는 마음은 있지만,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예수님을 믿음으로 믿지 못하는 지체들의 영적 상태인 것 입니다. 제가 지난번 로마서 설교때 말씀 드렸지만, 이 <롬. 7:23> 의 탄식은 로마서를 쓸 당시의 영적 거장 사도바울의 상태도 아니요, 모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한 거듭난 성도들의 상태도 아닌 것 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성도는 결코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는 절망적인 고백을 할수 없기 때문 입니다. 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 내실수 있는 분’ 임을 분명히 알기 때문 입니다. 분명히 이해 했을뿐 아니라, 예수께서 나를 이미 건지셨다는 의심할수 없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 입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 (롬. 8:2) 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자인 것 입니다. 아직 누가 죄와 사망의 몸에서 누가 건져 줄지 알지 못하고, 죄의 힘 아래에서 탄식하고 절망하며 괴로와 울부짖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자 일수는 없는 것 입니다. 그는 믿음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죄와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하여 주심을 아는 것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를 하나님과 깨어졌던 관계를 회복하고 그분의 자녀의 영광으로 완성시켜 주심을 압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간의 죄와 고통으로 부터 해결되어질수 있는 유일한 길 임을 믿습니다. 이것이 정확히 예수님께서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요. 14:6) 고 말씀하신 뜻 임을 저는 믿습니다.

<결 론>

저는 이제 한가지점을 살펴보고 말씀을 마무리 하기 원합니다. 제가 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 ‘죄에 대한 저의 인식이 막연하고, 죄의 실체에 대한 영적 깨닫음이 부족함’ 을 말씀 드렸습니다. 제가 나누기 원했던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 크리스챤들 까지도 죄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있을수 있음을 저는 나누기 원했던 것 입니다. 그것은 무엇 입니까? 교회 다니는 자들 중에도 얼마나 많은 자들이 죄는 ‘거짓말하는 것, 간음하고 살인하고 도둑질 하는것…’ 라고 막연하게 생각할때가 많다는 것 입니다. 물론 이것은 율법이 지적하고 인간 양심이 고발하는 분명한 죄 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죄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 이요, 그의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 이 죄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 입니다. 교회는 잘 다니는데, 상당히 도덕적이고 양심적이기 까지 한데 예수님을 진실로 믿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아직도 중심으로 믿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저는 말씀을 마무리 하면서 이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옳바른 믿음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혜가 저 뿐 아니라 성도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기도 합니다. 사도바울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희를 해방하였다” (롬. 8:2) 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약속하신 성령님의 은혜로 여러분과 저의 감겨진 영적 눈이 열릴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무엇이 하나님의 마음을 심히 아프게 하고 죄인지 깨닫을수 있기를 소망 합니다.성령께서 저 뿐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 또한 열어 주셔서 무엇이 죄의 존재이며, 죄의 세력인지, 그 죄가 하나님을 대적했고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박게 했는지 바로 볼수 있고, 죄를 미워하고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움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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