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27, 2022

“어린 아이가 되지 말라” (No Longer Children)

Preacher:
Passage: 에베소서 (Ephesians) 4:14
Service Type:

“어린 아이가 되지 말라”

(No Longer Children)

2-27-22

본문말씀: 에베소서 (Ephesians) 4:14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함이라” (Then we will no longer be infants, tossed back and forth by the waves, and blown here and there by every wind of teaching and by the cunning and craftiness of men in their deceitful scheming.)

[설교 요약]

오늘 말씀에서 사도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라고 도전합니다. 왜냐하면 영적 어린아이로 머물러 있을때 악한 속임수와 간교한 유혹에 걸려 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4장을 시작하면서 <1-16절>까지 ‘성령을 통한 하나되게 하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삶은 성령을 통한 하나되게 하심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이라는 주제 안에 포함된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볼 때, 사도는 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격려하고 도전하다가 갑자기 ‘어린아이가 되지 말라’고 도전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영적 미성숙을 벗어나는 것이 성령을 통한 하나됨의 핵심이 되게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함이라” (v.14)고. 영적으로 점점 더 자라갈 때만이 악한 자의 간교한 속임수와 유혹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어린 아이가 되지 않을 수 있을지?” (How are we able to be no longer infants?)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은

첫째, ‘자기인식’을 통해서 입니다: ‘내 자신이 영적 어린 아이라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태어난 아기는 자라나야 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전. 13:11)는 사도의 간증처럼, 내가 영적으로 자라야 하는 존재임을 우리는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영적 훈련’을 통해서 입니다: 만약 우리가 성장해야 하는 존재임을 인식했다면, 영적 훈련을 시작해야 합니다. 영적 훈련은 영적 양식인 말씀을 날마다 섭치하고,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며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에게 주신 ‘성령의 다양한 은사’를 적극적으로 행함 (v.11)으로 서로를 세워주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셋째, ‘확인’을 통해서 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고전. 13:1~2)고 사랑의 위대함을 선언합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의 최종적인 영적 성장의 척도는 오직 ‘성령의 열매’임을 믿습니다. 개인이든 공동체의 차원이든 ‘사랑과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으로 맺어지는 ‘성령의 열매’로서만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함께 말씀과 기도 가운데 더욱 자라나고, 각자의 은사를 통해 서로의 유익을 위해 섬겨 나가고 성령의 열매 가운데 장성하게 자라나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

[설교 전문]

            성경에 보면 ‘어린아이’라는 단어가 긍정적 의미로 쓰이는가 하면, 또한 부정적 의미로 쓰여 지기도 함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18:3)고 그이 제자들에게 도전하셨습니다. 여기서 ‘어린 아이’라는 의미는 긍정적 의미로써 마음의 깨끗함과 영적 순수함 그리고 자신을 낮출 수 있는 겸손한 존재라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반해, 오늘 말씀에서 사도가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라고 말했을 때 이것은 부정적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린아이의 부정적인 특성을 의미하는데, 남의 말을 순진하게 잘 속아 넘어간다든가, 간교한 유혹에 대한 분별력이 부족한 점등이 그것입니다. 사도는 이런 어린 아이의 부정적인 특성을 통하여 우리 크리스챤이 왜 점점 더 성장해 나가야 하는지를 영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사도가 <4장>을 시작하면서 “그럼으로”라는 접속사로 에베소서의 후반부를 시작하고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크게 보면 에베소서 전반부에 해당하는 <1-3장>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 전에 계획하신 그의 택한 자녀를 향한 신령한 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영적으로 상세하게 밝혀 나갔던 것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한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분의 영광스러움’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전반부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의 신분’을 놀랍게 영적으로 밝히고 나서, “그럼으로”라는 단어를 통하여 <4-6장>마지막까지의 후반부를 연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의 신분을 깨닫아 나가고 있다면, 그럼으로 이 신분에 걸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사도의 이도전이 단순한 도전으로 그치지 않고, 성도들이 어떻게 구체적인 삶으로 실천할 것인지를 영적 아비의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영적으로 지혜롭게 지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핵심은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좇아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함으로 함께 자라나라’는 것입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v.2~3)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난 시간까지 함께 사도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도전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4장을 시작하면서 <1절에서 16절>까지 ‘성령을 통한 하나되게 하심’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설명하는 가운데 오늘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함이라” (v.14)고. 한마디로 말한다면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장성한 사람으로 자라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질문하기 원하는 것은 왜 사도는 갑자기 ‘어린아이가 되지말라’고 에베소 성도들에게 도전하는 것일까 하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사도가 성도들에게 ‘성령으로 하나 될 것’을 권면하는 가운데, 이와 같은 하나됨을 가로막는 영적 장애물이 무엇인가를 그가 밝히고자 했기 때문임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성도들의 ‘영적 미성숙’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그 당시 에베소교회는 소아시아 일곱교회 중에서도 신실하게 주님을 향한 믿음을 지켰던 대표적인 교회 가운데 하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의 영이 에베소교회를 향해 ‘주님을 향한 인내함과 성실 그리고 악한 자를 용납치 않고 단호히 물리친 것’ (계. 2:2~3)을 인정하고 칭찬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또한 그들에게 책망하신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 2:4)는 것입니다. 모든 지상의 교회 중에 완전한 교회는 있을 수 없겠지만, 에베소 성도들의 그 중심적인 영적 문제가 있음을 주님은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주님을 향해 가졌던 첫사랑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 사랑이 식었고, 주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게 되었음을 주님은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더 풍성히 누려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사도가 ‘어린아이가 되지 말라’는 것은 바로 ‘영적인 미성숙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영적 상태가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가로막는 가장 심각한 장애물이 됨을 바울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에베소교인들 뿐 아니라 오늘날 모든 교회는 어떻게 어린 아이가 되지 않을 수 있는지?를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 ‘자기인식’을 통해서 입니다: 여기서 ‘자기인식을 통해서’라는 뜻은 ‘내 자신이 영적 어린 아이라는 깨닫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신치료’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고,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치료자’에게 자신이 지금 정신적인 문제가 있음을 인식시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크리스챤의 영적 성숙에서도 매우 중요한 첫출발이 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사실 적지 않은 크리스챤들이 ‘자신이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임’을 잘 인정하려 하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이미 성인이 되어서, 더군다나 사회적 명망을 가지고 도덕적으로 그리고 성숙된 인격을 가졌다고 스스로 자부하다가 이제 막 예수님을 영접한 크리스챤은 자신이 영적으로 자라야 하는 어린아이라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불명예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것은 내가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인격적으로 성숙된 삶을 살아왔다 할찌라도 처음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게 되었을 때는 누구를 막론하고 영적으로 어린 아이와 같음을 이해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전. 13:11)고. 여기서 사도가 말하는 ‘내가 어렸을 때’라는 시점의 나이가 어릴 때라든지 혹은 정신적으로 미성숙할 때 보다도 영적인 미성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랑, 곧 그리스도의 사랑을 점점 더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장성한 사람이라고 그는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지금 어떤 영적 상태에 있습니까? 여러분이 신앙 가정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성장했다고 할찌라도 마찬가지로 여전히 영적으로 어린아이에 머물수 있음을 여러분은 인식하고 있습니까? 왜냐하면, 영적 성숙은 단순히 시간이 흘러간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히브리서 기자가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히. 5:12)라고 책망하는 말씀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야 함에도 말씀의 초보에 머물고, 단단한 음식은 못먹고 여전히 젖만 먹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영적 상태입니까?

둘째, ‘영적 훈련’을 통해서 입니다: 구원받는 순간은 그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도 결코 이미 늦은 때는 없는 것입니다. 내 죄를 고백하고 나사렛 예수를 나의 구세주로 깨닫고 영접하는 그 순간이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순간이요, 언제나 최선의 순간인 것입니다. 이 진리는 영적 깨닫음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만약 내 스스로가 ‘나는 아직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다’라고 인식한다면, 그것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영적 성장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매우 자랑스러운 순간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만약 이것을 인식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적 훈련을 시작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사도는 우리 크리스챤의 영적 훈련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함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함이라” (v.14)라고. 우리가 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 잠깐 살펴봤듯이, 어린아이들은 남의 말을 잘 분별하지 못하고 그냥 믿어버리는 특성이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마음먹고 속이고자 마음먹는다면 아이들을 쉽게 속아 넘어 갈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은 판단능력이 길러지고 스스로를 악한 술수와 유혹에서 보호할 수 있는 성인이 되기까지는 부모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가 지적하는 이런 속임수와 유혹은 그 당시 갈라디아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교사들의 가르침이나 고린도교회를 분열시킨 육체의 타락과 성도가 서로 갈라져서 법원에 고소하는 등의 육신적인 모습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적 훈련을 할까요? 말할 것도 없이 우리 각자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더 깊이 공부해 나가며,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성령님을 신뢰함으로 그분의 다스림으로 더욱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사도가 <에베소서 4장>에서 말하듯이,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목사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는 것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v.11)고 사도는 은사의 목적을 말합니다. 이것은 곧 성령께서 우리 각자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셔서 공동체의 유익을 주고 함께 세워져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성도의 영적 성장은 우리 각자의 영성 훈련도 중요하지만, 서로를 격려함으로 함께 영적 은사로서 섬겨 나갈 때 놀랍게 함께 자라가는 은혜를 누리게 된다고 믿습니다. 사실 어린아이들은 훈련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훈련은 쉽게 끝이 나지 않고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인정하듯이 “no pain, no gain!’ 입니다. 고통이 없이 얻는 것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영성훈련 뿐 아니라, 주께서 허락하신 은사를 통해 함께 섬겨 나가며 훈련받고 성장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셋째, ‘확인’을 통해서 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보면, 그들은 비록 다양한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은사를 가지고 공동체의 유익으로 쓰임 받지 못하고 서로를 세워주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도리어 분열되고, 많은 문제를 야기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을 다음과 같이 그들에게 강렬하게 도전하게 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고전. 13:1~2)고 말입니다. 제가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리고 영적으로 장성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성령의 은사를 훈련의 차원에서 잘 사용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대표적인 초대교회였던 고린도 교회는 다양한 은사를 가진 성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갈라지고 하나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과연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성령의 은사’ 그 자체는 말 그대로 성령의 선물입니다. ‘성령의 은사’가 마치 자신의 능력이나 재능처럼 생각할 때, 그 은사로써 결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그리고 함께 세우심을 받는 일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은사를 그 선한 뜻대로 행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것이 영성훈련의 종착역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v.15)고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선언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되지 말라’고 도전하고 나서, 이렇게 선언하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만 우리는 함께 자라갈 수 있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만약 성도 여러분이 자신이 어디까지 성장해가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원한다면, 현재까지 어느만큼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시면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각자의 영적 성장이든, 공동체의 영적 성장이든 진정한 성장은 우리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까지 날마다 자라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사도는 말합니다. “그 안에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v.16)고. 그것은 ‘온몸이 각 마디마다 연결되고 결합되듯이 사랑 안에서 서로를 세워줌으로써’ (v.16) 가능한 것입니다. 바로 사도가 앞에서 말했듯이,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 성령의 하나되심을 힘써 지킴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v.2~3). 바로 우리는 사랑을 포함한 성령의 열매를 우리 인격안에서 어디까지 맺어 나가고 있는지를 확인해 봄으로써 우리 각자와 그리고 우리 공동체의 성숙도를 점검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어디까지 성장해오고 있습니까? 사도는 오늘 말씀을 통해 “어린아이가 되지 말라”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남에게만 그렇게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나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아린 아이의 일을 버렸다’ (고전. 13:11)고 자신의 삶을 통해 그렇게 간증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려야 할까요?’ 왜냐하면, 어린아이는 우유만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 단단하고 소화하기 힘든 음식을 먹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허락하신 구원의 깊고 영광스러운 비밀과 약속의 은혜를 깨닫을 수 없고, 여전히 자기 중심적이고 쉽게 흔들리는 연약한 영적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함께 말씀과 기도 가운데 더욱 자라나고, 각자의 은사를 통해 서로의 유익을 위해 섬길 수 있는 우리 아포슬 공동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더 나아가 이 은사 위에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열매, 곧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 서로 하나로 맺어주시는 성령의 열매를 풍성해 맺음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모습으로 자라나가는 공동체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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