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26, 2020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Let us return to the Lord)

Preacher:
Series:
Passage: 호세아 (Hosea) 6:1~3
Service Type: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Let us return to the Lord)

4-26-20

본문말씀: 호세아 (Hosea) 6:1~3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Come, let us return to the Lord. He has torn us to pieces but He will heal us; He has injured us but He will bind up our wounds.)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After two days He will revive us; on the third day He will restore us, that we may live in His presence.)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Let us acknowledge the Lord; let us press on to acknowledge Him. As surely as the sun rises, He will appear; He will come to us like the winter rains, like the spring rains that water the earth.”)

 

[설교 요약]

지난주에 이어서 <고통과 징계>에 관련한 메시지를 성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오늘 <호세아 6장>의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그의 자녀들을 변화시키시고 영적 축복으로 인도하시는 ‘회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무엇이 회개의 뜻인가?’에 대해서 <웨스트민스트 신학용어 사전>에서는 ‘회개는 죄에 대하여 뉘우치고 참회함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  그리고 그 원어의 의미에서 볼때, 크리스챤의 믿음을 표현하는 그 첫 걸음으로써 마음과 삶의 방향을 바꾸다는 뜻을 지니고 있음 (행. 26:20)’ 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회개란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께로 되돌아서는 방향전환>인 것입니다.

회개가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임을 우리가 이해했다면, 이제 좀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How are we able to return to the Lord?)

첫째 단계는 <여호와를 힘써 알아 감으로써> (By knowing the Lord with all our hearts) 입니다: 하나님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 (호. 4:6a) 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음으로 망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 나갈 때만이 우리는 그분께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다음 단계는 <허락하신 고난을 이해해 감으로써> (By understanding the suffering from God) 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죄악이 눈을 가리웠기 때문이라 말씀합니다 (호. 5:4). 그러나 하나님을 알아 나가게 될 때, 그분의 혹독한 징계의 손길은 그의 자녀를 도리어 살리는 손길임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호. 6:1~2).

마지막 단계는 <영적 각성을 통해서> (By recognizing through spiritual awaken) 입니다: 우리가 고난의 의미를 점점 더 이해하게 될 때, 우리 또한 사도 바울과 같이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8) 라고. 우리는 진정한 회개 가운데 성령을 통해 주시는 더 깊은 영적 각성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설교 전문]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반성하는 자가 서 있는 땅은 가장 고매한 랍비가 서 있는 땅보다 위대하다’ 라고. 우리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반성은 곧 ‘회개’ 입니다. 회개는 진실로 하나님께서 귀하게 받으시는 우리 성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저는 지난주에 이어서 <고통과 징계>에 관련한 메시지를 성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지난 주의 <히브리서 12장> 말씀을 통해 우리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고난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한마디로 ‘고난’ 은 하나님의 그 자녀를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훈련과 훈육의 손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징계’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성도들은 이 징계에 포함된 영적 의미를 더 깊이 분별해 나가며,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담대하게 고난을 맞이해서 성장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호세아 6장>의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그 무엇보다도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영적 축복으로 인도하시는 변환점이 되는 ‘회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회개는 예수 처음 믿고 영접하는 불신자들 뿐 아니라, 더 깊은 영적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동일한 믿음의 핵심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날마다 나의 허물과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참된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새롭게 하시고 그분의 의로우심과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그분의 아들과 딸 모두 되시길 기대합니다.

우리가 살펴보게 되는 호세아서의 전체 주제는 “죄악된 삶을 살아가는 그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호세아서>를 통해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에게 궁극적으로 깨닫게 하시고, 도전하시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크게 2가지로 요약해 볼수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의 공의는 죄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신다’ (호. 4:6~9, 10:9~15)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까다로운 분이라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거룩하신 성품은 죄와 함께 거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둘째,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그의 자녀를 끝까지 붙드신다’ (호. 11:8,9)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호. 11:8) 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죄로 말미암아 심판에 처한 그의 백성 에브라임과 이스라엘을 향해 불붙는 듯한 긍휼하신 사랑으로 그들을 건져 내시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말씀을 통해 성도 여러분과 함께 집중해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회개’ (repentance) 입니다. 먼저, ‘무엇이 회개의 뜻인가?’에 대해서 <웨스트민스트 신학용어 사전>에서 찾아봤습니다. 거기에서는 ‘회개란?’ ‘죄에 대하여 뉘우치고 참회함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  그리고 그 원어의 의미에서 볼때, 크리스챤의 믿음을 표현하는 그 첫 걸음으로써 마음과 삶의 방향을 바꾸다는 뜻을 지니고 있음 (행. 26:20)’ 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했던 침례자 요한은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마. 3:2,9~9) 고. 이런 침례 요한의 도전에서 ‘회개란 천국 백성의 첫걸음일 뿐 아니라, 회개란 그 본질상 말로만 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는 이런 질문을 성도 여러분에게 하기 원합니다. “여러분은 언제 마지막으로 회개를 하셨나요?” 그리고 “여러분이 하나님께 회개해야 하는 죄는 어떤 것일까요?” 이러한 회개에 대한 우리 각자의 성경적 가르침을 먼저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오늘 본문이 포함된 <호세아서>가 쓰여진 배경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700여년 전에 북 이스라엘 왕국을 중심으로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호세아 선지자가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시기는 ‘여로보암 2세’ 때로서 다윗과 솔로몬시대 이후로 사실상 외형적 현상으로만 볼때, 그 어느 시기보다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정치적인 성공을 누리던 시기였습니다. 그들은 여러 나라들과 활발한 교역을 통해 경제적 성공과 막강한 국력을 자랑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이들 중에는 이런 풍요와 외형적 성공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루진 것이라고 자랑하는 자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이 당시 북 이스라엘 왕조의 영적 상태는 가장 암울하고 치명적인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이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선언하시는 요지인 것입니다.

그들은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면 누릴수록 더욱 우상숭배와 성적 타락의 치명적인 영적 암에 걸려 헤어나오지 못하고 점점 더 파멸과 심판을 향해 수렁으로 빠져들었던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왜 인간은 허락하신 물질과 모든 베푸신 환경의 은혜를 통해 더 하나님의 기쁜 자녀로 살지 못하고, 더욱 타락하고 부패해 가는 것일까요? 이것은 한마디로 우리 인간의 참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는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을 믿어 그의 자녀가 된 성도들도 또한 우리의 육체 안에 거하는 죄의 속성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본질상 악을 사랑하고 죄에 너무나 쉽게 유혹받는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저희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호.4:7) 하시고, 또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 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아름다울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저희가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죄를 받을 것이라” (호. 10:1~2) 고 하나님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이 번성할수록 더욱 범죄하고, 아름다울수록 더욱 타락하는 죄악을 고발하고 심판하실 것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든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인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저에게 호세아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라고 한다면, 저는 바로 오늘 메세지의 제목인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v.1)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돌아오라’ (호.14:1) 말씀하시기 때문이요, 우리가 우리의 죄를 뉘우치고 고난 받을 때에 하나님의 얼굴을 간절히 구하고 그분께 돌아갈 때 까지 기다리시기 때문 (호. 5:15)입니다. 성도 여러분, 과연 무엇이 회개입니까? 회개는 앞서 살펴 본데로 ‘죄를 뉘우침으로 그 죄를 행했던 길에서 되돌아서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회개란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께로 되돌아서는 방향전환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회개가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임을 우리가 이해했다면, 이제 좀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How are we able to return to the Lord?) 하는 것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그분께 나아가는 가장 중요한 첫째 단계는 <여호와를 힘써 알아 감으로써> (By knowing the Lord with all our hearts) 일 것입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 4:6) 라고 하나님은 선언하십니다. 무슨 지식이 없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망하는 것입니까? 바로 오늘 <3절>에서 우리에게 촉구 하시듯이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 (호. 6:6) 라고 하나님은 분명하게 자신이 무엇을 원하시는 지를 밝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시편기자가 고백하듯 우리 성도의 복중의 복은 돈 많이 벌고 건강하고 출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언제나 묵상하는 것> (시. 1:2)입니다. 이를 통해 말씀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성품을 더욱 알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성도의 참된 복을 이해합니까? 그리고 누려 나갈까요? 만약 우리가 날마다 선하신 하나님을 알아 나가기를 추구하고 그로 말미암아 그분의 생명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날마다 순간마다 묵상하고 삶 속에서 적용시켜 나간다면,

다음 단계는 필연적으로 <허락하신 고난을 이해해 감으로써> (By understanding the suffering from God)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여러 번 고난과 우리 성도의 삶의 관계성을 살펴보았지만, 사실 이것을 정확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 우리는 이 고난을 통해서 깨닫지 못할 수 있는지에 대해 호세아는 “저희의 행위가 저희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호. 5:4) 고 말입니다. 이것이 악을 행하는 자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그 악하고 음란한 마음이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마음의 소원을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힘써 알아가는 은혜 가운데 거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에게 허락된 고난을 믿음의 눈을 열어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이 고난은, 이 징계는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치셨으나 도로 싸매어 주시는 것>입니다 (v.1,2). 이 징계가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살리는 강력한 그분의 사랑의 손길인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허락하신 고난을 통해 그 자녀를 사랑으로 훈련으로 징계하시는 은혜의 손길을 깨닫았다면, 여러분과 저는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로 보좌 앞으로 더욱 가까이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지막 단계인 <영적 각성을 통해서> (By recognizing through spiritual awaken) 입니다. 우리가 잘 기억하드시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하나님의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능력의 복음을 자랑스럽게 영적 충만함으로 증거하고 나서, 결론부분인 <롬. 13장> 끝부분에서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꺨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롬. 13:11) 라고 로마교회 성도들의 영적 각성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자녀가 언제 영적 각성을 경험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는 하나님을 힘써 알아 나감으로, 나에게 주어진 고난을 통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고후. 12:7)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뜻을 이해해 나감으로서 입니다. 이런 영적 각성을 통해 여러분과 저 또한 주님 앞에서 유쾌하게 되는 날이 이르게 될 것입니다 (행. 3:19).

누가 참된 지혜를 가진 자입니까? 누가 총명이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에게 허락하신 징계를 달게 받음으로 그분의 선하신 뜻을 깨닫고 그 뜻에 순종하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것이 호세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마지막으로 질문하고 도전하시는 것입니다.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 (호. 14:9) 의인 곧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믿음의 자녀만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과 뜻을 이해하고 순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인은 도리어 그 말씀에 걸려 넘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의 삶 가운데 날마다 겸손하게 회개로 나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바로 여호와를 힘써 알아감으로, 그분의 징계라는 사랑의 손길을 이해해 감으로 말입니다. 바라기는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가서 그분의 빛된 아들과 딸로서 허락하신 은혜와 충만한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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