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19, 2020

“징계가 없으면” (If you are not disciplined)

Preacher:
Series:
Passage: 히브리서 (Hebrews) 12:5~8
Service Type:

“징계가 없으면”

(If you are not disciplined)

4-19-20

본문말씀: 히브리서 (Hebrews) 12:5~8

5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설교 요약]

            저는 이번주와 다음 주일에 크리스챤들에게 있어서 <고통과 징계>의 의미에 대해서, 그리고 그 다음 2주에 걸쳐서 <회복과 성숙>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특별히 요즘과 같은 어려운 상황을 통하여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하심을 이해하고 적용할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말씀 <히브리서 12장>에 나와 있는 그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하심은 코로나 사태 뿐 아니라, 모든 고난의 상황을 통하여 흐르는 그분의 사랑을 깨닫는 열쇠가 됩니다.

그렇다면, <히브리서 12장> 말씀에서 보듯이 “과연 고난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깨닫아야 할까요?” (What we should know through suffering?) 그것은,

첫째, ‘고난은 크리스챤을 피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We need to realize that the suffer will not escape us): 적지 않은 크리스챤들은 고난과 시련이 오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미워하시거나 벌하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 아버지는 그 사랑하는 자녀마다 징계하시고,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신다 (v.6) 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둘째, ‘고난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입니다 (We need to figure out the meaning of suffering): 우리 크리스챤이 겪는 고난은 ‘징벌’ (punishment) 이 아니라 ‘징계’ (discipline)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누누히 밝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성도들은 예수의 피로 죄 씻음을 받았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벧전. 2:24, 요일 1:7). 단지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훈련하고 훈육하시는 징계를 받는 것입니다.

셋째, ‘고난을 담대하게 받아야 한다’는 것’ 입니다 (We should live boldly with suffering): 그렇다면 왜 하나님 아버지는 그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것일까요?

  • 고난은 성도를 ‘회개’ (repentance) 하게 합니다.
  • 고난은 우리를 하나님의 ‘의로우심’ (righteousness) 으로 인도합니다.
  • 고난은 우리로 하나님의 ‘유업’ (inheritance)을 이루게 합니다.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고난의 풀무불을 통과하며 정금과 귀한 믿음으로 훈련을 받음으로 허락하신 의로움과 평강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으시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저는 제 평생을 통하여 요즘 전세계를 흔들고 있고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사태는 처음 겪습니다. 흔히 영어로 ‘pandemic’ (팬데믹)으로 표현되는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전염병현상’은 정말이지 제의 평생을 통하여도 처음 맞는 가장 강력하고도 광범위한 전염병 현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마도 이렇듯 전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국가에 이런 강력한 (=팬데믹한) 영향력을 준 것은 제가 태어나가 훨씬 전의 1 & 2차 세계대전 정도가 아닐까 하고 저는 추측해 봅니다. 벌써 저희가 살고 있는 아틀란타 지역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본격화되어 대부분의 직장과 학교가 문을 닫고 각자의 집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한지도 한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언제 이런 초유의 비상사태가 끝이 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저는 우리에게 밀어닥친 <코로나 전염병>라는 초유의 사태를 온몸으로 느끼며, 우리 크리스챤은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또 이 시기를 보내야 할 것인가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이 ‘코로나 팬데믹’은 매우 재수없어서 우연히 발생한 하나의 재난인가요? 혹은 이 발생원인이 어떤 특정인의 잘못이나 실수로 인한 일어나지 않았어야 했을 잘못된 상황인가요? 우리가 이 상황에서 얼마만큼 코로나의 실체와 발생원인을 보다 자세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는 각자 다를 수 있겠지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누구도 이 상황을 다 꿰뚫어 볼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 모든 것을 이해하실 뿐만 아니라, 이 모든 것을 통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임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 코로나사태도 말입니다. 오늘 <히브리서 12장> 말씀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두신 힘든 시간을 통해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두신 뜻이 무엇인지를 더욱 분명히 이해해 감으로, 이 코로나 사태를 믿음으로 이겨나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

저는 이번주와 다음 주일에 우리 크리스챤들에게 있어서 <고통과 징계>의 의미에 대해서, 그리고 그 다음 2주에 걸쳐서 <회복과 성숙>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특별히 요즘과 같은 어려운 상황을 통하여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하심과 인도하심을 이해하고 삶속에서 그 뜻을 적용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히브리서>는 그 편지를 쓰는 대상이 주로 구약의 율법과 하나님께 드렸던 제사예법에 대해 잘 이해했던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다시 말해, 그 수신자들의 상당수가 구약의 유대교 전통에서 성장했던 유대인 크리스챤들이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크게 2부분으로 나눠볼수 있는데, 첫 부분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의 피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의 희생제물의 피)를 통하여 하나님께 화목제물의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께 나아갈수 있는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1~10장). 둘째 부분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큰 핍박은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를 사랑하시고 책임지심으로 허락하신 영적 훈련이다’는 것입니다 (11~13장). 그러므로, 우리 크리스챤들은 우리가 겪게 되는 고통과 고난의 시간을 맞이하게 될 때 이상하게 여기거나 낙심해서는 안되며, 도리어 이 고난은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임을 더욱 확신함으로 서 굳건한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오늘 <히브리서 12장> 본문말씀을 통해 성도 여러분과 함께 특별히 고난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우리 크리스챤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은 무엇일까요?  과연 고난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깨닫아야 할까요?” (What we should know through suffering?) 그것은,

첫째, ‘고난은 크리스챤을 피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We need to realize that the suffer will not escape us): 적지 않은 크리스챤들이 힘들어하고, 때로는 시험들기도 하는 것이 바로 ‘고난의 문제’임을 저는 잘 압니다. 고난에 대한 잘못된 오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고난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이 고난과 우리 크리스챤은 어떤 관계인가? 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고난은 우리 크리스챤을 피해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산상수훈 가운데 “~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마. 5:45) 라고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신 사랑을 밝혀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사랑은 햇빛을 선한 자 뿐 아니라 악한 자에게 비추시고, 비를 의로운 자 뿐 아니라 불의한 자에게도 내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위 하나님의 모든 자에게 차별없이 내려 주시는 ‘일반은총’인 것입니다. 이것을 거꾸로 말하면, 하나님은 의로운 자라고 해서, 선한 자라고 해서 고난의 폭풍과 고통의 사막을 피해서 지나게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번째 질문은 이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 크리스챤에게도 고난을 허락하시는가?”라고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선하심이 햇빛과 단비라는 은혜를 믿는 성도들 뿐 아니라 믿지 않는 불신자에게도 내리신다는 것은 인정하겠는데, 고난과 핍박이라는 고통의 시간만큼은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는 자녀에게서 거두어 가셔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성도들이 적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다. 저는 여기에 ‘고난이, 고통이 가진 놀라운 비밀’이 있다고 믿습니다. 역설적으로 선하신 하나님은 그의 자녀를 누구보다 사랑하시고 부모와 같이 우리를 책임지시기에 고난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v. 6,8) 라고 오늘 본문말씀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 크리스챤에게 고난을 피하게 하지 않고 허락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자녀를 사랑하심이요, 징계함으로 장성한 성품의 자녀로 자라게 하시고자 함인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고난, 즉 징계가 없다면 우리는 고아요 사생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고난의 의미를 이해합니까?

둘째, ‘고난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입니다 (We need to figure out the meaning of suffering): 우리 크리스챤의 삶에서 고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이해했다면, 우리는 한걸음 더 고난의 실체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고난에 대한 성경적 이해는 어떠한 것일까요? 먼저 우리가 다루는 주제인 ‘고난’에 대해서 오늘 성경본문에서는 ‘징계’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이 ‘징계’는 헬라어 원어에는 <파이데이아>인데, 이것은 같은 헬라어 단어에서 ‘어린 자녀들’이라는 뜻의 <파이디온>과 어원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징계하다’라는 의미가 ‘(어린) 자녀를 훈련하다’는 것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영어성경에서는 <discipline>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 단어의 뜻은 ‘훈련’ 또는 ‘연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징계’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허물이나 잘못을 뉘우치도록 나무라며 경계함>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여러분이 ‘징계’라는 말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지든 상관없이 그 징계는 ‘죄를 범한 자를 처벌하는 <징벌>이 아니라, 실수나 잘못을 나무람으로 뉘우치게 하고자 함이 <징계>의 목적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징벌은 죄를 심판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징계는 잘못을 뉘우치게 하고 교정하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크리스챤과 징벌은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우리 크리스챤은 징벌 받지 않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 2:24) 라고. 이 말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그의 보배로우신 피를 흘림으로 우리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모든 죄와 형벌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사도 요한은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7) 라고 밝힌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크리스챤은 하나님의 죄에 대한 진노에서 구원함을 받고, 벗어날 수 없는 아담의 원죄로 말미암아 징벌 (=형벌) 받는 자리에서 완전히 자유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챤은 더 이상 죄의 형벌에 두려워하지 않고, 생명의 성령의 능력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 크리스챤이 징벌에서 벗어난 자유한 존재기 되었다는 것이 곧 징계도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징계는 형벌이 아니요, 선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징계는 하나님의 자녀교육으로서 훈련 (훈육/훈계)과 교정을 뜻하는 것입니다. 즉 지혜롭고 사랑 가득한 아버지가 자녀를 교육하는 것이 ‘징계’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v. 8)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으면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벌주시고 심판하시는 여전히 두려운 하나님으로 여기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아직도 징계가 징벌이 아니라, 사랑하는 그의 아들과 딸에게 허락하신 훈련임을 확신하지 못합니까?

셋째, ‘고난을 담대하게 받아야 한다’는 것’ 입니다 (We should live boldly with suffering): 그렇다면 왜 하나님 아버지는 그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고난은 성도를 ‘회개’ (repentance) 하게 합니다. 우리 주님은 <누가복음 13장>에서 그 당시로 말하자면 장안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한가지 ‘불행한 대형사고’에 대해 이런 영적 도전을 하셨습니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 13:4~5)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요즘 말로 하면, 어느 날 갑자기 고가도로가 무너져 그 도로 위와 아래를 달리던 수십대의 차량에 탔던 사람들이 떨어지고 치여 죽게 되었다면 이 죽은 사람이 우리보다 죄를 더 많이 지어서 죽었다고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요지는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코로나 사태를 우리가 어떤 몇몇 사람의 죄나 잘못으로 치부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더욱이 스나미나 태풍과 같은 자연적인 재해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고난을 통하여 우리 성도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영적 교훈은 우리 주께서 경계하신 것과 같이 ‘이것은 나와는 상관이 없다’는 태도가 아니라, ‘겸손히 나의 허물과 잘못을 ‘회개’ 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또한 고난은 우리를 하나님의 ‘의로우심’ (righteousness) 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 고난이 때로는 우리를 고통의 언덕과 슬픔의 골짜기를 지나게 할찌라도, 이 고난은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하신 의로우심으로 참여하게 합니다.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히. 12:10) 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고난의 의미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고난은 우리로 ‘상급’ (reward)을 이루게 합니다. 이 ‘상급’을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게 될 ‘하나님의유업’ (inheritance of God)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상급, 즉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유업의 영광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전. 4:17)라고. 우리 성도가 이 땅에서 잠시 받는 고난은 장차 그리스도와 누리게 될 영원한 유업을 이루게 함이라고 사도는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 성도들이 담대하게 고난을 받아야 할 이유를 이렇게 선언하는 것입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히. 12:11) 라고. 바로 이 고난의 터널을 통과한 성도들을 마침내 의로움과 평화로움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고난을 불평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함으로 받아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욥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수없는 고난을 통과하면서 이런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 23:10) 라고. 성도 여러분은 지금 어떤 코로나 사태를 겪고 있나요? 글짜 그대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건강과 생명의 위협을 강하게 느끼나요? 아니면 재정적인 코로나 사태, 인간관계의 코로나 사태, 아니면 정신적인 영적인 혼돈상태의 코로나 사태를 경험하고 있나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는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시는)” (v. 6) 선하신 아버지이심을 믿습니다. 이 코로나사태는 언젠가는 지나가겠지만, 고난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 분의 선하신 징계는 계속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 모두, 욥이 고백했드시 하나님께서 주신 고난의 풀무불을 통과하며 정금과 같이 훈련받아 순결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아들과 딸의 삶을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그 고난을 통과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의로움과 평강의 열매을 풍성하게 맺으시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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