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4, 2020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The person who fear the Lord)

Preacher:
Passage: 잠언 (Proverbs) 1:7
Service Type: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The Person who fear the Lord)

5-24-20

본문말씀: 잠언 (Proverbs) 1:7

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 하느니라 (The fear of Lord is the beginning of knowledge, but fools despise wisdom and discipline)

 

[설교 요약]

            ‘하나님을 경외함’ (Fear of the Lord)이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가는 자녀로서 그분의 의로우심을 깨우쳐 나가고, 그분에 대한 ‘감탄/놀라움’ (awe)과 ‘공경/숭배’ (reverence)를 드리는 것>이라고 웨스트민스터 신학사전은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우리 성도의 삶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일까요? 과연 무엇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일까요?” (What is the life to fear of the Lord?) 그것은,

첫째, “하나님을 첫 자리에 모시는 삶” (It is the life to put the Lord first) 입니다: ‘하나님을 첫 자리에 모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내 삶에서 그 무엇보다도 ‘우선순위’ (priority)를 차지한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선언하듯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섬기는’ (롬. 1:25) 어리석고 죄악된 삶이 아니라, 내 삶에 중심에 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를 경외함의 첫걸음인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삶” (It is the life to enjoy the Lord) 입니다: 존 파이퍼목사는 그의 책, ‘하나님을 기뻐하라’ (Desiring God)에서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가장 만족할 때 하나님은 최고로 영광을 받으신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느헤미야는 “~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느. 8:10)라고 선언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를 기뻐함이 그분이 가장 영광을 받으시는 길일 뿐 아니라, 우리에겐 참된 만족과 능력의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 (It is the life to worship the Lord) 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입성하게 하시면서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4~5)라고. 바로 온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는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곧 ‘거룩한 산 제사’ (a holy living sacrifice)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러하듯 성경지식과 교리를 잘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날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성령님의 도우심 가운데 하나님을 내 중심에 모시고 그를 기뻐하고 그분께 영광 돌려 나감으로 온전한 경외함의 은혜를 누리는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우리 인간은 얼마나 더 살아야 좀더 지혜로와지고, 진리를 더욱 깨닫을 수 있을까요? 더욱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그분의 자녀일찐대 좀더 철이 들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하나님의 주시는 지혜로 우리의 남은 시간을 잘 사용할 수 있기를 이렇게 간구했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 90:12)라고. 누가 완전하여 실수하지 않고 허물없는 삶을 살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열매 맺는 인생, 그리고 승리하는 인생을 감히 살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삶을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에게 허락하셨다면, 여러분은 믿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삶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그것은 오직 “여호와를 경외함”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심을 저는 믿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 우리 아버지만이 주실 수 있는 진정한 지혜 가운데 <하나님 경외하는 법>을 더욱 배워 나가고자 결단하며, 우리의 남은 날 동안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의 자녀에게 허락된 모든 약속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성경사전을 찾아보면, ‘하나님을 경외함’ (Fear of the Lord)이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가는 자녀로서 그분의 의로우심을 깨우쳐 나가고, 그분에 대한 ‘감탄/놀라움’ (awe)과 ‘공경/숭배’ (reverence)를 드리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찬송가,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라는 은혜롭고 영감 넘치는 찬송가의 가사에서 볼 수 있듯이, ‘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세계를 우리의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우주에 가득 찬 주님의 권능으로 인하여 놀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고,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우리의 영혼이 찬양하고 경배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매우 도전적인 질문은 이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놀라운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경배와 사랑을 주일 예배 때만 잠시 생각하고 그칠 것인지? 아니면 매일 매순간마다 하나님을 향한 중심의 고백으로 드리고 있는 것인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예배때 하루만이 아니라, 언제나 삶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기 원하는 것이 여기 예배에 참석한 우리 모두의 소망 아닐까요?

이제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기 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일까요?” (What is the life to fear of the Lord?) 그것은,

첫째, “하나님을 첫 자리에 모시는 삶” (It is the life to put the Lord first) 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첫 자리에 모신다’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우선순위>에 둔다는 뜻일 것입니다. ‘우선순위’ (priority)는 성도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그 어떤 것보다도 먼저 차지하는 차례나 위치’라는 뜻입니다. 그럼으로 내 삶에 있어서 과연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무엇보다도 먼저 첫째가는 위치를 차지한다고 내가 분명하게 고백할 수 있다면,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시작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어서 그를 첫 자리에 모시는 것을 가장 우리가 행할 첫 단계로 말씀드린 이유는 이것이 그분을 경외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이라기 보다는, 경외함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관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내가 먼저 인격적으로 결단함으로 행해야 하는 것이 바로 <우선순위>의 삶이요, 곧 ‘하나님을 첫 자리에 모시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에게 하늘로 좇아 나타났음’ (롬. 1:18)을 선언하고 나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우리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를 이렇게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 1:21,23)라고.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우상으로 바꾸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을 사도는 몇 절 뒤에서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롬. 1:25)고 고발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그분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며, 도리어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짐승과 가증한 우상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선순위에서 완전히 밀려난 것입니다. 이런 악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삶의 첫 자리로 모시는 인격적 결단과 행함을 거부하게 될 때,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은혜와 풍성함으로 첫발을 내디딜 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삶” (It is the life to enjoy the Lord) 입니다: 여러분은 크리스챤 희락주의’ (Christian Hedonism)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이것을 가장 짧게 요약하면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가장 만족할 때, 하나님이 가장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희락주의’사상은 지난시간 ‘구원의 기쁨’이라는 말씀에서 함께 살펴보았듯이 신약의 성도 뿐 아니라 구약의 성도까지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누린 모든 자들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기쁨과 감격의 삶’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상이 미국 청교도의 지도자, 조나단 에드워드의 영성에서 발견되고, 특히 ‘존 파이퍼’ 목사에 의해 발전된 사상입니다. 파이퍼목사는 그의 책, 하나님을 기뻐하라’ (Desiring God)에서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만족할 때 하나님은 최고로 영광을 받으시며, 인간이 그분을 즐거움으로 추구할 때 인간의 가장 깊고 영구적인 행복이 함께 찾아온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럼으로 “진정한 만족을 원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돈이나 권력이나 육체적인 쾌락에서 만족을 찾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영혼의 갈망을 넘치게 채움 받아야 한다” 고 파이퍼 목사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자가 누릴 참된 영혼의 만족을 강조했습니다.

바벨론에 전쟁포로로 잡혀갔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고국에 그의 백성들과 함께 돌아온 지도자 느헤미야는 이렇게 외칩니다. “~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느. 8:10)라고. 그렇다면, 왜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 크리스챤의 힘이 되는 것일까요? 다윗은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이렇게 자신이 누리는 기쁨과 은혜를 노래합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 16:11)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은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보이시고, 우리 주님 자신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성도가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하고, 내 삶의 첫 자리에 모시면 모실수록, 우리는 하나님 안에 감추인 생명의 길과 그분 안에 넘쳐나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하여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않을 수 없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요. 15:4)말씀하시고,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요. 15:11)고 우리 주님께서 그를 믿는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기쁨의 이유인 것입니다. 그분 안에서 누리는 생명의 기쁨과 성령충만을 통한 즐거움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고, 즐거워하십니까?

셋째,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 (It is the life to worship the Lord) 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압제에서 건져 주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입성하게 하시면서 이렇게 모세를 통해 ‘하나님 사랑’을 명령하셨던 것을 우리는 잘 기억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4~5)라고. 이 말씀이 성경 전체에서도 얼마나 중요하고 성경전체를 아우르는 핵심적인 말씀인지는 예수님께서 한 서기관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 (막. 12:28) 라는 질문에 대해 바로 이 <신명기서 6장>의 ‘하나님 사랑’과 <레위기서 19장>의 ‘이웃 사랑’ (레.19:18)에 대한 명령으로 요약하신 것을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그 무엇보다도 첫째가는 명령 ‘하나님 사랑’을 명하신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마무리해 가면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내 자신을 향해서는 그분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심으로 즐거워하는 것으로, 그리고 그분을 향해서는 경배와 찬양을 올려 드림’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결론 내리기 원합니다. 그럼으로 그분을 즐거워함으로 경배드리는 삶이 바로 <신명기 6장>에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하나님 사랑’의 핵심이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사실 여기까지 말씀드리면 우리가 성경의 교리적이고 지식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어떤 삶인지를 대부분 함께 나누지 않았나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우리가 오늘 설교를 듣고 각자 돌아가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인가를 질문해 볼 때 여러분 스스로는 어떻게 대답할지 매우 궁금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우리의 인격적인 결단과 성령님의 도우시는 은혜 가운데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점점 더 이해해 나가고,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는 만큼 내 자신에 대한 영적 각성에서 자라날 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성경적 지식을 쌓았다고 경험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이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그분의 거룩한 제단 앞으로 나아와 향기나는 제사로 하나님께 드릴 여러분의 예배의 삶을 기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의 첫번째 신앙고백은 이렇게 묻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제일 가는 목적은 무엇인가?”(What is the chief end of man?) 라고 묻고, 인간의 제일 가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 (To glorify God, and to enjoy Him forever) 이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경외의 삶을 통해 하나님 우리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며,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삶을 사시는 축복된 인생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지혜가 부족하여 아직까지 다 깨닫지는 못할찌라도 하나님을 점점 더 경외해 나감으로 그의 자녀가 받는 그 약속하신 은혜와 복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날마다 풍성히 누려 나가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수 없는 성경말씀을 기억해 볼때 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실천해 나감으로서 하늘에서 임하는 참된 은혜와 복을 넘치도록 누리시는 성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