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31, 2020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In my heart like a fire)

Preacher:
Series:
Passage: 예레미야 (Jeremiah) 20:8~9
Service Type: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In my heart like a fire)

5-31-20

본문말씀: 예레미야 (Jeremiah) 20:8~9

8 대저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Whenever I speak, I cry out proclaiming violence and destruction. So the word of the Lord has brought me insult and reproach all day long.)

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But if I say, “I will not mention Him or speak any more in His name”, His word is in my heart like a fire, a fire shut up in my bones. I am weary of holding it in; indeed, I cannot.)

 

[설교 요약]

            이스라엘의 긴 역사 가운데서도 가장 암울하고 절망적인 시대의 하나가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망하게 된 시기일 것입니다. 바로 예레미야 선지자가 살았던 시기였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 우리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심판의 메시지를 전함으로 인해 많은 핍박을 당하는 가운데 낙심되어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리라’ 고 절규하는 선지자의 모습을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끝내 말씀 선포자의 삶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집중해서 살펴보기 원하는 것은 왜 예레미야는 말씀선포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일까요?” (Why is Jeremiah not able to give up proclaiming God’s Word?)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의 부르심을 경험했기 때문’ (Because he experienced the God’s calling) 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내가 너를 복 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렘. 1:4,5) 라고. 이런 하나님의 부르심은 예레미야 뿐 아니라, 그의 모든 자녀를 말씀 선포자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즐거워하기 때문’ (Because he rejoices by the Words of God) 입니다: 예레미야가 부르심을 받은 이후, 40여년의 긴 기간동안 수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신실하게 그의 미션을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날마다 받아 먹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입니다)” (렘. 15:16) 라고 그는 고백합니다.

셋째,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강권하시기 때문’ (Because God compels him by the Holy Spirit): 예레미야가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v.9)라고 고백하는 것은 성령의 강권하심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선포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강력한 은혜로 그를 지켜 주시기에 모든 환경의 어려움과 육신의 연약함에도 사명을 포기하지 않고 돌파하여 이겨 나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남은 날을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충성된 증거자로 살아감으로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단. 12:3)는 하나님의 약속하신 복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설교 전문]

            저는 ‘눈물의 선지자’로 일컬어지는 예레미야의 고백을 통하여 크리스챤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크리스챤의 신분이 얼마나 크고 영광스러운지에 대해서 로마서를 중심으로 여러 번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의 중요한 질문이 되는 “우리가 크리스챤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지?”를 이해하는 길은 크리스챤으로서의 우리의 신분을 이해함으로서 가능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긴 역사 가운데서도 가장 암울하고 절망적인 시대의 하나가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망하게 된 시기일 것입니다. 바로 예레미야가 살았던 시기였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선포하라고 주신 말씀으로 인해 많은 고난을 받았고, 그분의 마음을 품음으로 ‘눈물의 선지자’로서 살았습니다. 오늘날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희귀한 이 시기에 그 선하신 생명의 말씀으로 우리 삶의 존재이유를 발견하는 시간되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크리스챤의 존재를 깨닫고 변화를 받아 이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하나님의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죄를 범한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함으로 인해 많은 고난과 핍박을 당하는 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향하여 불붙는 듯한 고백인 것입니다. 지난 주부터 시작된 큐티 말씀, <하박국서>의 저자, 하박국 선지자는 시기적으로 볼 때 예레미야 선지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동시대를 살면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메세지를 전했던 이 두명의 선지자의 메세지에서 발견하게 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악의 문제’ 입니다. 첫째는 동족, 유대민족이 저지른 죄악으로 인해 이들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강하고 잔인한 바벨론 민족을 일으키셔서 유대민족과 여러 세상 민족들을 심판하실 것을 이들 선지자들에게 깨우쳐 주셨을 때, 이들은 이것으로 인해 고통받았습니다. 특별히 하박국 선지자는 ‘왜 하필이면 바벨론 민족과 같은 잔인하고 악한 민족에 의해 이런 심판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통스러워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선지자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공통점은 모두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의 전능하신 능력과 선하신 뜻을 따라 악인과 선인 사이에서 의롭게 판단하시고, 그를 믿고 순종하는 그의 자녀들을 반드시 구원하심을 믿음으로 마무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의롭고 구원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함으로 예언을 마무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자로서 겪어야 했던 고난의 삶을 살펴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선포를 포기할 수 없는 그의 영적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예레미야 20장>을 시작하면서 제사장 임멜의 아들 바스훌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고 그를 때리고 여호와의 집 뒷문 착고에 가두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고난의 시간 가운데 낙심되고, 말씀을 맡은 선지자의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강한 유혹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토로합니다. “~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v.8,9) 라고.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더 이상 선포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기도 했지만, 결코 말씀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제가 성도 여러분과 함께 집중해서 살펴보기 원하는 것은 왜 예레미야는 말씀선포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일까요?” (Why is Jeremiah not able to give up proclaiming God’s Word?)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의 부르심을 경험했기 때문’ (Because he experienced the God’s calling) 입니다: ‘예레미야’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지명하신 자’ 입니다. 예레미야는 베냐민 땅의 ‘아나돗’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가 그를 낳고서 그에게 이름을 지어준 것이 소원데로 이루어진 것일까요? 혹은 하나님이 그 부모들의 마음 속에 그 아들의 이름을 넣어 주신 것일까요? 그것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중요한 것은 ‘예레미야’는 그 이름에 걸맞게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지명하셔서 부르신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도 가장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부름 받은 선지자로서 신실하고 충성되게 믿음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느 날 예레미야에게 임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복 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렘. 1:4,5) 라고. 심히 놀라운 택하심과 그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우시는 영광된 계획하심을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에게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찌니라” (렘. 1:7)라고.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그에게 사람들을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라 (v.8a)고 말씀하시는 데, 그 이유는 그분께서 그와 함께 하심이요, 그를 어떤 상황에서도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 (v.8b)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예레미야와 같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음에 대한 경험이 없습니까? 여러분은 ‘내가 말씀에 대해서 예레미야와 같이 충성되게 선포자로 서지 못하는 이유는 그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직접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까?!....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즐거워하기 때문’ (Because he rejoices by the Words of God) 입니다: 예레미야가 앞서 살펴본 대로 처음에 하나님께 선지자로서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 40여년의 긴 기간동안 수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신실하게 그의 미션을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를 부르실 뿐 아니라, 날마다 새로운 힘과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양식’을 먹었기 때문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When your Words came, I ate them; they were my joy and my heart’s delight) (렘. 15:16) 라고 예레미야는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여 부르셔서 그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주셨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첫걸음이 되는 중요한 걸음이지만 그것이 계속해서 그의 삶을 지탱해 주시는 못합니다. 예레미야의 경우에서도 결코 예외가 아닌 것입니다. 그는 바벨론의 침공으로 인해 완전히 유다왕국이 멸망하게 되고 자신과 민족은 전쟁포로에 처한 절망적인 상황속에서 이런 소망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애. 3:22,23) 어떻게 예레미야는 소망을 회복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오직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그분의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는 바로 앞절에서 그것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 심령이) 중심에 회상한 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v.21) 이라고. 그가 그 약속의 말씀을 마음 깊이 묵상하고 회상할 때, 절망이 변하여 오히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소망을 품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한사람 뿐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우리 모든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축복의 은혜를 누리는 자는 몸이 건강한 자도 아니요, 돈이 많은 자도 아니요, 많이 배우고 많은 권력을 가진 자도 아니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 (시. 1:2)인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말씀 안에서 현재 이와 같은 풍성한 기쁨의 은혜를 누리지 못한다면, 저는 여러분의 마음이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열심도 없고 계속 세상에 대한 관심만 있다고 한들 전해 놀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불행히도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고, 말씀으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오늘날 크리스챤의 적나라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날마다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합니까?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함으로 참된 소망과 힘을 그 생명의 말씀으로부터 날마다 공급받고 있습니까?

셋째,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강권하시기 때문’ (Because God compels him by the Holy Spirit): 오늘 본문 바로 앞 절, <7절>에서 예레미야는 이렇게 토로합니다. “오 주여, 주께서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속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날마다 조롱을 받고 사람마다 나를 비웃나이다” 라고. 흥미롭게도 예레미야는 의로우신 하나님을 향하여 “주께서 나를 속이셨(다)” (you deceived me)라고 항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언제 예레미야를 속였습니까? 하나님은 결코 그를 속이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속이는 것은 우리 인간의 마음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여러가지 시련들 가운데 흔들리고, 하나님을 향해 항변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았던 것입니다. 사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나를 권면하고 설득시키셔서 이런 일을 맡았는데, 왜 내가 이런 조롱과 멸시를 당해야 하는 겁니까?! 이런 마음이 들자, 자기가 맡은 일을 그만두고자 하는 유혹과 충동을 자연스레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그가 종일토록 조롱을 당하게 되자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안겠다)” (v.9a) 고 마음먹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말씀 선포를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v.9)라고.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그 무엇보다도 여호와의 영, 성령의 강권하심을 뜻합니다. 비록 환경의 어려움과 예레미야의 인간적인 연약함으로 인해, 그가 말씀을 포기하고 맡은 사명을 그만두고 싶은 상황이 찾아올지라도 성령께서 친히 말할 수 없는 감동하심으로 그를 붙드신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의 낙심되고 사명자의 자리를 떠나고자 하는 그를 얼마나 강하게 붙드셨으면, “내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수 없나이다” 라고 외쳤을까요? 이것은 아름다운 시적 표현이 아니라, 성령께서 강력하게 누르시는 고통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 길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지라도 그 삶을 포기하거나 되돌아가지 않도록 능력과 은혜로 붙드시는 성령의 강력한 손길인 것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우리가 사명을 잘 감당하다가 도, 때로 우리의 연약함으로 지치거나 헛된 시험에 들고자 할 때, 그 선한 하나님의 열심이 성령을 통하여 그 분의 자녀를 그 굳센 팔로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두번째 편지에서 ‘현재 우리가 당하는 환난의 경한 것이 장차 주어질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고자 함’ (고후. 4:17) 고 성도들을 격려하고 나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 (For Christ’s love compels us) (고후. 5:14)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본받기를 원하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비밀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의 강권하시는 사랑에 있는 것입니다. 이 강권하시는 주의 사랑이 성령님의 은혜와 능력을 통하여 성도를 사로잡을 때, 그 어떤 불의 위협과 배고픔의 위협과 죽음의 위협까지도 우리를 주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그의 아들과 딸로 살아가는 일이 부담스럽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직도 전도나 선교는 예레미야와 같이 특별히 선택된 몇몇 소수의 크리스챤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라고 치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 받아 구원받은 그의 모든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사. 60:1)라고. 선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빛을 비취길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젊음과 재능과 시간을 드려 우리를 구원하신 그분의 사랑과 은혜의 빛을 비추길 원하십니다. 바라기는 여러분의 남은 날을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충성된 증거자의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단. 12:3)는 하나님의 약속하신 복을 누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