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30, 2018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The knowledge of knowing Jesus Christ)

Preacher:
Passage: 빌립보서 (Phillippians) 3:7,8
Service Type: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The knowledge of knowing Jesus Christ)

9-30-18

본문말씀: 빌립보서 (Phillippians) 3:7,8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But whatever was to my profit I now consider loss for the sake of Christ.)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What is more, I consider everything a loss compared to the surpassing greatness of knowing Christ Jesus my Lord, for whose sake I have lost all things.)

<서 론>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자신이 무엇에 온 힘을 다해 힘쓰고 있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자신의 온 힘과 시간을 다 투자하여 무엇을 얻고자 함인지를 매우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 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는 것 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바울에게서 배울수 있는 것은 그의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집중력> 입니다. 그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와 세상 사이에서 머뭇 머뭇거리거나 갈등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붙잡고 더 나아가 그분께 그의 삶 전체를 걸었습니다. 왜일까요?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구원의 비밀과 진정한 복이 모두 들어 있음을 그는 확신했기 때문일 것 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도 여러분의 삶에서도 세상에서 머뭇거리거나 방황하지 않고, 사도 바울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붙잡음으로 그를 아는 지식에서 날마다 자라가는 복된 삶이 될수 있기를 기대 합니다.

<본 론>

많은 성경학자들이 빌립보서의 주제절이라고 말하는 <빌. 2:5>에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빌립보성도들을 격려 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Let this mind be in you, which was also in Christ Jesus) 라고. 어떻게 사도바울은 그 수많은 고난과 힘든 핍박의 삶속에서도 실족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도리어 ‘벅차 오르는 감격’ 가운데 사람들에게 ‘기뻐하라’고 외칠수 있었을까요? 그 비밀은 무엇 이었을까요? 그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자신 안에 그리스도를 품는 것이요, 바로 그분의 마음을 품는 것’ 입니다. 그의 겸손과 순종의 마음 입니다.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되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신 것 입니다. 이런 주의 겸손과 십자가의 순종을 품었던 것이 사도바울이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복음의 강한 용사>로 살아갈수 있었던 비밀이요, <그리스도의 충성된 제자>로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수 있었던 이유일 것 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데로 예수님은 ‘천국의 비유’에 대해 말씀 하시는 가운데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 (마. 13:44) 와 같다고 설명 하셨습니다. 주께서 ‘천국’을 ‘밭에 감추인 보화’라고 비유로 말씀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첫째 ‘천국은 <감추인 상태>에 있다’는 것 입니다. 육신의 안목을 가지고, 세상의 가치관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자에게는 숨겨진 것이 바로 천국이라는 것 입니다. 둘째, ‘천국은 보화와 같이 가치가 있는 것’ 입니다. 이 천국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는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입니다. 셋째, ‘천국은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 모든 소유를 팔아서라도 반드시 사게 된다는 것’ 입니다. 내가 보화를 발견했다고 하면서도 그냥 무관심하게 그것을 놔두고 간다는 것은 사실은 그가 아무것도 발견한 것이 없다는 것 입니다. 발견 했다면 그것을 반드시 사고야 만다는 것 입니다. 주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목적은 ‘천국은 내가 가진 그 어떤 것과 비교할수 없을만큼 가치가 있다는 것이요, 그것을 발견했다면 결코 놓쳐서는 않된다는 것’이라고 도전 하시기 위함일 것 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 사도바울이 고백한 “내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다” (v.8) 는 말씀은 본질적으로 주님의 ‘밭에 감추인 보화’ 와 매우 깊은 관계성이 있다고 저는 이해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천국에 들어 갈수 없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천국의 주인 되시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 나갈때 그 천국을 이해하게 되고, 이해한 만큼 천국을 확실하게 붙잡을수 있는 것 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날때 사도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게 되고, 내 모든 소유를 팔아 보화되신 그리스도를 얻고자 한다’ 는 것 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남으로서 말 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의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라는 표현은 바로 <빌. 2:5>에서 “너희안에 이 (그리스도) 마음을 품으라” (빌. 2:5) 는 도전에 대한 실천적 개념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다시말하면, 우리 주를 믿는 성도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기 원할것 입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닮지 않을거야” 라는 식으로 말하는 성도들은 아마도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바램과는 상관없이 우리의 현실은 그리스도의 마음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삶을 살아간다는 것 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나간다’는 것은 우리가 단순히 희망사항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의 삶과 같이 실제로 내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아 살아가는 삶을 실천하게 되었다는 뜻 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날수 있을까요?” (How are we grow up the knowledge of Christ Jesus?) 라는 질문에 대해 함께 답해 보면서 우리 각자의 삶에 적용할수 있는 시간되길 원합니다.

첫째, ‘내 존재의 죄성을 깨닫는 만큼’ (As much as I recognize my sinful nature) 자라날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 (the Sermon on the Mountain) (마. 4장) 에서 ‘누가 복있는 자인가?’ (who are the blessed?) 를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누가 복있는 자 입니까? 그는 ‘심령이 가난한 자’요, ‘애통해 하는 자’ 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라는 것 입니다. 주에서 산상수훈에서 밝히신 복있는 자는 과연 어떤 자라고 성도 여러분은 이해하십니까? 이 복있는 자는 ‘나 자신의 죄와 허물로 얼룩진 존재를 처절하게 깨닫고, 애통해 하고 의롭게 되기를 갈망하는 자’라고 저는 이해 합니다. 언제나 그러하듯 내 문제해결의 가장 첫 걸음은 무엇보다도 나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파악하는데서 부터 시작되는 것 입니다. 이것이 우리 영혼의 의사되시는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던지시는 영원한 도전인 것 입니다. “ ~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막. 2:17) 라고.

과연 누가 건강한 자이고 누가 병든 자이며, 또 누가 의인이고 누가 죄인이란 말 입니까?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모든 인간은 병든자요, 죄인인 것을 깨닫아라!>는 것 입니다. 그러나, 이 당시 유대종교 지도자들,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율법교사들은 자신들은 죄인이 아니요, 의인이요 건강한 자라고 스스로 평가했던 것 입니다. 이들은 스스로 자신감과 의로움으로 가득찼고 스스로 만족했기에 우리 존재를 겸손히 돌아보라는 예수님의 어떤 선하신 말씀도 거부했고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바라보고 있습니까? 이 육신에 속한 죄성과 허물로 치닫는 내 존재의 현주소를 직시하고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은 지금도 내 육신에 속한 죄성이 나를 실수하게 하고 실패하게 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음을 깨닫으십니까? 만약 이것을 우리가 깨닫았다면 여러분과 저는 겸손하게 진실하게 ‘양으로 생명을 주실뿐 아니라 더 풍성하게 주시고자’(요. 10:10) 그의 보배로우신 피를 흘려신 주님께 겸손히 나아갈수 있는 것 입니다. 이 세상 어떤 철학도, 종교도, 과학과 지식으로도, 심지어 그 선한 율법으로도 어쩔수 없는 육신에 속한 죄성에서 오직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자유케 하심을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우리는 가난하고 애통한 심령으로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 앞으로 비로소 나아가게 되는 것 입니다.

둘째, ‘댓가지불의 의지가 있는 만큼’ (As much as I am willing to pay the price) 자라날수 있습니다: 요즘 저희 교회에서 함께 하는 ‘매일성경 큐티교재’에서 로마서를 각자 묵상하고 있는 줄 압니다. 저는 지난주 로마서 말씀에서 사도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를 향하여 이렇게 그들을 강하게 권면하는 것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Do not be overcome by evil, but overcome evil with good) (롬. 12:21) 고. 이런 사도바울의 강한 권면과 도전에서 이해하게 되는 것은 무엇 입니까? 우리 크리스챤들은 놀라운 신분의 존재가 되었다는 것 입니다. 세상사람들이 결코 누리지 못하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 입니다. 그 특권은 무엇 입니까? 그것은 ‘죄를 다스릴수 있다는 것’ 입니다. 예수님의 약속과 같이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아들 안에서 죄에서 자유하게 되었다는 것’ 입니다.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다는 것’ 입니다 (요. 8:31~36). 우리 성도가 죄에서 자유하게 되었다는 것은 이제 더이상 죄의 속박에 눌려 지내지 않고 죄를 거부하고 죄와 더불어 싸울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님으로 부터 부여받게 되었다는 뜻 입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여전히 아직까지도 혼돈스러워 하고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영적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앞에서 설명한것과 같이 죄를 이길수 있는 힘을 주께 부여 받았다는 뜻이지, 죄가 더 이상 내 육신 가운데 거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는 사실> 입니다. 좀더 쉽게 말하면, 내가 예수 믿고 거듭난 크리스챤이 되었다고 더 이상 죄가 나를 공격하지 않고 달아나는 것이 아니다는 것 입니다. 내가 자동적으로 죄에서 차단된 비밀하우스 같은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는 말 입니다. 실제 우리의 상태는 정반대로 ‘우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돌아다니며 삼킬자를 (찾는다)’ (벧전. 5:8,9) 고 베드로 사도는 분명히 지적하고 있는 것 입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다시한번 확인할수 있는 진리는 ‘내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났다면, 이제는 내 자유의지를 통하여 죄와 싸워야 한다는 것’ 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죄에서 자유케 하시고, 의로운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축복된 삶을 허락하셨는데, 또 다시 죄 가운데 방황하는 불행하고 곤고한 삶을 선택해서는 않될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우리가 자유의지를 통해 선을 택하길 기뻐하시는 것 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배우는 것’ 입니다. 주님을 따름으로해서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따른다 할찌라도 그분을 택하고자 하는 분명한 의지를 보시는 것 입니다. 어떤 댓가지불을 해서라도 말 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바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을 얻고자 지불했던 댓가 입니다. 곧 “ ~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 (빌. 3:8,9) 라고. 성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얻기위해 어떤 댓가도 지불하고 있습니까?

셋째, ‘성령의 은혜로 십자가를 깨닫는 만큼’ (As much as I recognize the Cross by the grace of the Spirit) 자라날수 있습니다: 우리가 <로마서 8장>에서 살펴 보았드시 우리 크리스챤의 진정한 영적 성숙과 하나님의 자녀됨의 놀라운 깨닫음은 성령님의 충만하신 도우심으로 가능하게 되는 것 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아바 아버지라 고백할뿐 아니라, 우리 영으로 더불어 내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친히 확증하여 주시는 분이 성령님인 것 입니다. 그의 충만하신 은혜로 여러분과 저는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지성소로 담대히 나아가게 되는 것 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기에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알아 내십니다” (고전. 2:10) 고 우리는 고백할수 있는 것 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 할수록,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고자 열망하면 할수록 내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분이 성령이심을 이해하게 되는 것 입니다. 그분은 먼저 찾아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할수 있도록 거듭남을 허락 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그리스도의 장성한 성품’에 이르도록 우리를 앞에서 옆에서 속에서 이끄시고 함께 동행하시는 것 입니다. 내가 성령님의 은혜를 통하여 깨닫게 되는것은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내가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주신 선한 의지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분명히 택하고 댓가지불을 했을때, <나는 그리스도를 얻게 될뿐 아니라, 마침내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다>’ 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것 입니다.

성령님은 내가 그리스도를 붙잡았을때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붙들고 계심을 깨닫게 하시는 것 입니다. 내가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게 될때, 사실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 속하여 살아가는 것 임을 깨닫게 하시는 것 입니다. 우리가 잘아는 데로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 (갈. 2:20a) 라고. 여러분과 제가 성령의 은혜 가운데 더욱 깊어질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내 속에서 역사하심을 경험하게 되는 것 입니다. 그분의 십자가의 능력과 승리가 내 속에서 역사함을 경험하게 되는 것 입니다. 이 충만하신 성령님의 은혜를 통해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살아계신 예수의 생명으로 살아감을 경험하게 되는 것 입니다. 오직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게 되는 것 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자라난 상태’임을 알수 있는 것 입니다. 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더 이상 머리로 아는 것으로 그치는 지식이 아닌 것 입니다. 바로 우리 주님의 영광과 승리를 영원토록 찬란하게 선언하는 그분의 십자가 안에서 우리는 결코 다함이 없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주님을 만나는 그날까지 멈추지 않고 자라나게 되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성령님의 은혜 가운데 주님의 십자가 안에서 더욱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있습니까?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존귀합니까? 오직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돈을 좇아, 명예를 좇아, 육신의 정욕을 좇아 살아 가면서, 여러분을 구원하신 주님에 대해선 무지하게 육신의 속한 자로 안타까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바라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그 어떤것 보다도 존귀한 성도 여러분의 삶이 되길 기대 합니다. 그분을 아는 지식을 사모함으로 나의 죄된 존재를 겸손히 인정하고 그분 앞으로 나아갈수 있기를 기대 합니다. 그리스도를 얻고자, 여러분들이 가진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댓가지불로 여길줄 아는 지혜로운 자 되길 소원 합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충만하신 은혜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사랑하며 그분 안에서 날마다 발견되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