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23, 2020

“우리의 시민권은” (But our citizenship is)

Preacher:
Passage: 빌립보서 (Phillipians) 3:20~21
Service Type:

“우리의 시민권은”

(But our citizenship is)

2-23-20

본문말씀: 빌립보서 (Phillippians) 3:20~21

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설교 요약]

성 어거스틴은 그의 책, ‘하나님의 도성’ (The city of God)에서 인간의 역사를 꿰뚫고 <하나님의 나라>와 <지상의 나라>가 존재해 왔음을 밝힙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은혜와 섭리로 인간의 역사에서 저질러진 모든 악을 물리치시고 ‘하나님의 도성’ 즉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는 그의 나라를 완성시키실 것임을 어거스틴은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 각자는 ‘나는 어느 나라에 속해 있나?’를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선언하드시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v.20a) 라고 고백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천국시민>일까요?” (Who is a citizen of Heaven?)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는 자’ (He is a person who eagerly await Jesus) 입니다: 천국시민은 그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 (v.20b)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만나거나 헤어질 때 마다 ‘마라나타’라고 인사했다고 합니다. ‘마라나타’의 뜻은 ‘주께서 다시 오십니다’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주님의 재림을 간절한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주께서 능력으로 만물을 복종케 하심을 믿는 자’ (He is a person who believes Jesus to bring everything under His control by His power)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만물을 회복시키시고 자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혼자가 아니라, 구원받아 천국시민 된 우리를 통해 능력으로 만물을 회복시키시고 (롬. 8:19~21)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어 가십니다 (마. 6:33).

셋째, ‘주의 영광스런 몸과 같이 변화될 자’ (He is a person who trusts Jesus to transform our lowly bodies be like His glorious body) 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 시민된 성도의 최종적인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께서 “ ~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v.21b) 는 것입니다. 현재가 아니라 장차 주께서 다시 오실 때 이루어질 성도의 영광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히 기다림으로써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았기 때문에 주님을 간절히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시민 된 이 영광스러운 우리의 신분을 자각하며 감사와 소망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며,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설교 전문]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 큰 영향력을 끼친 대표적인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성 어거스틴’을 뽑기를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주저하지 않습니다. 어거스틴은 자신의 신앙 간증인 ‘고백론’과 20여권의 그의 저서와 함께 ‘하나님의 도성’ (the City of God) 이라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를 통해 그가 이 땅을 떠난 지 150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수없이 많은 크리스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그의 대표작 ‘하나님의 도성’은 15여년에 이르는 긴 기간 동안 총 22권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저서로서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이후의 역사를 <지상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라는 2개의 역사로 구별하여 그는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 전반부 10권은 <지상의 나라>를 그리고 후반부 12권은 <하나님의 나라>를 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거스틴은 그의 책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땅의 나라라는 2개의 상반된 두나라를 설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단순히 <교회>와 <세상나라>라는 구분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회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사회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그는 이런 방대한 책을 관통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통해 인간의 역사 안에서 저질러진 죄악을 직시해 나가면서, 이것들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하심으로 극복되고 그 예정하신 뜻이 완성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종말론을 제시함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당시 뿐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도 무수한 위협 속에 있는 것입니다. 제가 성도 여러분에게 성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이라는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오늘 본문말씀의 주제에 대해서 이 책은 잘 밝혀 주고 있을 뿐 아니라, 이렇게 분명하게 질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는 어느 나라에 속한 자인가?’ ‘그리고 ‘나는 누구를 사랑하는 자인가?’ 일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도전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 2:15~17) 사도 요한은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하면서 우리는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는 자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지? 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시민권이 어디에 있는지? 나는 과연 누구를 사랑하는지? 그로 말미암아 ‘나는 어느 나라에 속한 자인가?’ 스스로 질문하고 답할 수 있는 시간 되길 기대합니다.

우리가 ‘믿음 장’으로 불리우는 <히브리서 11장>을 읽어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 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히. 11:8~10) 이 말은 아브라함이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수 있었던 것도, 그리고 그가 현실적으로는 외국에 사는 나그네와 같은 삶이었겠지만 그 약속의 땅에서 소망 가운데 살수 있었던 것도 한 성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성은 무엇일까요? 그 성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설계하시고 튼튼한 기초 위에 세우실 도성, 즉 하나님의 나라> 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을 향하여 떠났을 때 뿐 아니라, 그 약속의 땅에 도착하여 그의 자손 이삭과 야곱과 함께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의 도성, 곧 천국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영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의 나라를 계속해서 바라보지 못했다면, 그의 그 놀라운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삶은 불가능했을 것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성도들이 깨닫아야 하는 영적 진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브라함 한 사람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가장 우선적으로 행해야 할 것은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친히 다스리시는 그의 성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성을 바라고 소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그 시민권이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자는 누구인가? 누가 <천국시민>인가?” (Who is a citizen of Heaven?) 하는 것을 오늘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보기 원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는 자입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v.20)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누가 진정한 크리스챤 인가? 를 본질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누가 진정한 크리스챤 입니까? 그는 ‘그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자’ 입니다. 그렇다면, 그 시민권이 하늘 나라에 있는 사람의 특성이 무엇이냐? 는 것을 사도는 설명하면서 그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크리스챤은 왜 그리스도를 간절히 기다리는 것일까요? 여기에 대해 바울은 이미 앞에서 자신의 삶의 고백을 통해 이렇게 밝혔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 가노라” (v.14)라고. 하나님의 부르신 부름의 상을 바라보며, 주님이 오셔서 승리의 면류관을 주실 것을 바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성도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르심의 상’ 혹은 ‘승리의 면류관’ 이라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합니까? 사실 오늘날 크리스챤 가운데 ‘하나님의 상급’ 혹은 ‘축복’이라는 개념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식하는 ‘물질, 건강, 세상권력’등과 같이 우리가 인간적으로 추구하는 것들과 성경에서 의미하는 축복을 동일시하는 데서 오는 오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르심의 상급과 주께서 다시 오셔서 주시는 면류관은 세상의 상과 축복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그 한 예로서 성경에서 하나님만이 주시는 진정한 축복을 잘 나타낸 것이 <창. 32장>에서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구했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입니다. 그럼으로 천국시민된 성도들은 이 복된 은혜를 주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인 것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만나거나 헤어질 때 우리가 언제나 ‘안녕’이라고 하듯이 ‘마라나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마라나타’의 뜻은 아람어로서 ‘주께서 오십니다’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만나고 헤어질 때 마다 ‘주께서 곧 오십니다’라고 언제나 인사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그들의 간절한 소망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가지 물어볼까요? 솔직히 성도 여러분은 내일 당장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시길 소망합니까? 아니면 오시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 실컷 하다가 몇십 년 후쯤 오셨음 좋겠습니까?

둘째, ‘주께서 능력으로 만물을 복종케 하심을 믿는 자’ 입니다: 저는 지난 성탄절 특집 메시지를 전하면서 ‘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는가?’에 대해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주님은 우리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심으로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 사실을 잘 이해하고 믿습니다. (주께서 나를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롬. 8장>에서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롬. 8:19, 21) 라고 선언했습니다. 이 의미는 모든 자연만물이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파괴된 하나님의 온전하신 창조질서로 회복되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아담과 같이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그에게 맡긴 만물을 파괴하고 고통에 빠트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 뜻대로 자연만물을 회복시켜줄 하나님의 아들들, 즉 그분의 아들과 딸이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한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 인간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의 모든 창조물, 바로 자연만물을 회복 시키시고 자 하심 인 것입니다.

물론 주님은 혼자 그 일을 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된 우리 성도들과 함께 동역 하시고자 함입니다. 주님은 우리 성도들과 함께 자연만물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나 기억하고 고백해야 하는 것은 만물을 회복하시고 복종케 하시는 권능과 능력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가 밝히듯이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시는 자)” (v.21a) 라고 말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천국시민이 된 거듭난 성도들은 나의 육신과 세상을 사랑하고 그것에 관심가지는 좁은 시야를 떨쳐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소망하는 가운데 ‘파괴된 자연 만물의 회복’을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큰 그림의 ‘크리스챤의 세계관’이기도 합니다. 바로 만물을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주의 권능을 힘입어 나 자신을 넘어서서 자연과 이웃과 사회와 국가에 이르는 전 영역을 아울러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통치로 다스려지는 그분의 나라가 되도록 힘쓰는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 6:33)는 명령을 힘쓰는 것입니다.

셋째, ‘주의 영광스런 몸과 같이 변화될 자’ 입니다: 제가 앞에서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는가?’에 대해 살펴 봤드시, 우리를 죄 용서하시기 위해 그리고 자연만물을 회복 시키시기 위해 오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 더 있습니까? 이것은 가장 영광스럽고 소망스러운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실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시키시고 자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8장’에서 사도 바울은 “ ~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8:17~18) 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 그리스도와 함께 받을 영광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사도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정확히 같은 내용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 ~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v.21b) 즉 우리 성도에게 나타날 영광, 우리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받게 될 영광은 구체적으로 말해서 ‘우리의 낮은 몸을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화시켜 주신다’는 것입이다. 물론, 우리는 이런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현재 우리가 천국을 정확히 영적으로 다 이해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광과 같이 우리를 변화시키신다는 것이 얼마나 은혜 중의 은혜요, 축복 중의 축복인지는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영광스러운 성자 하나님,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같이 우리를 변화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종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현재의 상태가 아니라, 장차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이루어 주실 우리의 영광스러운 미래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천국시민인 성도들이 바로 이것을 믿고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썩어질 육신의 몸을 벗고 영광스러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변화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나팔소리가 나 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고전.15:52,54) 라고 사도는 마지막날 성도가 부활하게 될 때의 영광스런 영적 상태를 성령의 충만함으로 그 복된 비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까? 그분께서 다시 오셔서 만물을 그의 능력으로 회복하여 순종 시키 실 뿐 아니라, 우리의 낮은 몸을 그의 영광스러운 존재와 같이 변화시켜 주실 것을 간절히 기다립니까? 제가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며 분명히 하고자 하는 한가지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간절히 구 함으로서 구원받고 천국시민이 될 수 있다’라고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았다면, 즉 천국시민이 되었다면 우리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를 바라볼 수 있고 간절히 기다릴 수 있는 존재’가 되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면, 영적으로 죽은 자가 그리스도를 기다리거나 그를 추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태어난 자만이 주를 기다리며 갈망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오늘말씀을 통해 우리 각자가 스스로 질문해야 하는 것은 ‘나는 거듭난 자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듭났다면 ‘나는 주님을 신뢰함으로 그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있는가?’를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한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추구했다면 그 허물과 죄악을 모두 내어놓고 회개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 그리하여 오직 성령님의 능력으로 더 이상 육신을 좇지 않고 죄와 세상을 사랑하는 육신과 싸워 이기고 승리하는 천국시민 되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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