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6, 2022

“은혜의 경륜” (The Dispensation of The Grace)

Preacher:
Passage: 에베소서 (Ephesians) 3:2~4
Service Type:

“은혜의 경륜”

(The Dispensation Of The Grace)

2-6-22

본문말씀: 에베소서 (Ephesians) 3:2~4

2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Surely you have heard about the administration of God’s grace that was given to me for you,)

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that is, the mystery made known to me by revelation, as I have already written briefly.)

4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In reading this, then, you will be able to understand my insight into the mystery of Christ)

[설교 요약]

            이제 사도는 3장을 시작하면서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정하신 구원의 비밀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성경전체의 큰 그림에서 조명하고, 구체적으로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는 <엡. 3장>말씀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된 나 바울은 …” (v.1)라고. 여기서 사도가 자신이 ‘갇힌 자’ 곧 ‘죄수의 몸’이 되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이유는 ‘이방인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그는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v.13)고 주장합니다.

지금 ‘감옥에 갇힌 자신의 상황’을 분명히 밝히고 영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이것이 성도들이 자신으로 인해 낙심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영적으로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임을 바울은 말합니다. 사도가 갇히게 된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따라 자신에게 계시된 비밀을 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비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놀라운 비밀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고자 자신이 옥에 갇히게 되었고, 이런 상황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리스도의 비밀일까요?” 그것은

첫째, ‘창세전에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심’ 입니다: 사도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음’ (1:4)을 1장에서 선언한 바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하기도 전에, 아니 창조하기도 전에 이미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할 계획의 비밀을 가져 계셨던 것입니다.

둘째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로 하나됨’ 입니다: 초대교회때까지 이어져온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가로막힌 율법의 담을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허무시고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2:14~16). 그로 말미암아 성령께서는 이 둘이 하나로 그리스도의 몸 (교회)이 되었음을 계시하셨습니다 (3:5)

셋째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통일되게 하심’ 입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이 놀라운 것은 교회를 통하여 장차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 곧 ‘영광스러운 천사들’까지도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배우게 된다고 사도는 계시합니다 (3:10).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과 땅에 속한 모든 것이 통일되는 놀라운 비밀의 성취인 것입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위하여 고난과 핍박을 받게 된다면, 낙심할 것이 아니라 놀라운 그리스도의 비밀을 성령의 능력으로 함께 성취해 나감으로써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기대합니다.

[설교 전문]

            저는 사도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놀라운 복음의 비밀에 관해서 에베소 성도들에게 설명하는 오늘 본문말씀을 묵상하면서 ‘진리에 대해 우리가 눈뜬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도는 <고린도서>에서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인지를 선포하고 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기억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전. 13:11)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사도가 ‘장성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때 이 사람은 육신의 나이가 장성한 사람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압니다. 육신의 나이가 아무리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여전히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이 있는가 하면, 나이는 아직 어리다 할찌라도 영적으로 장성한 자가 되어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리고 성숙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자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닫아 나감으로 이방인의 사도로서 은혜의 직분을 어떻게 넘치도록 감당할 수 있었는지를 <에베소서 3장>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진리에 더욱 눈을 뜨고, 어린 아이의 일을 벗어버리고 영적으로 장성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더욱 깨닫고, 그 뜻 가운데 살아가는 복된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기대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살펴본 것처럼 사도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계획하신 <구원의 비밀>이 무엇인지를 에베소를 시작하면서 1~2장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사도는 3장을 시작하면서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정하신 구원의 비밀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성경전체의 큰 그림에서 조명하고, 구체적으로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은 <1절>입니다. 사도는 <엡. 3장>말씀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 (v.1)라고. 사도는 <3장>을 시작하면서 편지를 받는 <에베소 성도들>과 같은 ‘이방민족을 위하여 자신이 갇힌 자’ 되었다고 진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영문성경으로는 “the prisoner of Christ Jesus for the sake of you Gentiles…” 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의 일로) 갇힌 자’ (=예수그리스도의 죄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는 자신이 이렇게 로마의 감옥에 갇혀서 이 편지를 쓰게 되었는데 (행. 21:27~36), 그가 이렇게 죄수의 몸이 된 것은 바로 ‘이방인들을 위하여서’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이 세상에 갇힌 자’나 ‘로마에 갇힌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갇힌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도가 이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목회자적인 관점입니다. 이것은 에베소 성도들이 자신이 감옥에 갇힌 이유로 인해 실망하거나 낙심케 되길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그는 <13절>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v.13)

그런데 <1절>을 유심히 보면 <2절>과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는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된 나 바울은 …” 이라고 말하고 나서, <2절>에서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앞문장과 뒷문장이 잘 연결되지 않습니다. 여기에 대해 많은 신학자들은 <2~13절>을 ‘삽입절’이라고 말합니다. 사도가 주제에서 벗어나 잠시 삽입된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체 흐름에서 본다면<1절>에서 “나 바울은”이라고 <주어>를 말하고 나서 사도는 중간에 길게 이어지는 삽입절 (2~13절)을 지나서, 실제적으로 <15절>에서 “무릎을 꿇고 비노니” 라는 <동사>로 이어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신학자들 중에는 이와 같이 사도가 주제에서 벗어난 파격적인 삽입절 (2~13절) 사용하는 것을 두고 문법적으로 매끄럽지 못하고 거친 문장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도는 하나의 신학적 논문을 쓰고자 하거나, 수려하고 완벽한 문학작품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목회자의 심정>으로 언제나 글을 쓰고 있음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사도 바울의 글을 읽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가 언제나 목회자의 심정으로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로마서> <빌립보서> <고린도서> <골로새서> 그리고 <에베소서>등과 같이 그 모든 서신서 속에 깊고 위대한 신학적 사상을 담고 있다 할찌라도, 그의 글의 중심되는 특징은 언제나 목회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글이라는 점입니다.

그럼으로 서도가 비록 파격적으로 보이는 삽입절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그 진정한 이유는 목회자의 관점에서 성도들에게 분명한 한가지 점을 일깨워 주기 원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1절>에서 그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포함한 이방인들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일로 감옥에 갇히게 된 자신으로 인해 그들 중에 더러는 낙심하고 더러는 시험에 드는 자도 있음을 그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자신이 감옥에 갇힌 이유로 성도들이 낙심하거나, 믿음의 시험에 빠지기를 결코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사도는 에베소 성도가 자신의 환난을 통해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으로 인하여 힘을 얻고 영광 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성도들이 자신이 로마의 죄수가 된 것을 부끄러워 하거나, 낙심할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랑스러워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할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오늘 본문 <2절>에서 <13절>까지에 걸쳐 설명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는 그들의 영성을 책임진 목회자로서 자신의 여러가지 환난에 대해서 걱정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도리어 기뻐하고 영광스러워 하라고 격려하고 도전하는 것 (v.13) 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이렇게 성도들에게 ‘낙심하지 말고 도리어 자신의 일로 영광스러워 하라’고 도전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늘 <2절>말씀에서 시작합니다.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 (v.2) 때문입니다. 여기서 먼저 오늘 말씀의 제목으로 잡았듯이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이라고 사도가 말했을 때 ‘경륜’ (the dispensation)이라는 뜻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경륜’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는 “오이코노미안”으로써 <하나님의 계획이나 경영> 또는 <관리하는 실제적 행위> (v.9)를 뜻합니다. 그리고 이 경륜이라는 단어가 여기에서는 ‘집안 관리를 맡은 직분’ (집사/stewardship)을 의미한다고 여러 신학자들 (Lindemann, Lincoln, Wood)은 해석합니다. 이것은 곧 바울이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직’을 감당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은혜의 직분’일까요? 그 이유는 그는 과거 교회를 핍박하고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열심으로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던 자격 없는 자였지만, 이런 그를 통해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통로를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행. 9:15). 또한 이 직분이 은혜인 것은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이 주어지지 않은 구원에서 제외된 소망 없는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죄와 사망의 암흑 가운데 살아가던 이방인들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택하신 사도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 앞으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자신과 이방 민족 모두에게 있어서 그 직분이 은혜가 되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분의 은혜로운 예정으로서 사도를 통해 행하시고자 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사도는 그것을 한마디로 <‘비밀’ (mystery/secret)을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에베소서를 처음 시작하면서 함께 나누었듯이 사도가 계속해서 주장하는 ‘비밀’의 의미는 모호하거나 신비함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반대로 이 비밀은 ‘과거에는 감추어지고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밝히 드러남으로 깨닫게 된 진리’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도저히 깨닫을 수 없지만, 하나님의 능력 곧 성령의 능력으로 깨닫게 하심으로 드러난 진리의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비밀의 핵심을 사도는 ‘그리스도의 비밀’ (the mystery of Christ)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첫째는 창세전에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심 입니다. 사도는 오늘 말씀에서 이렇게 그 비밀을 밝히고 있습니다.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v.3~4) 여기서 사도는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깨닫게 된 그 비밀에 대해서 “먼저 간단히 기록(하였다)”고 언급합니다. 성경학자들은 사도가 먼저 기록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의 골로새서 (1:26~28; 2:2)나 고린도전서 (2:1,12)에서 드러낸 그리스도의 비밀이라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사도가 오늘 에베소서 본문 앞의 1~2장에서 먼저 설명한 예수 그리스도에 관련한 비밀을 말하는 것이라고 대다수의 학자들은 주석합니다. 여러분도 기억하시겠지만, 하나님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과 딸이 되게 하셨다” (1:4~5)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택하신 모든 자들을 ‘예수의 피로써 죄사함 받게 하심으로 그분의 자녀가 됨으로 우리에게 거져주신 은혜의 영광을 찬송’ (1:6~7)하게 하시고자 함인 것입니다.

둘째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로 하나됨입니다. 사도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에베소서에서 밝혀 나감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를 ‘교회’로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가 이 편지를 쓰고 있던 당시 초대교회의 구성원을 이루고 있던 대표적인 두 그룹이 있었는데 그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이었습니다. 지난번에 살펴본 데로, 오랜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에 율법으로 말미암아 굳게 가로막힌 장벽이 놀랍게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음을 사도는 2장에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도가 깨닫은 그리스도의 비밀인 것입니다. 사도는 말합니다.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v.5)라고. 그런데 이 비밀은 놀랍게도 다른 세대, 즉 구약의 시대에는 사람의 아들들에게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때가 되어 주의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성령을 통해 구체적으로 그 비밀의 뜻이 밝히 드러나듯이 그렇게 과거에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2장에서 사도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2:14,16)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로막고 있던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지으셔서 하나님과 화목 시키셨습니다 (2:13~16). 구약의 성도들에게 조차 감추어져 있던 그리스도를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의 몸으로 새사람을 입는 이 놀라운 비밀이 성취된 것입니다. 바로 주의 몸된 교회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교회의 영광이요, 은혜인지요!

셋째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통일되게 하심입니다. 사도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여기까지 확장해 나가면서 <10절>에서 이렇게 놀랍게 진술합니다.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v.10)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통일되는 것’ (1:10)이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계획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비밀’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그의 몸된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비밀인 것입니다.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충만한 영광과 능력인 몸된 교회를 통해 밝혀지는 비밀인 것입니다 (1:22~23). 이것은 앞서도 살펴본 데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 곧 모든 민족과 나라들을 예수 안에서 하나로 연결된 몸, 교회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욱 나아갑니다. 그것은 하늘과 땅에 속한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는 지금 하늘에 있는 영광스럽고 선한 천사들까지도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선하신 지혜와 은혜로운 구원의 비밀을 배우게 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된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이루어질 놀라운 영광과 그리스도의 비밀의 성취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사도가 된 바울이 그가 받은 충만한 계시된 말씀을 통해 에베소 성도들 뿐 아니라 여러분과 저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성령님의 충만하신 은혜로 우리가 더욱 온전하게 깨닫아 나가기를 소망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 영적 각성을 통해 더 이상 어린 아이가 되지 말고, 장성한 사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기를 도전함이 아닐까요!? 성도 여러분은 ‘고난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를 가져옴’ (빌. 1:12)을 이해하십니까?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벧전. 1:6~7) 그는 더 이상 우리 앞에 찾아오는 ‘시련의 불시험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도리어 시련이 찾아 올 때에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시련을 우리를 넘어트리고 실패케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게 우리를 연단 시켜서 주님 다시 오실 때에 칭찬과 존귀를 얻도록 지켜주고 장성하게 자라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가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과 저에게 도전하는 메시지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더욱 깨닫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고난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는 가?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군사로써 더 확신과 기쁨 가운데 고난과 싸워 승리하고자 함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충만하신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더욱 깨닫아 나감으로 점점 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리고 장성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어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