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13, 2022

“지식에 넘치는 사랑” (Love That Surpasses Knowledge)

Preacher:
Passage: 에베소서 (Ephesians) 3:17~19
Service Type:

“지식에 넘치는 사랑”

(Love That Surpasses Knowledge)

2-13-22

본문말씀: 에베소서 (Ephesians) 3:17~19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so that Christ may dwell in your hearts through faith. And I pray that you, being rooted and established in love,)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may have power, together with all the saints, to grasp how wide and long and high and deep is the love of Christ,)

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닫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and to know this love that surpasses knowledge – that you may be filled to the measure of all the fullness of God.)

[설교 요약]

            사도 바울은 에베소 3장에서 성도를 향한 간절한 기도를 드리면서 그들이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케 되기를 축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곧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기를)” (v.17) 사도가 기도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리는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누려 나갈 수 있을까요” (How do we enjoy the Christ’s love that surpasses our knowledges?) 그것은 무엇보다도,

첫째, ‘성령의 강건케 하심으로’ (Through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가능할 것입니다: 사도는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엡. 3:16)라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주의 사랑을 누리기 위해 먼저 우리의 속사람이 성령으로 강건하게 되어야합니다. 왜냐하면, 이 속사람의 강건함이 없이는 영적 성장이 없고, 또한 악한 영 사단 마귀와 싸워 이길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믿음의 신뢰함으로’ (Through the trusting of faith) 가능할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속사람이 강건케 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게 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v.17)라고.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할 뿐 아니라, 그분이 내 마음에 계시도록 믿음으로 그분의 자리를 비워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사랑을 적용함으로’ (Through applying the Christ’s love)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주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깨닫아 나갈까요?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또한 신실한 성도들이 주님과 누렸던 깊은 사랑의 관계를 신앙서적을 통해 배워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도를 통해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 심령 가운데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고후. 5:14)는 바울의 고백처럼 내 삶 속에서 실제하시는 주님의 강권하시는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인가가 우리 성도의 미션인 것입니다.

우리의 지각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성령의 능력으로 마음 깊이 뿌리 내림으로 그 귀한 사랑의 열매를 날마다 풍성히 누리는 성도 여러분 모두 되시길 축원합니다.

 

[설교 전문]

            세상에 존재하는 언어 중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만큼 우리 인간에게 강력한 영향력과 살아가는 의미를 주는 말이 또 달리 있을까요? 그러나 실제 사랑하면 할수록 ‘사랑’이라는 말처럼 그 사랑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으며, 그 사랑을 온전히 실천하는 것이 불가능한 지를 우리는 뼈저리게 절감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를 향한 간절한 기도를 드리면서 그들이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케 되기를 축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왜 에베소서가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에게 그토록 중요한 것인지?’를 여러분과 살펴 나가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그토록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주저없이 ‘사랑’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이것이 성경전체의 메시지며, 동시에 오늘 본문을 통해 사도가 우리에게 강조하는 말씀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제가 지난 시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우리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13)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해하기로 우리 크리스챤과 믿지 않는 세상사람들 사이에서 대부분 이견 없이 서로 동의하는 흔치 않는 몇 가지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관계가 이성 간이든, 부모자식 간이든, 혹은 인간과 신의 관계든 상관없이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랑은 마치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삶의 원동력이자, 풀과 나무를 자라게 하는 물과 햇빛과 같은 존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의 가치와 중요성은 모든 사람들이 동의합니다. 그러나, 좀더 나아가 ‘무엇이 진정한 사랑인가?’ 라고 질문했을 때 그 대답은 너무도 다양할 것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저는 ‘사랑에 대한 그 사람의 이해정도가 그의 인격과 성숙도를 결정한다’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사도 바울이 <에베소 3장>을 시작하면서 에베소 성도들을 향해 ‘어떻게 하나님께서 구원의 비밀을 성취해 나가시는지?’를 ‘그리스도의 비밀’이라는 주제로 풀어나감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도는 이런 놀라운 그리스도의 비밀을 성도들이 깨닫아 나가기를 원했습니다. 단순히 원하는 정도가 아니라, 간절히 하나님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빈다고 그는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에서 보듯이 ‘하나님께서 성도 한사람 한사람을 그분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케 하시기를 무릎 꿇고 빈다’고 사도가 말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가 ‘하나님께서 성도를 그분의 충만하심으로 충만케 하는 핵심’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를 여러분은 이해하시겠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충만을 누리게 된다’고 그는 주장하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말씀의 제목으로 잡은 <지식에 넘치는 사랑> (love that surpasses knowledge)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인데 그 사랑은 우리 인간의 이해력을 넘어선 측량할 수 없는 초월적인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성도가 진정한 성숙을 이룰수 있는가는 그 무엇보다도 ‘지각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얼마만큼 깨닫고, 그 사랑을 삶 가운데 누릴 수 있느냐’ 로 결정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의 말로 표현한다면,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는” (v.17)입니다. 이제 여기서 우리가 질문해 보아야 할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우리는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누려 나갈 수 있을 것인가요?” (How do we enjoy the Christ’s love that surpasses our knowledges?)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첫째, ‘성령의 강건케 하심으로’ (Through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가능할 것입니다. 사도는 오늘 본문 바로 앞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비는 내용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v.16)라고. 여기서 보면, 사도는 간절히 성도들을 향한 축복의 기도를 하면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기를’ (may strengthen you with power through His Spirit in your inner being)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성령으로 강건하게 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물론 이것은 ‘불신자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도가 지금 편지하고 있는 대상은 불신자들이 아니라, 예수 믿고 그분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 살아가는 에베소 성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성도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되기를’ 가장 우선적으로 기도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제가 여러 번 강조했듯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거듭나게 될 뿐 아니라, 계속해서 성령을 통한 강건케 하시는 도우심 없이는 영적 성장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도가 에베소성도를 위한 축복의 요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성도의 마음 가운데 충만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루어지기 위한 첫걸음은 언제나 그의 영,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하게 지켜 주심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케 하실 분은 오직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런 성령의 강건케 하심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왜 우리는 강건하게 되어야 할까요? 그 이유는 우리 모든 거듭난 자는 영적으로 자라나야 하는 존재임을 이해한다면 왜 영적 강건이 필요한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고전. 3:2)고 바울은 영적 어린아이와 같은 고린도 성도들을 책망한바 있습니다. 속사람이 성령으로 강건해 지지 못할 때 우리는 자라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강건함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악한 ‘원수 마귀’의 존재 때문입니다. 사도는 에베소서를 마감하면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 6:12)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우리 자신의 힘과 지혜로 이 악한 영들과 대적하여 싸워 결코 이길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만 우리는 강건케 되고, 이 악한 영들과 싸워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믿음의 신뢰함으로’ (Through the trusting of faith) 주의 사랑을 누려 나갈 수 있습니다. 사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성도를 강건케 하여 주실 것’을 구한 다음에, 계속해서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마음 가운데 계실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v.17)라고. 제가 앞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해지는 것이 예수님을 처음 믿고 영접한 상태가 아니라고 설명했듯이,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성도의 마음에 계시기를’ 구하는 상태 또한 예수님을 처음으로 영접하는 상태가 아님을 우리는 분명하게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 말씀 가운데서, 성도들이 잘못 오해하는 대표적인 말씀의 하나가 <계시록 3:20>말씀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고 부활하신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주께서 말씀하시는 대상은 누구일까요? 그 대상은 불신자가 아니라, 이미 주님을 믿은 <라오디게아교회>성도들이었습니다. 주님을 이미 영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차지도 덥지도 아니하고, 미지근한 신앙생활’ (3:16)하는 라오디게아 성도들입니다. 주님께서 이들에게 더욱 성숙하고,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촉구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은 영적으로 성숙할 것을 아직 미성숙한 성도들에게 도전하시면서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저는 이점이 오늘 본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라는 말씀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고 믿습니다. 단순히 예수 믿고 구원받은 영적 출생의 상태, 곧 ‘영적 아기’와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몸이 자라고 육체가 자라듯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마음에 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계셔야 함을 이해하십니까? 이를 위해 주님의 임재를 구하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영적 성장을 위해 주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계셔야 함을 인정하신다면, 그것이 이루어지기 위해 ‘믿음으로 주님을 우리 마음에 계시게 할 수 있다’고 사도가 주장하고 있음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계시게 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계신다” (dwell)는 말의 의미는 ‘집으로 삼고 그 안에 산다’는 뜻입니다. 어쩌다가 한번 잠깐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정착하여 집으로 거처를 정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엡. 2장>에서 하나님께서 교회를 자신의 성전으로 삼으시고 ‘자신의 영원한 거처로 삼으셨다’고 했을 때와 정확히 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마음 가운데 거처를 삼으시고, 영원히 함께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 가운데 계시다는 의미는 단순히 영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의미가 아닌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께서 라오디게아 성도들에게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와 더불어 먹(는다)”는 의미는 주님과 더욱 깊은 관계로 나아감을 의미합니다. 주님과 하나됨을 의미합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사는 것이라” (갈. 2:20)는 사도의 고백이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관계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잘 말해 줍니다. 그럼으로, 주석가 매튜헨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에 계신다’는 의미를 이렇게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영혼의 문을 여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믿음은 그를 용납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진다” 라고.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에서도 계속해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도록 믿음으로 그분이 계실 자리를 비워드리고, 그분께 참된 신뢰와 순종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각자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사랑을 적용함으로’ (Through applying the Christ’s love) 누릴 수 있습니다. 제가 이미 말씀드렸듯이 사도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핵심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풍성하게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계속해서 진행되는 <에베소서>의 핵심 주제이기도 한 것입니다.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닫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v.17~19)고 사도는 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그리스도의 대한 본질과 성품과 인격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자 완전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난 성자 하나님의 본질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중심된 교리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 뿐만 아니라, 우리는 신앙서적을 통해 위대한 성도들의 그리스도와 깊은 하나됨을 체험했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주님의 인격과 사랑의 위대하심을 이해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아 가는 핵심은 내 마음 중심에 주를 모시고 살아감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의 형식이나 이론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 성령님의 권능을 통하여 성도 산사람 한사람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실제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각자가 영적으로 살아가는 매우 다양한 삶의 적용인 것입니다. 어떤 훌륭한 신앙의 위인이 어느 성경구절을 읽고 충만한 영감을 받고 놀라운 깨닫음을 받았다고 해서, 나도 꼭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커피 자판기’에 동전을 집어넣으면 자동으로 커피 한잔이 나오는 식이 아닌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우리 각자가 본격적인 영적 체험의 세계로 들어가는 지점인 것입니다.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알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가는 충만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마음 가운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적용하고 누리게 되는 단계입니다. 이것을 사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고후. 5:14)라고 묘사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그 크신 사랑이 우리를 강하게 사로잡고 통치하심을 온 몸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성도들에게 있어서 반드시 행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기도’일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더 깊은 사귐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담대하게 나아가게 되며,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아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화’입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성령의 도우심으로 날마다 깨닫게 해 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누려 나가는 것이 성화, 곧 영적 성장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며, 이러한 영적 성장을 가져오기 위해 우리가 질문해 볼 것은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나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계속 해서 추구하는가?’ 그리고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확신하는가?”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현재의 영적 상태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까?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셨습니까? 그렇다면, 계속해서 성령의 능력으로 여러분의 속사람이 강건해 가고 있습니까?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풍성하게 열매 맺고 있습니까? 바라기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성령님의 강건해 하심으로 여러분의 심령속에 더욱 뿌리내리고 견고케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인간의 지혜와 능력을 초월하는 놀라운 그리스도의 사랑을 날마다 깨닫아 가고, 풍성히 누려 나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