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9, 2021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Give Me This Hill Country)

Preacher:
Series:
Passage: 여호수아 (Joshua) 14:12
Service Type: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Give Me This Hill Country)

8-29-21

본문말씀: 여호수아 (Joshua) 14:12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Now give me this hill country that the Lord promised me that day. You yourself heard then that the Anakites were there and their cities were large and fortified, but, the Lord helping me, I will drive them out just as He said.”

[설교 요약]

            이제 새로운 가을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 새학기를 맞아서 계획한 일들이 주안에서 귀하게 열매 맺으시길 기대합니다.

오늘 본문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은 이스라엘민족의 가나안 정복 후반부에 해당합니다. 아직까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가운데서 이스라엘이 취하지 못한 땅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지도자 여호수아는 나이 많아 세상을 고해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12지파에게 약속한 땅을 분배할 것을 명하셨고, 그 명령에 따라 땅 분배를 그는 행했습니다 (수. 13~14장). 이런 상황 가운데 그에게 나아온 ‘유다지파’의 지도자 몇사람 가운데 한명이었던 갈렙이 오늘 보는 본문의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라고 말입니다. 새학기를 맞으며 새로운 출발을 하고자 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저는 함께 영적 거인 갈렙의 삶을 본받기 원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우리가 배워야 할 갈렙의 믿음일까요?” (What is the faith of Caleb’s faith that we should follow?) 그것은,

            첫째, ‘목표가 분명한 믿음’ (It is the faith that focus on clear target) 입니다: 갈렙은 막연한 목표를 세운 것이 아닙니다. 흔히 하는 말로 ‘신앙생활 잘해야지’ ‘행복해야지’ ‘건강해야지’ ‘공부 잘해야지’라고 말하지 안습니다. 목표가 분명하다는 것은 ‘측정가능한 목표를 정한다’는 뜻입니다. 그는 구체적인 목표 ‘헤브론’을 목표로 정했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 (v.12)라고 목표를 분명하게 정했습니다.

           둘째, ‘이웃에게 인정받는 믿음’ (It is the faith that is affirmed by neighbors) 입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 뿐 아니라, 사람에게서도 인정받았습니다. 모세 (수. 14:9)과 여호수아에게서 (수. 14:13)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갈렙은  ‘그니스사람’, 즉 이방민족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유다 지파의 지도자로 세움받아서 그의 충성과 믿음을 인정받았던 것입니다.

            셋째, ‘약속을 바라보는 믿음’ (It is the faith that keep look at the promise by God) 입니다: 왜 갈렙은 헤브론을 간절히 갖고자 원했던 것일까요? 그 중심에는 그가 ‘믿음의 눈’을 가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두루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민. 14:7~8)고 그는 과거 헤브론을 탐지하고 와서 보고 했습니다. 다른 10명은 ‘그 땅은 거민을 삼킬 악한 땅이다’라고 했음에도 말입니다. 이것이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보았음에도 극명하게 다른 판단을 하는 근거입니다. 갈렙에게는 믿음의 눈으로 헤브론을 볼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라기는 이제 새로운 학기가 시작하며, 성실하게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믿음의 눈을 열어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한걸음씩 그 목표를 성취해 가는 성도 모두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설교 전문]

            이제 새로운 가을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이번 학기를 맞아 첫 유학생활을 시작하는 분도 있고, 또 새로운 학위를 시작하는 분도 있으며, 그리고 새로운 직장에서 업무를 시작하는 맴버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공동체 안에서도 다양한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 여러분이 잘 아시듯이 미국의 학사 년도는 봄학기가 아니라 가을학기에 시작됩니다. 학사년도 한 해의 시작이 한국처럼 봄이 아니라 가을인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예배에 참석한 성도 여러분 모두 이번 학기 계획한 모든 일들이 주안에서 귀하게 열매 맺으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은 이스라엘민족의 가나안 정복 후반부에 해당합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모세의 지도하에 출애굽하여 40년간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가 시작되었고, 오늘 본문 <수. 14장>에 이르기까지 여호수아서의 기록 자체가 바로 가나안 정복의 역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나안 전투는 <수. 2~6장>에 기록된 여리고 성 전투를 필두로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족속들과 수많은 전투를 치뤄 승리하였고 그 약속의 땅들을 취해 나갔던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오늘 본문 바로 앞 <수. 13장>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 (수. 13:1)라고. 이 말은 여호수아가 93세에 모세에 이어 민족의 지도자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가나안 정복의 역사를 시작하고 나서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이제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의 나이는 100살을 이미 넘었습니다. 그는 받은 사명을 충성스럽게 잘 감당하였지만, 그의 기력은 쇠하였고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세상을 고할 시간이 가까워 온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가운데서 이스라엘이 쟁취하여 얻지 못한 땅이 많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명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직까지 얻지 못한 땅을 각 지파별로 분배하여 믿음으로 그것을 취하게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각 지파별로 하나님은 그 남은 땅을 <수. 13장>에서 분배하여 주시고 난 다음, 이어지는 것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와 같이 땅분배를 마치고 나서 본문 앞 절 <수. 14:6>에서 유다 자손들이 그에게 나아왔고, 그들 중에서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내 나이 사십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이 땅에 정탐케 하므로 내 마음이 성실한 대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v.6~7)라고 말을 시작합니다. 갈렙은 지난 날, 자신이 40세의 나이에 가나안 땅을 탐색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각 지파별로 차출된 12정탐꾼의 한 명이 되어 그곳을 정탐하고서 보고한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민. 13~14장).

성도 여러분 가운데 기억하는 분도 많겠지만, 모세가 보낸 12명의 정탐꾼 중 10명은 그 정탐하고 돌아온 땅을 악평했습니다. 그들이 탐지한 땅은 거민을 삼킬 나쁜 땅이요, 그 땅 거민은 키가 장대한 아낙자손 거인들로써 그들에 비하면 자신들은 메뚜기 같다고 보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믿음의 눈으로 보고 했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 여호와께서 ~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민. 14:7~9)라고 이들 두사람은 믿음의 눈으로 보고 했던 것입니다.

지금 갈렙은 바로 그날의 일을 회상하며 그 사건을 함께 겪었던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고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런 사실을 이어지는 <8~9절>에서 진술하며 백성들이 하나님을 불신함으로 그들의 간담이 녹아내려 얼마나 하나님을 원망했는지 하는 것과, 그러나 자신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는지를 고했습니다. 그럼으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v.9)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45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 그의 나이는 85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 오늘날 내가 85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v.10~11)라고. 그가 이제 비록 85세라는 고령의 나이지만, 자신은 45년전 모세가 자신을 보냈던 그날과 같이 강건하다고 고백합니다. 아니 그는 오히려 더욱 강건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90세를 눈앞에 둔 그의 육신의 몸이 45년전 보다 더 젊어지고 강해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정신과 영적 강건함은 그의 고백과 같이 과거의 그 어느때보다 오히려 더욱 강건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따라서 85세 고령의 갈렙장군은 이렇게 날이 갈수록 더욱 강건해지는 영적 거인으로 이렇게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구하는 것입니다.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v.12a)라고 말입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는 그 성읍이 아무리 크고 견고하다 할지라도, 그리고 그 성에 사는 아낙 자손이 아무리 크고 장대한 용사라 할지라도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v.9)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에 그는 반드시 말씀대로 될 것을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저는 새학기를 맞아 새로운 소망과 비젼을 기자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을 얻고자 하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영적 거인 갈렙의 삶의 본을 통하여 함께 도전 받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과연 무엇이 우리가 배워야 할 갈렙의 믿음일까요?” (What is the faith of Caleb’s faith that we should follow?) 그것은,

            첫째, ‘목표가 분명한 믿음’ (It is the faith that focus on clear target) 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새해나 새학기가 되면 새로운 목표를 정하고 그 골을 성취하고자 하는 시도하곤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정한 목표가 오래가지 않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작심 3일’로 끝나는 경우가 태반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에는 왜 많은 사람들이 마음먹은 목표를 끝까지 이루지 못하고 도중에서 포기하게 되는 것일까요? 물론 그 이유가운데는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끈질긴 추진력’이 부족하다든가 처음부터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동기’ 자체가 약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못지않게 문제가 되는 것은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간혹 새학기를 시작하면서 ‘이번 학기에 이뤄지기를 원하는 것이 뭔가요?’라고 물어보면, ‘행복해지는 거요’ ‘건강한 거요’ ‘학점 잘 받는 거요’라고 대답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바램이 잘못된 것은 아닐찌라도 상당해 막연한 바램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갈렙의 경우는 그렇지 않음을 봅니다. 그의 목표는 분명했습니다. 그것은 <헤브론 산지>였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v.12) 라고 그는 여호수아에게 자신이 원하는 땅을 분명하게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갈렙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용맹하게 헤브론 성을 쳐서 아낙의 세 아들,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한꺼번에 쳐서 무찔렀던 것입니다 (수. 15:13~19). 이것이 분명한 목표 ‘헤브론’을 향하여 전진해 나아간 갈렙이 거두었던 승리의 열매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목표가 분명하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측정 가능한 목표인가?’하는 점에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행복해야지’ ‘건강해야지’ ‘공부잘해야지’ ‘돈 많이 벌어야지’ ‘신앙생활 잘해야지’가 아니라,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측정가능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오늘 하루의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할 것인지를 확인해 나가는 것입니다. 갈렙은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철저하게 싸워 쟁취했던 것입니다.

            둘째, ‘이웃에게 인정받는 믿음’ (It is the faith that is affirmed by neighbors) 입니다: 얼핏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우리가 갈렙에게서 배울 점은 사람들에게서 인정받는 믿음인 것입니다. 모세는 그의 충성스런 믿음을 보고 이렇게 맹세하였습니다.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 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수. 14:9)고. 이 뿐 아니라, 모세를 이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도 갈렙이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헤브론 땅’을 구했을 때 어떤 이견이나 반대함 없이 축복하며 그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삼을 것을 이렇게 허락했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수. 14:13).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우리가 주위를 둘러보면, 신앙은 좋아 보이는데 의외로 친구나 이웃 그리고 교회 지체들 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분들을 봅니다. 갈렙은 자신과 하나님과의 신실한 믿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함께 동역한 자들에게도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믿지 않는 이웃들, 학교 클래스메이트나 직장동료 혹은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가장 힘든 이유가 이것이 아닌가요? 바로 ‘나의 삶의 모습과 내가 전하는 복음이 전혀 연결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평상시에 내가 그들에게 크리스챤으로써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너나 잘 믿으세요!’라고 속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잘 나타나 있지 않지만, 갈렙의 출생 (=계보)은 특이한 점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앞의 <수. 14:6>을 보면 갈렙의 출생을 언급하면서 “그니스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그니스사람>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이거나 혹은 이방민족일 것이라고 성경학자들은 추측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어떻게 이스라엘 유다지파에 속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백성들과 함께 살았던 이방인들이 각 지파별로 편입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 ‘그니스사람’이었던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유다지파에 편입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민족’만큼 선민의식과 혈통을 강조하고 자랑하는 민족이 없는데, 과거 이방인에 속해 있다가 이스라엘로 편입된 사람들을 받아는 들이겠으나 얼마나 편견이 심하고 텃세를 부렸을까요!? 그간의 지나온 세월을 우리는 기록으로는 전혀 알수 없지만, 갈렙은 그의 나이 40세에 이미 동료들의 강력한 신임 가운데 이스라엘의 리더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7만명이 넘는 유다 지파를 대표하는 가나안 정탐꾼으로 발탁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갈렙은 45년이 지난 지금 유다지파의 가장 유력한 지도자의 한사람으로 여호수아 앞에 선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갈렙의 믿음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긴 세월을 통하여 형성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이방민족 출신이라는 장애물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청년의 때에 이스라엘의 가장 용맹한 장수가 되었을 뿐 아니라, 함께 자랐던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지도자가 되었을 때도 조금도 불평하지 않고 그를 지도자로서 받들며 겸손히 섬겼던 갈렙의 모습은 이웃들에게 진정으로 인정받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여러분 가까이 있는 이웃들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셋째, ‘약속을 바라보는 믿음’ (It is the faith that keep look at the promise by God) 입니다: 갈렙이 소유하기를 원했던 헤브론 땅은 어떤 곳일까요? 역사적으로 볼 때, 헤브론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나안 땅으로 와서 처음으로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거하며 하나님께 단을 쌓던 곳 (창.13:18)이며, 그 이후 사라가 죽었을 때 헷족속에게서 막벨라 굴을 사서 가족 매장지로 삼고 아브라함, 사라, 리브가, 야곱을 장사한 곳입니다 (창. 49:29~33). 단순히 조상들이 그 땅에 묻혔다는 이유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땅에서 주실 복된 약속을 그가 소망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젊은 시절 이 땅을 정탐하고 돌아가서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민. 14:7~8)고. 그는 헤브론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보고했습니다. 바로 ‘믿음의 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가 오늘 지도자 여호수아 앞에서 분명히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구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는 믿음의 눈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바라보았고,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이 우리 믿는 자들의 가장 중요한 싸움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똑 같은 시간, 똑 같은 장소를 보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10명의 정탐꾼은 그 땅을 혹평했습니다. 그 땅은 사람을 삼킬 악한 땅이라고, 그리고 그 땅에는 자신들이 메뚜기로 보일만큼 장대한 아낙자손이 살고 있다고. 이 세상 사람들은, 아니 심지어는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얼마나 눈에 보이는 현실에 따라 목표를 정하려 하는지요!?

그러나 갈렙은 40세의 젊은 시절이나, 시간이 흘러 85세의 노쇠한 나이에나 관계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믿음을 소유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비젼으로 바라보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여기서 ‘약속을 바라보는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권능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을 뜻합니다. 약속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때, 헤브론 땅은 건너갈 수 없는 거대한 ‘장애물’의 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땅을 둘러 싼 높고 견고한 철옹성벽이 둘러 쌓여 있었고, 그 성벽을 설사 통과한다 할찌라도 거대한 아낙 자손이 버티고 서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헤브론은 단지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그러나 약속을 소유했던 갈렙에게 있어서는 장애물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약속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의 결과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지금 눈 앞에 가로막힌 장애물을 봅니까? 아니면 믿음의 눈을 가지고 장애물 너머의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소망하고 계획한 모든 것들이 주님 안에서 풍성하게 열매 맺는 이번 학기되기 축원합니다.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눈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영, 성령님의 충만하신 은혜로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약속의 땅을 분명히 바라보게 하시고, 성실함과 분명한 목표설정을 정하고 한걸음 한걸음씩 그 목표를 성취해 감으로 약속하신 은혜를 풍성히 누려가는 성도 모두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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